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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723화 (723/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723화

키젠 병동 옥상.

방학이 되어 학생들이 떠난 텅 빈 교정을 내려다보며, 흰 환자복 차림의 두 소년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자업자득이라고 생각하고 있어."

에이젤이 말했다.

"언젠간 어떤 방식으로든 터질 일이었지. 끝까지 모두를 속이면서 졸업한다는 것부터가 불가능한 꿈이었어."

"......에이젤 선배님."

"너한텐 미안하게 생각해, 시몬."

에이젤이 침울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준비 많이 했을 텐데. 내가 결투 장소에 오지도 못했네."

"무슨 말씀이세요. 그런 사태가 일어났으니 어쩔 수 없죠."

시몬은 그렇게 말하고는 에이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런데 표정이 훨씬 좋아지신 것 같네요."

"그, 그래?"

에이젤은 무안한 듯 뺨을 긁적이다가 이내 난간에 몸을 툭 기댔다.

"솔직히 후련해. 홀가분하고 개운한 기분이야."

후으읍-

크게 한번 숨을 들이마신 그가 파하- 하고 숨을 내뱉었다.

"그냥 이렇게 실체가 까발려지면 까발려지는 대로 살면 되는 거였는데. 왜 난 그렇게 목숨을 걸고 악착같이 정체를 숨겼을까?"

"미지에 대한 공포심이 제일 무섭죠."

"그랬던 거겠지?"

두 사람은 작게 웃음 지었다. 분위기가 좋아지자 시몬이 슬쩍 물어보았다.

"친구들은 만나봤어요?"

"응, 다들 방학식이 끝나자마자 내 병실에 와줬어."

에이젤은 부끄러운지 제 손목을 문질렀다.

"다들 이해해 줬고, 격려해 줬어. 물론 섭섭해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내가 사과했고 좋게 풀었다고 생각해."

세상에.

시몬은 이 사람이 정말 에이젤 본인이 맞나 생각했다.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정체를 들킬까 봐 노심초사하고, 불안감에 강박적으로 주위를 살피던 사람이었다. 초연한 태도로 몸에 힘을 빼고 말하는 그의 모습은, 확실히 전에 없는 여유가 느껴졌다.

"그리고 떠나기 전에, 꼭 네게 고맙다고 말하고 싶었어."

"네? 떠난다는 말씀은......."

"휴학계를 냈어. 실은 자퇴하려고 했는데, 3학년 교수님들이 다 뛰쳐나와 말리셔서."

시몬도 그 소문은 들어본 적이 있었다.

"네프티스 님도 자퇴서를 안 받아주시고. 솔직히 돌아올 생각은 별로 없지만, 당분간은 휴학계를 내고 대륙을 떠돌아다닐까 해."

에이젤이 해맑게 웃었다.

"내 본연의 모습으로 여행을 하면서 나 자신을 돌아볼 생각이야."

짧은 시간이었지만 에이젤과 고민과 희로애락을 함께했던 시몬은 짠한 기분을 느꼈다.

"진심으로 선배님의 앞길을 응원할게요."

"고마워."

휘이이잉-

옥상에 바람이 불어오며 나뭇잎들이 허공에 춤을 추었다. 잠시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데, 에이젤의 목소리가 들렸다.

"학생회장직에 대해서는 따로 들은 거 있어?"

시몬이 고개를 저었다.

"로레인이 말해줬는데, 교직원들의 의견이 완전히 반반으로 갈렸나 봐요. 상황을 보니 방학이 지난 뒤에야 완전히 결론 날 것 같아요."

"발락은 이제부터 널 노릴 거야."

에이젤이 얼굴을 심각하게 굳혔다.

"발락은 이미 날 뛰어넘었고 키젠 최강은 그 녀석이야. 지금부터는 발락의 시대겠지. 네 2학기는 전보다 더 고달파질 수도 있어."

"오면 기꺼이 상대해 주죠. 뭐."

시몬이 태연하게 손을 털며 슬쩍 웃었다.

"에이젤 선배님보다는 쉽던데요."

아하하!

에이젤이 소리 내어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고는 앞머리를 늘어뜨리며 시몬을 보았다.

"지금은 이렇게 퇴장하지만 말야. 대륙을 돌아다니면서, 내가 조금 더 나를 사랑할 수 있게 되면 그때는-"

그가 가느다란 주먹을 꾹 쥐고는 시몬 쪽으로 향했다.

"다시 제대로 한번 겨뤄보자."

시몬도 활짝 웃으며 주먹 쥔 손을 맞부딪혔다.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이별을 앞뒀지만 기분 좋은 날.

두 소년의 즐거운 웃음소리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옥상의 건물 벽에 기대어 있는 한 여자가 백금발 머리카락을 넘기며 서 있었다.

"하여간에 남자들은."

그녀는 세르네 아인다르크였다. 기척을 감추는 결계를 펼치고 두 사람의 이야기를 엿듣고 있었다.

"그냥 좋게좋게 웃으면서 끝내면 되지. 어떻게 작별인사가 '다음에 또 싸우자'가 되는 걸까요? 제 상식으로는 이해가 안 되네요."

"결판을 못 냈으니 두 사람 다 아쉽겠지."

그 옆에는 로레인이 벽에 딱 붙은 채 힐끔거리고 있었다.

세르네는 별 관심 없다는 듯 심드렁한 표정으로 머리카락을 손끝으로 꼬았다. 그러다 두 사람이 헤어지려는 것 같자 앞으로 나갔다.

"이제 이야기도 끝난 것 같으니 내가 나설 차례네요."

"뭐? 잠깐!"

그녀는 단번에 결계를 걷어버리고는 성큼성큼 걸어나갔다.

"어머나, 시몬!"

시몬과 에이젤이 동시에 움찔했다.

"여기서 만나다니 우연이네요!"

"세, 세르네? 네가 왜 여기에......."

"시몬이 병실에 없길래 그냥 바람 좀 쐴까 해서 나왔거든요. 여기 있을 줄 몰랐어요."

천연덕스럽게 대꾸하며, 뒷짐을 지고 걸어온 세르네가 에이젤을 보며 살갑게 눈웃음쳤다.

"처음 뵙겠습니다, 에이젤 선배님. 시몬에게 이야기 많이 들었어요."

"아, 그......."

방금만 해도 편안하게 이야기하던 에이젤이, 갑자기 말을 더듬거리며 세르네를 보았다.

세르네가 팔꿈치로 시몬의 팔을 가볍게 톡 건들었다. 얼른 나 좀 소개해 달라는 뜻이었다.

시몬이 얼른 정신 차리고 입을 열었다.

"아, 이쪽은 2학년인 세르네 아인다르크예요. 상아탑의 공식 후계자죠."

"상아탑의......!"

에이젤의 표정이 파리하게 질렸다. 시몬이 에이젤의 소개까지 마치자 그녀는 바로 비즈니스 모드로 들어갔다.

"휴학하시고 여행길에 오르신다는 소식은 들었어요. 계획해 두신 곳은 있으세요? 여비는 있으시구요? 실은 저희 상아탑에서......."

키젠에서 제 발로 나갈 예정인 전 3학년 수석. 이제 곧 상아탑주가 될 세르네의 입장에선 군침이 줄줄 흐르는 인재였다. 가만둘 리가 없었다.

물론 당장 상아탑에 들어오라는 노골적인 요구까진 하지 않았지만, 에이젤의 여행을 지원하겠다며 후원자를 자처하고 있었다.

"안녕, 시몬."

그리고 그 모습을 무척 못마땅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로레인이 걸어왔다.

"로레인 너도 있었어?"

"미안해. 세르네를 막으러 왔다가 어쩌다 보니."

로레인도 에이젤이 신경이 쓰이는 건 마찬가지로 보였다.

키젠 측에서도 에이젤은 절대 놓치고 싶지 않은 인재고, 좋은 조건을 제시하고 싶지만 일단은 그의 자퇴를 막은 선에서 만족하려는 것 같았다. 여기서 추가적인 요구는 에이젤에게 피로감을 줄 뿐이었으니까.

"지금은 나가지만, 언젠가 분명 키젠에 돌아오실 거야."

로레인이 고개를 돌렸다.

"시몬도 그렇게 생각하지?"

"으, 응."

그렇게는 대답했지만 글쎄.

시몬의 생각엔 에이젤은 키젠이든 상아탑이든 두 쪽 다 관심이 없어 보였다.

'고생하시네.'

특히 지금 세르네에게 시달리는 에이젤의 모습이 재미있었다.

세르네는 살갑고 친근하게 이야기하면서, 나름 후배로서 살짝살짝 말투에 애교도 섞어가며 귀여운 느낌으로 말하고 있었지만, 듣는 에이젤은 전혀 그렇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한 살 어린 여후배 앞에 두 손 공손히 모으고 덜덜 떨면서 이야기를 듣고 있는 모습. 그의 내면에 뿌리박힌 초식동물 레이더가 눈앞의 압도적인 '포식자'를 감지한 것이다.

슬슬 불쌍한 에이젤을 빼내 줘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로레인 아가씨."

그녀의 직속 하수인으로 보이는 복면남이 조용히 나타나 뭔가를 건넸다. 그녀는 복면남이 준 종이를 읽더니 표정이 살짝 굳었다.

"시몬."

"응."

"널 보러 섬에 오신다는 보호자가 이모분 맞지?"

시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모라고? 삼촌이 아니라?

"문제가 생겼어."

그녀가 말했다.

에이젤을 설득하고 있던 세르네도 즉시 말을 멈추고 로레인 쪽을 돌아보았다.

"아무래도 이모분이 랭거스틴에서 실종되신 것 같아."

* * *

약속시간에 한두 시간 정도 늦으면 그럴 수 있겠거니 생각하겠지만, 랭거스틴은 다르다.

갱들과 강도, 도둑들이 바글거리는 그곳.

멍하니 있다간 눈 뜨고 코 베여가는 곳이었다.

시몬도 처음 고향 레스힐에서 나와 키젠에 입학할 때, 본인이 가이드라고 속이는 사람이 접근하기도 했다. 그런 곳에서 대도시가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 실종된 것이다.

-바로 움직이자.

로레인은 즉각 사람을 동원해서 랭거스틴으로 향하는 텔레포트 마법진을 준비시켰다.

시몬은 병동에서 안정을 취해야 했지만, 자신도 직접 가보기로 했다. 시몬이 가니 자연히 세르네도 끼어들었다.

그렇게 세 사람이 텔레포트 마법진을 타고 랭거스틴으로 넘어왔다.

"어서 오십시오. 로레인 아가씨."

항구에 도착하니 하수인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로레인이 말했다.

"아직도 시몬의 보호자 분이 도착하지 않은 건가요?"

"예, 분명 랭거스틴에 들어온 건 확인했는데 도착이 늦어지고 있습니다."

시몬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이마를 짚었다.

'......엄마라면 일에 휘말리고도 남겠지.'

어째서 리처드가 아닌 안나가 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더 늦기 전에 그녀를 찾아내야 했다.

방학 한정으로 어느 정도 키젠 내 권력을 회복한 로레인이 지시를 내렸다.

"랭거스틴에 상주하고 있는 하수인들을 총동원하세요. 반드시 시몬의 보호자 분을 찾아내야 해요."

"예!"

"우리도 가자."

다른 세 사람은 바로 탐문조사를 시작했다.

"혹시 이 근처에서 길을 잃은 귀부인을 보신 적 있으신가요? 머리는 은회색에 살짝 마른 체형인데......."

시몬과 로레인은 사람들에게 일일이 물어보았고, 세르네는 깃털을 이용해 사람들을 조종했다. 혹은 직접 기억을 읽어보기도 했다.

"크흠흠, 그러고 보니."

"?"

시몬이 말을 걸자, 한 노인이 수염을 쓸며 말했다.

"아름다운 부인이 한 남자를 따라나서는 모습을 봤지."

시몬의 표정이 바짝 굳었다.

"어느 방향으로 갔는데요?"

* * *

저벅 저벅.

안나는 오랜만에 대도시에 와서 즐거웠다. 눈을 빛내며 곳곳을 훑어보고 있었다.

"이쪽입니다."

그리고 그런 그녀를 데리고 다니는 건 '가이드'로 위장한 갱단원이었다. 처음 랭거스틴에 온 티를 이렇게 풀풀 내는 사람들은, 갱단에게는 아주 좋은 먹잇감이었다.

'남편도 없고, 시중드는 하인도 없고, 혼자 랭거스틴에서 돌아다닐 생각을 하다니 겁도 없군.'

세상 물정을 이렇게 모를 수가.

딱 봐도 귀부인이다. 어린 시절 온실 속 화초처럼 자라다가 시골 영주에게 시집갔을 테고, 거기서도 조용히 애나 키우며 살았을 것이다.

몸값을 뜯어내면 상당히 짭짤할 것 같지만, 일단은 이 사람의 배경을 알아야 했다. 또 너무 거물의 아내면 좀 곤란하다.

"아, 그러고 보니 고객님. 제가 정신을 깜빡깜빡해서 말입니다. 항구에 도착하면 어디로 가신다고 하셨죠?"

안나가 빙그레 웃었다.

"키젠이요!"

"......."

망했다.

갱단원의 입꼬리가 꿈틀꿈틀 떨렸다. 하지만 아직은 모르니 더 떠봐야겠다고 생각한 그가 말을 더 이었다.

"하하! 키젠에 지인이 있나 봅니다. 뭐, 하수인 분이신감?"

"아뇨!"

그녀가 살갑게 웃었다.

"아들...... 아니, 제 조카가 학생회장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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