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711화
-A반 시몬 폴렌티아 학생. H반 제시카 카나노르 학생은 경기장으로 와주시길 바랍니다.
메모리얼 수정구에 흐릿한 화면이 출력되었다.
교내 기록용이 아니라 관중석에서 촬영한 건지 화질은 나빴다. 지금보다 더 앳된 느낌의 1학년 시절 시몬과 제시카가 경기장으로 걸어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와, 이때 그립네요."
"와하하!"
신문부 부장 테이와 부부장 질버버그는 벌써 관람객처럼 자리 잡았다. 뒤에 있던 1학년 신문부 학생들도 선배들의 옛 모습에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반면 수정구를 보는 제시카의 표정은 실시간으로 어두워지고 있었다.
결투가 시작됐다.
이때 시몬이 한 행동은 괴팍했다. 중간고사 오답노트를 펼쳐서 얼굴을 가린 채, 노트의 내용을 암기하면서 결투평가에 임한 것이다.
-칠흑화살의 암기 포인트, 빠른 캐스팅. 쉬운 다중 영창. 우수한 관통력. 그리고 좌측 결속 수식의 손상 주의.
-포이즌 휩의 암기 포인트. 고정류 마법진. 마법진의 좌표가 틀어지면 붕괴.
심지어 제시카가 경기에서 사용하는 흑마법을 본인의 암기재료로 이용했고, 동시에 중간고사 공부에서 배운 내용을 활용해 그녀를 공략해 나가고 있었다.
"이야, 이거 굴욕적이겠는데요."
테이가 말했다.
"학생회장 시몬 폴렌티아의 인성에 논란이 생겨야 하는 거 아닌가요?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도 시험공부를 하면서 상대를 갖고 놀다니! 이건 좀 예의가 아니죠."
"저는 살짝 다른 생각입니다."
질버버그가 말했다.
"지금이야 명실상부 키젠의 강자지만, 당시 학생회장은 선행학습을 하지 않은 초심자였습니다. 자, 이건 네크로맨서로서 고도의 심리전을 건 거예요! 상대인 제시카 학생이 열받아서 오길 기다린 거죠. 보세요!"
-나는! 네 중간고사 선생님이 아니야!
시몬이 모든 공격을 피해내자, 결국 초조해진 제시카 쪽에서 먼저 뛰어들었고.
퍽!
기다렸다는 듯 얼굴에서 노트를 치운 시몬이 제시카를 현란한 마투로 걷어차서 공중에 띄워 버리고 '본 니들'로 마무리했다.
아~
테이와 질버버그가 아쉬운 소리를 냈다. 그녀가 바닥에 쓰러지는 모습을 끝으로 영상은 끝이 났다.
"아주 잘 봤습니다!"
테이가 실실 웃으며 제시카 쪽을 바라보았다.
고개를 숙이고 앞머리에 가려져 표정이 드러나지 않았지만, 그녀가 무척 열받은 상태라는 건 확실했다. 몸에서 칠흑이 뭉실뭉실 흘러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이 정도에 굴할 신문부 부장 테이가 아니었다.
"세계 맹독 공모전에서 우승까지 한 제시카 학생이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이 시절의 제시카 학생을 기억합니다! '중간고사녀', '과외녀', '나는 네 선생님이 아니야' 등 온갖 조롱 같은 밈으로 불리고 있는데요."
푸흡!
큭!
낯빛 하나 바뀌지 않는 천연덕스러운 테이의 화술에, 신문부 1학년들이 필사적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저는 복수전의 때가 왔다고 생각합니다만,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스으.
그때 제시카가 주먹을 들어 올렸고.
콰아앙-!
내리친 주먹에 메모리얼 수정구와 선반이 와장창 박살 났다.
1학년들이 식겁한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질버버그도 너무 심하다는 듯 테이에게 눈치를 주었다.
"아, 이거 비싼 건데."
하지만 테이는 눈 한번 끔쩍하지 않고 천연덕스럽게 수정구 잔해를 집었다.
"인터뷰 내용에서 정정할 게 있습니다."
스으.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나는 사실 대진 상대가 시몬 폴렌티아라는 걸 알고 있었어요. 상대를 확인한 뒤부터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고, 며칠 동안 설레서 잠도 제대로 못 잤습니다."
이번만큼은 다 알지만 넘어가 준다.
내숭을 거두고 본색을 드러낸 그녀가 입꼬리를 올렸다.
"그에게 복수할 생각에 말이에요."
짝! 짝!
완벽하다.
건수를 잡은 테이가 자리에서 흥분한 얼굴로 손뼉을 쳤다.
"하지만 제 생각엔 쉽지 않을 것 같군요."
질버버그가 불쑥 말했다.
"학생회장의 마투는 2학년 최상위권입니다. 어지간한 마투 전공자들보다 뛰어나죠. 특히 최근에 학생회장은 공중에 띄워둔 본 네일과 함께 돌진해서 초반에 상대를 제압하는 전술을 많이 보여줬습니다. 준비에 시간이 필요한 맹독학과 전공생은 초반 대쉬에 고전하리라 생각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또 공중에 띄워 올려져 본 네일로 마무리 당할지도?"
테이가 느물대기 무섭게 그녀가 째려보았고.
"!"
테이는 제 목을 두 손으로 붙잡았다.
'도, 독? 어느 틈에?'
쿵! 털썩!
뒤쪽에서 시시덕대던 1학년들도 모두 괴로운 얼굴로 재채기하며 바닥에 쓰러지고 있었다. 아직까지 버티고 서 있는 건 2학년인 테이와 질버버그뿐이었다.
다시 다소곳하게 다리를 모으고 앉은 그녀가 예쁘장한 미소를 꾸며냈다.
"마투전의 대처도 완벽해요. 자세한 건 경기에서 보여드릴게요."
"조, 좋습니다!"
중독된 상태였지만, 특종에 대한 테이의 집념은 살벌했다. 그가 누렇게 뜬 얼굴로 웃었다.
"그럼 마지막으로 시몬 폴렌티아에게 한 말씀 해주신다면?"
그녀가 고개를 치켜들어 촬영기를 무섭게 노려보았다.
"남들이라고 놀고만 있는 게 아니야. 내가 그동안 얼마나 이를 악물고 노력했는지 보여줄게, 시몬 폴렌티아."
* * *
이틀 뒤, 결투평가 당일.
제3 실내 경기장.
팔락!
"흠."
딕은 관중석에 앉아 교내신문을 훑어보고 있었다. 신문의 앞면에 대문짝만하게 제시카의 사진이 실려 있었다.
<제시카, 굴욕을 딛고 학생회장에게 복수전 승리 다짐. 너 같은 건 내 상대도 아니다.>
딕이 끌끌 웃었다.
"이 기사 때문에 그렇게 시끄러웠던 거구만? 신문부 미친 새끼들."
시몬 학생회의 동아리 예산 정책개선으로, 신문부는 작년보다 예산을 덜 받았다.
그 뒤로 신문부는 학생회를 사사건건 물어뜯고 있었다. 나쁜 여론을 형성하고 에이젤 정권에 힘을 실어주려는 게 뻔히 보일 지경이었다.
"미친개가 자꾸 주인을 못 알아보고 바짓가랑이를 물어뜯네. 날 잡아서 제대로 한번 손을 봐주......."
"딕! 저기 봐요!"
옆자리에 앉은 카미바레즈가 날개를 파닥거리며 말했다. 딕이 얼른 표정을 고치고 웃었다.
"무슨 일이야?"
"메이린이!"
콰콰콰콰콰콰콰콰콰-!
실내 경기장 한복판에 얼음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탑이 세워졌다. 세상이 겨울 왕국처럼 얼어붙은 가운데,
얼음탑 위에 당당하게 팔짱을 끼고 있는 소녀가 보였다.
-압승! 압승입니다!
사회자가 소리쳤다.
[메이린 빌렌느 : 100%]
[글렉 크로우 : 0%]
-전 특례 9번이었던 메타모포시스 사용자 글렉 크로우를 5분 만에 압도적인 차이로 쓰러트렸습니다! 메이린 빌렌느! 키젠 부회장의 위엄을 보입니다!
와아아아아아아-!
메이린은 당연한 결과라는 듯 흥 하고 콧방귀를 뀌며 얼음 언덕에서 뛰어내렸다. 저 밑에 머리만 배꼼 남은 늑대인간이 낑낑대는 모습이 보인다.
"역시 메이린."
딕이 헛웃음을 흘렸다.
"시몬한테 당한 화를 괜히 가만히 있던 글렉한테 풀어버리네."
"잘했어요! 메이린! 대단해요!"
그때 뒤에서 타닥 하고 발소리가 들렸다.
"메이린 경기는 어떻게 됐어? 끝났어?"
체육복으로 갈아입은 시몬이 숨을 헐떡이며 물었다.
"시몬~ 어서 오세요!"
"5분 만에 끝나서 볼 것도 없었어. 저 늑대인간 친구는 특례 출신이면서 부진이 길어지네."
"메이린이 너무 강한 거예요!"
딕이 품을 뒤적거리다가 신문을 건넸다.
"그보다 이것 봐봐, 시몬."
"?"
"제시카가 제대로 독이 오른 것 같던데."
교내신문을 읽어내려가던 시몬이 쓰게 웃었다. 카미바레즈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저쪽에서도 준비를 많이 한 것 같아요. 정말로 듀라한 전략으로 갈 거예요? 시몬."
"응. 이미 카오스 듀라한을 쓰는 쪽으로 모든 계획을 다 짜놨어. 이제와서 바꿔도 더 좋은 결과가 있을지 장담할 수 없어."
시몬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여기서 극복하지 못하면 그다음을 극복하는 건 불가능해."
웅성 웅성 웅성!
관중석이 갑자기 들썩이기 시작했다. 지켜보던 학생들은 물론, 외부 스카우터들의 이목까지 집중된다.
저벅-
저벅-
회색 가디건을 휘날리며, 안경을 쓴 남자가 자신의 무리와 함께 관중석에 들어오고 있었다.
"에, 에이젤 선배님이야!"
"에이젤 선배님이 시몬의 경기를 보러오셨다!"
"소타 선배랑 레오나드 선배도 있어!"
등장만으로 주위의 모든 이목이 쏠리고 있었다.
에이젤은 얼음장처럼 차가운 얼굴로 걸어와 자리에 앉았다. 그 옆에 각 학생들이 자리에 착석했고, 뒤와 앞까지 3학년들로 빈틈없이 채워졌다.
"이야, 역시 인기 장난 아닌데? 에이젤."
에이젤의 옆에 앉으려는 동기의 목덜미를 잡아 끌어낸 소타는 자신이 그 옆에 앉으며 헤헤 웃었다.
"근데 굳이 2학년 경기를 보러 올 필요가 있을까? 내가 말했잖아. 시몬 폴렌티아와의 승부에서 이기는 건 당연한 거고, 사람들도 그렇게 여기게끔 하는 게 좋다고. 굳이 이렇게 보러와서 동등한 대결의 분위기를 풍기면 네 이미지만 훼손될......."
"그냥."
에이젤이 안경을 치켜올리며 조용히 말했다.
"내가 보고 싶어서 왔을 뿐이다."
소타의 표정이 조금 굳어졌다가, 이내 다시 웃었다.
"하하, 물론 네 개인적인 의사도 중요하지만 말야! 제왕이면 제왕다운......."
"소타."
그때 소환학과 대표인 레오나드가 고개를 내저었다.
"기왕 왔으니 조용히 보고 가는 게 어때."
"......레오나드."
소타가 표정을 굳히며 으르릉거렸다.
암흑제를 망치려던 소타의 계획을 레오나드가 막은 이후로, 같은 에이젤 파벌인 두 사람의 사이는 극단적으로 악화되어 가고 있었다. 대표들부터 저러니 덩달아 소환학과와 사령학과의 사이도 나빠지고 있었다.
"아, 경기 시작한다!"
다른 동기들이 애써 두 사람을 말렸다.
* * *
-소환학과 시몬 폴렌티아 학생. 맹독학과 제시카 카나노르 학생은 경기장으로 와주시길 바랍니다.
방송음을 들은 두 사람 모두 경기장에 올라왔다. 시몬은 자신이 입은 전투복을 잡아당겼다.
'촉감이 좀처럼 적응 안 되네.'
2학년 결투평가에서 입는 '방호슈트'는 배리어가 있는 1학년들의 것과는 달랐다. 보다 실전과 비슷한 전투를 위해 모든 타격과 통증을 느끼는 더미슈트. 부상과 상처까지 제대로 적용된다.
물론 의료진이 항시 대기하고 있고 더미 슈트에 걸려 있는 저주 덕분에, 심한 부상은 키젠 측에서 준비해 둔 더미가 대신 받는다. 일종의 블러드 골렘과 같은 원리였다.
또한 더미슈트는 대상자가 받을 수 있는 피해량을 계산해 수치화해서 경기장 중앙에 출력한다.
[시몬 폴렌티아 : 100%]
[제시카 카나노르 : 100%]
이제는 본인의 역량에 따라 받는 피해수치도 달라진다. 같은 충격을 받더라도, 거인 혼혈인 샤텔과 메이린의 게이지가 깎이는 비율이 다른 것이다.
사실상 크게 다치지 않는 것만 빼면 실전과 거의 같은 조건.
"양 선수, 악수."
심판의 지시에 두 사람이 다가와 악수했다.
"1년 만에 이렇게 또 싸우게 됐네."
시몬이 애써 웃으며 말했다.
제시카 또한 미소 지었다. 하지만 부글부글 끓는 속이 보일 지경이었다.
"이번엔 그렇게 쉽게 당하지 않아. 전력을 다하는 게 좋을 거야."
악수를 마친 두 사람이 멀어져 갔다.
"시몬 힘내요!"
카미바레즈가 외쳤다. 뒤따라 다른 학생들도 큰 소리로 응원했다.
"제시카! 이겨라!"
"얼마나 성장했는지 보여줘!"
응원 온 맹독학과 학생들이 소리를 높였다.
결투평가 당일은 3개 경기장에서 동시에 시험을 치르는데, 이곳이 어느 경기장보다 사람이 많았다. 학생회장 시몬의 경기라는 이유도 크겠지만, 무엇보다 신문부의 기사로 상당한 이슈가 되어 있었다.
"그럼 지금부터 시몬 폴렌티아 학생과 제시카 카나노르 학생의 결투평가 경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심판의 팔이 내려갔다.
"경기시작!"
시몬은 즉각 팔을 움직여 마법진을 펼칠 준비를 했다.
그리고 제시카는.
우웅! 우웅!
아공간에서 뭔가 거대한 걸 꺼내고 있었다.
"보여주마아아아!"
철컥!
키이이이이잉-!
제시카는 아공간에서 꺼낸 거대한 중장비를 두 팔에 착용한 채로 들어 올렸다. 거대한 엔진음이 노호를 터뜨렸다.
'저건 또 뭐야?'
시몬이 뜨억한 표정을 지으며 자세를 낮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