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707화 (707/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707화

"믿기 힘든 이야기로군."

신성방어학 교수, 파라한은 여전했다.

신선 같은 도복 차림에, 흰 수염을 쓸어넘기던 그가 침대에 잠들어 있는 아우로르를 보았다.

"이 아이에 성령이 쓰여 있었다고?"

"네, 제가 확실히 봤어요."

-냥! 야옹!

그렇게 대답하는 시몬의 머리에는 오랜만에 주인을 봐서 반가운 하양이와 까망이가 귀와 머리카락을 물어뜯고 있었다.

"한번 보겠네."

신성마법을 네크로맨서에게 직접 사용하는 건 위험하기에, 파라한은 순수 마나로 움직이는 장치를 사용했다.

잠시 후 파라한이 놀란 듯 침음을 흘렸다.

"자네 말대로 성령의 흔적이 느껴지는군. 아직 성령의 뿌리가 남아 있으이."

그 말을 들은 시몬이 인상을 구겼다.

그렇게 두들겨 팼는데 아직 남아 있다니.

"지금 바로 없애 버릴 수는 없을까요?"

"성령마법은 그리 간단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닐세. 잘못 손을 썼다간 이 학생이 돌이킬 수 없어질지도 모르지."

파라한이 긴 수염을 쓸며 눈을 감았다.

"이 학생을 뭔가 어떻게 하려는 것 보다, 이 학생을 그렇게 만든 원인을 찾아서 제거하는 게 중요하네."

원인이라.

하긴 멀쩡하던 아우로르가 갑자기 그렇게 미쳐 날뛰었을 리는 없다.

"짐작 가는 바는 없으신가요?"

"성령과 사령은 한 끗 차이일세. 밴쉬 일족인 그녀의 종족적 특징 때문에 성령이 달라붙었을 가능성이 크지. 믿을 수 있는 사령학 권위자를 찾아간다면 좋은 힌트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네만."

시몬이 팔짱을 끼며 고민에 잠겼다.

'믿을 수 있는 사령학 권위자?'

* * *

1학년 캠퍼스, 사령학 강의실.

"자, 근성으로! 오늘도 기합 빡 넣고 집중해서 들어가라아아아!"

강의실을 돌아다니며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고 있는 이 남자.

상체는 인간의 모습이었지만 하체는 유령처럼 변해서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얼굴에는 괴팍한 늑대탈을 썼다.

다소 괴짜 같은 이 남자의 이름은 움브라. 시몬의 1학년 1학기에 사령학을 가르쳤던 인물이었으며, '카오스 리퍼' 등 혼돈 마법을 수립하는 데 큰 도움을 준 조력자였다.

'앗.'

강의실 밖에서 1학년들이 사령학 수업을 듣는 모습을 훔쳐보던 시몬은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옛날 생각나네.'

1학년들은 사령학의 기본인 '스피릿'을 느끼기 위해 낑낑거리며 애쓰고 있었다. 위저보드 같은 아티팩트를 열심히 돌리거나, 오컬트 도구를 들고 흔들었다.

그리고 절반에 가까운 1학년들은 널찍한 강의실 뒤편에서 스피릿을 느끼는 데 도움이 된다는 '영혼의 춤'을 추고 있었다.

'어우, 저 춤.'

1학년 시절에 고생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자, 갑자기 속이 울렁거렸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속칭 '닭 모이춤'이나 '오징어 구애춤'으로 불리는 바로 그 춤이었다.

"교수님! 아무리 해도 스피릿이 안 느껴져요!"

춤을 추던 한 여학생이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 움브라가 버럭 소리쳤다.

"근성! 아직 근성이 부족한 게다! 더 기합을 넣고 다리를 들어라! 더 팍팍! 무릎이 배꼽에 닿을 때까지! 옳지!"

움브라는 될 때까지 시켰다.

결국 시몬은 사령학 수업에서 스피릿을 느끼지 못해 1학년 2학기부터는 사령학을 포기했다. 물론 나중에는 '혼돈'의 형태로 비슷한 걸 구사할 수 있게 됐지만.

그렇게 시몬이 실시간 추억 폭격을 경험하고 있는데.

"여기서 뭐 하시는 건가요?"

뒤에서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돌아보니 조교로 보이는 여자가 경계하는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저, 저는......!"

"아!"

시몬의 얼굴을 확인한 그녀가 살갑게 웃었다.

"오랜만이네요 학생회장님! 움브라 교수님의 수석조교예요."

"안녕하세요!"

"1학년 때 스피릿은 못 느껴도 열심히 하던 모습이 기억나네요. 못 본 사이 많이 늠름해지셨어요."

"아하하, 감사합니다."

시몬이 민망한 웃음을 흘렸다.

"그런데 학생회장님께서 1학년 캠퍼스는 어쩐 일로?"

"움브라 교수님께 조언을 듣고 싶어서 왔습니다. 언제쯤 수업이 끝날까요?"

그녀가 쿡쿡 웃으며 강의실을 가리켰다.

"그런 거라면 바로 들어가 보세요."

"그, 그래도 돼요?"

"물론이죠. 어차피 다들 스피릿을 느끼기 시작하는 단계고, 교수님은 돌아다니면서 소리만 지르는 게 다니까요."

시몬도 시간이 별로 없었기에, 냉큼 제안을 받아들여 강의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1학년들은 바쁘게 춤추고 오컬트 도구를 돌리느라 정신이 없어 보였다.

그러다.

"어?"

"저 사람......!"

하나둘씩 시몬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곳곳에서 웅성거림이 점점 커지기 시작하더니.

"학생회장 선배님이 오셨다!"

갑자기 열화와 같은 환호성으로 바뀌었다.

환호를 들은 다른 1학년들도 자리에서 일어났고, 춤을 추던 1학년들과 교육팀 학생들까지 뛰어왔다.

"가, 갑자기 왜 이래? 자리로 돌아가세요!"

"누가 온 거야?"

조교들이 통제하려 했지만 속수무책이었다. 1학년들 사이에서 학생회장 시몬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움브라도 환호성을 듣고 고개를 돌렸다가, 이내 시몬의 모습을 보고는 이를 드러내며 활짝 웃었다.

"오오, 자네!"

"안녕하세요. 움브라 교수님."

조용히 질문만 하고 가려고 했는데, 수업을 방해한 것 같아 미안했다.

그러나 움브라는 오히려 잘 왔다는 듯 호탕하게 웃으며 시몬을 자신의 옆으로 끌어당겼다.

"자, 다들 주목!"

주목!

1학년들이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외치며 눈을 반짝였다.

평소 수업 때는 볼 수 없었던 집중력이었다.

"지금은 학생회장을 하고 있는 이 친구도 1학년 때는 내 수업을 들었지! 아주 훌륭한 학생이었다!"

시몬이 불안한 눈으로 움브라를 보았다.

스피릿 못 느꼈는데?

"특히 '영혼의 춤' 솜씨가 일품이었지! 아직도 기억이 선명해! 얼마나 열정적으로 스탭을 밟으면서 팔을 휘적거리던지! 하하하하!"

1학년들은 도저히 상상이 안 된다는 눈으로 시몬을 보고 있었다. 시몬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아무튼, 난 그때부터 이 친구가 크게 될 거라고 생각했어! 비록 스피릿에 소질은 없었지만 사소한 것 하나하나 쉬이 하는 법이 없었지!"

탕탕!

재차 시몬의 등을 크게 두들긴 그가 목소리를 높였다.

"근성! 노력! 기합! 의지! 되고 안 되고는 중요하지 않아! 임하는 자세와 과정이 중요하지! 자네들도 여기 이 선배를 본받아 마지막 날까지 스피릿을 느끼는 데 집중한다! 알겠나?"

네에!

1학년들이 힘차게 대답했다. 움브라가 고개를 돌렸다.

"마지막으로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 있나?"

"어, 음."

1학년들이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시몬의 말을 기다렸다.

시몬은 멋쩍게 웃었다.

"춤추는 거 힘들지?"

네에에!

"딱 기말고사까지만 버텨."

와하하하하!

그리 대단치 않은 농담에도 다들 큰 소리로 웃어주었다.

이게 바로 유명세의 힘인가. 유명해지면 잠만 자도 박수를 받는다더니.

"그런데 자네는 어쩐 일로 왔나?"

"아, 교수님께 상담하고 싶은 게 있어서요."

움브라는 학생들을 보며 '내가 이 정도다'라는 듯 어깨를 한번 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위층의 내 연구실로 가지. 조교들! 계속 학생들 통제해서 훈련을 끝마치게!"

"네!"

움브라가 앞서가고, 시몬이 뒤따랐다.

그러자 몇몇 1학년 학생들이 시몬 쪽으로 우르르 몰려들었다.

"학생회장 선배님! 학생회장을 그만둔다는 게 사실이에요?"

"아무리 3학년 수석이 돌아왔다고 해도 아니지! 이건!"

곳곳에서 아우성이 터져 나왔다. 1학년들 사이에서도 시몬과 에이젤의 결투는 빅이슈인 모양이었다.

심지어 에이젤과 싸우면 누가 이기냐는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조교들이 앞으로 나와서 단호하게 대처한 뒤에야 1학년들의 기세가 한풀 꺾였다.

움브라와 시몬은 그사이 강의실 밖으로 나왔다.

"허허허! 대단한 인기로군!"

움브라가 껄껄 웃었다.

"자네가 내 기를 제대로 살려주는구먼! 만나러 와줘서 고맙네."

"별말씀을요."

"그래, 뭐가 궁금한가?"

시몬은 움브라의 연구실로 향하며 대략적인 상황을 설명했다. 물론 혹시나 해서 아우로르의 이름을 대지 않았지만, 비밀로 해달라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이야기를 들은 움브라가 입을 열었다.

"암흑연합과 신성연방 양쪽에서 금기시되는 이론이 있지."

덜컥.

움브라가 본인의 연구실 문을 열었다.

"사령학과 성령학의 근본은 '영체'라는 점에서 근원적으로 동일하다."

"......아."

"망령과 신령은 같으며, 스피릿과 성령 계시는 동등하다. 다만 영체를 부를 때 그 매개가 칠흑이냐 신성이냐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부스럭 부스럭.

움브라는 이야기를 계속하면서 부산스럽게 서랍을 뒤졌다.

"특히 신성연방에서는 그들의 교리와 어긋나는 사실이니 거품을 물고 부정하지. 연합의 사령학 협회에서도 마찬가지야. 물론 두 세력의 마법체계가 서로 다른 방향으로 발전하기는 했지만, 나는 사령학을 연구하면 연구할수록 그 이론이 완전히 허무맹랑한 소리는 아니라고 생각하네."

그가 손끝으로 턱을 훑었다.

"밴쉬 일족의 종족적 특징도 영체가 되는 힘을 가졌을 뿐이네. 밴쉬와 결혼해서 자식들을 낳았다는 것도 전설일 뿐이야."

잠시 후 그가 서랍에서 뭔가를 꺼냈다.

고글 같은 물건이었다.

"이게 뭔가요?"

"영체의 흐름을 보여주는 아티팩트일세. 자네에게 빌려주지."

시몬은 움브라로부터 아티팩트를 받았다.

"성령마법의 흐름도 이걸 쓰면 볼 수 있을 거라네. 그리고 그 아이가 성령마법에 영향을 받았다면, 필시 그 아이를 조종하는 강력한 매개체가 있을 게야!"

"강력한 매개체라."

고민하던 시몬이 쓱 웃었다.

"왠지 그림이 그려지는데요."

* * *

그날 저녁.

모든 수업을 끝마친 시몬은 다시 아우로르의 숙소가 있는 로체스트에 돌아왔다.

아우로르는 여전히 파라한의 집에서 안정을 취하는 중이었다.

끼이이익-

문을 열고 방 안으로 들어가니, 어제 벌어진 난리로 촛대와 쟁반 등이 어질러진 모습이 보인다.

시몬은 주위를 한번 훑어보고는, 벽면에 그려져 있는 십자가가 쪽으로 다가갔다.

"다시 봐도 무섭네."

부러진 손톱 등에서 난 피로 그린 섬뜩한 십자가.

시몬은 움브라가 준 아티팩트를 착용했다.

"......아!"

주위가 희뿌옇게 보이는 가운데, 십자가에서 아주 희미하고 미세한 실이 허공에 그어져 있었다.

시몬은 그 실을 따라 이동했다.

저벅. 저벅. 저벅.

걸음이 점점 빨라졌다. 실을 따라 계속 걸으니 아우로르의 방이 있던 3층에서 1층까지 내려왔다.

그렇게 시몬의 걸음은 1층의 먼지가 수북이 쌓인 창고방에서 멈췄다. 미세한 실이 바닥으로 이어져 있었다.

'급한 건이니 어쩔 수 없지.'

이건 엄연히 '공무'이기도 하고, 필요하다면 수리비를 물어주면 그만이다.

시몬은 다리에 칠흑을 끌어올린 뒤 바닥을 강하게 짓밟았다.

콰작! 콰작!

나무 바닥이 무너져 내리고 이내 시꺼먼 구멍이 나타났다.

선은 그 아래로 이어져 있었다.

시몬은 망설임 없이 안으로 들어갔다.

'음.'

텁텁한 공기가 폐부에 들어차고, 눅눅한 습기가 느껴진다.

지하공간이었다.

두 발을 바닥에 디딘 시몬이 주위를 살폈다.

'옛 하수도. 상당히 오래되어 보이는데.'

학원도시 로체스트는 역시가 그리 길지 않은 도시다. 로체스트가 들어서기 전에는 섬의 원주민들이 사는 작은 시골 마을이 있었는데, 여기는 그 마을에서 사용하던 구식 하수도였다.

현재 로체스트는 키젠 측에서 새롭게 마련해 준 깨끗한 하수도를 쓰고 있다. 옛 하수도는 로체스트 외곽지역과 함께 버려졌다.

'그래도 뭔가를 숨기기엔 딱 좋은 장소지.'

시몬은 실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이제는 쓰지 않는 곳이다 보니 지독한 악취 같은 것도 나지 않는다. 그냥 다 말라붙어 있다.

여기서 또 한참을 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반응이 바로 왔다.

'신성!'

즉각 걸음을 멈추고 공격에 대비했다. 벽면에 그려져 있던 백마법진이 발동되더니 이내 새하얀 신성으로 이루어진 골렘이 하수도에 소환되었다.

마치 빛나는 유리조각으로 쌓아 올린 괴물 같은 외형이다.

'제대로 찾아왔나 보네.'

침입자를 막아내는 용도로 쓰는 신성 소환수의 일종.

그것이 쿵쿵 소리를 내며 다가왔다. 잔뜩 긴장한 시몬이 칠흑을 끌어모으는 그때.

쿠구구구구구!

갑자기 머리 위의 하수도 천장에서 거대한 떨림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

슬쩍 고개를 든 시몬이 얼른 뒤로 물러났다.

와르르르르르!

이내 천장이 통째로 무너져 내리며, 신성 골렘이 파편에 깔려 엎어졌다.

무너진 천장에는 삐쭉삐쭉 크고 작은 고드름들이 드리워져 있었고, 그곳에서 누군가 휙 튀어나왔다.

"응?"

시몬이 눈을 깜빡였다. 그 사람 또한 시몬을 보며 깜짝 놀란 표정으로 입을 벌렸다.

"시, 시몬? 네가 왜 여기 있어?"

다름 아닌 메이린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