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714화
"뭐어?"
시몬의 이야기를 들은 메이린이 펄쩍 뛰었다.
"그럼 카오스 듀라한은 처음부터 페이크였단 소리야?"
"그럼 새로운 기술은 뭐예요? 시몬."
메이린과 카미바레즈의 시선을 받으며, 시몬이 멋쩍게 미소 지었다.
"이제부터 알아봐야지."
"?"
메이린의 얼굴에 담긴 감정이 '놀람'에서 '어이없음'으로 변했다.
"뭐야 그게! 결국 아무런 대책이 없단 거잖아!"
카미바레즈도 이게 맞는지 고개를 갸웃했다. 반면 그 옆의 딕은 요란하게 웃어대고 있었다.
"여윽시 내 베프야! 일단 3학년들을 속이고 보겠다는 거지?"
"계획은 있어."
시몬도 빙글빙글 웃으며 학생회관 건물로 들어갔다.
"기대해. 조만간 재미있는 걸 보여줄게."
* * *
시몬은 당일 밤에 움직였다.
첫 행선지는 학생회관 건물의 옥상. 그곳에는 두 발바닥을 바닥에 딱 붙인 채 쪼그려 앉은 자세로 달밤을 올려다보는 남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바람에 회색 머리칼이 휘날리며 눈에 난 상처가 두드러지게 보였다.
"왔나."
"안녕하세요 카쟌."
시몬은 싱글벙글 웃으며 그 옆에 앉았다. 카쟌은 한숨을 푹 쉬더니 품속으로 손을 넣었다. 이내 검지와 중지로 집은 쪽지 하나를 시몬 앞으로 샥 내밀었다.
"고대종 드레이크의 공식 경매, 그리고 비공식 경매까지 모두 조사했다."
"감사합니다! 역시 도둑길드의 정보가 빠르네요."
시몬이 얼른 쪽지를 받아들었다.
"오늘 네 결투평가에 대해선 들었다."
카쟌이 눈 밑에 난 상처를 긁적거리며 말을 이었다.
"최근 네 행보는 의문점이 가득하군. 에이젤과의 결투에서 이기는 게 목적일 텐데, 어째서 카오스 듀라한이라는 확실한 카드를 두고 고대종 드레이크를 찾는 거지?"
시몬이 바스락거리며 쪽지를 펼쳤다.
"아무래도 카드 한 장으로는 안 될 것 같아서요."
"......."
그 말을 들은 카쟌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걸렸다.
"그런가."
카쟌을 만난 뒤, 시몬은 바로 돌연변이 동아리실로 향했다.
그곳에는 벤야 바닐라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건 좋네! 레드 드레이크, 감정 결과 300년 된 개체! 레드 드레이크는 고대종 중에서도 가장 근본 중의 근본이거든. 브레스도 쓸 수 있고. 아, 헬름 드레이크도 괜찮아."
벤야는 카쟌이 조사해 온 경매 리스트를 보고 좋은 것들 위주로 추려주었다.
시몬은 열의 넘치게 받아적었다.
"고대종 드레이크는 어떤 방식으로 쓸 거야? 일반 소환수? 아님 복원기용이나 특수능력용으로?"
"스켈레톤류라면 복원기가 가능했으면 좋겠네요. 제 특기니까요."
"응, 응, 그럼 몇 개 후보를 더 줄일 수 있겠다!"
그녀가 손끝으로 종이를 가리켰다.
"이 고대종 드레이크로 만든 언데드는 가벼운 용언을 쓸 수 있어! 복잡한 명령은 힘들겠지만 상대방을 멈칫하게 만드는 정도는 기대할 수 있을 거야."
"좋네요."
"그리고 여기, 스케일 드레이크. 겉보기엔 신체가 털 하나 없이 매끄럽지? 마나로 비늘을 형성해서 몸을 덮을 수 있다고 하네."
남의 쇼핑 조언보다 즐거운 건 없었다. 신이 나서 빠르게 이야기하던 그녀가 이내 조심스럽게 물음을 던졌다.
"그런데 고대종 드레이크를 제군이 다룰 수는 있긴 한 거야? 용의 인자를 써야 하는 특수 언데드인데?"
"안 그래도 요즘 용의 인자를 공부하고 있거든요. 최근에 다룰 수 있게 됐어요."
2학년이 용의 인자를 다룰 수 있다는 소리에 벤야의 눈이 커졌다. 그래도 지금까지 시몬이 벌인 기행이 워낙 대단하다 보니, 쉽게 믿어지진 않지만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이었다.
"가격도 만만치 않을 거야. 예산은 충분해?"
"어떻게든 마련해 봐야죠."
고대종 드레이크는 고고학적 연구가치가 높은 희귀 몬스터고, 대륙 지천에 널려 있는 드레이크와는 차원이 다르다.
리치가 성능적으로도 뛰어난 언데드라면, 고대종 드레이크는 가히 사치품의 영역이라 컬렉터들도 침을 줄줄 흘리며 시장에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확보가 쉽지 않겠지만, 시몬은 처음 아론에게 고대종 드레이크에 대한 설명을 들었을 때부터 반드시 손에 넣고 싶다고 생각했다.
'본 드래곤을 거쳐가는 중간과정 중에 이것보다 좋은 소환수는 없어. 뭣보다 나와 상성도 잘 맞아.'
아직 각종 의뢰들로 얻은 자금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이번에 얻은 프로스트 필드를 이용해서 새로운 자금줄을 만들 생각이니, 다소 무리해도 문제는 없었다.
시몬은 우선 경매에 참여해서 구매할 고대종 드레이크를 고른 뒤, 벤야가 말해주는 언데드 제작에 필요한 재료들을 받아적었다.
"살아 있는 블랙예티의 심장, 이건 정말 구하기 어려울 거야. 보존도 어렵고 부르는 게 값이라 재고 자체가 없거든. 그리고 흰 눈썹 라이칸스로프의 뇌수도......."
시몬이 빠르게 수첩에 받아적으며 말했다.
"그 몬스터들이 출현하는 지역도 알 수 있을까요?"
"직접 구하려고? 블랙예티는 대륙 최북부에서나 나오는 개체고 흰 눈썹 라이칸스로프는 대륙에서 한참 떨어진 이로쿠아 군도에 있어."
그녀가 고개를 내저었다.
"학생회장 권한으로 키젠에 요청하면 텔레포트 마법진을 쓸 수는 있겠지만, 아무리 제군이라도 이렇게 바쁜 시기에 짧은 시간 동안 재료를 구하는 건 불가능해."
"그건 걱정 마세요."
모든 재료를 받아적은 시몬이 씩 웃었다.
"부탁할 만한 사람들이 있거든요."
"?"
* * *
시몬은 쉴 틈 없이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소환학과 기숙사로 돌아온 시몬은 건물 관리원들 몰래 옥상에 올라갔다. 그곳에는 언데드 까마귀 한 마리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곳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새는 아니었다.
"부탁해."
정확히는 칼로스 북부에 있는 그레이슨이 통제하는 새였다.
이 새가 북부와의 연락망인 셈이다. 시몬의 메시지를 들은 까마귀는 곧장 날개를 펼쳐 밤하늘을 향해 날아올랐다.
물론 이 언데드 홀로 북부까지 가는 건 아니었다. 까마귀는 칠흑을 거의 다 소진하기 전에, 같은 종의 언데드 새에게 사념으로 정보를 전달했다.
그 새는 날아올라 다음 새에게 사념으로 정보를 전달했다. 그렇게 전달하고 전달하여 마침내 칼로스 북부를 넘어 프로스트 필드까지, 시몬의 지시가 전달되었다.
그리고 프로스트 필드는 한바탕 난리가 났다.
-크르르르르륵!
-끼이이이!
북신의 본진인 '어비스'에, 모든 프로스트 필드의 언데드들이 집결했다. 얼마나 그 숫자가 많은지 붉은 바닥이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전군은 들어라!]
언덕에 올라선 북신 '자이로스'가 두 팔을 펼치며 말했다.
[나의 위대한 주군이자 프로스트 필드의 주인, 시몬 폴렌티아 군단장께서 '살아 있는 블랙예티의 심장'을 원하신다!]
-어어어어어어!
-케어에에에!
모든 망자들이 울부짖었다.
한 소년의 학교 준비물 수집을 위해 지금, 이렇게 많은 언데드 대병력이 프로스트 필드에 모여든 것이다.
[거기에 주군께서는 최대한 신선한 것이 필요하다고 덧붙이셨다! 그렇기에 나는 인간들의 '신선'에 대한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았다!]
'응?'
조금 떨어진 곳에서 까마귀로 지켜보고 있던 그레이슨이 불안한 느낌을 받았다.
[신선은 '새롭고 산뜻하다'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산뜻하다는 것은 '기분이나 느낌이 개운하고 시원하다'는 뜻을 말한다! 이제 주군의 숨겨진 뜻을 알겠느냐?]
한 문장을 넘어가는 순간 북신의 언데드들이 이해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우리 전군은 블랙예티의 출몰지인 아팜 산으로 이동한다! 그곳의 모든 살아 있는 생명체의 씨를 말려 버리고 산을 산뜻하게 청소하겠다!]
-게에에에엑!
-캬아아악!
아니, 그게 아닌 게 같은데요.
그레이슨의 까마귀가 사념으로 다급히 말했지만 자이로스의 의지에는 변함이 없었다.
[주군의 명은 반드시 실현되어야 한다! 전 병력은 아팜 산으로......!]
그때 목소리가 변질되듯 바뀌었다.
-[그딴 하찮은 곳에 갈 이유가 없다! 이 병력이라면 지금 평화에 찌들어 퍼질러 있을 빌케노스를 함락하...... 커헉!]
주먹으로 제 얼굴을 때려 북신의 잔여 사념을 닥치게 만든 자이로스가 다시 말했다.
[가라! 주군을 위해 영혼을 바쳐 명령을 수행하라!]
-키에에에에에에에에!
한 소년의 재료를 구해달라는 부탁 때문에, 프로스트 필드의 망자들 전체가 광란에 휩싸여 진군했다.
* * *
대륙 최남단, 이로쿠아 군도.
이로쿠아 군도는 독자적으로 진화한 몬스터들이 우글거리는 마경이었다. 심지어 군도에 던전이 열린 채로 자연 방치되었기에, 던전에서 흘러나온 몬스터들까지 생태계에 영향을 미쳐서 도저히 종잡을 수 없는 장소로 변질되었다.
바로 이곳에.
휘이이이이잉-!
검은 비행물체들이 바다 넘어 날아오고 있었다.
[충성스러운 스컬윙 부대의 병사들은 들어라.]
그중에서 가장 거대한 깃털 뭉치가 불쑥 고개를 들었다.
[북신이 된 자이로스가 군단에 합류했다. 놈은 과거에도 지금도 군단 최고의 충신을 자처하지만, 이 아케뮤스가 보기에는 그렇지 않다.]
새로운 외부개체가 군도에 출현하자, 군도의 비행형 몬스터들이 윙윙거리며 올라왔다. 하지만 아케뮤스는 진군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굴러들어 온 돌에게 진짜 충의를 보여라! 이는 부대 간의 자존심 싸움이기도 하니, 자이로스의 병력보다 먼저 '라이칸스로프의 뇌수'를 확보한다! 방해하는 것들은 모두 없애라!]
-끼이이이이이이!
거대한 한 쌍의 날개가 펼쳐지며 아케뮤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뒤이어 다른 스컬윙들도 검푸른 깃털을 펼쳐냈다.
[충의를 증명하라!]
언데드들이 군도를 덮쳤다.
근방의 어부들은 한동안 하늘이 새까맣게 변했다고 증언했다.
* * *
전 대륙의 가치 있는 모든 물건들이 모인다는 펜타모니엄 경매장.
실체가 있는 물체는 물론, 유명인사와의 식사 자리, 각종 지식과 마법진의 저작권까지. 진귀한 가치가 매겨질 수 있는 것이라면 그 무엇이라도 사고팔 수 있는 곳이었다.
돈 많은 귀족 노인들이 지팡이를 짚으며 지나가고 있는 바로 이곳에, 다소 반듯한 정장을 입은 젊은 청년이 통신 수정구를 들고 쩔쩔매고 있었다.
"벤야 아가씨,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는 벤야가 보낸 바닐라 그룹의 사원이었다.
"고닐라 박사가 이번 경매에 나오는 고대종 드레이크를 노리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다른 날 경매에 나오는 드레이크를 노리시는 게...... 아, 그래도 입찰합니까? 알겠습니다."
사원이 통신 수정구를 품에 넣고 경매장으로 향하려는데, 펜타모니엄 측 경매 책임자가 앞을 가로막았다.
"죄송하지만 VVIP 외에는 들어가실 수 없습니다."
시몬이 원하는 물건은 고대종 드레이크 중에서도 비늘을 하늘에 띄운다고 알려진 '스케일 드레이크'의 시체.
그 가치는 어마어마했고, 이 물건을 파는 경매장의 수준도 너무 높아서 문제였다. 사원은 바닐라 그룹의 이름을 이용해 들어가려 했지만 경매 책임자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바닐라 그룹이라면 회장님께서 직접 오셨으면 좋았을 텐데요. 죄송합니다."
"아니 회장님이 원하는 물건이 아니라 저는 단지......!"
"죄송합니다."
단호한 거절에, 사원은 결국 등을 돌려 통신수정구를 작동시켰다.
"죄송합니다, 아가씨. VVIP들만 들어갈 수 있는 최상위 경매라 제 신용으로는...... 예, 예. 시몬 학생분께도 미안하다고 말씀 부탁드립니다."
"지금."
그 말을 들은 경매 책임자가 황급히 다가왔다.
"시몬 학생이라고 했소?"
"예."
그제야 경매 책임자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진작 말하지. 그런 거라면 들어가시오."
"예?"
"이전에 펜타모니엄의 결계가 뚫렸을 때 시몬 학생회장이 큰 도움을 줬었소. 펜타모니엄에서 그가 활동하는데 모든 편의를 봐주라는 것이 윗선의 지시사항이오."
사원은 작게 탄성을 흘렸다.
'역시 사람은 행실이 좋고 봐야 하는군.'
* * *
시몬과 벤야는 돌연변이 동아리실에서 숨죽인 채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벤야는 턱을 괸 채 손가락으로 책상을 툭툭 초조하게 두들기고 있었고, 시몬은 오버로드를 보수하고 있었지만, 신경이 쓰이는지 자꾸 윤활액을 바닥에 흘리는 중이었다.
그러다.
-아가씨! 우리가 낙찰했습니다! 당초 예상보다 저렴한 2천 골드에 낙찰받았습니다!
와아아!
두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나 환호했다.
"됐어요! 이제 가장 큰 난관은 끝났어요!"
"그, 그럴까? 하지만 다른 재료들도 만만치 않......."
푸드득!
그때 언데드 새 한 마리가 창가를 툭툭 두들기고 있었다. 시몬이 창문을 열어주자 새가 안으로 들어와 시몬의 어깨에 앉아 뭐라고 지저귀었다.
보고를 들은 시몬이 씩 웃었다.
"블랙예티의 심장, 라이칸스로프의 뇌수. 모두 확보 완료했다고 하네요."
"으, 응?"
벤야가 얼굴에 물음표를 띄웠다. 그 귀한 걸 벌써 얻었다고?
그런데 시몬은 한술 더 떴다.
"참, 그리고 블랙예티의 심장이 제가 쓸 거 하나랑 예비까지 포함해서 두 개는 챙겨두고, 남은 잔량이 130개 있거든요. 바닐라만 괜찮다면 싼 가격에 매입해 주실래요?"
"으, 으으응?"
벤야의 얼굴에 물음표가 백만 개쯤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