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712화
철컥!
키이이이이잉-!
제시카는 아공간에서 꺼낸 거대한 중장비를 두 팔에 착용한 채 들어 올렸다. 거대한 엔진음이 노호를 터뜨리고, 이내 사출구에서 뭔가가 발사되었다.
시몬은 고개를 꺾어 그것을 피했다.
눈동자가 뒤로 향했다. 끝까지 날아간 탄환이 결계벽에 부딪혀 깨지며 녹색 액체를 퍼뜨렸다.
당연하지만 독이 들어 있었다.
"간다아아!"
제시카가 목쉰 소리를 내지르며 사격을 시작했다. 곳곳에 펼쳐진 그녀의 마법진이 중장비의 무게와 반동을 통제하고, 사출구는 불을 뿜으며 탄환을 토해냈다.
시몬은 즉시 바닥을 박차고 뛰었다.
"꺄하하하하하!"
광녀처럼 웃으며 총알을 퍼붓고 있는 제시카였지만, 이 순간에도 정신만큼은 냉정했다.
'한 발! 딱 한 발만 맞추면 돼!'
탄환에 든 독은 치명적이진 않다. 하지만 스치기만 해도 상대의 움직임을 봉쇄하고 신경을 교란시키는 효과를 가지고 있다.
시몬 폴렌티아의 마투가 강력한 건 알고 있다. 반면 자신의 기술들은 약간의 준비시간을 필요로 한다. 그러니.
'시몬 폴렌티아의 다리를 묶는다! 그게 모든 계획에서 가장 중요해!'
관중석의 외부 스카우터들이 눈을 크게 떴고, 경기 해설자도 입을 벌리며 일어났다.
-이번 결투평가가 전혀 예상 못 한 전개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제시카 학생이 맹공! 시몬 학생회장은 피하고만 있습니다!
투다다다다다다!
두 중장비가 불을 뿜으며 총알들을 쏟아낸다. 그러나 피하는 시몬의 움직임도 기가 막혔다. 바닥을 박차고 지그재그로 달리며 탄환들의 궤도를 피해 나가고 있었다.
"오오!"
"와, 미친. 사람이 저렇게까지 피할 수 있나?"
애초에 방어는 하지도 않았다. 공격을 피하던 시몬이 궁지에 몰려 칠흑방패를 펼치면 거기에 화력을 쏟아서 무너뜨리는 게 제시카의 계획이었으나.
스텝. 박자. 변칙.
거기에 상대의 조준을 흩트리는 테크닉까지.
제시카는 맹독마법이 강할 뿐이지, 조준과 사격실력이 뛰어난 건 아니었다. 초보자인 그녀는 좀처럼 시몬의 진행 방향을 읽을 수가 없었다.
'안 돼! 안 돼!'
그녀의 표정이 점점 일그러졌다.
'이대로 가다 탄환이 다 떨어지면......!'
철컥!
틱-!
틱-!
빈 탄창이 헛도는 소리가 들린다. 그녀의 표정이 아연실색해졌고, 시몬은 걸음을 멈췄다.
'결국 한 발도 못 맞췄어.'
그녀가 대 마투전을 위해 준비한 공세는 끝났고, 이제는 시몬의 차례.
시몬이 자세를 낮추는 모습이 보였다.
키이이이이잉-!
그런데 시몬은 달려들지 않았다. 오른팔을 뒤로 뻗더니 마법진을 쌓고 있었다.
-시몬 학생회장! 이번 경기는 마투로 가는 게 아니라 강력한 한 방을 위해 마법진을 준비하는군요!
그 모습을 본 제시카의 표정이 해괴하게 일그러졌다.
'뭐야? 왜 안 들어와? 내가 약한 타이밍이란 걸 모르진 않을 텐데?'
지금까지 분석한 바로는, 2학기 결투평가 내내 시몬은 초반 공세로 상대를 억제하는 전략을 써왔다. 그래서 빠르게 경기가 끝났고 크게 볼거리가 없었던 거였다.
그랬던 시몬이 제시카를 상대로는 굳이 흑마법을 준비하고 있었다.
'왜!'
그녀의 이마에 핏줄이 돋아났다.
'왜 나만 상대하면 여유를 부리는 건데? 그때도 그렇고!'
작년 중간고사 때 시몬이 했던 기행이 떠오르자 목덜미에 열이 확 올랐다.
'그래, 그래! 어지간히 얕보였다 이거지? 어디 한번 좋을 대로 해봐!'
그녀도 두 팔을 벌리며 마법진을 펼쳤다.
어떤 공격도 주고받지 않은 채, 소년과 소녀는 경쟁하듯 마법진을 쌓아 올렸다.
-아아! 팽팽한 초반 분위기에서 스펠 대결 구도로 전환됐습니다! 2학년 결평은 빠르게 결판이 나는 경향이 강하죠? 여기서는 후반을 보는 구도! 제가 가장 좋아하는 흐름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이 시간 동안 사소한 공격이나 심리전 한번 오가지 않았다.
침묵 속에서 마법진이 경쟁하듯 쌓아 올려지고, 먼저 움직인 쪽은 제시카였다.
"아하하!"
그녀의 아공간이 무수히 펼쳐졌다. 관중석에서 지켜보던 학생들이 눈을 크게 떴다.
"대체 아공간을 몇 개나 쓰는 거야?"
그녀의 주위로 펼쳐진 아공간 속에서 각종 기계장비, 철근, 컨베이어 벨트 등이 쏟아져 나왔다.
꿀렁 꿀렁-!
그리고 그녀가 바닥에 펼친 마법진에서는 맹독학 전공자들이 애용하는 소환수, 슬라임이 일어났다.
슬라임들은 여러 갈래로 흩어져 기계장비들을 들고 옮기거나 조립하기 시작했다.
딸칵-!
철커덩!
맞물리는 소리, 끼워 맞춰지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진다.
곳곳에 탑이 세워지고, 컨베이어 벨트가 열을 맞추며, 조립라인이 들어선다. 칠흑으로 공중에 둥둥 떠 있는 장치가 있는가 하면, 슬라임들이 직접 움직이는 것도 있었다.
"보여줄게."
제시카가 두 팔을 교차하며 웃었다.
"내 진짜 실력을!"
<제시카 오리지널 - 화학공장>
덜컹! 덜컹! 덜컹! 덜컹!
서로 긴밀하게 연결된 아티팩트들이 요란하게 움직이며 공장을 작동시킨다. 슬라임들은 중간에 움직이는 공장의 노동자가 된다.
제시카는 아공간에서 커다란 상자를 연달아 꺼냈다.
상자 안에 든 건 화학약품들이었다. 모든 약품들이 컨베이어 벨트 위로 올라가고, 슬라임과 기계팔이 약품들을 적재적소의 위치로 옮긴다.
"그거 알아? 시몬 폴렌티아."
제시카가 입을 열었다.
"세상에서 제일 강력한 맹독들은 자연 상태로 보존이 불가능하거나, 몇 분만 지나도 그 효과가 급속도로 떨어져. 형편 좋게 준비해서 쏠 수가 없단 거지."
곳곳의 굴뚝에서 연기가 뿜어져 나오고, 기계 팔이 액체를 휘젓는다.
"즉, 가장 효과가 좋은 건 현장에서 즉석으로 배합하는 맹독이야. 네 '저항계'가 뛰어나다는 건 별야 교수님께 들어서 알고 있어. 저항계 수업을 할 때마다 네 예시를 드실 정도니까."
그녀가 우아하게 들어 올린 두 손을 마법진의 출력장치 위에 얹었다.
"네가 자랑하는 저항계를 뚫을 최강의 맹독을, 지금 이 자리에서 만들어줄게."
타다다닥-
그녀의 손가락이 피아노 건반 두들기듯 움직였다. 공장의 모든 과정을 제시카가 마법진으로 통제한다. 슬라임과 아티팩트는 그녀의 칠흑을 동력으로 움직이고, 그녀의 마법진이 프로세스와 조합식을 짜고 있다.
자연 상태의 원료들에 제조법과 그녀의 칠흑이 더해지며, '마법'으로 재탄생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마치 동화 속 마녀의 공방을 연상케 했다.
'대단해.'
시몬이 미소를 띠었다. 저 공장에서 어떤 대단한 결과물이 나올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떨렸다.
'물리적으로 움직이는 마법진 같네.'
이론적으로 본다면, 룬어와 수식을 배치하여 고위 흑마법이라는 결과를 뽑아내는 마법진과, 강력한 배합 맹독을 추출하는 제시카의 화학공장은 비슷한 원리였다.
하지만.
'마법진이라기엔 너무 커. 공격에 취약할 것 같은데?'
카오스 듀라한 마법진을 완성할 때까지 아무런 공격도 하지 않고 버티기만 하는 게 시몬의 계획이었지만, 이렇게 나온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시몬은 품에 넣어두었던 스켈레톤의 뼈 몇 개를 꺼내서 날렸다.
목표는 공장을 이루고 있는 아티팩트의 이음새와 접합 부위.
"소용없어."
제시카의 지시에 즉각 슬라임들이 올라와 벽을 만들었다. 날아가던 뼈들이 슬라임의 몸 안으로 퐁! 소리와 함께 들어가서 멈춰 섰다.
"카바라의 독 성분을 배합한 슬라임이야."
'최소한의 방어책은 있다는 건가.'
혼돈 마법을 완성하는 데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제시카를 견제해야 했다.
이번엔 시몬이 아공간을 열었다.
'가라!'
좀비 두 기가 뛰쳐나오자마자 공장으로 돌진했다. 슬라임으로 만든 벽 따위는 시체폭발로 간단히 날려 버릴 수 있었으나.
"침입자 감지, 사격 시퀀스 준비."
꾸르르륵!
철컥!
슬라임들이 기관총 아티팩트를 꺼내서 공장에 연결된 기계팔에 부착시켰다.
화학공장 작업이 잠시 멈추는 대신, 중간 완성 단계의 독들이 '탄환'의 형태로 조립되어 이동했다.
"사격 개시."
터엉!
텅!
사격 아티팩트들이 맹독 탄환을 날려 좀비들을 흔적도 없이 녹여 버렸다.
키이잉-!
이번에는 총구가 움직여 시몬을 조준했다. 오히려 역으로 그녀의 공장이 반격을 시작했고, 시몬은 펼쳐서 준비하던 마법진을 회수하고 몸을 날려 피했다.
퍼엉!
펑!
시몬이 있던 자리에 아까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끔찍한 독 웅덩이가 생겼다.
'위험해. 중간단계인데 벌써 저런 독을 조합했다고?'
시몬은 생각했다.
지금이라도 준비하던 마법진을 취소하고 전력을 다해 저 공장을 무너뜨려야 하나?
'아니야.'
그건 제시카가 바라는 바일 것이다.
공장이 무너져도 지금 완성된 독만으로도 그녀는 싸울 수 있다.
'이론상 내 카오스 듀라한은 완성만 되면 무적이야. 제시카의 페이스에 흔들리지 말자.'
대신 견제는 필요하긴 하다. 완성이 조금 더 늦어지더라도 더 강한 견제를 해야 했다.
시몬이 왼발에 힘을 주었다.
'개문!'
오버로드의 칼날이 바닥에서 튀어나왔고, 시몬이 추가로 꺼낸 네 기의 좀비를 휘감아 투석기처럼 날렸다.
"공중에서 침입자 포착. 풍력 장비 작동 개시."
철컹!
아티팩트 중에서 프로펠러 장치가 올라왔다. 이어서 기계팔이 맹독을 흩뿌리자, 바람을 타고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촤라라라락-!
날아가던 좀비 두 기가 맹독바람에 휘말렸다. 시체폭발도 쓰지 못할 만큼 단번에 썩어 문드러지고, 다른 두 기는 기관총 아티팩트의 정밀사격에 당했다.
"메이지들!"
시몬이 초대형 아공간을 열고 스켈레톤 메이지의 '다크 블레이즈'를 쏟아부었다. 그녀가 콧방귀를 뀌었다.
"세로틴산 성분 추출."
달칵!
기계팔이 제조과정에 이르던 독극물을 뽑아내 던졌다. 날아오던 화염이 그에 부딪히자, 소화되듯 꺼져 버렸다. 잔불이 타닥거리며 바닥에 내려앉았다.
미처 상쇄되지 않은 다크 블레이즈는 제시카가 칠흑으로 공장 자체를 옆으로 옮겨서 피했다.
"지금 이 공장에서 다루고 있는 독의 종류는 자그마치 60가지야. 어떤 공격이 와도 대처할 수 있어."
제시카가 웃었다.
"대 화학시대에 온 걸 환영해. 시몬 폴렌티아."
부글부글부글!
각 공장의 솥이 들끓기 시작했다.
"진짜 시작은 지금부터야. 보여줄게. 화학공장을 써서 만든 내 최강의 기술을!"
* * *
같은 시각.
"으으, 늦었어!"
1학년 캠퍼스에서 세 사람이 달리고 있었다. 특례 1번 사샤가 팔을 마구 휘저으며 소리쳤다.
"빨리 가, 바보왕! 시몬 오빠 경기가 벌써 시작했겠어!"
"바보왕이 아니라 용병왕이다! 흐으으으읍!"
그리고 지금 사샤에게 머리를 맞으면서 캠퍼스를 질주하고 있는 남자는 특례 2번, 용병왕 아서였다.
그는 어깨에 두 소녀를 짊어지고 야생마처럼 달리고 있었다. 그가 달릴 때마다 주위의 경관이 쌩쌩 멀어지고,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반대쪽 어깨에 앉은 몰리 공주는 눈을 질끈 감고 있었다.
"......죄송해요 아바마마. 드레스덴 왕족의 체통이......."
"꼴값 떨 거면 넌 내리든가."
"너희들이 또 무슨 말썽을 피울지 모르니까 같이 가주는 것뿐이야!"
캠퍼스를 질주하는 세 사람을 발견한 다른 1학년들은 익숙하단 반응이었다.
"저 바보 삼총사 또 뭐 하냐?"
"몰라. 어디 또 깽판 치러 가는 거겠지."
전 중립지대 성녀 후보자, 용병왕, 그리고 공주의 조합.
세상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삼총사였다.
그때 사샤가 눈을 크게 떴다.
"저기야, 2학년 캠퍼스 실내 제3 경기장!"
벌써부터 환호성이 들려오고 있었다. 아서가 히죽 웃었다.
"둘 다 꽉 잡아!"
쾅! 쾅! 쾅! 쾅!
그가 계단을 터뜨리며 뛰어올라 경기장 안으로 단번에 들어갔다. 뜨거운 환호성과 함께 시몬과 제시카의 모습이 보였다.
"늦었네. 그래도 분명 학생회장 선배님이......!"
"아."
그때 경기장의 마나 스크린을 보는 사샤의 동공이 믿을 수 없다는 듯 흔들렸다.
[시몬 폴렌티아 : 8%]
[제시카 카나노르 : 100%]
"시몬 오빠가...... 지고 있어?"
1학년 삼총사들이 급히 난간을 붙잡고 고개를 내밀었다. 상대인 제시카라는 2학년 앞에는 끔찍한 녹색 독으로 이루어진 괴생명체가 포효하고 있었다.
<제시카 오리지널 - 포이즌 히드라>
"포기해."
제시카가 말했다.
안개처럼 짙은 독무(毒霧)가 결계 안을 뿌옇게 뒤덮었고, 경기장 바닥은 독의 늪이 부글거리며 끓고 있었다.
그 가운데 거대한 독의 괴수가 시몬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녀가 '화학공장'으로 완성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맹독 소환수였다.
"하아, 하아."
경기장 끝에 몰려 주저앉아 있는 시몬이 숨을 헐떡였다. 피부 곳곳에 이상한 무늬들이 마구 생겨나 있었고, 눈에는 피눈물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내 마지막 기술이 완성된 이상, 네가 무슨 짓을 하든 승산은 없어. 이제 끝을......."
바로 그때.
-힘내애애애애애!
경기장에 사샤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모두의 고개가 돌아갔다.
"저 1학년 뭐야?"
"개념 없네."
모두가 웅성거리고 있는 가운데, 시몬이 실없는 미소를 흘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후배들이 왔는데 더 못난 꼴을 보일 순 없지."
"센 척하기엔 너무 벼랑 끝까지 왔다고 생각 안 해?"
화학공장은 여전히 돌아가고 있다.
그곳에서 조합된 독들은 계속해서 제시카의 걸작인 '포이즌 히드라'를 더 크게, 그리고 더 강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것은 존재하는 것만으로 대지와 대기를 오염시킨다. 물리공격도 통하지 않는다. 칠흑 원소 마법으로 어떻게 대응한다고 해도 공장의 힘으로 끊임없이 재생한다.
제시카의 히든 카드는 막강했다. 그녀 본인도 결투평가에서 이렇게 깔끔하게 포이즌 히드라를 꺼낸 건 처음이었고, 이 상황에서는 도저히 지려야 질 수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럼 갈게."
시몬이 아공간을 열었다.
쿵!
그 안에서 드디어. 검을 쥐고 웅크려 앉은 큼지막한 목 없는 몸체가 내려왔다. 그것을 본 관중들이 열렬한 환호성을 터뜨렸다.
"나왔다!"
"학생회장의 듀라한이야!"
와아아아아아아아아!
시몬은 다른 아공간에서 마누스의 두개골을 들고 듀라한의 머리 위에 얹었다. 그리고 준비한 마법진을 듀라한의 몸에 부착시켰다.
자줏빛 광채가 터지며, 혼돈으로 움직이는 듀라한이 서서히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저게 몬스터 1만 마리를 베었다는데?"
"거짓말이겠지."
3학년들이 쯧 하고 혀를 찼다.
상대인 제시카는 여전히 여유가 있는지 웃었다.
"이제야 꺼냈네. 하지만 너무 늦었다고 생각하지 않아? 앞으로 1분이면 네 체력은......."
"제시카."
독에 신음하면서도, 시몬은 비틀거리며 말했다.
"아까 말했지? 화학시대가 왔다고."
"그게 뭐?"
"그럼 나도 선언할게."
시몬이 손을 들어 올렸다.
두근 두근 두근 두근 두근!
카오스 듀라한의 칠흑엔진이 가동했고, 동시에 몸에서 보랏빛 밀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시몬의 손을 내렸다.
"다시 석기시대로."
쿠우우우우우우우우웅-!
카오스 듀라한의 몸에서 뭔가가 시작됐다.
그 순간, 제시카는 깜짝 놀라며 뒤를 돌아보았다.
쾅!
와지지지직!
쿠쿠쿵!
철벽의 방어력을 자랑하던 화학공장이 갑자기 거짓말처럼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슬라임들이 축 늘어지고 모든 아티팩트와 컨베이어 벨트에 전원이 꺼지고 칠흑이 사라졌다.
파스스스!
경기장을 가득 채운 독무가 알갱이가 되어 바닥에 깔렸고, 파도치던 독웅덩이는 말라붙었다.
심지어.
"아!"
-꼬르르르륵!
그녀가 자랑하던 포이즌 히드라의 크기가 줄어들고 있었다.
이내 제시카보다 작아진 히드라는 작은 웅덩이만 남겼다가, 그마저도 소멸했다.
남은 건 말라붙은 독조각 조금.
"뭐, 뭐 뭐야!"
당황한 그녀가 덜덜 떨며 뒷걸음질 쳤다.
"무슨 짓을 한 거야! 시몬 폴렌티아!"
스릉!
시몬이 씩 웃으며 검을 뽑는 시늉을 했다. 카오스 듀라한도 멋들어지게 검을 뽑으며 시몬과 같은 자세로 섰다.
"이 시대의 전투에도 익숙했으면 좋겠네, 제시카."
소드 마스터의 두개골이 미소 지으며 살벌한 안광을 번뜩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