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716화
시몬과 헥토르는 마지막으로 용의 인자 합동훈련을 했다.
시몬은 헥토르의 움직임에서 많은 노하우를 얻을 수 있었다. 헥토르야 무의식으로 숨 쉬듯 하는 행위였지만, 이제 막 용의 마법에 입문한 시몬에게는 사소한 것 하나하나가 모두 힌트였다.
헥토르도 힐긋거리는 시몬의 시선을 느꼈지만, 노하우를 훔쳐 갈 테면 훔쳐 가보라는 듯 자신이 할 일에만 집중했다.
가끔 시몬이 궁금한 게 생겨서 물어보기도 했는데, 헥토르는 세상 통쾌한 표정으로 말했다.
"날 꺾으려고 용의 인자를 공부하는 놈에게, 내가 왜 그걸 알려줘야 하지?"
시몬은 삐질 땀을 흘리며 물러섰다.
'......근데 왜 기분이 좋아 보이지?'
그렇게 마침내 두 사람의 합동훈련이 끝났다.
"감사합니다 교수님!"
"들어가십시오."
아론이 떠나고, 시몬과 헥토르도 걸음을 옮겼다.
말없이 몇 걸음 걷던 헥토르가 인상을 팍 구겼다.
"따라오지 마라."
시몬이 어깨를 으쓱했다.
"같은 방향일 뿐이잖아."
같은 소환학과 기숙사에 가는 길이라 방향이 같았다. 두 사람은 조금 거리를 둔 채 걸음을 옮겼다.
"......."
"......."
어색한 바람이 불었다.
그렇다고 뭔가 막 혼자 달리거나, 칠흑을 밟고 뛰쳐나가거나 하는 건 유난 떠는 것 같아서 조금 그랬다.
잠깐의 정적이 이어지는 그때.
"인자를 움직일 때, 경험에 의존하지 말고 직관에 따라라."
헥토르가 입을 열었다.
"용의 마법을 배운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주제에, 같잖은 요령을 부리려 하니 실패하는 거다. 용의 인자엔 칠흑처럼 기억하는 성질이 없다. 직관에 따라 움직여라. 그게 쌓이면 나중에 절대적인 움직임이 된다."
'오.'
아까 했던 물음에 대한 대답이었다. 시몬이 슬며시 웃었다.
"고마워 헥토르."
헥토르가 질색하는 표정으로 인상을 확 구겼다. 커다란 용이 인상을 팍 쓰는 것 같은 느낌이라 웃음이 나왔다.
"마음대로 해봐라. 네놈이 같잖게 이쪽 영역에 시간을 버리는 사이, 나는 더 앞으로 나아가겠다."
"그래, 그래."
휘이이이이잉-
그때 강풍이 불어오며 나무들이 흔들렸다. 시몬은 걸음을 멈추고 하늘을 보았다.
자연 바람이 아니다.
묘하게 칠흑이 실려 있었다.
휘이이이이이이이잉-
두 번째 돌풍. 이번에는 헥토르 또한 칠흑을 감지했는지 걸음을 멈추고 대비했다.
이내 바람이 점점 거세지더니.
푸화악!
하늘에서 인간이 떨어졌다.
바닥에 닿기 직전에 감속하며 툭 하고 바닥에 두발을 디뎠다. 나풀거리던 옷깃이 내려앉고, 멋들어진 안경을 쓴 남자가 턱을 치켜들었다.
"에이젤 선배님!"
시몬의 얼굴이 환해졌다. 경계하던 헥토르도 이내 누군지 깨닫고는 즉각 정중하게 허리를 굽혔다.
"처음 뵙겠습니다. 소환학과 2학년 대표 헥토르 무어입니다."
대표급들은 3학년들과 긴밀하게 연결되어서 그런지 위계질서가 깍듯했다. 에이젤은 가볍게 손을 들어 인사를 받아주었지만, 헥토르에게는 별 관심이 없는지 즉각 시선을 돌렸다.
"시몬 폴렌티아."
"네!"
"긴히 할 말이 있다. 잠시 시간을 내주겠나?"
헥토르가 인상을 구기며 고개를 들었다.
2학년이라고 해도 나름 무어 가문이거늘, 자신은 상대하지 않고 저놈만 보는 건가.
"네, 그럴게요."
에이젤이 흑마법을 사용했다. 두 사람의 발밑에 바람이 휘몰아치더니 동시에 공중으로 치솟았다.
"먼저 갈게 헥토르!"
시몬의 목소리가 순식간에 멀어지며, 두 사람은 단번에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헥토르의 주먹에 힘이 꾸욱 들어갔다.
'저 새끼, 설마 용의 인자를 공부하는 이유가.......'
* * *
휘이이이이잉-!
하늘에서 이동하는 중에 에이젤이 안경을 벗었다.
"으으, 무서웠어."
인상이 단번에 바뀐 그는 제 팔을 스르륵 쓸며 어깨를 움츠렸다.
"아까 그 우락부락하고 눈빛 살벌한 애는 누구야?"
"헥토르 무어예요. 스스로 소개했잖아요?"
"긴장해서 제대로 못 들었어. 무어 가문이었구나."
에이젤이 떨리는 손으로 눈썹 사이를 어루만졌다.
"이번 2학년들은 왜 다 저렇게 큰 거야? 사실 난 덩치 큰 애들이랑은 눈도 잘 못 마주쳐. 옛날에 괴롭혔던 애들 생각나서."
"......아하하."
결코 헥토르를 무시한 게 아니라, 무서워서 허둥지둥 도망치듯 날아간 거였다.
에이젤이란 사람을 알아갈수록 그 행동에 담긴 이면도 알 수 있었다.
"그보다 오늘도 한번 겨뤄주실 거죠?"
시몬이 눈을 빛냈다.
에이젤이 살짝 질린 표정으로 후배를 돌아보았다.
"오, 오늘도 해야 해?"
"만난 김에 가볍게 해요! 기말고사도 얼마 안 남았잖아요. 어서요!"
* * *
에이젤이 바다를 가르고 만들어낸 간이 경기장.
그곳에서 다시 시몬과 에이젤이 맞붙었다.
에이젤은 그대로였지만, 이번엔 시몬은 조금 더 불리한 조건이었다. 카오스 듀라한을 준비하면서, 에이젤이 퍼붓는 칠흑바람계 마법을 피해 다녔다.
캔슬 스파크를 튀겨서 풀고르를 견제하고.
거리가 좁혀지면 슬립을 시도하고.
가끔 돌진해서 홍펭이 가르쳐 준 '연풍'도 사용했다.
물론 목적은 어떻게든 에이젤의 공세를 막아내면서 카오스 듀라한을 꺼내는 것.
하지만.
시야가 어두워졌다가 눈을 뜨니 하늘이었다.
이전과 같은 결말이다.
'아깝다.'
그래도 이전과는 달리, 이번에는 틀림없이 성과가 있었다.
카오스 듀라한을 준비하면서 에이젤의 대공세를 버텨냈다. 앞으로 조금만 더 시간을 끌었다면, 카오스 듀라한을 꺼내고 이쪽이 이길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괘, 괜찮아? 너무 세게 맞았지?"
당황한 에이젤이 막 깨어난 시몬의 어깨를 붙잡아 흔들기도 했다.
이내 두 사람은 바다 밖으로 빠져나와 높은 나무 위에 걸터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진짜 실전에서는 조금 더 봐주면서 할까?"
"그러지 마세요."
시몬이 고개를 저었다.
"사람들이 보기엔 티가 난다니까요. 실전까지는 반드시 선배님을 이길 한 방을 완성하겠습니다."
에이젤이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넌 정말 대단해."
"네?"
"맹공을 퍼붓고 있는 내가 오히려 쫓기는 기분이 들었어. 시간이 지날수록 입가가 마르더라. 진짜로 네가 카오스 듀라한을 완성시킬 것 같아서."
최고의 칭찬이다. 시몬이 만족스럽게 웃었다.
"키젠 최강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니 영광이네요."
에이젤도 큭큭거리며 웃었다. 그러다 고개를 들어 노을이 지기 시작한 하늘과, 오렌지빛으로 물들어가는 바다를 바라보았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어. 나는 2학년 때, 판타서스 선배님을 상대로 너처럼 싸울 수 있었을까?"
"......."
"솔직히 왜 그분이 나 같은 찐따를 학생회장 후보로 점찍었는지 아직도 의문이야."
그가 몸에 힘을 쭉 빼며 맥없이 중얼거렸다.
"판타서스 선배님은 늘 주도적인 삶을 중시하는 분이잖아. 나같이 평생 남의 눈치만 보고 사는 사람을 세상에서 가장 싫어할 거 아냐? 회장직은 내가 아니라, 너 아니면 발락이 받았어야 했어."
그가 손끝으로 이마를 받쳤다.
"왜 발락이 아니라 나지? 단순히 석차가 한 단계 더 높아서? 나 같은 건......."
"에이젤 선배님."
시몬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보기엔 선배님도 충분히 주도적이라고 생각해요."
"으, 음?"
"3년 가까이 자신과 다른 성격으로 살아가고, 그 성격을 유지하며 정점에 오르는 건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에요. 이번 학생회장 건만 봐도 제가 더 쉬운 제안을 했지만 전부 단호히 거절하셨죠. 체면이 상한다고요. 자신의 목숨보다 체면이 더 중요한 사람이라니."
시몬이 빙긋 웃었다.
"어쭙잖은 각오론 그렇게 할 수 없죠. 이 모습을 끝까지 밀고 나가겠다는 다짐은 선배님의 주도적인 판단이잖아요?"
놀란 표정을 짓고 있던 에이젤이 픽 웃었다.
"아니, 우답이잖아. 그래도 남의 눈치를 보는 건데."
"그 모습을 연기하는 선배님의 각오 자체가 자기 주도적이란 거죠."
"하하하하! 뭐야 그게."
두 사람은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아무튼 선배님의 성격이 달라진다고, 지금까지의 업적, 실력, 그리고 사람들이 사라지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에이젤은 에이젤이죠."
노을 지는 하늘 아래로 시몬이 빙그레 웃었다.
"그리고 저 개인적으로는 선배님의 원래 모습을 더 응원해요."
"......시몬."
멍하니 후배를 바라보던 에이젤이 갑자기 헛웃음 쳤다.
"너 여자들한테 인기 많지?"
"네?"
"갑자기 거리감 느껴진다. 저리 가."
"아하하! 갑자기 왜 그러세요."
* * *
그렇게 에이젤과 학생회 일에 대해 한동안 이야기를 나눈 뒤, 시몬은 돌연변이 동아리 방에 도착했다.
에이젤이 마법으로 데려다줘서 빠르게 올 수 있었다.
'지금쯤이면 물건이 도착했을까?'
시몬은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고 동아리방 문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학생회장 선배님!"
"어서 오세요!"
시험공부 중인 1학년들이 벌떡 일어나 반갑게 맞아주었다. 시몬도 그들에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
"혹시 벤야 선배님 오셨어?"
"네! 지하에 있어요!"
"뭔가 커다란 상자 같은 걸 들고 오셨던데요?"
드디어 왔다!
시몬은 가슴이 폭발할 것 같은 기분을 애써 억누르며 걸어갔다.
"시험공부 열심히 해."
"네!"
후배들 앞에선 나름 차분하게 행동하다가, 지하실 계단을 내려오는 순간 참지 못하고 방정맞게 뛰었다.
벌컥!
"벤야 선배님!"
"어머, 깜짝이야. 제군이 왔니?"
마침 벤야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의 앞에, 그녀의 키만 한 커다란 나무 상자가 놓여 있었다.
"선배님! 이게......!"
"맞아. 네가 주문한 물건이야."
그녀가 웃으며 손바닥을 펼쳐 보였다.
"처음 열어보는 건 주인의 특권이지. 부탁해."
"네!"
시몬은 상자 앞으로 다가와 뚜껑에 손을 댔다.
보안 마법들이 연달아 해제되었다. 시몬과 벤야가 눈을 빛내며 고개를 기울였다.
파스스스스-
파스스-
시몬이 힘껏 상자를 들어 올렸다. 그 안에 들어 있는 눈부신 내용물을 보며,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탄성을 토해냈다.
"이게 바로 제군이 에이젤을 정복할 신무기네."
"네."
시몬이 손뼉을 짝 쳤다.
"바로 작업을 시작하겠습니다!"
* * *
같은 시각.
에이젤은 시몬을 소환학과 기숙사에 데려다주고 자신도 칠흑역학과 기숙사에 도착했다.
'음?'
아까부터 팔뚝이 시큰했다. 옷 소매를 걷어보니, 시몬에게 입은 상처들이 곳곳에 보였다.
'어느 틈에.'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당했다. 에이젤은 시몬의 얼굴을 떠올리며 미소 지었다.
-에이젤은 에이젤이죠. 저 개인적으로는 선배님의 원래 모습을 더 응원해요.
'.......'
기숙사 문 앞에서 멍하니 있던 그가 이내 픽 웃었다.
'아무리 그래도, 너무 늦었지.'
"에이젤."
그때 기숙사의 담벼락을 통과해 누군가가 걸어왔다.
에이젤이 얼른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돌렸다.
"소타인가."
사령학과 대표 소타 프쉬케.
그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에이젤에게 다가와 말했다.
"할 말이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