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726화
이스라필과 다나.
신성연방 내 온건파와 강경파의 수장격인 두 사람이 만나 회담을 진행한다는 소식에 에프넬은 발칵 뒤집혔다.
두 사람은 바로 회담장으로 안내되었다.
건물 5층에 자리 잡은 그림 같은 야외 테이블.
성의로 갈아입은 두 성녀는 우아하게 찻잔을 들어 올리며 차를 마셨다. 테이블에는 호화로운 다과들이 색색이 놓여 있었다.
전형적인 티타임의 모습이지만, 의외로 조금 특이한 구석도 있었다.
두 사람은 체스를 두고 있었다.
"평소엔 얼굴도 잘 내비치지 않던 네가, 무슨 바람이 불어서 여기까지 왔는지 궁금한걸."
타악.
다나가 나이트를 움직였다.
"당연한 이야기를 하러 왔답니다."
이스라필 또한 나이트를 전진시켰다.
"최근 국경 도발 사태를 일으킨 심문청장, '레이트'의 처벌에 관해서 논하고자 합니다."
"......."
"상부의 허가 없이 암흑연합 측을 선제공격한 정황은 확실하고, 공격에 대한 명분도 근거도 빈약합니다. 무엇보다 연합의 포로교환에 응하는 척하다가 국경의 모두가 보는 앞에서 포로들을 붉은 십자가에 매달다니."
따악.
다나의 나이트를 룩으로 잡아낸 이스라필이 입술을 비틀었다.
"심각한 사안입니다. 하마터면 전쟁으로 발전할 뻔했어요. 하지만 당신은 그를 처벌하지는 못할망정, 성녀의 권한으로 재판까지 피하게 했죠."
다나가 턱을 괸 채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악의 추종자들을 좀 제거한 게 그렇게 큰일이야?"
"다나!"
"레이트는 연방에 없어선 안 될 충직한 전사야. 세상에서 네크로맨서들을 가장 많이 죽인 남자라는 명성 또한 인상적이지."
이번엔 다나가 룩을 집었다.
"네가 그렇게 나온다면 이쪽도 할 말이 있는데? 저 멀리 로크섬에 벌어졌던 에버 키레 사태."
이스라필의 감은 눈이 꿈틀했다.
"경과를 들어보니 너무 스무스하게 끝났던데. 정보가 생략된 부분도 많아. 네크로맨서들 따위가 어떻게 에버 키레의 위치를 찾아냈을까? 참 궁금하다, 그렇지?"
그녀가 룩을 들어 올려 혓바닥으로 살짝 훑었다.
"설~마 누군가가 에프넬의 프리스트를 파견 보냈을 리는 없을 테고. 생각만 해도 끔찍한 대역죄야."
타악-
그러고는 체스판에 내려놓아 반대쪽 퀸을 잡아냈다. 이스라필은 지지 않고 미소 지었다.
"대역죄라 함은, 도망치는 에버 키레를 국경에서 붙잡고도 일부러 풀어준 뒤, 애꿎은 팔라딘들에게 죄를 물어 몰살한 자에게나 쓰이는 말이겠죠."
"오, 그런 일이 있었어? 전혀 몰랐네."
두 성녀의 눈빛이 파직파직 불똥이 튀었다.
아름다운 야외 티타임 장소와는 달리, 살벌하기 그지없는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피곤하네."
다나가 지겨워진 듯 두 손을 늘어뜨렸다.
"예전엔 그렇게 유능하고 피도 눈물도 없이 냉정하던 아이가 어쩌다 평화만 부르짖는 이상주의자가 되었을까."
"평화가 나쁘다고 생각하시는지요."
"평화. 평화 자체는 좋지."
다나가 음울하게 내려앉은 눈으로 말을 이었다.
"물론 그건 네크로맨서들을 몰아내고 대륙을 우리 에프넬이 통일한 뒤여야 의미가 있어."
"......."
"위대한 경전에도 검은 힘을 쓰는 악을 뿌리 뽑으라 수차례 강조하고 있잖아? 여신의 뜻이 그래. 우리와 그들은 결코 공존할 수 없어."
"전쟁이 반드시 필요한 경우라면 어쩔 수 없이 싸워야겠죠."
이스라필이 말을 받았다.
"하지만, 굳이 전쟁을 일으키려고 온갖 더러운 수작을 벌이는 게 잘못됐다고 이야기하는 거랍니다."
"왜?"
"전쟁이 일어나면 수많은 목숨이 위태로워지고, 백성들은 커다란 아픔과 고난을 겪습니다. 우리는 성녀로서 그들의 아픔을 헤아려야 되겠지요."
"왜?"
이스라필의 미간이 무섭게 찌푸려졌다. 다나는 흐뭇하게 웃으며 손을 휘저었다.
"모든 건 위대한 여신을 위한 일이야. 그들도 숭고한 여신의 뜻에 따라 적을 제거하고 제 한 몸 바치는 걸 영광으로 여기겠지."
"영광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이스라필이 잘라 말했다.
"호화로운 삶 밖으로 나와 민초들과 만나본 게 얼마나 오래되셨습니까. 그들은 하루하루 먹고 버티며 살아가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너랑 이야기하다 보면 머리가 다 지끈거려."
다나가 인상을 썼다.
"너 나이가 몇이더라?"
"......그건 왜 묻는지요?"
"나이를 그렇게 먹고도 아직도 착한 아이 증후군에 빠져 있는 것 같아서. 평화. 도의. 백성. 현실을 직시하지 않고 대책 없이 듣기 좋은 이야기만 늘어놓지. 정치적인 이유인가? 소문대로 차기 교황직이라도 노릴 셈? 그게 아니면-"
다나의 두 눈이 가늘어졌다.
"안나 크로스의 흉내라도 내고 있는 거야?
그 말이 끝나기 감고 있던 이스라필의 눈동자가 부릅떠졌다. 등 뒤로 파도 같은 신성이 살벌한 기세로 휘몰아치며 공간을 일그러뜨리기 시작했다.
"흐음. 역린을 건드렸나?"
다나도 맞대응하듯 신성을 끌어올렸다.
일촉즉발의 상황인 그때.
"이스라필 성녀님! 큰일 났습니다!"
이스라필의 관계자가 헐레벌떡 뛰어왔다. 그러고는 그녀의 귓가에 뭐라고 빠르게 속삭였다. 마찬가지로 다나 측에서도 사람이 와서 귓속말을 했다.
"!"
이스라필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다나는 즐거운 표정으로 입술을 훑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래도 이런 문제가 사소할 정도의 대형사태가 터진 것 같네?"
드르륵-
다나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의 어깨를 툭 짚었다.
"잘해봐."
다나가 사라진 즈음에도, 이스라필은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앉아 있었다.
* * *
시몬의 입원 6일 차.
그리고 안나가 로크섬에 들어온 지 단 사흘 만에.
"어머, 좋은 아침이에요! 의사 선생님."
"안녕하세요, 아일라 부인!"
"하하하! 오늘도 참 기운이 넘치셔."
그녀는 키젠에서 일약 스타가 되어 있었다.
모두가 안나의 상냥하고 온화한 매력에 빠져들어 가고 있었다.
그녀는 지나가는 사람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었다. 늘 상냥하게 인사하고, 먼저 말 걸어주고, 누군가 일하고 있으면 옷 소매를 걷어붙이고 뭐든 도와주려 했다.
처음엔 무뚝뚝하거나 귀찮아하던 사람들도, 어느새 그녀의 진심을 느꼈는지 하나둘씩 마음의 문을 열었다.
-그래서 우리 아이가.......
-육아에는 정답이 없다잖아요. 일단은 아이를 믿어주는 게 어떨까요?
심지어 고민상담까지.
안나를 만난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속마음을 털어놓게 됐고, 그녀는 늘 상대의 기분을 나쁘게 하지 않으면서도 현명한 대답을 했다.
그동안 정적이고 조용하던 병동이, 그녀의 등장으로 화기애애해졌다.
심지어 청소일을 하는 하수인의 생일은 어떻게 알았는지, 그의 생일을 챙겨주는 작은 이벤트를 마련했다.
안나와 사람들이 청소 휴게실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그가 돌아오자 박수갈채와 함께 안나가 직접 만든 케이크를 전달했다.
그때 하수인이 감격의 눈물을 글썽거리는 모습은 모두에게 상당히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이런 학창시절에나 하는 소소한 이벤트만으로 웃고 떠들고 행복한데, 우리는 일상의 많은 것들을 놓치고 있지 않았을까. 사람들은 한 번씩 자신을 되돌아보았다.
안나는 병동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미쳤다. 사람들은 조금 더 웃으려고 했고, 조금 더 친절하려 했다. 물을 두려워하던 병동 의사는 수영을 배우기로 마음먹었고, 늘 사이가 나쁘던 부부는 화해했다.
"......엄마, 대체 무슨 짓을 벌이고 다니는 거예요."
침대에 누워 있던 시몬이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그 또한 물론 파다하게 퍼진 소문을 모를 리가 없었다.
그녀는 눈을 깜빡였다.
"응? 그냥 하던 대로 했는데."
"아하하."
안나의 평판 덕분인지, 아니면 몸 상태가 좋아졌기 때문인지 비로소 시몬은 외출금지 조치도 풀렸다.
시몬은 안나를 데리고 신성 방어학 교수, '파라한'의 집에 찾아가기로 했다.
그동안 안나와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파라한의 이야기도 했었는데, 그녀는 꼭 만나고 싶다며 계속 시몬을 졸랐다.
결국 파라한의 집에서 두 사람의 만남이 성사되었다.
"우리 시몬을 지도해 주시고, 또 보호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교수님."
안나는 이때 자신의 정체를 숨기지 않고, 자신이 시몬의 엄마라는 사실을 밝혔다.
파라한은 시몬이 신성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비밀로 해주고, 심지어 백마법을 가르쳐 주고 있었다. 그녀도 시몬의 부모이자 프리스트라는 사실을 밝히는 게 예의라고 생각한 것이다.
파라한은 드디어 긴 수수께끼가 풀렸다는 듯 편안한 표정을 지었다.
"네크로맨서인 시몬이 백마법을 쓸 수 있었던 이유가 있었군요."
물론 이 드넓은 대륙에 네크로맨서와 프리스트가 결혼한 예가 없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시몬처럼 칠흑과 신성을 동시에 쓸 수 있는 아이가 있다는 건 밝혀진 바가 없었다.
심지어 그 두 가지를 섞어서 '혼돈'을 만들어내는 아이는 더더욱.
안나와 파라한은 앉은 자리에서 몇 시간이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두 사람 다 신성연방에서 왔다는 커다란 공통점이 있었기에 말도 잘 통하고 이야깃거리도 무궁무진했다. 서로가 서로의 존재만으로 큰 위로가 되는 셈이다.
두 사람의 이야기는 날이 저물 때까지 이어졌다.
'파라한 교수님이 저렇게 말씀을 많이 하시는 모습은 처음 보네.'
시몬은 흐뭇하게 미소 지으며 멀찍이 두 사람을 지켜보았다.
"언젠가 꼭 저희 집에 초대하고 싶어요. 교수님."
"허허! 마음만으로 감사합니다만. 이 늙은이는 섬 밖으로 나갈 수 없습니다."
파라한의 몸에는 추적마법과 함께 강력한 저주가 걸려 있다. 그가 섬 밖으로 나가는 순간 저주가 발동될 것이다. 정화마법으로 풀려고 해도 먼저 저주가 걸려 숨통을 끓어버리는 식이었기에 해제는 불가능했다.
학부모나 키젠의 원로들이, 프리스트가 로크섬에 있다는 사실 자체에 극도로 민감한 만큼 당연한 처리긴 했다.
"이 늙은이의 남은 수명 안에 밖으로 나갈 수 있다면, 그때는 꼭 레스힐에 들르도록 하지요."
안나는 더 대화를 나누고 싶어 하는 눈치였지만 슬슬 통금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이제 막 아들의 산책이 허용됐는데, 첫날부터 통금시간을 어길 수는 없었다.
"감사했습니다, 교수님."
안나는 허리까지 굽혀 공손하게 인사했다.
"앞으로도 저희 시몬을 잘 부탁드립니다. 부족한 아이지만 많이 가르쳐 주세요."
"그라툴라 미 키빌리스(cíbĭlis)."
두 손을 포개어 고위 사제들에게나 하는 극존칭의 인사를 마친 파라한이 고개를 들었다.
"이 늙은이야말로 늘그막에 훌륭한 아이를 만나, 지식 한 톨이라도 더 전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 * *
입원 7일 차.
마침내 시몬은 몸에 아무런 이상이 없는 걸 인정받고, 퇴원하기로 했다. 오늘 바로 레스힐로 돌아갈 예정이었다.
군단은 방학이 시작되자마자 로크섬 밖으로 나가 병력 증강을 모색하고 있다.
칼로스 북부에서의 전쟁으로 너무 많은 병력 손실이 있었기에, 다음 큰 전투를 위해 머릿수를 충원하는 게 급선무였다.
에르제베트는 송장거미의 개체수를 폭발적으로 늘리기 위해 '벌레무덤'이라는 지역으로, 아케뮤스는 스컬윙 둥지를 점검하기 위해 '비명의 정글'로, 프린스는 당연히 '데스랜드'에 있다.
그리고 피어는 다시 한번 칼로스 북부로 향하기로 했다. 그곳에서 병력을 점검하고, 북신인 자이로스의 상태도 살피고, 마지막으로 프로스트 필드에 있는 광산을 어떻게 할지 결정할 생각이었다.
광산에 매장된 자원을 팔 수만 있다면 군단에 안정적인 자금 공급책이 생기는 셈이다. 언데드를 이용하면 되니 노동력도 문제없다.
다만 현재 광산은 그냥 자연 그대로 방치된 상태라, 개발하는 데 상당한 시간과 비용이 걸릴 것으로 보였다. 그 점을 피어가 직접 확인해 보고, 필요하다면 대공 측과 협력해서 광산을 개발할 예정이었다.
-저랑 같이 레스힐에서 아버지를 만날 생각은 없어요?
시몬은 넌지시 그렇게 물었지만, 서로 만날 이유가 없다면 만나지 않는 게 좋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피어의 생각이 그렇다면 강요할 생각은 없었다. 리처드 또한 피어나 다른 군단장을 만나려고 하지 않았으니까.
그래도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시몬은 군단의 전 병력을 움직일 수 있는 미라 부대의 대장 '헤르세바'를 데리고 레스힐로 넘어가기로 했다.
퇴원 당일 텔레포트 마법진으로 향하는 길에, 병동에서 안나와 만났던 모든 사람들이 밖으로 나와 손을 흔들어주었다.
"무사히 잘 들어가십시오 부인!"
"나중에 언제든 놀러 와요! 아일라!"
이별에 눈물까지 글썽이는 사람들도 있었다. 안나는 그들을 하나하나 안아주며 다음에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며 미소 지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시몬과 로레인, 세르네는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네 이모분. 정말 좋은 분이신 것 같아."
로레인이 말했다. 시몬은 뜨끔했지만 애써 웃으며 말을 받았다.
"고마워."
"이렇게 빛나는 사람이 있다는 건 처음 알았어. 나도 언젠가 저런 사람이 되고 싶네."
"흐흠-"
세르네는 그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이내 병동에서 빠져나와 마지막으로 로레인과 세르네와 작별인사를 하고는, 레스힐로 향하는 텔레포트 마법진에 발을 올렸다.
시몬은 발이 두둥실 떠오르는 익숙한 감각에 몸을 맡겼다.
* * *
잠시 후.
눈을 뜨니 너무나 익숙한 산골 시골 풍경이 그림처럼 펼쳐졌다. 시몬이 두 팔을 쭉 뻗으며 개운하게 외쳤다.
"돌아왔다!"
시몬의 16년간 살아온 정겨운 고향, 레스힐이었다.
깎아지른 듯한 드높은 산맥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는 이곳. 언제와도 변함없이 남아 있는 장소가 있다는 사실은 정서적으로 안정감을 주었다.
그런데.
'음?'
다시 보니 조금 바뀌어 있었다.
아니, 많이 바뀌어 있었다.
쏴아아아아아-!
하늘이 어두웠고, 하늘에서는 비가 퍼붓고 있었다. 길은 온통 진흙밭이었으며, 산사태로 토사가 무너져 내려서 곳곳에 속살이 보이듯 황토색이 드러났다.
나무는 주저앉고 풀들이 칼날에 베인 것처럼 뜯겨 나갔다. 시몬은 얼른 우산을 꺼내 안나에게 씌워주었다.
"아직도 비가 쏟아지고 있을 줄은 몰랐구나. 널 만나러 갈 즈음엔 이정도까지는 아니었는데."
안나가 말했다.
"빠, 빨리 돌아가죠. 엄마."
"응, 그러자꾸나."
두 사람은 걸음을 옮겼다. 계곡이 범람한 듯 건너편은 온통 물바다였다. 물살 사이로 지붕만 보이고 있었다.
콰르르릉!
이제는 번개까지 치고 있었다. 일대가 순간 하얗게 변했다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네 아빠가 무사할지 모르겠구나."
안나가 산맥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영지에 이 정도의 비 피해가 일어났다면 리처드가 온 힘을 다해 뛰어다니고 있으리라.
"저도 아버지를 도와주러 다녀올게요!"
"어디 있는지 알고 가려는 거니. 돌아올 때까지 집에서 기다리렴. 서두르지 않아도 앞으로 할 일이 많을 것 같구나."
그녀의 말이 맞았다. 비가 더 거세게 쏟아지며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리처드가 어디 있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괜히 나섰다간 위험할 수도 있다.
우선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다행히 시몬의 집은 그나마 고지대에 있어서 그런지 물에 잠기거나 떠내려가거나 하지는 않았다.
타악-
집에 들어온 시몬이 문을 닫았다. 쏴아아 하고 귓가에 가득 맴돌던 폭우의 소리가, 툭툭 하고 외벽을 두들기는 소리로 바뀌었다.
시몬은 젖은 교복을 벗었고, 안나는 벽난로의 불을 피웠다.
금방 온기가 퍼져 나가며 집이 따뜻해졌다.
투두두두둑!
천장을 무너뜨릴 기세로 비가 계속 쏟아지고 있었다. 시몬과 안나는 부엌에서 초조하게 리처드를 기다렸다.
"걱정이구나."
끓는 냄비의 수프를 젓고 있던 안나가 중얼거렸다.
"이제 곧 레테가 오기로 했는데. 길이 이래서야 제대로 올 수 있을지."
시몬이 앉은 채로 펄쩍 뛰었다.
"레테가 온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