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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722화 (722/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722화

다음 날, 학교가 발칵 뒤집혔다.

에이젤과 시몬의 학생회장을 건 결투가 발락의 난입으로 무산됐고, 심지어 차석이었던 발락이 에이젤을 꺾었다.

그런데 바로 그 발락을 시몬이 이길 뻔했다는 소문까지 돌면서 학생들은 혼란의 구렁텅이에 빠졌다.

-발락이 에이젤을 이겼는데, 그 발락을 시몬이 두들겨 팼다고?

-아니, 뭐가 진짜야?

학생들이 혼란에 빠져 있는 사이, 키젠 본부와 교수진은 긴급회의에 들어갔다.

학생회장 결정전을 방해하고 에이젤과 다른 학생들을 공격한 발락의 처분, 그리고 차기 학생회장직을 어떻게 할지에 대해 갑론을박이 펼쳐지고 있었다.

학생들도 손꼽아 판결을 기다렸다.

-발락은 당연히 퇴학이겠지?

-글쎄.

-난 아니라고 본다.

발락의 경우 중징계를 면할 수는 없겠지만, 철저한 실력지상주의인 키젠에서 교내 최강이 된 발락을 퇴학시킬지는 두고 봐야 할 문제였다. 특히 3학년들은 무조건 퇴학은 면할 거라 이야기하고 있었다.

에이젤에 관한 소문도 돌았다.

-에이젤이 발락에게 그렇게 깨진 건 좀 쇼크네.

-사실 에이젤 말야.

위태롭던 에이젤의 실체에 대한 소문도 파다하게 퍼져 나가고 있었다.

* * *

누구에게나 잊고 싶은 기억은 있다.

-푸하핫! 달팽이 흉내를 내라니까 왜 거북이 흉내를 내고 있냐? 더 정성껏 안 해?

-가위바위보 해서 지는 사람, 오늘 하루 에이젤 여자친구 되어주기 놀이할래?

그 학교에서의 하루하루는 지옥이었다.

그때 상처는 마치 영혼에 새겨진 것만 같아서, 어떤 애를 써도 벗어날 수 없었다.

네크로맨서가 된 지금도, 길을 가다 그 불량학생들과 마주치면 반사적으로 오줌부터 지릴 자신이 있었다.

그건 치유되지 않는 상처였으니까. 그렇기에 더더욱 키젠에 입학할 당시에 간절했을지도 모른다.

-내 이름은 리네아. 넌 어디 왕국에서 왔어?

입학식에서 만난 한 소녀의 작은 친절.

-밥 먹으러 가자! 아, 에이젤. 너도 갈래?

-로체스트에는 없는 게 없대!

따뜻했던 제안들.

따뜻했던 선의들.

입학 첫날, 자신에게 쏟아진 그 선의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으면 좋았으련만, 그러지 못했다.

이유를 만들었다.

-내가 뛰어난 엘리트를 연기하고 있어서 그들이 말을 걸어주었다.

한계를 만들었다.

-내 정체가 들통나면 그들은 나를 혐오하고 얼마든지 내게서 등을 돌릴 것이다.

그래서 악착같이 노력했다.

친구들의 눈물겨운 선의들을 배반하지 않기 위해.

그 따뜻함과 선의가 진짜 '나'가 아닌, 내가 만들어낸 '가상의 나'에 닿는 것이라도 좋았다. 가면을 쓰고 웃고 있는 것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다 들통났다.

-에이젤 브링어! 그때의 이야기들은 전부 거짓부렁이었나! 네놈의 그 엘리트 놀이에 나를 이용하고 능멸할 뿐이었나!

발락은 이쪽의 실체를 알고 나타났다.

그렇게 화를 내는 발락은 처음 봤다.

화산처럼 분노를 쏟아내는 발락을 보며, 2년 반 동안 쌓아 올린 모래성이 한 번에 무너져 내리는 것을 느꼈다.

이제 다른 사람들도, 발락처럼 자신을 속였다는 사실에 분노하며 저렇게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리가 후들거리고, 의지가 꺾였다.

실력의 반도 발휘하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이제 내 인생은 끝났다.

키젠 최강 자리에서 내려왔고, 이쪽의 실체를 알고 있는 소타 프쉬케와 적대하게 됐다. 학교에서 내 소문은 하루면 다 퍼지겠지.

-내 이름은 리네아. 넌 어디 왕국에서 왔어?

그때 선의를 선의로만 받아들였어야 했는데.

'후회해도 늦었겠지.'

그래도 의식을 잃은 도중에, 행복한 꿈을 꿨다.

-에이젤! 눈 좀 떠봐! 에이젤!

자신이 누워 있는 병원 침대를 밀면서 애타게 외치는 동기들의 모습. 자신을 위해 눈물을 흘려주고 있었다.

냉정히 생각해 보면 그럴 리가 없다.

더 이상 키젠 최강도 아니고. 기절한 상태에서는 엘리트 시늉도 못 했을 텐데.

'아하하.'

마지막으로 행복한 꿈을 떠올렸다.

그러다.

에이젤은 눈을 떴다.

짹- 짹짹-

평화로운 산 새소리가 울려 퍼진다. 창가로 밝은 햇살이 부서지듯 들어오고, 커튼이 바람결에 휘날려 날린다.

이곳은 키젠 병동이었다.

혹시 방에 인기척이 있는지 확인해 보았지만, 당연히 아무도 없다.

있을 리가 없다.

정체가 탄로 난 찐따 곁에는 이제 아무도.......

"......아."

그때 부스스하고 몸을 일으키는 소리가 들린다. 에이젤의 눈이 급격히 커졌다.

불편한 간이의자에 앉아 침대에 엎드려 있던 긴 머리의 소녀가 눈가를 비비며 잠에서 깨어나고 있었다.

"리네아?"

자신도 모르게 나온 말에, 그녀가 눈을 크게 뜨고 에이젤을 보았다.

이내 그녀의 눈가에 이슬이 그렁그렁 맺혔다.

"에이젤! 눈을 떴구나! 정말, 정말 다행이야!"

와락!

그녀가 에이젤을 힘껏 끌어안았다. 에이젤은 멍한 얼굴로 그녀의 체취를 맡았다.

"......리네아. 네가 어떻게."

넋을 놓고 중얼거리던 에이젤은 뒤늦게 자신의 상태를 자각했다.

뒷목에 식은땀이 흐르고 강박감과 불안감이 솟구쳤다.

그는 리네아에게 안겨진 채, 다른 한 팔을 더듬거리며 다급히 침대를 쓸었다.

"안경 찾니?"

에이젤이 움찔하며 동작을 멈췄다.

"전투 중에 깨진 것 같아. 아마 못 찾을 거야."

그녀가 에이젤을 놓아주며 웃었다. 에이젤은 벌게진 얼굴로 어버버 입술을 떨다가 흑마법을 사용했다.

"병실에서 흑마법은 금지야."

리네아가 바람으로 떠오른 에이젤의 앞머리를 내리며 웃었다.

"그리고 이거."

그녀가 팔을 뻗어 부풀어 오른 에이젤의 이불을 툭툭 손바닥으로 덮었다.

"바람으로 키 크게 보일 필요도 없고."

"......아."

에이젤이 침울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전부 봤구나."

"응."

에이젤은 가슴을 꾹 쥐었다. 공황장애가 온 사람처럼 벌벌 떨던 그가 이내 후우 하고 숨을 내뱉었다.

"......이제 전교생이 다 알겠네."

"맞아."

에이젤의 예상대로, 학생회장 결정전에서 있었던 일은 전교에 퍼져 있었다.

거기에 소타 프쉬케는 에이젤의 실체까지 전부 까발렸다.

에이젤을 버리고 발락 측에 붙기로 한 그는, 발락의 이미지 형성을 위해 발락이 에이젤을 공격한 최소한의 당위성이 필요했다.

신문부에서는 특종기사까지 냈다. 에이젤의 과거 학교에 연락해서 인터뷰까지 했다는 모양이다.

'하하.'

발가벗겨진 기분이었다. 모두가 내 진실을 알게 됐다.

그런데.

"기분이 어때? 에이젤."

정체를 들키는 순간 온 세상이 무너질 거라고 생각했다.

그 즉시 목을 매달고 죽는 게 나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뭔가 후련하네."

이상할 만큼 마음이 편했다.

우려했던 그런 극단적인 감정 대신, 스스로가 이상하단 생각이 들 만큼 마음이 초연했다.

"뭐, 이런 기분도 병실에 갇혀 있으니까 느끼는 거겠지? 밖에 나가서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면......."

"자!"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리네아가 흰 종이를 이어붙인 커다란 판을 보였다. 거기에는 동기들이 쓴 글들이 보였다.

[빨리 나아 에이젤!]

[훌훌 털고 일어나 복수전 해야지!]

[로체트스에 또 같이 가줄 거지?]

[늘 고마워! 방학 잘 보내!]

"미리 말해두지만, 네 정체가 들통나고 난 뒤에 애들이 자발적으로 글을 써서 모은 거야."

믿기지 않는다는 듯, 에이젤은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리며 동기들의 글귀를 읽었다. 단문도 있었고, 장문도 있었다.

2년 반 동안의 추억들이 하나하나 떠올랐다.

"그리고 에이젤."

그녀가 종이판을 내리며 말했다.

"난 처음부터 네 진짜 모습에 대해 알고 있었어."

그 말에 에이젤이 화들짝 놀랐다.

"저, 정말로?"

"당연하지. 그렇게 뻔하고 위태로운 연기를 누가 눈치 못 채니?"

그녀가 입을 가리며 슬쩍 웃었다.

"사실 1학년 B반 출신 애들은 대부분 알고 있었을걸? 2학년 애들부터는 네 연기가 늘어서 잘 몰랐겠지만."

"그, 그럼......."

"왜 말을 안 했냐고?"

리네아가 한숨을 푹 쉬었다.

"말실수라도 한번 하는 날에는 아무도 없는 화장실에서 그렇게 자책하고, 피가 나도록 이마를 벽에 찧고, 유리창을 깨고. 죽을 만큼 괴로워했으면서."

"......아."

"네 그런 모습을 보고 우리가 무슨 말을 할 수 있는데? 동기들끼리 그냥 모른 척 넘어가 주자고 말을 맞췄어."

그녀가 작게 한숨을 쉬고는 애써 미소 지어 보였다.

"가면을 쓰고 다니는 게 너만 그런 건 아니잖아? 나도 그래. 밖에서는 말 예쁘게 조곤조곤하게 하려고 하고. 교수님들 앞에서는 내숭도 부리고. 순진한 척, 많이 못 먹는 척...... 지금 화장도 개판이지? 눈 퉁퉁 붓고 여드름도 다 보이......."

"아니, 여전히 넌 예쁜데."

그 말에 리네아가 큽 하고 잠시 숨을 삼켰다.

불의의 일격이라도 맞은 듯 얼굴이 빨개졌다가 이내 고개를 휙휙 흔들었다.

"아무튼! 남들 앞에서 자신과 다른 모습을 연기하는 게 꼭 나쁜 건 아니란 뜻이야."

"......."

에이젤이 웃었다.

"진심으로 고마워, 리네아."

"응."

두 사람의 어색한 시선이 마주했다.

살짝 얼굴이 붉어진 에이젤은 버릇처럼 앞머리를 쓸어넘기며 목소리를 깔았다.

"하, 하지만 네 남자친구로서 솔직히 좀 깨는 건 사실이잖아. 나......."

"그럴 필요 없다니까."

리네아가 에이젤의 두 손을 붙잡아 이불에 폭 하고 놓게 했다.

"그렇게 얼 타고 수줍음 많고 인간적인, 네 진짜 모습도 그럭저럭 봐줄 만해."

"리, 리네아?"

"바보야. 한 번만 말할 거니까 잘 들어. 나는-"

그녀가 사근사근한 목소리를 내며 다가왔다.

"스스로 바뀌려고 죽을 둥 말 둥 노력하는 너도, 허세 부리고 센 척하는 너도, 그리고 이렇게 얼 타는 너도."

시간이 멈췄다.

소년과 소녀의 입술이 포개어졌다.

"그 모두가 에이젤이니까, 좋아해."

* * *

시몬이 깨어난 건 학생회장 결전으로부터 3일 뒤였다.

에이젤보다도 늦게 깨어났다. 전투 중에는 아드레날린이 확 분비되어서 그런지 몰랐지만, 전투가 끝난 직후에는 그대로 실신했다.

발락과 싸우면서 독에 심각하게 중독된 모양이었다.

키젠 병동에서 눈을 뜰 무렵에는 이미 방학식도 다 끝나고 방학이 시작되어 있었다. 키젠 측은 시몬의 부모님이 걱정하지 않도록 통지문을 보내고, 회복될 때까지 키젠 병동에 머물게 하기로 했다.

"학생회 애들은 시간 날 때마다 틈틈이 왔다 갔었어."

로레인이 말했다.

그들 모두 시몬이 깨어날 때까지 남고 싶던 눈치였지만, 방학식이 끝나고 체류 요청 서류를 작성하지 않은 학생들은 지체 없이 떠나야만 했다.

시몬은 그녀가 잘라준 과일을 먹고 있었다.

"집에 돌아가자마자 편지해야겠네."

"응."

"로레인 넌 방학인데 어디 안 가?"

"나야 로크섬에 집이 있으니까."

시몬이 고개를 끄덕이며 옆을 바라보았다.

아주 병실에 살림을 차린 세르네가 턱을 괸 채 빙글빙글 여우처럼 웃으며 시몬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세르네. 너는 왜?"

"후후, 나야 잠깐 일이 있어 로크섬에 며칠간 남기로 했어요."

그 말을 들은 로레인이 미간을 좁혔다.

"그 행정절차를 진행한 직원이 기억이 안 난다고 하던데."

"어쨌든 서류상 문제는 없잖아요? 왜 자꾸 시비를 거는 걸까?"

두 사람의 분위기가 또 급격히 나빠지기 시작했다. 늘 말리는 건 중간에 낀 시몬의 역할이었다.

그녀들이 신경전을 벌이는 사이, 시몬은 창밖을 바라보았다.

키젠 교정이 휑했다. 방학이라 그런지 섬이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방학이라.'

시몬이 고개를 젖혔다.

'이번 방학 때는 뭘 하며 지낼까.'

"참."

로레인이 편지 한 장을 보였다.

"본부 측에서 연락을 받았는데, 네 몸 상태가 걱정된다고 부모님께서 직접 오셔서 널 데려가기로 했나 봐."

"아, 그래?"

시몬이 머리를 긁적였다. 아마 이번에도 리처드가 시몬의 삼촌 노릇을 하며 직접 올 듯싶었다.

"영지 일로 바쁘실 텐데, 죄송하네."

"진짜 오는 거예요? 이럴 때가 아니네요."

세르네가 바닥에 내려오며 여우처럼 눈꼬리를 휘었다.

"어서 한껏 단장하고 시몬의 아버님을 뵈어야겠네요."

"......세르네."

* * *

같은 시각.

랭거스틴.

지나가는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길을 비켜주고 있었다. 살짝 푸른빛이 감도는 은빛 머리카락의 여성이 지나가고 있었다.

"부인, 잠깐 시간 좀 내주시겠습니까."

"남편분이 없는데 랭거스틴 거리는 위험하니 제가......."

사방에서 중년 남자들이 찝쩍거리기 시작했다. 어떤 남자들은 시선 처리를 못 하다가 옆에 있는 애인에게 뒤통수를 후려 맞기도 했다.

기품, 격조, 아름다움.

그 모든 것을 갖춘 여성이 사람들을 가르며 지나가다 누군가의 앞에 멈춰 섰다.

"실례할게요."

그녀가 상냥하게 웃었다.

"랭거스틴 항구로 가려면 어디로 가야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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