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734화
하늘에서 시커먼 유성세례가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레테가 급히 말고삐를 잡아당겼다.
"꽉 잡아요!"
마차의 방향이 옆으로 틀어졌다. 이내 달리는 마차 바로 옆에 불덩이 하나가 떨어지며, 꽝! 소리와 함께 차체가 급격히 기우뚱한다.
"큭!"
금방이라도 마차가 뒤집히려 하자, 시몬은 잽싸게 아공간에서 스켈레톤들을 꺼내 본 아머 상태로 변환한 다음, 무너지려는 마차 뒤편에 붙였다.
[밀어!]
본 아머들의 인력이 일제히 발휘되며, 마차가 덜컹거리는 소리와 함께 가까스로 자리를 잡았다. 레테가 말고삐를 당기며 외쳤다.
"나이스임다!"
시몬도 똑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하늘을 보았다. 새까만 유성들이 계속해서 떨어지고 있었다.
"발각당했나 봐."
"이제 어쩌죠?"
레테는 앞만 보면서 나무들을 피해 달리는 게 최선이었다. 쏟아지는 불덩이들이 사방에 떨어진다. 아슬아슬하게 직격은 피하고 있었지만, 이미 마차 뒤쪽에는 불이 붙었다.
그리고 바로 위에서도 유성 하나가 떨어지고 있었다.
"그냥 뛰어내려, 레테!"
시몬의 외침에, 레테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말고삐를 놓고 몸을 던졌다.
시몬도 뒤이어 마차에서 뛰어내리는 동시에, 새까만 불덩이가 마차에 정통으로 부딪혔다.
화르르르르륵!
마차가 순식간에 불살라졌고, 흥분한 말은 줄을 끊고 도망쳤다.
가파른 풀밭을 대굴대굴 굴러가던 두 사람은 평지까지 온 뒤에야 가까스로 멈춰 섰다.
힘겹게 고개를 들어보니, 불에 탄 마차가 계속해서 움직이다 뒤이어 내려온 여섯 개의 불덩이에 휩쓸려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모습이 보였다.
쿠구구궁-!
레테가 숨을 헐떡이며 입가를 닦았다.
"죽을 뻔했네요, 망할!"
그러나 시몬의 시선은 이미 마차를 벗어나 있었다. 그가 손을 들어 앞을 가리켰다.
"레테, 저기 봐."
"?"
정면을 응시한 그녀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뻥 뚫린 벌판 위로 새까만 뭔가가 다가오고 있었다.
"......악몽이네, 저게 다 언데드인 검까."
-캬아아아아악!
-끼이이이이!
각양각색의 언데드들이 함성을 지르며 돌격하고 있었다. 그 너머로 검은 로브를 입은 자들, 네크로맨서들이 뒤따르고 있다.
"전쟁이 벌어지고 있어."
그렇게 중얼거린 시몬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기 네크로맨서들 쪽으로 가면 아버지가 어디 있는지 알 수 있을지도 몰라."
"좋은 생각이네요, 그럼 저는."
키이이이잉!
키이이잉!
하늘에서 연달아 백마법진이 펼쳐지더니 새하얀 순백의 십자가가 벌판에 내리꽂히기 시작했다. 언데드들이 십자가에 깔리거나, 내뿜는 빛에 정화되어 바스라졌다.
"반대쪽에 프리스트들이 있는 모양이니, 그쪽으로 가볼게요."
"좋아."
시몬이 지도를 펼쳤다.
"그럼 둘로 갈라져서 조사했다가, 다음번에 만날 약속장소를 정하자. 여기."
시몬은 지금 있는 장소에서 적당히 먼 거리에 떨어져 있는 중립지대의 마을 하나를 가리켰다.
"이틀 뒤 자정에 파소니라 마을이란 곳에서 만나는 거야. 거기서 지금까지 정보를 교환하고, 앞으로의 방향을 정하자."
"좋슴다. 무슨 일이 있어도 여기서 만나는 거예요."
레테의 눈이 진지해졌다.
"안 오면 무슨 일이 생겼다고 판단, 한쪽이 찾으러 가는 걸로 하죠."
"응. 현대에서 온 결사의 일원이 누구고, 어느 진영에 붙었을지 모르니 조심해."
"난 괜찮으니 당신이나 조심하십쇼."
두 사람은 시선을 맞대고 고개를 끄덕인 다음, 동시에 등을 돌려 달렸다.
벌판에는 흑마법과 백마법이 연신 부딪히고 있었다.
* * *
시몬은 울창한 정글의 나무 뒤에 몸을 숨긴 채 네크로맨서 측의 전투를 따라 움직였다.
프리스트들의 백마법은 언데드들의 진군을 막지 못했으며, 결국 언데드들은 프리스트들이 지키는 요새 앞까지 도착했다.
웅장한 하얀 성벽이 보인다.
언데드들이 괴성을 지르며 이 하얀 성벽을 부수거나 오르려고 했지만, 성벽 위에서 쏟아지는 프리스트들의 화력 공세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지고 있었다.
프리스트들은 공격보다는 지키는 데 능했다.
방어, 회복, 축복, 강화까지.
실제로 프리스트들이 버티기로 마음먹고 지키는 요새는 네크로맨서의 입장에선 뚫기가 상당히 어려웠다. 그 이유가 지금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하지만 뭔가 믿는 구석이 있겠지?'
시몬은 성벽을 몰아붙이는 언데드들보다, 그 뒤에서 대기하는 네크로맨서 무리를 보고 있었다.
그중에 한 네크로맨서가 앞으로 나오고 있었다.
주변의 네크로맨서들이 중후한 베테랑 느낌이 난다면, 지금 중앙에서 걸어오고 있는 이 남자는 한결 젊어 보였다. 주머니에 두 손을 찔러넣은 채 불량스러운 걸음걸이로 어슬렁어슬렁 움직였다.
꽤 기른 푸른 머리카락과, 거뭇한 수염, 그리고 무수한 훈장이 달린 멋들어진 검은 제복을 대충대충 어깨에 걸치고 있다.
시몬은 그가 누군지 깨닫고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버지!'
제7군단장 시절의 리처드였다.
이렇게 빨리 발견하게 될 줄이야.
"사령관님."
한 네크로맨서가 고개를 숙였다.
"적의 저항이 거셉니다."
"그렇겠지."
리처드가 게슴츠레한 미소를 띠며 입가를 샐쭉였다.
"여기도 뚫리면 궁지에 몰릴 테니까. 자, 그 여자가 없는 오늘이야말로 요새를 점령할 절호의 기회다."
리처드는 주머니에 찔러 놓은 손을 빼내 천천히 하늘을 향해 들어 올렸다.
"찍어."
그 말을 들은 시몬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
하늘에서 끔찍하게 꾸물거리는 생체 주머니 같은 게 혜성처럼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하늘이 무수한 점으로 뒤덮였다.
-결계를 펼쳐라!
프리스트들의 외침과 동시에 요새의 위에 신성으로 이루어진 천장이 펼쳐진다. 생체 주머니들이 이 천장에 부딪히자 요란한 소리와 함께 대폭발을 일으킨다.
쿠구구구구-!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나무가 흔들릴 정도로 강렬한 위력. 생체 주머니들은 연신 천장을 두들겼고, 프리스트들은 모든 신성을 투입해 천장을 유지했다.
"거길 볼 틈이 있나?"
그렇게 중얼거린 리처드가 주먹을 움켜쥐었다.
이번에는 성벽이었다. 성벽 아래의 언데드들이 갑자기 분수처럼 솟구치더니 그 아래로 끔찍한 외형의 토룡 언데드들이 튀어나왔다.
순식간에 하얀 성벽을 점막으로 뒤덮고, 그 점막 위를 언데드들이 우르르 올라오기 시작했다.
"앞! 앞부터 막아!"
프리스트들이 우왕좌왕하기 시작했다. 결국 프리스트들이 유지하던 천장 한쪽이 생체 주머니에 무너져 내렸다.
"그 여자가 없으니 오합지졸이 따로 없군."
리처드가 빙글빙글 웃었다.
그는 다른 전장에 자신의 '더미'를 놓고 오는 기만책을 펼쳤다.
피어의 본 아머를 입은 더미가 군단장의 기술을 사용하며 프리스트들의 눈을 현혹하는 사이, 지금 자신은 여기에 있다.
텔레포트 마법진도 쓰지 않았으니 그들이 감지해서 대처하는 건 불가능했다.
"전원 투입 준비."
리처드가 그렇게 중얼거리며 두 팔을 펼쳤다.
절컥!
쿵!
풍뎅이를 연상케 하는 거대한 언데드의 외골격이 리처드의 몸을 빈틈없이 뒤덮었다. 이내 체형에 맞게 자리 잡으며 대형 언데드를 입은 형태가 되었다. 가슴판에는 여섯 개의 하얀 대검이 솟구쳤다.
꾸드드득!
꾸드득!
다른 네크로맨서들도 일제히 본 아머 등을 입으며 전투를 준비했다. 피로 자신을 덮거나, 맹독의 거체 안으로 들어가는 자들도 있었다.
순식간에 스무 명의 네크로맨서들이 전투 준비를 마쳤다.
"공간도약 마법진 준비됐습니다!"
다른 네크로맨서들은 그들의 앞에 도약 마법진을 펼쳤다. 리처드와 남자들이 그 앞으로 걸어갔다.
"체인 배리어 저주 준비됐습니다."
"신성저항 술식 완료."
그들의 몸 곳곳에 여러 선들이 복잡하게 이어졌다. 괴물의 안에 들어간 리처드가 입을 열었다.
[다들 위에 깨진 틈 보이지? 10초 후 발진해서 저 틈으로 진입한다. 진입에 성공하면-]
9.
다음 숫자를 세며 리처드가 말했다.
[안에 있는 프리스트를 닥치는 대로 없애라.]
카운트 다운이 빠르게 내려간다.
[6.]
[5.]
[4.]
시몬도 침을 꼴깍 삼키며 기다렸다. 모든 네크로맨서들이 자세를 낮추고 마법진을 이용해 진입할 준비를 한다.
[2.]
[1.]
화아아아아아아아악!
그리고 리처드가 돌진 명령을 내리려는 그 순간, 요새의 하늘에 눈부신 십자가가 일어났다.
[멈춰라!]
리처드가 다급히 소리쳤다.
그것은 형언할 수 없을 만큼 커다란 십자가로, 요새 전체를 합친 것보다 거대했다.
내려오던 생체 주머니들은 십자가에 닿기도 전에 정화당해 사라지고, 성벽에 달라붙은 언데드들까지 눈부신 빛에 휘말려 한 줌 재가 되거나 전신이 무너져 내렸다.
압도적인 힘.
키이잉-
본 아머의 투구가 뒤로 넘어가더니, 낭패감 어린 리처드의 얼굴이 튀어나와 하늘을 응시했다.
"제기랄, 와 있었던 거냐."
와아아아-!
위기에 빠졌던 프리스트들의 사기가 극도로 올랐다.
성벽을 공격하던 언데드들은 빠르게 증발해 가고, 생체 주머니의 수량도 이제 한계였다.
옆에 있던 네크로맨서가 말했다.
[명령을 내려주십시오 사령관님! 이런 좋은 기회는 두 번 다시 없을 겁니다! 어떻게든 언데드로 몸을 감싸고 돌파하면......!]
그러나.
리처드는 언데드 슈트를 완전히 열어젖히고 바닥에 내려왔다. 부스스한 머리카락을 긁적거리던 그가 쩝 하고 입맛을 다시며 등을 돌렸다.
[후퇴한다.]
"예?"
[저건 못 뚫어.]
리처드는 고개를 빙빙 돌리며 걸어갔다. 그의 군단형 언데드들이 뒤를 따르고, 전령들은 빠르게 병사들에게 퇴각 명령을 내렸다.
성벽에 붙어 있던 언데드 무리도 등을 돌려 후퇴했다.
-사악한 네크로맨서 놈들이 물러간다!
프리스트들은 승리를 선언하며 열렬히 환호했다.
시몬은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다시 움직였다. 빨리 리처드를 따라잡아야 했다.
리처드는 이 전선의 사령관인 모양이었다. 그의 에이션트 언데드들은 흩어져 있는 걸 보니 전쟁 하나를 통째로 지휘하는 모양. 언제 어디로 떠날지 모르니 지금 여기서 그와 접촉해야 한다.
그런데.
'만나서 뭐라고 말하지?'
시몬은 그런 고민을 하면서 일단 앞으로 걸었다. 네크로맨서가 아니면 의심할 것 같았기에, 바로 '드래고니안'을 꺼내서 입었다.
혼돈으로 소환마법진을 활성화하지 않아서 제대로 작동하진 않겠지만, 나 네크로맨서요 하고 증명하는 정도는 될 것이다.
"음?"
퇴각하는 네크로맨서들이 드래고니안을 입은 시몬을 발견했다.
다행히 앞을 막거나 위협하지는 않았다.
"처음 보는 얼굴인데."
"소속을 밝혀라!"
시몬은 여전히 드레이크의 투구로 얼굴을 가린 채 말했다.
"키젠에서 보내서 왔습니다. 요나 사령관님께 보고할 내용이 있습니다."
"갑자기 와서 뭐라는 거야. 사령관님을 만나 뵈려면 절차에 따라서......."
"오우."
그때 시몬의 등에 소름이 쭈우욱 돋았다. 어느새 그의 어깨에 털이 듬성듬성 자란 투박한 손등이 보였다.
"멋진 슈트인데."
'......등을 잡혔어?'
시몬이 삐걱거리는 고개를 움직여 뒤를 돌아보았다. 그림 같은 외모의 미청년이 짧은 턱수염을 만지작거리며 웃고 있었다.
"나한테 할 말이 있다고? 누가 널 보냈지?"
그 유명한 요나의 최전성기이자, 군단장 시절 젊은 모습이 눈앞에 있다. 시몬은 침을 꿀꺽 삼켰다.
에라 모르겠다.
될 대로 돼라.
"네프티스 님이 보내셨습니다!"
사실이긴 했다.
다른 네크로맨서들의 표정이 바짝 굳었고, 리처드는 잔소리 듣기 싫어하는 아들처럼 표정을 굳혔다.
"그 말을 어떻게 믿지?"
"여기."
시몬이 목에 맨 모래시계 외형의 아티팩트를 보였다.
"이 물건을 네프티스 님이 주셨습니다."
리처드는 고개를 쭉 내밀어 시몬의 아티팩트를 붙잡고 이리저리 훑어보았다. 긴장감에 머리가 새하얗게 타들어 갈 것 같았다.
"사령관님, 수상합니다."
"아니."
리처드가 눈을 감고 물러섰다.
"시간의 이능이 느껴진다. 그 할망구의 물건이 맞아."
시몬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래, 할망구의 심부름꾼. 무슨 일로 왔지?"
시몬은 후읍 하고 숨을 들이마시며 당돌하게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