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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737화 (737/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737화

그날 자정.

시몬과 레테는 몰래 각자의 진영에서 빠져나와 약속장소인 파소니라 마을에 도착했다.

작은 시골 마을이었는데, 이곳에 살던 사람들은 전쟁 때문에 도망친 건지 텅 비어 있었다.

"좋네요. 여기라면 차분히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 같슴다."

두 사람은 주인 없는 낡은 저택 안으로 들어왔다.

방음 마법진을 펼친 레테가 의자 하나를 빼내고 손바닥으로 먼지를 샥샥 치운 다음, 엉덩이를 붙였다.

시몬은 근처의 소파에 대충 쓰러지듯 앉았다. 먼지가 등에 묻었지만 피곤해서 상관하고 싶지 않았다.

"얼굴을 보니 많이 피곤해 보이심다."

"......그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거든."

"음?"

그녀가 킁킁 냄새를 맡더니, 의자에서 일어나 시몬의 앞으로 다가왔다. 이내 고개를 기울이고 다시 킁킁 냄새를 맡았다.

"레, 레테?"

"뭠까 이거."

레테가 싸늘한 표정을 지었다.

"술냄새? 많은 일이 있었다면서 중요한 임무 중에 술 퍼마실 여유도 있냐?"

"아니, 아니. 오해야!"

재빨리 고개를 가로저은 시몬이 해명했다. 밤마다 주점이나 술자리에 놀러 가는 리처드를 쫓아다니느라, 소량을 마시는 건 어쩔 수 없었다는 이야기였다.

해명을 들은 그녀는 비로소 알 만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털썩 의자에 앉으며 손가락을 까딱했다.

"그럼 각자 상황을 공유해 보죠."

시몬과 레테는 각자가 맡은 리처드와 안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리처드는 통제불능 망나니였다. 본인의 직책을 망각하고 밤마다 유흥을 즐기러 다니기 일쑤였다.

시몬이 못 하게 막으면, 숲으로 들어가서 사슴 사냥을 하거나 괴물 낚시를 하는 등 더 힘든 유희를 하러 갔다. 같이 따라간 시몬은 잠을 제대로 못 자서 피로에 찌들 지경이었다.

동료들에게 들은 바로는 이게 그나마 많이 자제하는 거라고. 평소에는 훨씬 더 살벌하게 논다고 한다.

"자괴감이 드네요."

시몬의 이야기를 들은 레테가 심각한 표정으로 턱을 짚었다.

"그런 바람둥이와 안나 선생님을 이어지게 해야 한다니. 임무 처음부터 느꼈지만, 썩 탐탁지가 않슴다."

"...사적인 감정은 개입하지 않겠다며? 모든 건 평화의 시대를 위해서야."

"네, 네. 알고 있슴다."

이번에는 레테가 시몬에게 안나의 상황을 설명했다.

한 치의 빈틈도 없는 바른생활녀.

어릴 때부터 신전에서 자라서 사회의 어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온실 속의 꽃. 지나치게 착해빠진 성격에, 남자에 대해 어떻냐고 물으니 남성으로 태어난 사람이라고 답하는 연애세포 종말자.

그리고.

"아직도 황새가 아기를 물어다 준다고 알고 있...... 끙."

시몬이 골치 아픈 듯 이마를 두들겼다. 레테도 픽 웃었다.

"안나 선생님을 가르쳤던 대주교들도 문제임다. 얼마나 눈과 귀를 막고 둥기둥기 키웠는지 그쪽 상식은 전무하더라고요."

잠깐 화를 내던 레테가 이내 입가에 은근한 미소를 지었다.

"뭐어, 쓸데없는 것들은 생략하고 신앙공부에만 집중했으니 지금의 기적의 성녀가 탄생할 수 있던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그런 모습이 보호 본능을 불러일으키기도 하고...... 우후후."

"집중해 레테."

시몬은 잠시 수통을 꺼내 목을 잠깐 축였다.

"그럼 일단 모였으니, 중요한 핵심을 논해보자."

"중요한 핵심이요?"

"응. 지금 이 일련의 상황들이 '역사대로' 흘러가고 있는지 아닌지. 그것부터 정확히 파악해야 해."

역사대로 흘러가고 있다면 시몬과 레테가 개입해서는 안 된다. 리처드와 안나는 자연스럽게 이어질 테니까.

하지만 기존의 역사대로 가는 게 아니라면, 시몬과 레테가 어떻게든 본래의 역사대로 흘러가도록 바로잡아야 했다.

"저는 이미 역사가 삐뚤어졌다고 봄다."

레테가 턱을 괴며 말했다.

"제비와 온실 속의 꽃. 제7 군단장과 기적의 성녀. 환경도 그렇고 시대적 분위기도 그렇고, 두 사람이 사랑에 빠질 가능성이 조금도 보이지 않슴다. 서로 정체를 알게 되면 리처드는 안나 선생님을 죽이려 할 테고, 안나 선생님도 주입식 교육을 받았으니 네크로맨서라면 일단 선제공격을 가하고 보겠죠."

"아니지, 잘 생각해 봐."

시몬이 목소리에 힘을 주었다.

"결국 그 불가능해 보였던 제7군단장과 기적의 성녀가 서로 사랑에 빠졌다는 건 엄연한 역사적 사실이야. 그리고 예전에 아버지랑 엄마가 각자 서로에 대해 이야기해 주신 적이 있는데."

시몬이 잠시 말을 끊고 생각에 잠겨 있다가 말을 이었다.

"맞는 것 같아. 아버지는 내키는 대로 세상을 떠돌아다니며 사셨고, 어머니는 세상 물정 모르고 모든 게 신기한 신앙소녀. 이 조건은 예나 지금이나 동일해."

"당신은 아직 역사대로 흘러가고 있단 의견이네요."

"맞아."

레테가 등을 뒤로 기울이며 흠- 하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역사대로 순탄히 흘러갈 거라면, 죽음의 마녀가 무리해서 우릴 과거로 보낼 이유가 없지 않겠슴까. 당신도 들었잖아요? 결사의 일원이 이 시대로 왔다고."

"응, 나도 미래에서 온 결사가 가장 큰 변수라는 사실에는 동의해. 하지만 그 결사의 일원이 바꾸려는 게 정말 우리 아버지와 엄마의 상황일까?"

단서가 적어서 아직 섣부른 판단을 할 수는 없었다.

레테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안나 선생님과 리처드가 맺어지는 장소에 한번 가보죠."

"음?"

"잊었슴까? 레스힐에서 저녁 먹으면서 이야기했을 때 말임다."

-그러다 중립지대의 로히버 마을에서 네 엄마를 만나게 됐다.

-나도 당시는 긴 전쟁과 성녀 생활에 피로감을 느껴서, 혼자 막사를 빠져나와 중립지대의 마을에 들렀단다.

-그 시기에 네 엄마가 붙잡혀서 사기를 당하고 있더구나. 내가 가서 불한당을 쫓아낸 뒤 목적지까지 데려다주기로 했지. 그게 계기였어.

로히버 마을.

그 단어가 시몬의 머릿속에 꽂혔다.

"그럼 두 분을 그 마을에서 만나게 하면 되겠네!"

"그렇슴다. 거기서 만나는 게 원래 역사니 리스크도 적고요."

시몬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말 나온 김에 바로 답사하러 가보자. 여기서 그리 멀지도 않아."

결정했으면 발 빠르게 움직여야 했다. 두 사람은 시몬의 골렘 보드를 타고 곧장 로히버 마을로 이동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마을 앞에 도착한 순간.

"......아."

시몬과 레테는 눈 앞에 펼쳐진 광경에 할 말을 잊고 말았다.

로히버 마을은 이미 폭격으로 쑥대밭이 되어 있었다.

* * *

"이걸로 모든 상황이 역사적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전제는 완전히 깨졌슴다."

하염없이 폐허가 된 로히버 마을을 돌아보던 두 사람 중에서, 먼저 냉정을 되찾은 건 레테였다.

"우리가 해결해야 해요."

"그렇긴 한데."

시몬이 이마를 짚었다.

"갑자기 좀 막막하게 느껴지네. 가장 중요한 사건이었던 두 분의 첫 만남부터가 물 건너갔어. 처음부터 완전히 꼬여 버린 셈이야."

"약한 소리 할 때가 아니잖슴까."

레테가 박력 넘치게 팔을 펼쳤다.

"처음부터 꼬였으면, 처음부터 완전히 우리 방식대로 새롭게 시작하면 돼요! 같이 고민해 보죠."

"응, 알았어."

시몬은 레테가 함께 과거에 와줘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두 사람은 폐허 앞에 쪼그려 앉아 논의를 시작했다. 물론 넉넉히 고민할 시간은 없었다. 곧 동이 틀 테고, 각 세력에서 두 사람이 사라진 걸 발견하면 스파이로 의심할지도 모른다.

두 사람은 아이디어를 짜기 위해 리처드와 안나에게 들은 연애 이야기를 정리했고, 그러다 보니.

"방법...... 방법...... 그래!"

시몬이 눈을 빛내며 벌떡 일어섰다.

"봉사활동이야!"

레테가 응? 하는 반응을 보였다.

"레스힐에서 폭우로 집을 잃은 이재민들을 다 같이 돕던 거 기억하지?"

"네."

"그때 아버지와 엄마 반응도 좋았잖아."

"사람들 다 보는 앞에서 키스하고 난리 났었죠."

리처드와 안나는 평소에도 자주 봉사활동을 하러 다녔다. 비단 레스힐뿐만 아니라, 가까운 지역이 위기에 빠지면 직접 도우러 가기도 했다. 특히 안나는 개인적으로 고아원을 운영하기도 했을 정도였다.

시몬의 설명을 들은 레테가 턱을 쓸었다.

"전쟁 피해자들의 봉사활동을 명목으로 두 사람을 만나게 한다. 확실히 좋네요. 같이 일하다 보면 부딪히는 일도 많을 거고, 미래에 자주 봉사활동을 다녔다고 했으니 두 사람 모두 이 일을 좋아할 것도 확실하고. 다만-"

레테가 시몬을 가리켰다.

"리처드는 어떻게 데려올 건데요?"

"아."

"안나 선생님이야 워낙 마음씨가 착하니까, 내가 잘 설득하면 어떻게든 될 검다. 하지만 리처드는 놀러 다니기 바쁜 베짱이 같은 사람인데, 봉사활동? 퍽도 잘 기어들어 오겠네요."

"그건 내가 어떻게든 해볼게."

시몬이 씩 웃으며 말했다.

"대신 한 가지만 준비해 줘."

주위를 한번 둘러본 시몬이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듯 계획을 설명했다. 레테의 표정이 점점 해괴하게 일그러졌다.

"자, 여기."

시몬이 네프티스가 준 가방을 뒤적거리다가 마력 촬영기를 꺼냈다.

"마나 잔량이 아주 여유롭진 않아. 한두 장 만에 확보해야 해."

마력 촬영기를 받은 레테가 한숨을 푹푹 쉬었다.

"하아, 진짜. 성녀인 내가 왜 도촬 같은 짓을......."

"잘 부탁해. 누구로 할 거야?"

"뭐."

레테가 히죽 웃었다.

"생각나는 사람이 한 명 있긴 하네요."

* * *

작전이 시작됐다. 각자의 진형으로 복귀한 두 사람은 바쁘게 움직였다.

오늘도 점심 예배까지 기다린 레테는 언제나처럼 안나의 무릎을 차지하고 누운 뒤 말했다.

"안나 선생님, 전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갑자기 불쑥 튀어나온 민감한 주제에, 안나의 표정이 굳었다.

"저, 전쟁은 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하니 하지 않는 게 제일 좋지만, 데바 여신님의 뜻을 위해 어쩔 수 없이......."

"그럼 성전을 위해 죄 없는 사람들이 휘말려 죽어도 어쩔 수 없는 셈 쳐야 할까요?"

"아, 아뇨! 그건......."

"특히 여긴 암흑연합도, 신성연방도 아닌 중립적인 땅이잖아요. 저는 이곳의 사람들이 불쌍하다고 생각해요."

레테는 최근 봐왔던 전쟁의 참극에 대해 줄줄 이야기를 쏟아냈다.

안나는 상부의 명령으로 남의 땅에서 적과 싸우고 있다. 직접적으로 민간인들을 죽이지 않았지만, 전쟁에 참여하는 이상 이 책임에 자유로울 수는 없다.

"네, 물론 한번 일어난 전쟁을 주워 담을 수는 없겠죠. 하지만 죄 없는 전쟁 피해자들을 위해 안나 선생님은 어떤 일을 하시나요?"

"아, 그."

안나가 소심하게 손을 꼼지락거렸다.

"기, 기도를 드려요. 여신의 은혜가 그들에게 닿도록."

"물론 기도도 좋지만요."

레테가 눈을 게슴츠레 떴다.

"피난민들은 당장 먹을 게 없어서 굶어 죽고, 부모를 잃은 고아들은 의존할 사람도 없이 떠돌아다니다가 폭격에 맞고 있는데요?"

"아으으. 하지만 지금의 제가 할 수 있는 건 그런 것밖에......."

교육과 현실의 괴리감에 안나의 눈망울에 이슬이 맺혔다. 레테는 순간 마음이 약해질 뻔했지만, 이내 강하게 마음을 다잡았다.

"그, 그럼 저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바로 그 물음을 기다렸다는 듯 레테가 빙긋 웃었다.

"실천이죠."

"실천?"

"네! 작은 도움이라도 자발적으로 고아들을 찾아가서 보살펴 주고, 맛있는 것도 만들어주고, 놀아주기도 하고, 뭐 그런 거죠."

안나가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

"좋네요! 전쟁 피해자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거라면 뭐든지 하고 싶어요!"

그렇게 두 사람이 봉사활동 계획을 세우고 있는 그때.

뒤쪽에서 질투심을 불태우는 이스라필의 모습이 보였다.

'드디어 왔네.'

레테는 안나와의 대화를 마무리하고는 이스라필에게 다가갔다.

"흐흥, 안녕하세요 이스라필 님."

"뭐죠?"

이스라필이 팔짱을 낀 채 싸늘하게 말했다. 레테가 빙긋 웃었다.

"잠깐 저랑 차 한잔하시면서 이야기할래요? 안나 선생님에 대해 말씀드릴 것도 있고."

그렇게 말하는 그녀는 등 뒤로 마력 촬영기를 숨기고 있었다.

* * *

며칠 후, 시몬은 리처드에게로 향했다.

당장 전쟁이 벌어지고 있진 않지만, 리처드는 바빴다. 7군단 내의 여러 부대를 총괄하는 그는 막 다른 에이션트 언데드들 간의 분쟁을 해결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얼굴에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타이밍이 별로 안 좋은데.'

봉사활동 이야기를 어떻게 꺼내면 좋을까.

그런 고민을 하고 있는데 리처드가 먼저 시몬에게 말을 걸어왔다.

"어디 갔다 왔냐 감시자. 바쁠 때는 쏙 빠지고."

"하하하, 저도 할 일이 있으니까요."

"뻗대긴."

리처드가 능글맞게 웃으며 걸어갔다. 시몬은 그 뒤를 빠른 걸음으로 따르며 말했다.

"피곤해 보이시네요."

"당연하지. 늘 하던 대로 스트레스 풀러 가는데, 네가 따라와서 잔소리해대니까 흥이 팍 식는다고."

"저도 그건 죄송하게 생각해요."

"퍽이나."

리처드가 혀를 끌끌 차며 걸음에 속도를 높였고, 시몬도 뒤따라 붙으며 말했다.

"그런 의미에서, 요나 사령관님께 한 가지 제안하고 싶은 게 있어요!"

리처드의 표정이 묘하게 일그러졌다.

"또 헛소리하면 죽는다."

"네프티스 님이 염려하시는 건 요나 님의 문란한 사생활이고, 요나 님이 원하는 건 이성과의 만남이죠?"

아버지와 어머니의 만남을 위해.

이제는 승부수를 던질 시점이었다.

"이 두 가지 모두를 충족할 만한 방법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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