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724화 (724/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724화

"죄송합니다!!"

갱단원은 즉각 바닥에 엎드렸다.

조카가 키젠 학생회장이라는데, 참 거짓 논할 필요가 뭐 있겠는가.

'조금이라도 불안하면 발 빼야지.'

랭거스틴에 머무는 갱들에게는 절대적인 불문율이 존재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키젠은 건드리지 말 것.

이는 절대적인 원칙이었고, 이를 어기는 갱단은 단 하나의 예외도 없이 세상에서 지워졌다.

그래서 원칙을 지키는 갱단들만이 자연 선택적으로 랭거스틴에 살아남게 된 것이다.

"?"

안나는 갑자기 무슨 일인가 싶어서 눈을 깜빡였다.

"시, 실례했습니다! 사실 저는 랭거스틴 가이드가 아니라......!"

쿠웅-!

육중한 굉음이 울려 퍼지며 그의 말이 끊겼다. 광장 곳곳에 앉아 있던 새들이 푸드덕거리며 날아올랐다.

"그래, 감당 못 하면 꺼지는 게 현명하지."

머리가 듬성듬성 빠져 있는 중년 남자가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뼈로 이루어진 갑옷을 입고, 겉에는 검은 망토를 둘렀으며, 한 손에는 지팡이를 짚었다.

스르륵.

스륵.

뒤이어 골목 곳곳에 '웃는 얼굴의 탈'을 쓴 무장한 사람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갱단원은 그들이 누군지 바로 눈치챘다.

"......너희들."

최근 랭거스틴에서 가장 활개 치고 있는 갱단.

다른 지방에서 활동하다가 석 달 전에 랭거스틴에 내려온 '스코빌러 패밀리'였다.

"방금 못 들었나? 이분의 조카가......."

"키젠의 학생회장이란 것 말인가? 그 말이 사실이라면 재미겠군, 아니."

지팡이를 짚고 다가온 남자가 흉악하게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부디 사실이길 바라지."

* * *

한편 시몬 일행의 탐문은 계속되고 있었다.

안나의 흔적을 찾는 건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눈에 띄는 차림으로 다닌 건지, 그녀를 봤다는 사람들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음, 보기 드문 미인이라서 기억해. 가이드랑 함께 있더라고."

"가이드요?"

시몬이 다급히 뒤를 돌아보았다. 로레인이 눈을 감고 고개를 가로젓는 모습이 보였다.

"그 가이드가 키젠 쪽 사람이었으면 당연히 보고가 들어왔을 거야."

아무래도 안나는 자신을 가이드라고 사칭한 인물을 따라간 것 같았다. 조금이라도 외부인 티를 내거나 어리숙해 보이면 그런 사기꾼들이 들러붙기 마련이었다.

"시몬, 시몬."

세르네가 노랫말처럼 시몬의 이름을 부르며 깡총 뛰어왔다.

"아무래도 내가 이모님을 찾은 것 같아요."

"진짜?"

자세한 설명은 이동하면서 듣기로 했다. 세 사람은 빠르게 골목길을 내달렸다.

파밧!

달리고 있는 그들의 옆으로 낯선 남자가 튀어나와 나란히 뛰었다. 세르네가 말했다.

"자, 말해보세요."

"......예."

그가 홀린 듯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목덜미에는 세르네의 깃털이 꽂혀 있고, 얼굴에는 이상하게 웃는 탈을 쓰고 있었다.

"......대장이 한 귀부인을 납치했습니다. 전 얼굴은 보지 못했습니다만, 이제 곧 키젠에 몸값을 청구하는 문서를 보내겠다고......."

시몬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고, 로레인은 벌컥 화를 냈다.

"그렇게 당하고도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다니! 당신, 어느 갱단이죠?"

"스코빌러 갱단입니다."

로레인이 턱을 톡톡 두드리며 고민에 빠졌다.

"......들어본 적 없는 갱단이야. 곤란하네."

"왜 그래? 로레인."

"최근에 랭거스틴에 들어왔다면 키젠과 제대로 부딪혀 보지 않았을 가능성이 커."

즉, 높은 확률로 간땡이가 부었을 거란 뜻이었다.

일반적인 랭거스틴 갱단이었다면, 키젠이란 이름만 들어도 설설 길 테니까.

"오히려 이런 녀석들이 더 위험해.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몰라."

"우후후."

깃털로 만든 인공 백조에 올라타 있는 세르네가 요염하게 입을 가렸다.

"키젠도 한물갔네요. 아니, 애초에 키젠의 이름만 대면 모든 게 해결될 거라는 당신들의 사고방식부터가 문제라니까?"

"꼭 이런 비상사태에 신경 긁을래?"

어쨌거나 상황이 급했으니, 두 사람도 더 싸우지 않고 시몬의 뒤를 따랐다.

세르네의 이능에 세뇌당한 갱단원은 자신의 아지트로 그들을 안내했다.

잘 닦인 깨끗한 대로를 달리고 있다가, 어느 순간부터 갑자기 길거리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퀴퀴한 냄새가 나고 주위에 쓰레기가 가득했다. 쥐들이 인기척을 느끼고는 좁은 틈으로 파고들었다. 랭거스틴에서도 가장 허름하고 위험한, 할렘가 중앙 지역이었다.

"이쪽입니다."

정신지배에 당한 갱단원이 골목 앞에서 멈춰 서서 말했다. 세르네가 웃으며 손을 살랑거렸다.

"수고했어요, 아저씨. 토끼뜀으로 경비대까지 자수하세요."

"예."

갱단원이 우스꽝스러운 걸음걸이로 사라진 뒤, 시몬은 청각에 집중했다.

골목 내부가 안에서 보이진 않았지만, 곳곳에서 인기척이 느껴진다. 발소리와 말소리가 들린다.

"저 스코빌러 갱단이라는 자들, 할렘가에서도 요지를 점령하고 있어."

로레인이 목소리를 줄이며 말을 이었다.

"최근에 들어온 갱단이 이런 핵심구역을 차지하는 건 쉬운 일이 아냐. 실력이 뛰어난 퇴역 네크로맨서가 한두 명쯤 속해 있을 거라고 생각해."

네크로맨서가 관여했다면 더더욱 상황이 좋지 않다.

시몬이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고는, 로레인을 돌아보았다.

"지금이라면 용서해 줄 테니 이모를 돌려달라고 요구하는 건?"

"안 통하겠지. 그 정도로 돌려줄 거면 애초에 납치를 시도하지도 않았을 거야."

"그럼 간단하네."

시몬이 걸음을 옮겼다.

"진입하자."

"잠깐만요 시몬."

세르네가 생글생글 웃으며 앞을 막았다.

"발락 선배의 독에 당한 상처가 다 낫지 않았잖아요. 시몬은 여기서 쉬세요."

"오랜만에 생각이 일치하네."

로레인이 허벅지의 포켓에서 단검을 뽑아 들었다.

"여기선 나랑 세르네가......."

"아니, 이모가 붙잡혔는데 나만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어."

시몬은 성큼성큼 걸어갔다.

"내가 정면으로 들어갈게. 둘은 좌우로 우회해서 들어가 줘."

세르네가 눈을 반달로 접으며 후훗 웃었다.

"역시 고집불통이라니까. 그럼 오른쪽은 내가 갈게요."

그녀가 사라졌다. 로레인은 걱정스럽게 시몬을 보다가 이내 눈을 감았다.

"조심해 시몬."

"응."

로레인도 자리에서 사라지고, 시몬은 빠른 걸음으로 인기척이 느껴지는 골목에 들어갔다.

골목 내부에는 널찍한 광장이 있었다.

그리고 그 광장을 가로막는 낡은 문이 보인다. 그 앞에 탈을 겨드랑이에 낀 채 대낮부터 술병을 들이키고 있는 남자가 보인다.

"어엉?"

그가 시몬을 발견하고는 눈을 부라렸다.

"뭐야 이 녀...... 뚜훑!"

시몬이 남자의 얼굴을 붙잡아 벽에 처박았다. 두 개의 붉은 선이 벽면을 타고 주르륵 흔적을 그리며 내려갔다.

덜컥!

낡은 문을 넘어 안으로 들어왔다.

확 트인 할렘가의 광장이 보인다. 넓지만 관리는 전혀 되지 않은 듯 잔디가 나 있고, 쓰레기가 아무렇게나 널려 있다. 분수대는 진작에 말라붙어 있었으며 그 안에도 쓰레기나 낡은 동전들이 들어 있다.

갱단원들은 자기들끼리 실실대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하나같이 웃는 모양의 탈을 착용하거나 들고 있는 모습이다.

"음, 이 꼬맹인 뭐야?"

시몬을 발견한 그을린 피부의 남자가 다가왔다. 벨트에서 쑥 하고 단검 뽑히는 소리가 들렸다.

"교복이잖아? 이런 데 돌아다니면 칼 맞는다고 엄마가 안 가르쳐 주시디?"

"잠깐, 교복이라고?"

나무 상자에 걸터앉아 노름을 즐기던 갱단원이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돌렸다.

"분명 이번에 납치한 사람이 키젠 측의......!"

시몬의 다리가 검은 궤적을 그렸다.

쩌어어억!

먼저 말을 걸었던 갱단원이 번개처럼 날아가 노름을 하는 무리에 떨어졌다. 테이블이 엎어지고 사람들이 바닥에 나뒹굴었다.

"무, 무슨 일이야?"

"이 새끼가!"

측면에서 갱단원이 달려와 시몬에게 단검을 내질렀다. 시몬은 검지와 중지로 칼날을 받아내고는 다리를 걷어차 무릎 꿇렸다.

동시에 뒤를 보지도 않고 팔꿈치를 가격해 또 한 명을 쓰러트렸다.

"놈은 혼자다! 한꺼번에 덮쳐!"

광장의 갱단원들이 머릿수를 믿고 우르르 덤벼들었다. 이에 시몬은 태연히 손을 들어 올렸다.

"다들 나와."

아공간이 열리고, 스켈레톤 아처들이 뛰쳐나오며 화살을 날렸다. 단번에 여섯 명의 갱단원들이 화살에 맞아 고꾸라지고, 아처들이 본 아머로 분해되어 또 다른 갱단원들의 몸을 장악했다.

시몬이 좌우로 손짓하자, 본 아머를 입은 갱단원들이 아군을 검으로 베고 화살로 쏴 맞추기 시작했다.

"침입자다! 침입자가 나타났다!"

"다 들어와!"

아래층 주점에 있던 갱단원들도 무기를 꼬나쥐고 몰려들려는 순간.

지이이이이이잉―!

새빨간 섬광이 주점 지붕을 일직선으로 그어버렸다. 천장이 통째로 무너져 내리며 빠져나오려던 갱단원들이 그 잔해에 파묻혔다.

"그분이 키젠의 손님인 걸 알면서도 건드리다니."

뚜벅. 뚜벅.

반대쪽 지붕 쪽에서 로레인이 검은 머리를 휘날리며 나타났다.

"왜 목숨을 소중히 여기지 않지?"

-끼이이이이이이익!

로레인의 뒤에는 그녀의 이능으로 강화된 거대 익룡들이 울부짖고 있었다. 그것들이 지붕을 밟고 뛰어 내려와 날개 달린 팔을 휘두르자 갱단원들이 추풍낙엽처럼 나가떨어졌다.

"어머나."

반대편에서는 세르네가 모습을 드러냈다. 공중에 둥둥 떠다니는 그녀는 우아하게 찻잔을 들고 티타임을 즐기고 있었다. 주위로 펼쳐진 깃털들은 그녀를 보호하듯 빙빙 회전하고 있었다.

그녀의 손짓에 따라 깃털들은 검은 번개로 변해 갱단원들을 감전시키고, 얼음으로 변해 빙하 속에 가두었다.

압도적인 칠흑원소계 마법의 운용. 마치 하늘에서 천벌을 내리는 초월적인 존재 같은 모습이다.

"뭐야 이것들!"

갱단원들이 주춤거리며 눈알을 굴리고 있는 그때.

"멈춰라."

위압감이 서린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광장의 있는 모든 사람들의 동작이 멈췄다.

저벅. 저벅.

지팡이를 손에 쥐고, 전신을 빈틈없이 본 아머로 무장하고 있는 남자가 걸어오고 있었다. 시몬은 바로 눈치챘다.

'저 사람이 스코빌러구나. 거기에 네크로맨서.'

그는 한 귀부인의 목 끝에 저주가 일렁이는 칼날을 대고 있었다.

그리고 그 귀부인의 정체는 눈을 씻고 봐도 안나였다. 스코빌러에게 붙잡혀 걸어오던 안나가 시몬을 발견하고는 순진무구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시몬~ 여기야!"

"쓸데없는 수작 부리지 마라."

스릉!

스코빌러가 눈을 게슴츠레 뜨며, 안나의 목에 더더욱 칼날을 가까이 댔다.

"이 부인의 목숨이 아깝다면 소환을 해제하고 무기를 버려라."

로레인이 입술을 깨물며 단검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하늘에 떠 있던 세르네도 순순히 지붕에서 내려오는 모습이다.

"흐흐흐흐."

스코빌러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키젠 학생회장에 덤으로 귀족 학생 둘까지. 몸값으로 한몫 단단히 챙길 수 있겠군."

"......."

시몬은 머리를 긁적거리다가 이내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뒤처리는 이쪽에서 책임질 테니까, 이제 그만 빠져나와 주실래요?"

안나가 환하게 웃었다.

"어머, 그래도 되니?"

스코빌러는.

그 뒤로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을 믿을 수 없었다.

뿌득!

꽈직!

손목과 팔의 관절이 나가고,

무릎에 힘이 빠진다.

'뭐야?'

부인의 묶은 머리가 휘리릭 휘날리며 원피스 자락이 바람결에 흔들리는 모습이 보인다. 그녀의 몸이 잔상과 함께 팽이처럼 회전했다.

"다행이에요, 네크로맨서라 죽지는 않으시겠네요?"

"뭐?"

꽈아아아아아아아앙!

스코빌러의 몸이 거칠게 날아갔다. 건물을 부수고 날아간 그가 벽을 부수고 또 부수기를 반복하며 다섯 채의 건물을 무너뜨린 뒤에야 멈춰 섰다.

숨죽인 정적.

모두가 입을 딱 벌린 채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휘오오-

다리를 들어 올린 안나의 모습이 보인다.

찢어진 원피스 자락과 스타킹에 구멍이 숭숭 뚫렸지만, 전방을 훑어보는 그녀의 눈빛은 극도로 진지했다.

마나의 운용만으로 만들어낸 괴력.

좌중의 전원이 완벽하게 압도당했다. 이내 안나는 다리를 모으고 옷을 탈탈 털고는 시몬에게 손을 흔들었다.

"시몬~ 여기란다!"

로레인과 시몬이 맥이 탁 풀린 미소를 지었다.

세르네는 '흐흠~' 소리를 내며 의미심장하게 시몬과 안나를 번갈아 보고 있었다.

철컥.

쿵.

곳곳에서 전의를 잃고 무기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