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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729화 (729/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729화

레스힐에서 가장 높은 산꼭대기에 도착했다.

마차를 타고 갈 수 없는 험지였기에 걸어가느라 제법 시간이 걸렸다. 정상에 도착하니 어느새 주위는 어둑어둑해졌다.

쏴아아아아아-!

빗줄기도 더욱 거세졌다. 시몬은 우산을 펼친 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럼 시작할게요."

바위 뒤에서 에프넬 교복으로 갈아입은 레테가 모습을 드러냈다.

선 채로 가볍게 명성에 잠긴 그녀가 젖은 풀밭에 다소곳이 무릎을 꿇고는 두 손을 모았다.

이때의 레테는 장난기 하나 없이 진지하다. 두 손을 곱게 포개어 모은 뒤 눈을 감았다.

"우산은 치워주십쇼."

"괜찮아?"

"네."

시몬이 우산을 든 채 뒷걸음으로 물러섰다. 곧바로 세찬 빗줄기가 그녀의 작은 어깨를 때리기 시작한다.

순백의 머리카락이 흠뻑 젖어서 내려앉고, 스커트를 타고 흐르는 물방울이 꿇어앉은 허벅지를 지나 바닥에 떨어진다.

하지만 그녀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놀라운 집중력이라고 시몬은 생각했다.

"위대한 만물의 어머니시여."

낭랑한 목소리와 함께 기도가 시작된다.

이에 응답하듯 하늘이 일렁이고, 먹구름에 가려 전혀 보이지 않던 밤하늘의 별들이 일순 반짝인다.

이내 그녀가 지휘를 시작하고, 별들도 그녀의 지휘에 따라 움직이기 시작한다. 긴 꼬리를 남기며 하늘에 그림을 그리듯 뻗어 나간다.

밤하늘과 별을 제 뜻대로 움직이는 권능.

다시 봐도 대단하긴 했다.

화악-!

별빛이 쏟아져 내린다. 밤하늘이 친히 스포트라이트를 그녀에게 내리는 것만 같다. 그녀가 인상을 살짝 찡그리더니 기도하듯 모은 손을 더욱 꽈악 쥐며 이를 악문다.

화아아아아아아악-!

빛의 밝기가 최대치가 된다. 주위가 하얗게 물들고, 시몬은 순간 낮이 찾아왔다고 생각했다. 이내 그녀가 맞잡은 두 손을 놓고, 빛나는 눈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시몬도 하늘을 보았다.

"아."

먹구름이 걷혀간다.

어느새 밤하늘이 뻥 뚫린 것처럼 밝아져 있다.

그 사이로 별들이 얼굴을 내민 채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

"의무를 저버리고 가출한 이렇게 못난 신도인데도, 여전히 별빛은 제게 응답해 주네요."

그녀가 중얼거렸다.

"무슨 소리야. 네가 못난 신도면 세상에 신도가 남아나지 않겠다."

"푸핫."

레테가 웃음을 터뜨렸다.

시몬은 그녀의 곁으로 다가와 외투를 벗어서 젖은 그녀의 몸에 덮어주었다.

"아, 고맙슴다."

"별말씀을."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내 고개를 귀엽게 도리도리 흔들자 흠뻑 젖은 머리카락이 휘날리며 물방울이 주위로 마구 튀었다.

"윽."

시몬이 팔을 들며 뒷걸음질 쳤다. 그녀가 하핫 웃었다.

"이래야 공평하지. 나만 젖을 순 없잖아요?"

"너무한데."

넉살 좋게 대꾸한 시몬이 갑자기 부끄러운 낯을 끌어올리더니 고개를 돌렸다.

"?"

레테가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았다. 빗물 때문에 교복이 젖어서 안이 비치고 있었다.

"나 참, 이 정도 가지고 뭘."

그녀가 시몬이 둘러준 겉옷을 끌어당겨 몸을 가렸다. 이내 도도하게 흰 머리를 흩날리며 앞서 걸었다.

"내려가죠."

"아, 응."

* * *

비가 그치고 시몬과 레테는 집에 도착했다.

문 앞에 서서 노크를 하려고 손등을 대려던 레테가 갑자기 숨을 푸학 내쉬며 쪼그려 앉았다.

"모, 못 하겠슴다."

"뭘?"

"긴장해서......."

덜덜.

그녀의 손끝이 흔들리고 있었다.

"1년 만에 안나 선생님을 뵙게 된다니, 갑자기 너무 긴장됨다."

방금 옷이 비쳐도 '이 정도 가지고 뭘'하던 강심장의 모습과는 완전히 딴판이었다.

"그럼 내가 열게. 엄마!"

"하지 마! 이 새꺄!"

그녀가 벼락같은 돌려차기를 날렸다. 시몬은 식겁하며 엎드리듯 자세를 낮췄다.

"뭔 짓이야!"

"누구든 안나 선생님과 내 감동적인 재회를 티끌만큼이라도 방해했담 봐! 진짜 확 죽여 버린다!"

그녀가 으르렁거리며 목을 긋는 시늉을 했다.

'저게 무슨 성녀야.'

시몬이 쓰게 웃고 있는데, 집 안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시몬이 돌아왔나 봐요, 여보. 레테 목소리도 들려요.

안나의 목소리였다.

이내 타닥 하고 발소리도 들린다. 레테가 '앗!'하는 소리를 내며 뒷걸음질 쳤다. 벌게진 얼굴로 허둥지둥 주위를 둘러보더니, 결국 시몬의 등 뒤로 도망쳤다.

이에 시몬은 묘한 웃음을 흘리며 그녀의 어깨를 붙잡아 다시 앞으로 보냈다.

레테가 볼멘 표정으로 시몬을 노려보다가, 이내 두 손을 가슴 위에 꼭 모은 채 진지하게 문을 응시했다.

벌컥!

문이 열리며 집에서 안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별로 놀라지도 않고, 자애로운 미소를 지었다.

"어서 오렴, 레테."

그 따뜻한 한마디가 흘러나오는 순간.

"아."

레테의 눈가에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이내 눈물샘이 고장 난 것처럼 눈물이 주륵주륵 하염없이 쏟아졌다. 부끄러워서 흡 하는 소리와 함께 울음을 참으려고 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그녀가 이내 감정을 토해내며 두 팔을 벌리고 뛰어갔다.

"안나 선생니이임!"

레테가 그녀의 품에 힘껏 안겼다. 안나는 레테를 안정적으로 받은 다음, 등을 토닥여 주었다.

그녀가 코 먹는 소리를 내며 훌쩍거렸다.

"흐윽! 저 그동안 너무 힘들었어요! 교황 성하는 엄격하고, 흡! 이스라필 님은 안 된다 안 된다 잔소리만 하고, 특히 그 변태 영감새끼들이......!"

"그래, 그래."

안나가 따뜻하게 레테를 끌어안고 한동안 펑펑 울게 내버려 뒀다. 시몬은 조금 떨어진 곳에서 끼어들 타이밍을 찾지 못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입구를 가로막고 있어서 들어갈 수도 없었다.

안나가 건너편의 시몬을 발견하고 웃었다.

"수고했어, 아들."

"네. 엄마."

안나의 품에 훌쩍이고 있던 레테가 눈시울이 벌게진 채로 중지 손가락을 내밀었다.

-그만 보고 빨리 꺼져어.

부끄러워서 그다지 보이고 싶지 않은 모양.

손가락 욕은 하면서 비극의 여주인공처럼 안나 품에서 히끅거리고 있는 모습이 어쩐지 재미있었다. 시몬은 웃는 얼굴로 안으로 들어갔다.

"왔느냐 시몬."

리처드가 거실 의자에 앉아 있었다.

"네, 아버지!"

"비가 그쳤더구나."

"레테가 힘을 써줬어요."

"그래."

리처드도 자리에서 일어나 레테에게 인사를 하러 갔다.

"덕분에 크게 한숨 덜었구나."

* * *

그날 저녁, 안나가 성대한 저녁을 차릴 명분이 만들어졌다.

시몬의 귀가 기념, 레테와의 재회 기념, 비가 그친 기념 저녁 만찬이다.

"......아니, 이게 무슨."

상다리가 이만 날 죽여달라는 듯 울부짖고 있는 것 같았다. 칠면조 요리를 중심으로 가지각색의 요리들이 가득했다.

이번 폭우사태로 음식이 그리 풍족하지 않았지만, 안나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감자 하나만으로 10종이 넘는 요리가 가능했다.

"안나 선생님~ 저도 도와드릴게요!"

"고맙지만 레테는 손님이잖니. 식탁에서 기다리고 있으렴."

언제 울었냐는 듯 레테는 활기가 넘쳤다. 안나의 껌딱지가 되어 떨어질 줄을 몰랐다.

"이 감자볶음 소스는 어떻게 만드는 거예요?"

주방에서 살갑게 이야기를 나누는 두 사람의 모습은 영락없는 엄마와 딸 같았다.

이내 20종 저녁 만찬이 모두 완성되었다. 분위기 좋게 촛불도 켰다. 폴렌티아 일가와 레테는 둘러앉아 화기애애한 식사시간을 보냈다.

"아들, 이 레몬 파이는 어떠니?"

"너무 맛있어요. 살짝 은은한 레몬 향이 달지 않아서 좋은 것 같아요!"

시몬은 어머니의 음식을 다채롭게 평하며 먹었다. 매번 감상을 말해주느라 표현이 다소 단조로웠지만, 안나는 늘 아이처럼 좋아해 주었다.

이내 화제는 시몬의 학교 이야기로 넘어갔다. 이야기를 듣던 리처드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럼 학생회장직이 어떻게 됐는지는 결정 나지 않았다고?"

"네."

"......발락이라."

리처드가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인데."

잠옷 차림의 레테가 포크를 휘휘 흔들었다.

"흥, 3학년 차석 하나 못 이기고 뭐 하는 짓임까. 부끄러운 줄 아십쇼."

안나는 부엌에서 새로운 요리를 가져와 식탁에 내려놓았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무서운 사람인 것 같구나. 그런 사람과 엮여서 좋을 게 없단다, 시몬."

"네, 그래도."

시몬이 주먹을 꾹 쥐었다.

"에이젤 선배를 그렇게 만든 사람을 전 용서할 수 없어요. 발락이 다시 싸우겠다면 저도 싸우겠어요."

"바로 그런 마음가짐이다!"

리처드가 쿵 하고 식탁을 내리쳤다.

"방학 동안 특훈을 하자꾸나. 그가 졸업하기 전까지 반드시 찍어눌러서 힘의 차이를 보이거라."

"여보! 학교생활 건강하게 잘해서 졸업하면 됐지, 왜 또 싸움을 붙이려 해요?"

두 사람이 또 부부싸움을 시작하려고 할 기색이자, 시몬은 얼른 레테 이야기로 화제를 돌렸다. 리처드와 안나도 오자마자 펑펑 눈물을 쏟아낸 레테의 사연을 궁금해했고, 레테는 자신이 왜 가출하고 레스힐에 오게 된 건지 이야기했다.

"안나 선생님은 나쁜 짓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어떻게 버텼어요?"

"으음-"

안나가 고민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글쎄, 내 성녀 시절에는 그런 사람이 없었던 것 같은데?"

"네? 그럴 리가요!"

안나가 오호호 웃었다.

"주교님이나 대주교님들 모두 친절하게 잘 대해줬단다. 그렇게 신앙심이 깊은 분들이 이상한 짓을 할 리가 없잖니."

그다지 참고가 되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레테가 턱을 괴며 한숨을 푹 쉬었다.

"뭐, 알겠네요. 안나 선생님은 막 대단한 오라나 분위기 같은 걸 풍기잖아요. 전설적인 기적의 성녀셨으니, 이상한 놈들도 알아서 꼬리 말았겠지."

안나의 젊은 시절.

최연소 성녀이자, 최강의 성녀.

신성연방에서는 '그 사건' 이후로 그녀의 이름을 공식석상에 담는 걸 쉬쉬하고는 있지만, 현재도 은연중에 전설적인 존재로 회자되고 있다.

레테가 어깨를 으쓱했다.

"반면에 나는 풋내기 냄새 풀풀 나니까 그런 똥파리들이 꼬이는 거고."

"어머, 레테도 충분히 성녀로서 대단하고 위엄 있어 보인단다."

"그런 위로는 됐거든요."

레테가 토라진 척 팔짱을 끼자, 안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위로가 아니라 진심이란다. 방에 내가 성녀 시절에 입던 옷이 있는데 입어보지 않으련?"

안나가 레테를 데리고 나가고, 남겨진 남자들은 자연스레 네크로맨서 이야기로 넘어갔다. 시몬은 리처드가 가장 흥미를 가질 게 분명한 북부 이야기를 해주었다.

특히 리처드는 자이로스가 아직 살아 있었고, 새로운 북신이 됐다는 말에는 충격을 받았지만, 시몬이 마무리를 잘해서 자이로스가 새로운 북신이 되어 군단이 됐다는 말을 뒤에야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잘됐구나. 정말 잘됐어. 수고했다, 시몬."

"당연히 제가 할 일인데요."

"자이로스를 볼 면목이 없구나."

리처드가 눈을 감았다가 떴다.

"그래, 진은 잘 지내더냐?"

"대공님요? 네, 그럼요! 안부 전해달라고 하시던데요?"

리처드가 은근한 미소를 지었다.

"당연히 훌륭한 여성으로 성장했겠지?"

"......아버지."

그때 뒤쪽에서 안나의 기척이 들렸다. 리처드가 즉각 자세를 다잡고 수프를 떠먹는 척을 했다.

"자! 두 사람이 보기엔 어때요?"

안나가 물러나고, 이내 하얀 드레스를 입은 레테가 나타났다.

시몬은 그녀의 모습에 넋을 놓고 말았다.

"윽, 이거 너무 꽉 낌다."

"조금만 참으렴."

정말로 성녀가 누추한 집에 들어온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레테가 넋을 놓은 시몬 쪽을 보고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더니, 제자리에 한 바퀴 돌아보았다.

"어떻슴까?"

"잘, 어울리네."

레테는 생긋 웃으며 몸을 날리더니 멋들어진 발차기로 시몬의 머리를 노렸다.

"우왓!"

시몬이 급히 고개를 젖혔다. 레테는 얼른 스커트를 붙잡으며 빙긋 웃었다.

"아, 미안함다. 아까 니 표정을 보니 날 훑어보던 주교들이 생각나서 패버리고 싶어서요."

"뭔 소리야!"

안나가 두 손을 포개며 리처드를 보았다.

"우리 레테 어때요? 여보."

"흠."

리처드는 레테를 힐끔거리긴커녕 일말의 시선도 주지 않은 채 옆으로 팔만 뻗었다. 이내 가족사진에 나와 있는 안나의 드레스 차림을 보았다.

"내 눈엔 여보가 드레스를 입은 모습밖에 보이지 않는군."

"어머나~"

리처드는 정글 같은 가정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배웠다.

* * *

같은 시각.

통칭 '시간이 감기는 방'.

끼익-

끼기기기기긱-

귀곡성을 연상케 하는 요란한 괴기음에, 책상에 엎드려 자고 있던 제인이 눈을 떴다.

'시작됐군.'

모든 시간의 아티팩트들의 바늘이 반시계방향으로 회전하고 있었다. 모래시계는 아래에서 위로 모래가 채워진다.

째깍! 째깍! 째깍!

그리고 그 가운데에 있는 건 네프티스였다.

마침내 시간의 이능을 이용한 마법의 수식을 짜낸 그녀가 손을 휘저었다.

파차아아아앙!

허공이 깨져 나가며 커다란 금빛 터널이 만들어졌다. 숨을 헐떡이던 네프티스가 이내 두 팔을 번쩍 들며 외쳤다.

"됐따아아아!"

제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완성하셨군요. 과거로 떠날 시간의 터널."

"응! 아직 완전하진 않지만 말야!"

제인이 어깨를 빙빙 돌리며 앞으로 나갔다.

"제가 직접 가겠습니다."

"아니, 제인은 안돼."

네프티스가 고개를 저었다. 제인은 걸음을 멈추고 그녀를 돌아보았다.

"그럼 까마귀들을 보내실 겁니까?"

"아니, 이번 일은 강함보다 더 중요한 게 있어."

그녀가 허공을 움켜쥐는 제스쳐를 취하자, 황금포탈이 작게 일그러지더니 그녀의 손안으로 들어왔다.

"그게 뭡니까."

"으음. 글쎄."

네프티스가 총총거리는 걸음으로 걸어가며 웃었다.

"필연성. 이라고 해둘까?"

"또 무슨 수수께끼 같은 말씀을......."

"요원들에게 말해서 비공식으로 텔레포트 마법진을 준비해 줘, 제인."

네프티스가 빙긋 웃었다.

"목적지는 레스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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