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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730화 (730/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730화

다음 날 아침.

비가 그치고 날은 화창하게 개었다. 폴렌티아 일가는 이번 폭우로 피해 입은 영지민들을 위해 구제활동을 시작했다.

"이쪽! 이쪽이야!"

"기둥은 여기에 놔!"

우선 침수된 지역들은 물이 마르길 기다려야 했고, 완전히 집이 무너져 내린 가족들을 위해 새로운 집을 지어주고 있었다.

똑딱똑딱 망치질 소리, 쓱싹쓱싹 나무 자르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시몬은 중간에 앉아서 눈을 감고 사념에 집중하고 있다. 스켈레톤들이 바쁘게 움직이며 자재들을 내려놓고, 통나무를 쌓아 올리고 있었다.

'윽.'

시몬의 얼굴은 땀으로 흠뻑 젖었다.

쉽지 않았다. 망치질하던 스켈레톤이 자기 손목을 때려 부쉈고, 통나무를 나르던 스켈레톤의 어깨가 탈골되어 절벽으로 통나무를 떨어뜨려 버렸다. '본 아머'로 공구를 옮기다가 쏟아서 영지민들의 머리에 맞추기도 했다.

아버지 리처드가 하는 걸 보면 쉬워 보였는데, 막상 스켈레톤을 전투 외의 일에 투입하려고 하니 쉽지 않았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거겠지.'

시몬의 스켈레톤들은 모두 몬스터였으니 건축술이란 개념이 없었다. 대충 사념으로 싸워라! 하고 명령만 하면 되는 전투와는 다르게, 시몬이 하나부터 열까지 하나하나 작업을 지정해야 했다.

똑딱똑딱!

시몬은 일정한 망치질 소리에 잠시 옆을 보았다.

본인이 쩔쩔매는 한편, 리처드가 조종하는 소환수들의 움직임은 현란하기 그지없었다. 스켈레톤들이 도사처럼 슝슝 뛰어다니며 자제를 옮기고 있었고, 본 아머들이 공중에서 매끄럽게 비행하며 공구를 척척 조달했다.

동작 하나하나가 세련되었다. 자로 길이를 측량하고, 나무를 들어 고정하고, 못을 올리고, 망치로 박는다. 이 하나가 공장의 움직임처럼 딱딱 맞아떨어진다.

키이잉-!

거적때기를 두른 마법형 언데드, 리처드의 리치가 흑마법을 사용할 때마다 만들어진 지붕들이 공중으로 오르더니 정확히 집에 안착했다. 모든 작업에 적재적소로 언데드를 쓰고 있었다.

'나도 한참 멀었구나.'

키젠에 다닌다고 자만할 때가 아니었다. 시몬이 팔을 걷어붙이고 다시 컨트롤에 집중하려는데.

[꼬맹아! 나 같은 훌륭한 리치를 두고 다른 리치에게 한눈팔아?]

심심하다며 공중에서 휘휘 공중제비를 돌던 헤르세바가 끼어들었다. 시몬이 감았던 한쪽 눈을 떴다.

"헤르세바, 너무 돌아다니면 위험해."

그녀는 군단장의 칠흑을 강력하게 풍긴다. 레스힐에 네크로맨서라곤 리처드와 시몬 둘뿐이니 별문제는 없으리라 생각하지만, 사람들 앞에서 조심해서 나쁠 건 없었다.

[나 집 짓는 게 특기인데! 모래의 세계로 도시 번쩍번쩍하게 짓는 거 기억하지?]

"......알았어, 그럼 조금만 도와줘."

[좋아!]

헤르세바가 지팡이의 앞부분, 즉 자신의 머리를 바닥에 콩 하고 대서 지면의 좁은 공간을 '황금화'시켰다. 그 안에서 미라를 꺼낸 뒤, 붕대를 날려서 통나무 몇 개를 휘감았다.

짓고 있는 건물의 3층에 기둥용 통나무를 올리려는 것 같았다.

그러나.

와르르르! 쾅! 쾅!

통나무로 기둥을 완벽하게 들이받고 말았다. 기둥이 기울어지고, 고정되어 있던 집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주위에서 공구를 끄적거리고 있던 영지민들이 아연실색한 표정을 지었다.

'헤르세바!!'

시몬의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당황한 헤르세바는 어쩔 줄 몰라 하더니 바닥에 마법을 부렸다.

[짜, 짜안!]

바닥의 모래를 이용해 3층짜리 모래집을 만들어준 그녀가 부리나케 도망쳤다. 시몬이 한숨을 푹푹 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 실수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허허허! 아닙니다, 도련님."

"그럴 수도 있죠."

그러는 와중에 헤르세바의 모래집은 바로 무너져 내렸다. 영주 아들로서 영 체면이 안 선다.

"여러분! 밥 먹고 하세요! 밥!"

앞치마를 입은 아주머니가 우렁찬 목소리로 외쳤다. 이것만 기다렸다는 듯 영지민들은 하던 작업을 내려놓고 우르르 걸음을 옮겼다.

분위기 전환이 필요했던 시몬도 사람들을 따라 밥을 먹으러 갔다.

'오.'

열악한 상황이라 크게 기대는 안 했는데, 마치 야외 식당 같다. 의자와 테이블도 깔끔하게 세팅되어 있고 앞에는 커다란 솥들이 보인다.

"거기 줄 서세요!"

그런데 배식하는 사람들 중에서 익숙한 얼굴이 보인다.

암흑연합에서는 눈에 띄는 순백의 머리카락을, 로브에 달린 후드를 써서 살짝 가린 소녀.

"안나 선생님의 특제 양고기 수프를 드셔보세요! 빵은 한 사람당 두 개씩!"

'레테.'

배식을 받으러 온 영지민에게 수프를 한 국자 듬뿍 퍼준 그녀가 '맛있게 드세요!' 하고 상냥하게 말했다. 영지민은 멍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지나쳐 갔다.

시몬이 그쪽으로 다가갔다.

"도와주러 온 거야?"

"아. 왔슴까."

돌아보지도 않고 심드렁하게 대꾸한 그녀가 잘난 척 머리를 쓸어넘겼다.

"집에서 할 일도 없으니 봉사활동이나 하러 왔죠 뭐. 먹여주고 재워주니 밥값은 해야 하지 않겠...... 앗, 어서 오세요!"

그녀가 다시 영주민들 앞에 살갑게 웃으며 배식을 시작했다. 시몬도 옆으로 와서 빵에 발라먹을 잼을 풀 준비를 했다.

"? 당신은 쉬십쇼. 일했잖아요."

"앉아서 소환수만 움직였을 뿐이라 괜찮아."

두 사람은 척척 호흡을 맞춰가며 배식을 했다. 많은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고 있어서 쉴 틈이 없었다.

"얘들아 안녕~ 맛있게 먹어."

키가 작은 꼬마들을 위해 한껏 허리를 굽혀 배식한 레테가 손을 흔들어주었다. 아이들도 짜리몽땅한 손을 흔들며 총총 옆으로 걸어갔다.

"너무 귀엽지 않슴까? 저렇게 작은 아기들도 밥 먹겠다고 줄 서고."

"그러네."

시몬이 국자로 안쪽의 잼을 위로 퍼 올리며 작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우리 영지민들에게 친절하게 대해줘서 고마워."

"딱히 안 친절하게 굴 이유도 없슴다."

레테가 어깨를 으쓱했다.

"이쪽이나 저쪽이나, 하루하루 먹고살기 바쁜 백성들에게 무슨 죄가 있겠어요. 위대한 그분의 말씀이 들리지 않도록 백성들의 눈과 귀를 가리는 너희 네크로맨서들이 나쁠 뿐임다."

'......하하, 네크로맨서에 대한 혐오는 여전하네.'

그래도 이 정도면 상당한 진전이었다.

레테는 부모가 네크로맨서들에게 살해당했고, 심지어 언데드로 일어나는 모습까지 본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다.

그런 그녀의 생각이 바뀌고 있다는 사실에 시몬은 안도할 뿐이었다.

이내 모든 요리를 마친 안나도 배식에 합류했다. 배식을 받으려는 사람이 워낙 많아서 줄을 두 개로 만들었다.

"안나, 수고했으니 좀 쉬어."

집을 짓고 올라온 리처드가 소매가 걷어붙이며 다가왔다. 안나가 웃으며 말했다.

"리처드야말로 조금 더 쉬는 게 어때요?"

"부인이 쉬어야 나도 쉬지."

두 사람이 꽁냥거리며 배식하는 모습을 멀리서 바라보던 레테는 뚱한 표정으로 입술을 삐쭉였다.

"하아."

"왜?"

"당신이 듣기엔 실례되는 말이라 참겠슴다."

"아냐, 아냐. 말해도 돼."

그 말에 레테가 눈에 힘을 주었다.

"우리 안나 선생님은 어쩌다 사악한 네크로맨서와 결혼하게 됐을까요?"

"응?"

"저렇게 신실하고 아름답고 위대하고 상냥하며 선한 안나 선생님을 어떻게 꼬셔서...... 으으! 분명히 사악한 술수를 부린 게 틀림없슴다!"

시몬이 웃는 얼굴로 리처드와 안나를 가리켰다.

"진짜 사악한 술수라고 생각해?"

리처드가 본인의 뺨에 튄 수프를 가리키자, 안나가 수줍게 웃으며 입을 맞추었다. 이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수프 국자는 내동댕이치고 서로의 이마를 맞대고 끌어안는 두 사람이었다.

곳곳에서 영주민들의 유쾌한 휘파람 소리가 들린다. 어른들은 제 아이들의 눈을 가리며 실실댔다.

다들 익숙하다는 반응이었다.

"끙."

레테가 앓는 소리를 내며 고개를 돌려버렸다.

여전히 납득이 안 된다는 얼굴이다.

* * *

"두 분은 어떻게 처음 만나게 됐슴까?"

그날 저녁, 식사 자리가 끝나갈 무렵 레테가 질문을 던졌다.

음식을 먹고 있던 리처드와 안나가 동시에 멈칫했다.

'...갑자기?'

접시를 정리하려던 시몬도 눈동자를 굴렸다.

'사실 조금 궁금하긴 했는데.'

아주 어릴 때 몇 번 물어본 적 있긴 했지만, 흐지부지한 대답이 돌아와서 제대로 기억이 나진 않았다. 철든 뒤로는 쑥스러워서 물어본 적 없었고.

레테의 물음을 들은 리처드와 안나는 눈을 마주했다.

"설명하기 뭔가 복잡하구나. 그때는 워낙 사건 사고가 많아서."

안나가 말했다.

"전쟁 중이었지."

리처드가 와인을 한 모금 마시며 말했다.

레테는 급 흥분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전쟁 연애?!"

"조용히 말하렴, 레테."

안나가 괜히 부끄러운 듯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리처드는 술기운에 후후 웃었다.

"그래, 기적의 성녀와 7군단 요나의 전성기. 지금 같은 평화의 시대와는 거리가 멀었어."

그가 회상하듯 눈을 감았다.

"하늘엔 잿더미 비가 내렸고, 숨쉬기 힘든 흑연이 가득했지. 어딜 가도 죽은 사람의 시체가 산처럼 굴러다니고, 강은 피로 붉게 물들었다. 지금의 평화를 생각하면 참."

연애 이야기를 해달라고 졸랐는데, 갑자기 나 때는~ 하면서 요즘은 세상 좋아졌다는 훈계로 변질되었다.

레테는 뚱한 표정으로 접시를 들고 안나와 같이 부엌으로 갔고, 식탁에서 술 마신 아버지의 모험담을 들어주는 건 시몬뿐이었다.

그런데.

'듣다 보니 재밌는데?'

리처드는 시몬에게 군단장 이야기를 해준 적이 없었으니 쑥쑥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안나 선생님! 안나 선생님! 아까 이야기 계속 말해주세요!"

한편 안방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잠옷으로 갈아입은 레테가 옆에 침대에 누워서 계속 안나를 졸라댔다. 안나가 쑥스럽게 머리카락을 치켜세웠다.

"그래, 진정하렴. 음. 그이와 나는 처음엔 적으로 만났어. 싸우곤 있었지만 서로 얼굴은 몰랐지. 나는 성녀복 차림이라 면포로 얼굴을 가렸고, 그이도 해골 투구를 쓰고 있었으니까. 우리는 서로의 군대를 이끌고 전장에서 싸웠단다."

"그러다 중립지대의 로히버 마을에서 네 엄마를 만나게 됐다. 뭐, 일이 있어서 가끔 들르곤 했는데, 전장에서 떨어진 곳이라 방심하긴 했지."

"나도 당시는 긴 전쟁과 성녀 생활에 피로감을 느껴서, 혼자 막사를 빠져나와 중립지대의 마을에 들렀단다."

"그 시기에 네 엄마가 붙잡혀서 사기를 당하고 있더구나. 내가 가서 불한당을 쫓아낸 뒤 목적지까지 데려다주기로 했지. 그게 계기였어."

"말투가 틱틱거리고 거셌지만,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눠보니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단다. 그러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시몬과 레테는 점점 더 과몰입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누가 먼저 사귀자고 했어요?"

두 사람이 동시에 물었고, 리처드가 말했다.

"당연히 고백은 내가 했지만 네 엄마가 유혹......."

"리처드!!"

안방에 있던 안나가 벌게진 얼굴로 벌떡 일어났다. 리처드가 움찔하며 등을 의자 등받이에 붙였다.

"헛소리할 거면 들어가 자요! 당신이 나한테 무슨 말을 했고 무슨 짓을 했는지 똑똑히 기억하는데 무슨!"

"그, 그래."

"자, 이야기는 여기까지! 이제 다들 자자꾸나. 너무 늦었어."

안나는 부끄러운지 손뼉을 쳤다.

시몬과 레테가 세상이 무너진 표정을 지었다.

"이, 이렇게 궁금하게 해놓고 자라뇨?"

"레테."

"......아, 알았어요."

레테가 얼른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었다. 안나가 말했다.

"시몬도 방으로 올라가렴."

"넵."

시몬은 아쉬움을 삼키고 계단을 올라가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웃차."

잠옷으로 갈아입고 방에 누웠다.

'와, 졸음이.'

오늘 내내 힘들어서 순식간에 잠에 빠져들었다.

그렇게 잠이 들고 얼마 안 가.

달칵- 달칵-

밖에 바람이 세게 부는지 창문이 유난히 흔들렸다.

'문 열어놨나?'

잠에서 깬 시몬이 눈을 비비며 앞을 보는데.

휘이이이이잉-!

창문이 벌컥 열렸다. 그리고 밖에서 달빛이 쏟아져 시몬의 시야를 가렸다.

"윽."

시몬은 잠시 눈을 감았다가 떴다.

마치 내리쬔 달빛을 모아 바른 듯한 은빛 머리카락이 휘날리는 모습이 보였다. 이내 작은 소녀가 침대 앞으로 내려와 손을 번쩍 드는 모습이 보였다.

"안뇽! 시몬!"

언젠가 본 적 있는 모습에 시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네, 네프티스 님?!"

시몬은 머리가 멍해졌다.

왜 그녀가 여기에 있지?

"오랜만이야, 시몬! 놀랐지? 놀랐지?"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돌고 있는 네프티스를 보며, 시몬은 등줄기에 땀이 주르륵 흐르는 것을 느꼈다.

'큰일 났다.'

레테가 아래층에 안나와 같이 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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