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706화
"자, 잠깐만! 학생회장!"
아우로르가 식겁한 표정으로 팔을 세웠다.
"내가 데바 의식을 치른 게 아냐! 아, 아니. 내가 한 건 맞나?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
횡설수설하는 아우로르를 보며 시몬이 차분하게 말했다.
"진정하고 천천히 이야기해. 전부 들어줄 테니까."
그녀는 급히 물잔을 붙잡고 목구멍으로 들이켰다.
꿀떡꿀떡 한 잔을 다 비운 뒤에야 조금 진정된 듯, 입을 열었다.
"그...... 데바 여신이 꿈에 나온 뒤로 생긴 일이야. 자해하는 것 말고도......."
"?"
잠자리에 든 뒤, 그녀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집 밖을 나가 놋쇠그릇이나 양초 등의 물건들을 가져왔다고 한다. 잡화점의 물건들을 훔쳤고, 톱질해서 나무 십자가를 만들었으며, 심지어 몬스터나 가축을 죽이고 그 머리를 질질 끌고 오기까지 했다는 것이다.
그러다 정신을 차리면 얼굴에 피가 흥건하고, 집에는 놋쇠그릇 등 의식 도구들이 잔뜩 굴러다니게 되었다.
몇 번이고 그런 일상을 반복했다. 자신이 밤마다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건지 두려웠다.
"......그러다 중간에 파수꾼들한테 걸려서 조금 시끄러운 일이 있었어."
그녀가 우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왜 신성연방의 의식 도구들을 들고 있느냐 하면서 추궁당했어. 다행히 키젠 학생 신분이라 잘 빠져나갔지만, 사람들은 아직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있어."
시몬은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불필요한 의심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괜히 교수나 어른들에게 이런 고민을 밝혔다가 수사가 시작되면 여신 숭배 혐의까지 받을 수 있었다.
암흑연합은 신성연방에 비하면 문화의 다양성을 존중해 주는 편이지만, 의식행위를 동반한 데바 여신 숭배만큼은 얄짤 없었다. 걸리면 최대 참수형에까지 이르는 무서운 중죄였다.
시몬은 바닥에 굴러떨어진 도구들을 훑어보았다.
"정말로 의식을 치르진 않은 거지?"
백마법의 세계에서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였다.
그녀를 탓하려는 게 아니라, 그녀가 의식을 성공시켰다면 조금 더 강력한 백마법적 효과가 나타났을 수도 있으니까.
아우로르는 공포에 질린 얼굴로 다리를 끌어안고는 벌벌 떨었다. 그러다 고개를 푹 숙이며 나지막하게 읊조렸다.
"한 번......."
시몬이 퍼뜩 고개를 들었다. 그녀가 사색이 된 얼굴로 다급히 덧붙였다.
"정말로 딱 한 번이야! 어, 어느 날 잠에서 깨니까 우리 집에 막 제단 같은 게 만들어져 있었어! 그때 꿈도 데바 여신이 내 목을 조르면서 울부짖는 꿈을 꿨고! 너무 무서웠어! 그래서...... 그 앞에 엎드렸어."
시몬이 눈을 감았다. 그녀가 변명하듯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내가 데바 여신을 섬겨서 그렇게 한 게 아니야! 그냥 목숨을 구걸한 거였어! 살려달라고! 그만하라고! 이렇게라도 하면 다음 날에는 여신이 꿈에 나타나지 않을까 생각해서......!"
"그래, 이해해."
궁지에 몰린 사람이 무엇인들 못 하겠는가.
시몬은 자신이 아는 신성마법 지식을 총동원해 상황을 파악하려고 했다.
'레테가 있었으면 바로 해결했을 텐데. 엄마한테 편지를 보낼까? 하지만 레스힐에서 답변이 오는데 2주는 걸릴 테고.'
아무래도 내일 아침 일찍 신성방어학 교수 '파라한'에게 찾아가 보는 게 최선책인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 아우로르에서 설명을 들은 것으로는 부족하다.
더 정보가 필요하다.
"아우로르. 어제도 그런 악몽을 꿨어?"
그녀가 떨리는 눈으로 자그맣게 고개를 끄덕였다. 시몬은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그럼 나도 오늘 여기서 자고 갈게. 괜찮지?"
"!!"
공포에 질려 있던 그녀의 얼굴이 한순간 묘하게 굳었다.
"자, 잠깐만! 네가 여기서 잔다고? 오늘?"
"응."
"그, 그으......."
시몬이 빙그레 웃으며 자신을 가리켰다.
"난 학생회장이고, 우리 학교 학생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어. 혹시 염려하는 불명예스러운 상황은 일어나지 않을 거야."
"그렇지만......."
결국 고민 끝에 아우로르는 승낙했다.
그 대신 조건이 있었다.
딸칵.
방 중간에 빨랫줄을 고정해 놓고 거기에 이불을 늘어뜨렸다. 두 사람은 한 방에 얇은 이불을 하나를 두고 눕게 되었다.
"......훔쳐보면 안 돼."
"알았어."
그녀가 이불 너머에서 허겁지겁 편한 옷으로 갈아입는 모습이 보였다. 시몬은 잠자코 담요에 누워 이불을 끌어당겼다.
"......."
"......."
어둡고 먼지 가득한 낡은 방 안.
두 사람은 잠시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았다.
"......학생회장."
"그냥 편하게 시몬이라고 불러."
"응. 시몬 이거."
아우로르가 이불 너머로 팔을 뻗어 수줍게 뭔가를 건넸다. 고개를 돌려보니 작은 귀마개 한 쌍이 놓여 있었다.
"혹시라도 내가 비명을 지르면 써. 귀에서 피날지도 모르니까."
"고마워."
시몬이 귀마개를 챙겼다. 아우로르는 다시 똑바로 누워서 천장을 바라보았다.
"......이러고 있으니 1학년 때 기숙사 시절이 생각나네."
힘들어 보였지만, 그녀는 작게나마 웃음 지었다.
"정말 오랜만에 다른 누군가와 같이 자는 것 같아. 처음엔 걱정했지만 이제 뭔가 마음이 편한 것 같...... 시몬?"
옆에서 색색거리는 소리가 나고 있었다.
"벌써 귀마개 꼈네."
* * *
밤이 지나가고 있다.
이불을 덮은 채 미동도 없이 잠을 자고 있던 시몬은 천천히 눈동자를 치켜떴다.
그러고는 고개는 위로 고정한 채 눈동자만 굴려서 옆을 응시했다.
얇은 이불 너머로 흐릿한 윤곽이 보인다.
그 윤곽은 누워 있지 않았다.
서 있었다.
팔을 흐느적거리고, 허리를 기이할 만큼 뒤로 크게 꺾은 채.
'.......'
이쪽을 보고 있다.
시몬은 천천히 팔을 뻗어서 중간에 걸린 이불을 붙잡았다. 그리고.
화악!
이불을 걷는 동시에 잽싸게 몸을 일으켰다.
"......?"
그런데 아우로르는 자고 있었다. 반대쪽으로 몸을 돌린 채 새근새근 숨소리를 흘렸다.
'아까 그건 뭐였지?'
비몽사몽 한 시몬이 생각에 잠겨 있는데, 걷어낸 이불 너머로 그녀의 속옷끈이 보여 움찔했다. 얼른 다시 이불을 원상복구하고는, 자신도 자리에 누웠다.
'잘못 본 건가.'
그렇게 한참 뒤.
"......."
시몬은 다시 이질감을 감지하고 눈을 떴다.
부스럭 부스럭-
이불 너머로 묘한 소리가 들린다. 시몬은 이번에도 눈동자만 움직여 옆을 보았다. 흐릿한 윤곽이 이부자리에서 일어나 뭔가를 뒤적거리고 있었다.
저쪽은 십자가와 각종 마법진이 그려진 벽 방향.
흐릿하긴 했지만 무슨 상황인지 짐작할 수 있다. 이불 너머로 테이블이 펼쳐져 있고 촛대가 올라가고 있다.
제단을 만들고 있었다.
'이번엔 안 놓쳐.'
시몬이 신중히 팔을 뻗어 이불을 붙잡는 그 순간.
화악!
이불이 불쑥 솟구치더니 시몬을 향해 돌진했다.
"큭!"
시몬이 다급히 양팔로 솟구친 부위를 붙잡았다. 마치 괴물의 아가리를 붙잡고 있는 것 같았다. 딱딱거리는 소리와 함께 이불 너머로 축축한 액체가 느껴진다.
시몬은 버티면서 다리에 칠흑을 집중시키고는.
빠아악!
몸의 탄력을 이용해 걷어찼다. 놈이 뒤로 밀려나고, 시몬이 제자리에서 덤블링하며 몸을 일으켰다.
"드디어 나타났네."
시몬이 씩 웃으며 말했다.
아우로르가 긴 머리를 귀신처럼 늘어뜨린 채 몸을 숙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등에 뿌리내린 희뿌연 영혼체가 시몬을 응시하고 있다.
일그러진 천사와도 같은 형태. 날개 대신 기다란 칼날이 등 뒤에 뽑혀 있는 끔찍한 모습이었다.
'성령마법인가.'
네크로맨서에 '사령학'이 있다면, 프리스트에는 '성령학'이 있다.
네크로맨서가 언데드를 부린다면 프리스트는 성령을 다룬다.
문제는.
'네크로맨서인 아우로르의 몸에 어떻게 저런 게 있는 거지?'
쐐애액!
성령이 등 뒤의 날개 같은 칼날을 시몬에게 보냈다. 시몬은 제자리에서 가볍게 어깨를 기울여 피했다.
촤악!
시몬의 어깨에 칼날이 스치고 지나갔다. 교복의 배리어가 단번에 큰 폭으로 깎였다.
'거기에 물리력까지.'
터엉!
성령이 움직인다.
-께게게게게게게겍!
아우로르의 몸에서 뱀처럼 솟구친 그것은 허리를 꽈배기처럼 돌리며 시몬을 향해 쇄도했다. 두 손을 뻗으며 비명을 지르는 그것은 성령이라기엔 끔찍하기 그지없는 몰골이었다.
이에 시몬은.
퍼억!
시큰둥한 표정으로 주먹을 휘둘렀다.
-?!
그 효과는 엄청났다. 시몬의 주먹에 뺨이 우악스럽게 일그러진 성령이 그대로 튕겨 나가더니 벽면에 와장창 부딪혔다.
-???
성령은 자신이 타격을 받은 게 믿어지지 않는다는 반응이었다.
"왜, 주먹으로 성령 패는 네크로맨서는 처음 봐?"
시몬이 주먹 쥔 손을 늘어뜨리며 말을 이었다.
"좋은 말로 할 때 아우로르의 몸에서 나와."
저벅.
저벅.
시몬이 다가오고 있다. 성령이 아까는 실수였다는 듯 다시 몸을 일으켜 칼날을 보냈지만.
시몬은 그냥 손등을 대강 휘두르는 것만으로 툭툭 쳐내고 있었다.
꽈드드드드득!
무표정하게 방어하던 시몬의 몸이 덜컥거렸다. 그는 고개를 숙여 자신의 몸을 보았다.
방심하고 있던 그의 가슴 한복판, 커다란 신성의 송곳이 꽂혀 있는 모습이 보였다.
-께게게게게게!
기습을 성공시킨 성령이 입을 찢으며 웃었다. 그러고는 몸을 비틀어 올라와 시몬의 얼굴을 집어삼켰다.
으적! 으적!
거대한 아가리가 시몬의 머리를 삼킨 채 우물거렸다.
그러나.
-게겍?
성령의 표정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씹히지가 않았다.
"뭐 해?"
시몬이 무심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한 손으로 천사의 코를 덥석 붙잡아 위로 올렸다.
꾸구구구구구구국!
성령이 비명을 질러대며 발버둥 쳤다.
"나오라니까."
시몬이 반대쪽 손을 주먹 쥐었다.
칠흑이 아니었다. 그의 손에는 신성이 일렁이고 있었다.
-겍?
"이 악물어."
꽝!
시몬의 주먹이 성령을 후려쳤다. 뺨이 밀가루 반죽처럼 뭉개졌다.
뻐억!
빡!
이어서 주먹으로 몇 번이고 다져댔다. 성령이 속수무책으로 얻어터졌고 몸에 균열이 일어났다.
이내 시몬의 주먹에 섬광이 치밀어 오르며 십자 형태로 변했다.
꽈아아아앙!
성령을 패는 도중에 엉겁결에 발현한 새로운 성투 기술.
시몬의 주먹이 성령의 옆구리에 틀어박혔고, 놈은 옆구리가 기이하게 꺾이며 비명을 질러댔다.
-게게게게게게게게게게게게!
격노한 성령이 아가리를 불가능한 영역까지 넓히며 시몬에게 돌진했다.
시몬은 재빨리 마법진을 펼쳤다.
<레테 오리지널 - 라 에스크림>
꽈드드드드드드득!
회전하는 신성창이 성령의 입을 뚫고 깊은 곳까지 나아갔다.
살점이 갈리는 끔찍한 소리와 함께, 기다란 성령의 몸이 내부에서부터 박살 나며 산산조각 났다.
완벽한 마무리.
털썩.
아우로르가 그대로 축 늘어졌고 시몬이 손을 탁탁 털면서 한숨을 쉬었다.
"하여간."
"께에에에에엑!"
그때 아우로르의 눈이 뒤집히더니 시몬을 향해 돌진했다. 시몬은 번개처럼 손목을 잡아채고는 어깨로 그녀를 강타했다. 뻑! 하는 소리와 함께 그녀가 벽으로 밀어붙여졌다.
"신성이 안 통하니까 아우로르의 몸을 써서라도 해보겠단 거야?"
시몬이 손짓했다.
분리된 본 아머들이 날아가 그녀의 몸을 벽에 고정시켰다. 두 팔을 위로 교차해서 고정시키고, 다리도 벽에 딱 붙여놓게 했다.
"마지막 경고야."
시몬이 이글거리는 눈으로 말했다.
"꺼져."
"......!"
시몬을 보던 아우로르의 눈이 파르르 떨리더니, 고개를 축 늘어뜨렸다.
그녀의 몸에서 느껴지던 이질적인 기운도 완전히 사라졌다. 시몬은 비로소 안도하며 웃었다.
"여, 여긴......."
그리고 아우로르가 눈을 떴다.
절그럭-
손을 움직이려 했지만 봉쇄되어 있었다. 그녀가 '응?' 하는 표정을 지었다.
"?!"
자신을 묶어놓고, 눈앞에는 시몬이 악당 같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음, 잠깐만. 아우로르."
시몬이 땀을 삐질 흘리며 손바닥을 들어 올렸다.
"네가 오해할 만한 상황인 건 알겠는데 이건......!"
-꺄아아아아아악!
밴쉬의 비명 소리가 쏟아졌다.
시몬은 급히 달려가 귀마개를 낀 채 엎드려야 했다.
* * *
다음 날 새벽.
해가 뜨자마자, 시몬은 아우로르를 데리고 키젠 교정을 걷고 있었다.
"불명예스러운 일은 없을 거라며! 불명예스러운 일은 없을 거라며!"
"......오해였다고 서른 번은 말한 것 같은데."
아우로르는 아침에 있었던 일로 여운이 진하게 남은 것 같았지만, 그녀 본인도 자신이 잠만 자면 이상한 상태가 되는 걸 알고 있었기에 간신히 넘어가 주는 눈치였다.
그보다 문제는.
"내 몸에서...... 그런 게 나왔다고?"
시몬이 고개를 끄덕이며 머리를 쓸어넘겼다.
"보통 사태가 아닌 건 확실해. 일단 파라한 교수님께 가보자."
그녀가 살짝 겁먹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파, 파라한 교수라면 그 프리스트분 맞지?"
"맞아. 그래도 믿을 만한 분이야. 학교 측에 네 이야기를 하지도 않으실 테고."
시몬이 앞을 가리켰다.
언덕 너머로 그림같이 작은 집 한 채가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