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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720화 (720/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720화

투두둑.

뜯겨 나간 금속 마스크의 절반이 흙바닥을 뒹굴었다.

참관자 모두가 튀어나올 듯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는 가운데, 일을 저지른 시몬만이 태연하게 옷매무새를 다잡으며 자세를 고쳤다.

무거운 정적이 흐른다.

[......과연.]

주저앉아 있던 발락이 두툼한 손을 뻗어 마스크의 절반을 쥐었다.

[최소한의 믿는 구석은 있었군. 이런 잔기술로 에이젤과 짜고 치고 학생회장직을 유지할 생각이었나.]

"아까부터 무슨 헛소릴 하는 거야."

시몬이 차갑게 어조를 내리깔았다.

"나는 당연히 내 힘으로 싸울 생각이었어. 에이젤 선배도 회장직을 부담스러워한 건 사실이지만 승패를 조작할 생각 따윈 없었지."

그의 눈빛이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갑자기 끼어든 당신이 모든 걸 망쳤어, 발락."

[나는 에이젤의 실체를 보았다.]

발락이 몸을 일으켰다. 반쪽으로 갈라진 마스크의 단면을 독으로 녹이더니, 반대쪽 마스크에 붙여 버렸다.

[놈의 인생은 거짓이었고, 나와의 다짐도, 우리가 흘린 피와 땀도 거짓이었다.]

커다란 마법진이 그의 등 뒤에 나타났다.

[진작에 이렇게 했어야 했거늘, 놈의 체면을 세워주려다 모든 게 늦어졌다. 이제는 내가 키젠을 차지하겠다!]

<데스 아머>

마법진에서 흘러나온 맹독이 발락의 몸을 빠르게 뒤덮어갔다. 그 모습을 본 딕이 외쳤다.

"시몬! 발락 선배의 데스 아머를 벗겨내야 해! 데스 아머가 쌓이면 쌓일수록 사용할 수 있는 흑마법까지 달라져...... 우왁!"

갑자기 끓어오른 독극물의 분수 때문에 딕이 얼른 자세를 낮춰 피했다.

쿠웅-

쿵-

들끓는 맹독을 마치 의복처럼 껴입은 발락이 시몬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시몬도 천천히 자세를 잡으며 머리를 굴렸다.

'아까의 마투는 기습이었고, 운도 따랐어. 발락을 상대로 똑같은 기술은 통하지 않을 거야.'

판단을 마친 시몬은 마법진을 펼쳤다.

발락이 난입한 순간부터 준비 중이던 자줏빛 마법진이 빠르게 시몬의 몸을 옮겨 다니며 착실하게 준비되어간다.

'계획대로 버틴다.'

[갑자기 소극적으로 변했군. 아까의 그 패기는 어디로 갔나?]

발락이 손짓했다. 섬뜩한 감각을 느낀 시몬은 얼른 눈동자를 굴려 옆을 보았다.

'파이프?'

난데없이 허공에 파이프 구멍이 튀어나와 있었다.

푸화아아악!

시몬이 즉각 자세를 낮추는 즉시, 파이프에서 독의 급류가 쏟아졌다.

"무슨!"

[보고 피했나.]

발락이 재차 흑마법을 시전했다. 곳곳의 허공에 파이프들이 열리더니 독극물들을 살벌하게 쏟아냈다. 마치 허공에 수도꼭지를 박아놓고 그것을 쥐어짜 내 내용물을 쏟는 것만 같았다.

'발락의 풀고르!'

에이젤의 풀고르와는 그 유형이 완전히 달랐다.

시몬이 측면으로 내달리며 두 손에 파직거리는 전류를 일으켰다. 새로운 파이프가 나오려는 전조가 느껴지는 즉시, 해당 방향으로 팔을 뻗었다.

<캔슬 스파크>

칠흑으로 이루어진 둥근 전류가 뿜어져 나가 파이프가 일어나기 직전에 파훼했다.

미처 파훼하지 못한 지점에는 파이프가 튀어나왔고 시몬은 직접 몸을 움직여 독극물을 피해야 했다.

'크으!'

독극물이 조금 몸에 튀었지만, 버텨낸 시몬이 새로운 흑마법을 준비했다. 그의 몸에서 빠져나간 뼈 파츠들이 서로 연결되어 세 자루의 창으로 변해 발락에게 날아갔다.

<본 스피어>

그나마 이게 흑마법을 준비하면서 반격할 수 있는 시몬의 최선, 그러나 발락은 그냥 몸으로 맞았다.

살벌한 속도로 날아오던 본 스피어의 끝부분만 데스 아머에 박혔고, 이내 끝부분이 녹아내렸다. 창끝을 잃은 창대가 허무하게 바닥을 뒹굴었다.

"시몬!"

카미바레즈가 다급히 외치며 시몬 쪽으로 달려가려 했지만, 독의 늪이 확장되며 모두의 발을 가로막았다.

"이제 그만해 발락! 너무 심하잖아!"

한 3학년 참관자가 외쳤다. 어느새 그들이 있는 쪽까지 독극물이 밀려들고 있었다.

"진짜 미쳤어? 여긴 왕족도 있다고!"

"제기랄! 저 자식이 폭주하고 사람 말 듣는 거 봤어?"

한 3학년이 팔을 뻗었다. 칠흑이 빠르게 움직여 저주의 형태를 갖췄다.

"이렇게 된 이상 힘으로라도...... 우와악!"

철써어억!

바닥에 고여 있던 독극물이 간헐천처럼 솟구쳤다.

심지어 결계를 이루고 있던 독의 폭포에서 맹독 소환수들까지 일어났다.

꿀렁 꿀렁 꿀렁!

"마, 막아!"

3학년들이 급히 방어마법으로 떨어지는 독극물을 막아내고, 후배들 쪽으로 향하려는 맹독 소환수를 격퇴했다.

"지반을 높여! 그릭!"

"알았어!"

한 3학년이 잽싸게 바닥을 짚었다. '칠흑대지계'를 사용한 건지, 참관자들이 밟고 있던 주위의 지형이 높게 올라왔다. 아슬아슬하게 독의 늪이 철썩거리며 절벽에 부딪혀 파도쳤다.

"지금 여기서 뭐 하시는 거예요! 레오나드 선배님!"

메이린도 영리하게 얼음벽을 펼쳐서 독의 파도를 막아낸 뒤 소리쳤다.

"시몬을 도와주세요! 우리 중에 당신이 가장 강하잖아요!"

"......미안하지만, 내가 나서면 발락이 에이젤을 죽일 거야."

레오나드는 정신을 잃은 에이젤에게 흑마법을 사용하고 있었다.

"에이젤이 중독된 건 '흑사독'이야. 술사의 지시에 따라 퍼져 나가는 독이지. 놈이 에이젤의 목숨을 쥐고 있어."

"......아."

털썩!

그때 누군가 쓰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몰리 공주였다. 근처에 있던 카미바레즈와 3학년들이 얼른 뛰어갔다.

"공주님!"

"큰일이야!"

몰리는 아직 1학년이었으니 독에 저항하는 '저항계' 기술을 익히지 못했다. 대기 중의 맹독만으로 괴로워하고 있었다.

"비켜, 비켜! 전공자 나가십니다!"

딕이 해독키트를 들고 나섰고, 레오나드도 에이젤을 내려놓고 몰리에게 독의 진행을 더디게 만드는 흑마법을 시전했다.

"시몬......!"

검은 화염을 일으켜 몰려드는 맹독소환수를 증발시킨 메이린이 입술을 꾹 깨물었다. 그들을 가로막고 있는 맹독 늪에서 한참을 떨어진 곳에서, 시몬과 발락이 치열하게 싸우는 모습이 보였다.

[고작 그 정도냐. 학생회장.]

시몬은 정신없이 파이프에서 쏟아지는 독극물을 피해 다녔다. 그 사이 발락은 벌써 두 벌의 갑주를 더 자신에게 더했다.

<발락 오리지널 - 데스 아머 3단계>

몸이 두껍고 비대해졌다.

갑옷이 아닌 생명체를 몸에 입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가 손을 들어 올리자, 파이프에서 쏟아지는 독극물이 물리법칙을 무시하고 그의 손에 모여 뭉치더니 시몬에게 쏘아져 나갔다.

"큭!"

시몬이 급히 공중에서 본 아머를 밟고 피했다. 시몬의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시간이 갈수록 네게 승산은 없다.]

"......."

땀을 뚝뚝 떨어뜨리며 앞머리를 늘어뜨린 시몬이 이내 서늘한 웃음을 흘렸다.

"그건 당신 생각이고."

쿵!

하늘의 구멍에서 거인 하나가 시몬의 옆으로 떨어졌다. 한쪽 무릎을 꿇고 있었고, 두 손에는 커다란 대검을 쥐었다.

시몬이 자랑하는 비장의 한 수. 카오스 듀라한이었다. 저 멀리서 '드디어 나왔다!' 하고 외치는 딕의 음성이 들린다.

시몬은 즉각 마누스의 두개골을 카오스 듀라한에 올린 뒤, 등 뒤로 돌아가서 혼돈 마법진을 옮겨 붙이려고 했다.

그 순간.

'!'

발밑으로 거대한 전조가 느껴졌다. 이건 틀림없는 풀고르의 감각. 아주 짧은 찰나의 순간에 시몬은 갈등했고, 결국 뒤로 물러섰다.

쿠화아아아아악!

그 판단은 옳았다.

카오스의 듀라한의 발밑에서 독의 화산이 분출해 듀라한을 통째로 집어 삼켜 버린 것이다.

"아!"

"듀라한이!"

학생회 멤버들이 아연실색했다. 파이프 같은 준비과정도 없이 폭발한 독의 화산은, 하늘을 뚫고 결계의 천장에 닿을 정도로 강력했다.

[뻔하군.]

발락이 금속 마스크 속에서 느릿한 목소리를 토해냈다.

[그 장난감을 언제 꺼내나 했다. 이쪽도 비장의 한 수를 쓰지 않고 기다렸지.]

"발락......!"

[내가 페이스를 조절하는 걸 알고 눈치를 챘었어야지. 경험 부족이다, 시몬 폴렌티아.]

발락은 시몬의 카오스 듀라한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그가 다시 자신의 흑마법을 준비했다. 주위의 독극물들이 모여들어 발락의 갑옷 재료로 변했다.

<발락 오리지널 - 데스 아머 5단계>

[힘의 차이에 절망하라.]

4단계를 뛰어넘어 바로 다섯 번째 갑주가 완성되는 것으로, 바닥에 퍼져 있는 독의 늪들이 바글바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시몬은 정면을 보았다. 독에 파묻혀 버린 카오스 듀라한의 몸체가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수리하려면 벤야 선배님한테 혼나겠네."

길게 한숨을 내뱉은 시몬이 눈을 빛냈다.

카오스 듀라한이 망가졌지만, 그의 손에는 어느새 마누스의 두개골이 멀쩡히 들려 있었다.

"갚아주자."

시몬이 중얼거렸고, 마누스 또한 동의한다는 듯 두개골에서 안광을 번뜩였다.

우우우우웅!

시몬은 지금까지 준비한 모든 마법진을 허공에 펼쳤다.

"용의 마법."

마법진들이 모여들어 혼돈으로 해석한 용의 마법이 펼쳐진다. 이내 철커덩거리는 소리와 함께 아공간에서 드레이크의 뼈들이 바닥에 떨어졌다.

"새로운 몸을 조종해. 마누스."

용의 마법의 중앙에 마누스의 두개골이 위치하고, 즉각 드레이크의 뼈들이 날아왔다.

딸칵! 딸칵!

뼈들이 갑주의 형상으로 펼쳐져 나가기 시작했다. 시몬이 그 앞으로 걸어가자 뼈의 갑옷이 시몬의 몸을 덮었다.

"새로운 소환수를 꺼냈다!"

"듀라한이 끝 아니었어?"

시몬은 흑마법을 시전하며 아론의 목소리를 떠올렸다.

-먼 과거에 인간은 용과 싸워왔다. 용언과 마법으로 인간을 지배하는 그들은 최상위 포식자였지만, 세월이 흐르고 용의 힘에 저항할 수 있는 자들이 나타났지.

마지막으로 시몬의 머리 위로 드레이크의 머리뼈로 만든 투구가 장착되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용의 뼈를 몸에 두르고, 용의 마법을 흉내 내는 자들이었다. 사람들은 경의를 담아 그들을 이렇게 불렀다.

용이 되지 못한 용의 뼈를 두른 시몬의 안광이 번뜩였다.

<시몬 오리지널 - 드래고니안(Dragonian)>

키이이이이이잉!

시몬의 전신에 칠흑이 솟기 시작했다.

[하찮다! 그 어떤 슈트를 꺼내도 결과는 바뀌지 않는다!]

발락이 두 팔을 들어 올려 포개는 시늉을 했다.

<발락 오리지널 - 독아>

5단계 갑주를 입은 발락이 쓸 수 있는 가장 강력한 기술.

시몬은 사방에서 풀고르가 번뜩이는 걸 느꼈다. 이내 모든 허공에서 빈틈없이 독극물이 몰려들어 시몬을 뒤덮었다.

쿠와아아아아아아!

회피도, 방어도 불가능한 공격기.

"시몬!!"

학생회 멤버들의 다급한 외침이 울려 퍼졌다. 밀려드는 독의 파도로부터 후배들을 보호하던 레오나드가 미간을 구기며 중얼거렸다.

"괜찮아. 아직 살아 있어."

독의 소용돌이 속에서 사람의 실루엣이 보인다. 이내 독의 소용돌이의 기세가 약해지더니 마침내 사라져 버렸다.

"후우."

시몬이 긴 숨을 경건히 내뱉었다. 어느새 루비처럼 번쩍이는 이질적인 육각형의 자줏빛 비늘이 그의 주위를 뒤덮고 있었다.

마치 벌집형상의 방패와도 같은 모습.

이를 본 발락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어떻게 독아를 소멸시켰지?'

드래고니안 아머를 입은 시몬이 팔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드레이크의 척추뼈로 만든 대검이 손에 들어왔다.

시몬이 그것을 길게 늘어뜨리고는 자세를 낮춘 채 날아올랐다.

[소용없다.]

발락이 즉각 흑마법을 일으켰다. 하늘에서 파이프를 초월한 거대한 홀이 열리고, 그 안에서 독의 유성이 내리꽂힌다.

이에 시몬은 허공에 펼쳐져 있던 비늘들을 모아 대검에 달라붙게 했다.

<시몬 오리지널 - 아머 블레이드>

'긴장할 것 없어.'

검을 쥐자마자 마누스의 사념이 반응한다.

검은 소드마스터의 영역.

그것을 믿고 손에 쥔 것을 힘껏 휘두른다.

화아아아아아악!

시몬은 단순히 휘두른 일격이었을 지라도, 마누스의 경험과 업이 더해지며 그것은 검의 극치가 담긴 형태로 펼쳐졌다.

검격은 독의 유성을 가르고, 검에 붙은 비늘은 독들을 모조리 증발시켰다.

[!]

발락의 앞까지 도달한 시몬이 함성과 함께 대검을 휘두르려는 순간.

'등 뒤!'

뒤쪽에서 풀고르의 감각이 느껴진다.

이번에 제작한 시몬의 신 무기, '드래고니안'의 가장 큰 강점은 전방위 방어였다. 즉각 검에 붙어 있던 비늘들을 등 뒤로 이동시켰고 이어서 파이프에 쏟아지는 독극물을 막아냈다.

그러나.

덥석!

그사이에 발락이 독으로 이루어진 손으로 드레이크의 대검을 움켜쥐었다.

[무엇도 나를 막을 수 없다!]

촤아아아아아!

드레이크의 뼈검이 녹아들기 시작했다. 시몬은 상관없다는 듯 검에서 손을 놓은 채, 맨손으로 그의 품에 파고들었다.

그의 손에 비늘들이 달라붙어 자줏빛으로 일렁였다. 시몬이 주먹을 힘껏 당긴 뒤.

[물리공격 따위는 통하지 않......!]

뻐어어어어어억!

후려쳤다.

단 일격에, 그 두꺼운 5단계 데스 아머가 무너져 내리며 시몬의 주먹이 직접 발락의 몸에 닿았다.

[커헉!]

발락의 금속 마스크에서 핏물이 왈칵 쏟아졌다.

사방에서 터져 나온 열띤 외침이 메아리치듯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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