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731화
레테가 아래층에 안나와 함께 자고 있다.
암흑연합의 입장에서 가장 위협적인 존재인 성녀가 지금 레스힐에 떡 하니 있는 거다.
'암흑제 때와는 상황이 달라!'
국경의 무단 침입.
당장 전투가 벌어지고 네프티스가 레테의 목숨을 빼앗아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었다.
손쓸 틈도 없는 참극이 벌어지기 전에 어떻게든 대처해야 했다.
잠시 머리를 굴리던 시몬이 이내 큰소리로 외쳤다.
"아하하! 네프티스 님! 정! 말! 오랜만! 이에요!"
힘껏 내지른 목소리가 집안 가득 울려 퍼졌다. 시몬은 뒤를 힐끔 보며 입을 최대한 벌렸다.
"네프티스 님! 너무 반가워요! 어쩐 일로! 저희 집에 오셨어요!"
또박또박 목에 힘주어 말하면서, 마음속으로 간절히 빌었다.
제발.
제발 눈치채 주세요.
우당탕!
시몬의 신호를 들은 걸까, 방 밑에서 다소 시끌벅적한 소리가 났다.
"응? 나 귀 안 먹었어, 시몬!"
네프티스가 양 허리에 앙증맞은 주먹을 얹으며 말했다.
"가까이 있으니까 작게 말해도 되는데."
"아하하! 너무 반가워서 그만......."
"리처드랑 안나도 밑에 있지?"
네프티스가 지나쳐 가려고 하자, 시몬이 얼른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
"네프티스 님! 사실 제가 긴히 상담 드리고 싶은 문제가 있는데요!"
레테가 도망칠 때까지 어떻게든 시간을 벌어야 했다.
뇌를 거치지 않고 되는대로, 떠오르는 낱말을 입 밖으로 쏟아냈다.
"저번에 주신 본 드래곤에 대해서예요! 최근에 제가 본 드래곤을 연습한다고 고대종 드레이크를 확보했는데요, 용의 마법을 사용하는 동시에 사념으로 언데드를 통제하는 게 쉽지 않더라고요. 특히 아론 교수님이 말씀하시는 바로는......."
거기까지 말한 시몬의 눈에 당혹감이 서렸다.
네프티스가 사라져 있었다.
"그 고민상담은 조금 있다 할게!"
어느새 그녀는 시몬을 지나 방 밖으로 빠져나온 상태였다. 폴짝 점프해서 계단에 연결된 난간 손잡이에 올라탔다.
"꺄하하하하! 리처드으! 안나!"
그러고는 미끄럼틀 타듯 주르르륵 내려갔다.
'놓쳤다!'
시몬의 안색이 흙빛으로 변했다.
다행히 마침 거실에서 자고 있던 리처드가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흔들며 뛰어왔다.
"네, 네프티스 님? 기별도 없이 여긴 어쩐 일로......!"
"안뇽! 리처드!"
뒤이어 안방에서도 안나가 뛰쳐나왔다.
"어머나, 안녕하세요~ 네프티스 님!"
"안나도 안뇽!"
리처드와 안나의 시선이 불안하게 흔들리고 있다. 반응을 보아하니 아직 레테가 도망치지는 못한 것 같았다.
안나는 두 손을 맞잡고 애써 상냥하게 웃었다.
"먼 길 오셔서 시장하시죠? 바로 식사 준비할게요!"
"응? 그럴 필요 없어! 새벽에 미안하잖아!"
"그럼 디저트는 어떤가요? 과자랑 아이스크림은?"
"아이스크림! 나 아이스크림 먹고 싶어!"
아이스크림만큼은 무조건 반사로 반응하는 건지 네프티스의 눈이 반짝였다.
그녀의 시선을 끄는 데 성공한 안나가 네프티스의 등을 떠밀어 주방으로 데려갔다.
"잠시 여기 앉아 계세요. 금방 준비할게요."
"실례합니다. 네프티스 님."
리처드가 잽싸게 의자 하나를 꺼내고는, 네프티스의 겨드랑이 사이에 손을 넣고 번쩍 들어서 자리에 앉혔다.
안나는 주방을 부산스럽게 뒤적거리며 과자든 뭐든 꺼내기 시작했다.
"흥흥흥."
네프티스가 두 발을 동동 굴리며 아이스크림을 기다렸다. 계단에서 내려오고 있던 시몬은 마침 안방의 레테가 슬그머니 옷장 문을 열고 나오는 모습을 보았다. 기척과 신성을 완전히 없앤 채 살금살금 걷고 있었다.
'이대로 창문으로 탈출해!'
시몬이 급히 손짓했다. 레테가 조심스럽게 열린 창문으로 나가려는 그때.
흐읍-
주방에 앉아 있던 네프티스가 코훌쩍이는 소리를 냈다.
이내 한 번 더 흐읍- 하더니.
앳취!
떠들썩하게 재채기를 했다.
집 전체가 뒤집힐 듯 와르르르 흔들리며, 주방의 선반이나 보관함 등 열리는 곳이라면 뭐든지 활짝 열렸다.
철컹!
달카닥!
반면 외부의 창문들은 모조리 요란한 소리를 내며 닫혔다. 창밖으로 빠져나가려던 레테가 움찔하며 멈췄다.
"흐읍, 감기인가 봐."
네프티스가 코맹맹이 소리를 내며 콧잔등을 쓸었다.
"나 아이스크림 나중에 먹을래. 피곤해서 자러 갈 거야."
그렇게 말한 그녀가 의자에서 폴짝 뛰어내렸다. 리처드가 후다닥 그녀의 앞을 막으며 옆을 가리켰다.
"새벽에 오셔서 피곤하신가 봅니다. 저기 손님방에서 주무시죠. 제가 바로 이부자리를 펴놓겠습니다."
"웅? 괜찮아, 리처드."
흐아암- 하고 하품을 한 네프티스가 눈을 비비며 뒤뚱뒤뚱 안방으로 걸음으로 옮겼다.
"저기 안방에 큰 침대 쓸게. 난 작아서 공간 조금만 쓰니까아......."
'큰일 났다!'
이번엔 시몬이 튀어나와 말을 걸었다.
"네프티스 님! 키젠의 학생회장으로서 이번 발락 사태에 대해 드릴 말씀이......!"
하지만 바로 뚫렸다. 시몬의 다리 사이로 쏙 하고 빠져나간 네프티스가 이내 흐암 소리를 내며 침대 위로 점프했다.
"피곤해애. 나중에 이야기해. 나중에."
풀썩!
침대에 드러누운 그녀는 잠이 솔솔 오는 표정으로 이불 속에 쏙 들어간 뒤, 얼굴만 내민 채 똑바로 누웠다.
'망했다.'
도저히 네프티스의 행동을 예측할 수가 없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네프티스가 오기 전에 레테가 옷장으로 돌아온 것 같지만,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시몬과 리처드가 딱딱하게 굳어 있는 사이 안나가 앞으로 나왔다.
"어머, 네프티스 님. 간단한 다과 준비됐답니다."
"내일 먹을게 안나, 음냐 음냐."
"많이 피곤하신가 보네요. 어쩔 수 없죠."
안나는 쟁반을 내려놓고 안방으로 걸어와 네프티스의 옆에 나란히 누웠다. 네프티스는 새근새근 소리를 내며 잠들 듯 말 듯 눈을 끔뻑거리고 있었다.
"자장가 불러드릴까요?"
안나의 제안에 네프티스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안나가 그녀의 배를 토닥토닥 두들겼다.
"우리 네프티스 님 잘도 잔다. 드르렁드르렁 잘도 잔다."
네프티스의 눈이 서서히 감기다가 이내 색색 숨소리를 냈다. 시몬과 리처드는 안도의 한숨을 쉬고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잠이 든 것 같았지만 절대 방심할 수 없었다.
레테에게는 가혹하겠지만, 날이 밝고 네프티스가 떠날 때까지는 계속 옷장에서 버티고 있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으으음."
그때 네프티스가 잠자리가 불편한 듯 뒤적거렸다. 이내 눈을 감은 콧등을 쓸다가 입을 벌리더니.
"앳취이-!"
크게 재채기했다.
덜컥!
달칵!
안방의 모든 서랍과 옷장이 벌컥 열렸다. 그리고.
"!"
레테가 숨어 있는 옷장 문도 열리고 말았다. 이불에 꽉 낀 채 들어가 있던 레테가, 옷장문이 열리면서 튕겨 나오듯 바닥에 엎어지고 말았다.
"응? 누구야?"
기다렸다는 듯 네프티스가 침대에서 일어났다.
레테가 주춤거리며 옷장에 등을 기댔고, 네프티스는 음흉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아! 암흑제 때 봤던 별의 성녀 맞지? 이게 웬 떡이야?"
네프티스가 즉각 거대한 칠흑을 개방했다. 사방에서 아공간이 열리고 눈 달린 새까만 관들이 튀어나왔다.
"지금이라면 처형해도 좋을 거라고 생각해!"
"잠깐만요 네프티스 님!"
시몬이 두 팔을 번쩍 들며 레테의 앞을 가렸다.
"제가......!"
"저희가 사정을 설명하겠습니다."
어느새 그런 시몬의 앞을 리처드와 안나가 막아섰다.
"아이들에겐 아무 잘못도 없어요. 이건 그저......."
"비키십쇼."
화아아아악-!
이번엔 레테가 신성을 일으키며 몸을 세웠다. 목에 찬 목걸이를 만져서 봉인을 해제하는 순간, 두 눈에 선명한 별모양 표식이 생겼다.
"댁들과는 상관없습니다. 이건 내 문제예요."
"레테!"
폴렌티아 일가와 선을 긋듯 차갑게 대꾸한 그녀가 별의 권능을 불러올 준비를 했다.
"쉽게 죽어주진 않을 검다, 죽음의 마녀."
"흐흠-"
앞다투어 튀어나오며 서로를 제지하는 이들의 모습을 지켜보던 네프티스가 묘한 미소를 지었다.
이내 손가락을 딱 하고 튕기자 주위의 눈 달린 관들이 사라졌다.
"시몬 폴렌티아. 레테 샤르데나."
그녀가 은빛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침대에서 폴짝 뛰어내렸다.
"두 사람에게만 할 이야기가 있어. 따라올래?"
그러고는 성큼성큼 밖을 향해 걸어갔다.
시몬이 리처드를 보았고, 리처드는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부터 알고 계셨던 것 같다. 큰 문제는 없을 것 같으니 따라가 보거라."
* * *
시몬과 레테는 네프티스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레테는 여전히 경계를 풀지 않고 있었고, 시몬은 어떻게 하면 이 상황을 잘 설명할 수 있을지 골똘히 고민 중이었다.
그때 네프티스가 뒤를 돌아보았다.
"헤헤, 너무 그렇게 긴장할 필요 없어! 추궁할 생각은 없으니까."
"......그럼 왜 여기까지 데려온 검까."
레테의 말에, 그녀는 빙긋 웃으며 덧붙였다.
"임무를 하나 맡기고 싶어서!"
"......임무?"
"오히려 더 잘됐네! 시몬에게만 맡길 생각이었는데, 두 사람이 같이 가면 성공률이 더 높겠지?"
어느 공터에서, 네프티스는 걸음을 멈췄다.
눈을 감고 두 팔을 벌리며 마법을 시전했다.
화아아아아아악!
사방에서 황금빛이 번쩍였다. 네프티스는 흑마법이 아닌 '이능'을 발현하고 있었다.
째깍! 째깍! 째깍! 째깍!
그녀가 가진 이능의 정체는 '시간'.
시곗바늘 소리가 가득 울려 퍼진다. 이능이 형상화된 마법진과 시계들로 주위가 온통 가득 찼다. 시몬은 마치 황금의 전당에 와 있는 것만 같다고 생각했다.
"너희들 혹시-"
두 사람을 돌아본 네프티스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운을 뗐다.
"시간여행 해본 적 있어?"
시간여행.
그 한 마디에 두 사람의 표정이 묘하게 얼어붙었다.
"어, 없는데요."
시몬이 얼떨떨한 목소리로 말했다.
"시간여행? 어디 뭐 동화에서나 나오는 이야기 아님까."
레테가 심드렁한 반응으로 팔짱을 꼈다.
"시간여행은 존재해, 심지어 실현 가능하지."
네프티스가 천천히 걸어 다니며 허공에 펼쳐져 있는 마법진을 조율하듯 툭툭 건드렸다. 그때마다 시곗바늘의 속도가 변하고, 다른 시계의 시간도 이에 영향을 받듯 움직였다.
"그럼 저희들에게 맡길 임무가 혹시...... 시간여행인가요?"
"맞아!"
네프티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레테는 여전히 수상하다는 듯 인상을 쓰고 있었다.
"상식적으로 그 말을 믿으란 검까."
"레테, 생각해 보니 나."
시몬이 진땀을 흘리며 그녀를 돌아보았다.
"......시간여행까지는 아니겠지만, 비슷한 건 해본 기억이 있어."
"네?"
1학년 1학기.
그 유명한 성녀사태.
그 당시 '정화의 성녀'는 키젠 조교로 분장한 채 학교에 진입해 키젠을 위기에 빠트릴 계획을 꾸몄다.
시몬은 정화의 성녀의 계획이 실현되어 키젠이 불바다가 되는 걸 목격했지만, 이내 네프티스가 준 시간의 아티팩트가 발현되는 것으로 다시 과거로 돌아와 플레마의 계획을 막아냈다.
시몬의 이야기를 들은 레테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그럼 이번에도......!"
"기억하고 있었네? 아, 물론 기껏 몇 시간 전으로 돌아갔던 그때와, 지금은 차원이 다를 거야."
네프티스가 마법진을 건드렸다.
"지금으로부터 22년 전."
"!"
"너희들이 임무를 수락한다면, 난 너희들이 태어나기도 전의 시간선으로 돌려보낼 거야. 바로 그곳에서."
그녀의 눈동자가 빛났다.
"리처드와 안나를 찾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