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713화
'아.'
제시카는 마른침을 삼키며 목 없는 기사, 듀라한을 응시했다.
본래는 아무것도 없이 깨끗하게 비어 있어야 할 공간에, 보란 듯이 스켈레톤의 두개골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이는 다소 언밸런스한 외견이었으나, 파직거리는 자줏빛 마력으로 서로 연결된 그것들은 대단한 위압감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바로 그 듀라한이 대검을 짊어지고 제시카에게 돌진해 오고 있다.
'크윽!'
제시카는 마치 손 쓸 수 없는, 자연재해와도 같은 거대한 해일이 자신에게 몰려오는 느낌을 받았다.
'어떻게든 해야 해!'
체념하는 건 그녀의 성격과 맞지 않았다. 두 팔을 뻗었다. 허공에 급히 마법진을 펼친 뒤, 공장의 잔해라도 일으켜 대응할 생각이었지만.
'어?'
마법진이 펼쳐지지 않았다.
정확히는, 마법진을 펼치려고 허공에 칠흑을 펼쳐놓으니 대기 중에 흩어져 버렸다.
'그, 그럼 이건?'
후다닥 달려간 그녀가 바닥에 떨어진 아티팩트를 들고 직접 칠흑을 불어넣었다. 그러나 그것마저도 잠깐 전원이 켜졌다가 꺼지고 만다.
'대체 무슨 짓을 한 건데!'
-다시 석기시대로.
시몬의 그 주문 같은 한마디 이후 모든 게 바뀌었다.
하는 수 없이 제시카는 바닥에 떨어져 있는 철근 하나를 집어서 검처럼 들었다. 그게 이 난관 속에서 그녀가 대응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쿵!
듀라한이 그녀의 코앞까지 도달했다. 흉악하고 비대한 체구, 그리고 체구에 비해 작은 두개골이 자줏빛 안광을 번뜩인다.
쿠와악!
대기를 뒤흔들며 태산 같은 대검이 내려온다. 그녀는 제 손에 들린 철근 하나가 너무나 초라하다고 느꼈다.
'아.'
검이 자신에게 떨어지는 걸 느끼며, 그녀는 눈을 감았다.
'마투, 열심히 할걸.'
투콰아아아아아아아악!
"경기 종료!"
심판이 팔을 들어 올렸다.
[시몬 폴렌티아 : 2%]
[제시카 카나노르 : 0%]
"승자는 소환학과의 시몬 폴렌티아입니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
우레와 같은 함성이 쏟아진다.
이미 자리에 서 있던 학생들이 물개 박수를 치고, 스카우터들은 흥분한 얼굴로 마력촬영기를 작동시켰다.
"메이린! 메이린! 시몬이 이겼어요!"
카미바레즈가 너무 기뻐서 깡충깡충 뛰어다녔다. 차마 보지 못하고 제 눈을 가리고 있던 메이린이 이제야 손을 떼고 앞을 보았다.
"꺄아아아아아아아!"
메이린이 힘껏 비명을 질러대며 카미바레즈를 끌어안았다. 옆자리의 딕이 귀를 틀어막으며 낄낄댔다.
"이햐, 100% 배리어 게이지를 한 방에 깎아? 역전승이 뭔 줄 안다니까."
저 멀리 신문부 부장인 테이가 쩝 하고 입맛을 다시며 돌아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딕은 속이 다 시원하단 표정으로 두 다리를 뻗었다.
"시몬 오빠아!"
"대단하십니다!"
"역시 학생회장 선배님이세요!"
뒤늦게 관중석에 난입한 1학년 삼총사도 서로 얼싸안고 환호하는 중이었다.
정말로 아슬아슬했다. 시몬은 계속 독으로 배리어 게이지가 떨어지고 있었으니, 아주 조금이라도 카오스 듀라한의 완성이 늦어졌다면 결과는 제시카의 승리로 끝났으리라.
제시카가 털썩 주저앉았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왜 내 흑마법이......!'
"수고했어, 제시카."
시몬이 다가왔다. 제시카는 분한 듯 입술을 깨물며, 해명을 요구하듯 노려보았다. 시몬은 순순히 대답했다.
"간단해. 듀라한이 이 지역의 모든 칠흑을 빨아들인 거야."
"......거짓말 마. 듀라한의 마나엔진이 고정된 칠흑마법까지 흡수한다는 말은 못 들었어. 거기다 아직 내게 다가오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바로 그 특성을 최대한 확대한 게 내 카오스 듀라한이야."
시몬은 카오스 듀라한의 몸통 위에 있는 마누스의 두개골을 집어서 들어 올렸다. 두개골이 클클클 거리며 웃고 있었다.
"카오스 듀라한은 주위의 칠흑과 마나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여서 일종의 마나 진공상태처럼 만들지. 대기에 노출된 칠흑과 마나는 내 듀라한 앞에서 마법진을 이룰 수 없어."
저 멀리서 경기장 직원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결계가 사라지려고 하고 있습니다! 손상도가 심각합니다!
-이다음 경기는 다른 경기장에서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심지어 경기장에 쳐져 있는 관중석을 보호하는 결계까지 카오스 듀라한에게 흡수돼서 손상된 모습이다.
그녀의 동공이 흔들렸다.
'경기장의 결계까지 훼손할 정도야?'
"제시카, 네 화학공장의 완성도는 대단해. 하지만."
그녀는 지나치게 사소한 것 하나하나 통제하려 했다. 아티팩트 장치는 물론, 슬라임이나 철대, 컨베이어 벨트, 기둥, 그리고 독연기까지. 공장을 이루는 모든 것에 그녀의 칠흑이 함유되지 않은 요소가 없었다.
모든 과정을 본인이 일일이 통제하지 않으면 성에 차지 않는 타입.
이것은 사뭇 완벽해 보였다. 시몬의 공격을 피하려 공장을 들어 옮기는 묘기까지 보일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그래서 역으로 카오스 듀라한이 주위의 모든 칠흑을 빨아들였을 때 완전히 무너져 내린 거야."
만약 그녀가 조금 더 원시적인 방법을 썼다면.
슬라임과 칠흑으로 전체를 통제하는 게 아니라, 몇 가지는 그냥 일반적인 동력으로 장비를 돌리거나 바닥에 고정하거나 했다면 이렇게 속수무책으로 무너지지는 않았으리라.
"물론 결과론적인 이야기일 뿐이고, 그냥 나와는 상성이 나빴던 거지. 좋은 경기였어, 제시카."
"......."
"그리고 어, 음."
그때 시몬이 옆머리를 긁적였다.
"미안해."
"?"
제시카가 고개를 되돌려 시몬을 보았다.
"작년 중간고사 때나 지금이나 결코 널 무시하거나, 봐주려고 한 건 아냐."
당시 시몬은 인생 첫 테스트를 망치고, 어떻게든 중간고사를 잘 쳐야겠다는 생각에 지나치게 매몰되어 있었다. 결투평가보다 중간고사가 우선이었다.
그리고 지금도 마찬가지. 굳이 마투로 밀어붙이지 않고 카오스 듀라한이라는 신무기를 꺼냈던 이유.
"내겐 목표가 있어."
시몬의 시선이 관중석 쪽으로 향했다. 시몬의 시선을 쫓아간 제시카가 그곳에 있는 3학년들을 보고 화들짝 놀랐다.
"이, 이봐. 너! 진심으로 에이젤 선배를 이기려고......!"
그녀는 말을 멈추고 다시 시몬을 보았다.
아득히 먼 곳을 바라보는 눈.
그 눈을 보는 순간 마음속으로는 자신도 모르게 납득해 버리고 말았다. 3학년 수석 에이젤과의 결전이 앞에 있는데, 고작 자신 따위가 눈에 들어올까?
'이 녀석은 그냥.'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이었다.
제대로 상대 안 해준다고 아득바득 화만 내던 자기 자신이 조금 우스워졌다.
"아무튼,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건 그때도 지금도 난 최선을 다했다는 사실이야."
시몬이 다가와 주저앉아 있는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좋은 경기였어, 제시카."
이 광경.
1학년 중간고사 때와 같았다. 그녀가 입술을 깨물었다.
'저 녀석은 저렇게 성장했는데, 나는 그때와 하나도 달라진 게.......'
제시카!
그때 뒤쪽 관중석에서 이름을 부르는 외침이 들렸다.
"진짜 잘 싸웠어!"
"학생회장의 배리어 게이지를 2%만 남기다니! 최초 아냐?"
"경기 중반부에 밀어붙일 때 진짜 네가 이기는 줄 알았어! 아깝다!"
곳곳에서 그녀의 이름이 울려 퍼지고 있다.
멍해 있던 제시카는, 상심할까 봐 열심히 박수를 보내는 맹독학과 동기들에게 애써 웃어 보이며 손을 흔들었다.
'그래. 저 녀석을 이렇게 몰아붙일 수 있었던 건 시몬의 자비도 아니었고, 에이젤 선배 덕분도 아냐.'
그녀가 힘차게 자리에서 일어나 시몬의 손을 붙잡았다.
'내 노력의 결과.'
나는 달라졌다.
그녀가 씩 이를 드러냈다.
"널 상대로 2%까지 밀어붙인 내 기록이 쭉 유지됐으면 좋겠는데."
시몬이 웃었다.
"최선을 다할게."
* * *
시몬과 제시카의 경기가 끝났다.
하지만 그 열기는 뜨거웠고, 역전승의 여운은 짙었다. 100%와 2%의 차이를 뒤집어엎은 시몬의 이번 승리는 당분간 계속 회자될 것 같았다.
짝짝짝.
시몬의 결투평가를 직관한 에이젤도, 관중석에서 흡족하게 웃으며 손뼉을 치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강자의 여유가 느껴지는 모습이었지만.
'대단해! 시몬! 진짜 진짜 대단해!'
사실 속으로는 온갖 호들갑을 떨고 있었다.
'저런 기술을 준비하고 있었구나! 흑마법을 못 쓰게 만드는 소환수라니! 넌 정말 최고야!'
"일부로 시간 내서 보러온 보람이 있었네."
소환학과 대표이자 전체 4위, 레오나드가 말했다.
"그야말로 필승카드야. 저게 완성되면 아무리 에이젤 너라도 위험할지 모르겠는데."
"개소리하네."
사령학과 대표이자 전체 6위, 소타가 인상을 팍 구기며 끼어들었다.
"저게 완성될 때까지 에이젤은 손 놓고 자고만 있냐? 초중반에 몰아붙이는 타입인 에이젤을 상대로 저렇게 긴 준비가 필요한 소환수를 운용하는 것 자체가 무리수야. 성공률이 0%라고. 실전에서 저게 완성된다는 건-"
소타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짜고 치는 게 아니라면 불가능해."
그 한마디에 에이젤은 온몸에 솜털이 오소소 올라오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애써 아무렇지도 않은 척, 떨리는 손끝으로 엘리트 안경을 추켜올렸다.
"무, 물론이다. 완성되기 전에 경기가 끝나 있겠지."
"그렇지? 역시 키젠 최강답다니까. 아하하!"
소타가 친한 척 에이젤의 어깨에 팔을 두르며 웃어댔다.
에이젤은 뒷목에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바람을 일으켜서 말렸다.
'소타의 말이 틀린 건 아냐. 시몬의 저 듀라한이 준비될 때까지 시간을 끌면 사람들이 무조건 의심할 거야.'
에이젤이 이마를 짚었다.
'게다가 시몬은 저 기술을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공개했어. 방심하다가 당하는 연출도 불가능해.'
사람들이 생각하는 에이젤 브링어는, 압도적으로 강하면서도 상대에 대한 공략 또한 소홀하지 않은 빈틈없는 천재.
만약 자신의 공격을 뚫고 시몬이 카오스 듀라한을 완성해 낸다면, 그 자체로 의심을 받을 수 있었다.
'......학생회장 안 하는 거 어렵다, 진짜.'
* * *
시몬은 치료를 마치고 학생회 멤버들과 함께 학생회관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앞서 걸어가던 카미바레즈가 참새처럼 재잘재잘 이야기했다.
"시몬! 이번 경기는 정말 대단했어요! 끝까지 버틴 보람이 있었네요!"
"고마워 카미."
"내 말이 맞지? 제시카를 상대로 카오스 듀라한을 꺼낸 게 최선의 한 수였다니까!"
카미바레즈에 이어서, 딕이 큰 소리로 말했다.
"이번 경기로 전교생의 분위기가 바뀌었어! 원래는 결과가 지나치게 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단 말야? 근데 이번에 네 카오스 듀라한을 보이면서 '일단 저걸 꺼내면 이길 수도 있지 않나?' 하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어!"
묘사하자면 승부가 뻔히 보이는 고양이와 쥐의 싸움.
그런데 사실은 그 쥐의 이빨에 독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물론 쥐가 고양이에게 독니를 박는 건 쉽지 않겠지만, 승률 0%에서, 쥐도 한 방을 먹일 수 있을지도 모르는 기대감이 형성되는 건 다른 의미였다.
"난 조금 생각이 다른데."
메이린이 뚱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시몬의 승리 자체는 축하해. 하지만 솔직히 카오스 듀라한을 이번 결평에서 꺼내야 했는지는 의문이야."
"왜?"
"그야 당연하지! 중요한 대결을 앞두고 필승카드를 벌써 까버리는 게 말이 돼? 이제 에이젤 선배가 대비하고 악착같이 소환을 방해할 거 아냐!"
딕이 헛기침을 했다.
"흠흠! 하지만 시몬도 실전조율을 해야 했고, 뭣보다 분위기가......."
"분위기가 밥 먹여주냐? 븅딱아! 이제 전교생이 카오스 듀라한에 대해 떠들고 대처법을 논의할 텐데 어떻게 할 건데!"
그 말을 들은 시몬이 씩 웃었다.
"바로 그게 노림수야."
"?"
멤버들이 당황한 얼굴로 걸음을 멈췄다. 카미바레즈가 고개를 갸웃했다.
"노림수라뇨? 시몬."
"힘겨웠지만 결국 어떻게든 제시카를 상대로 카오스 듀라한을 성공시켰어. 이제 에이젤 선배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이 기술에만 집중할 거야. 그사이에 나는."
시몬이 주먹을 꾸욱 쥐었다.
"진짜 이기기 위한 현실적인 한 수를 준비할 생각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