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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739화 (739/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739화

'......자, 어떻게 대답해야 하지?'

시몬이 진지하게 고민에 빠져 있는 사이, 리처드는 자신의 옷차림을 훑어보고 있었다.

"쯧, 오늘따라 옷도 영 아니고. 시선을 끌려면 군단장이란 신분이라도 까야 하나?"

시몬이 화들짝 놀라서 말했다.

"정체를 밝히는 건 안 돼요! 이쪽 지역 사람들은 암흑연합과 신성연방, 두 쪽 모두 싫어하잖아요."

"그렇긴 하지."

시몬은 차분한 어조로 설득을 시작했다.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 말고요, 조금 더 몸에 힘을 빼고 편하고 솔직하게, 본 모습으로 사람을 대하는 건 어떨까요?"

"뭐?"

"제가 보기에 요나는 좋은 사람이에요. 당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거예요."

그 말을 들은 리처드가 코끝을 확 찌푸렸다.

"니가 나에 대해 뭘 안다고 그런 소릴 하지?"

'그야 당연히 알지.'

내가 당신 아들이니까.

당신과 함께 지냈던 시간. 당신을 우러러보며 자랐던 나날들. 시몬은 그거야말로 진짜 리처드의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조금 볼품없어 보이면 어때요? 인간 요나로서 본연의 모습. 그냥 어깨에 힘 빼고 마음 편하게 대하세요. 그런 분위기에 다른 여성분들도 편안함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요?"

"......."

"괜한 간섭이었다면 죄송합니다."

리처드가 파이프 담배를 꺼트리고 픽 웃었다.

"너도 사실 선수냐?"

"네?"

"애송이 같은데 말은 청산유수로군."

리처드는 자리에서 일어나 걸음을 옮겼다.

* * *

아이들이 깨어나며 본격적인 고아원의 봉사활동이 시작됐다.

왜 원장이 아이들이 깨어나기 전에 아침준비를 해야 한다고 그렇게 강조했는지 알 것 같았다.

-꺄하하하하하!

-꺄르르르륵!

엄청나게 정신없었으니까.

아이들은 눈을 번쩍 뜨자마자 떠벌떠벌 입을 쉴 새 없이 움직이며 사방으로 뛰어나갔다. 새로운 사람들이 신기한 듯, 기웃거리며 다가와 '형은 누구예요?' 하고 쫑알댔다.

'많기는 많다.'

이 봉사활동에서 아이들을 다루는 능력은 필수적이었다. 뭔 일을 하더라도 아이들을 잠깐 떼어놓고, 그사이에 일을 해야 했다.

그리고 이 와중에 봉사자들 중에 가장 신이 난 건 안나였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아이들이 안나의 따뜻한 마음씨를 한눈에 알아보기라도 한 걸까. 그녀에게 몰려들어 재잘재잘 질문을 던져댔다. 안나는 웃으며 한 명 한 명 정성껏 답해주고 있었다.

그리고 가장 인기가 없는 쪽은 리처드였다. 냉랭한 분위기를 풍기며 근처 나무에 등을 기댄 채 팔짱을 끼고 있으니, 아이들도 접근하지 않았다.

"......."

그런 리처드를 어쩐지 못마땅한 표정으로 쳐다보던 안나가, 이내 외면하듯 아이들을 다른 곳으로 데려갔다.

남겨진 리처드의 주위는 순식간에 한적해졌다. 리처드는 그게 익숙하다는 듯 파이프 담배를 꺼내려는데.

기웃기웃-

한 남자아이가 호기심을 가지고 리처드에게 다가왔다.

"아저씨는 누구예요?"

'아저씨라니.'

리처드가 속으로 한숨을 쉬며 파이프 담배를 집어넣었다.

"내가 누군지 알면 놀랄 텐데."

"궁금해요!"

"나는 '전사'다."

푸훗-!

아이가 입을 가리며 비웃음을 흘렸고, 리처드가 눈썹을 들썩였다.

"그것도 대륙 최고의 전사지."

"에이~ 거짓말."

"이것 봐라."

리처드가 손끝에 마나를 흘려보내 휘둘렀다. 위에서 절단된 나뭇가지가 떨어서 손안에 들어오자, 아이가 와~ 하고 눈을 빛냈다.

"내 일격에 바다가 갈라지고."

후우우우웅!

그가 나뭇가지를 힘차게 휘둘렀다.

"내 위엄에 산천수목이 바닥에 엎드렸지."

이내 앞으로 지르자 대기가 경쾌하게 찢어지는 듯한 소리가 났다. 주위의 나무들이 쏴아아 하고 흔들렸다.

"이래도 못 믿겠냐?"

"못 믿어요!"

"당돌한 꼬맹이."

리처드가 아이의 머리를 휙휙 쓰다듬은 후 말했다.

"못 믿겠으면 내 남부 왕국에서의 모험담을 이야기해 주지."

"좋아요!"

리처드는 의외로 아이들과 잘 맞는 성격이었다.

특유의 허세와 과장된 농담들이 아이들에게 잘 맞았다. 그가 모험 이야기를 시작하자 주위의 아이들도 하나둘씩 관심을 가지고 기웃거렸다.

"그때 내가 이렇게 외쳤지. 아니바바 왕국의 공주님 나가신다!"

리처드가 작은 여자아이를 목말을 태우고 공터로 뛰어갔다. 다른 아이들도 꺄르르 웃으며 그의 뒤를 따랐다.

이내 공터에서 신나는 놀이시간이 벌어졌다.

"잡으러 간다! 인간!"

무슨 설정인지, 그가 몬스터 목소리를 흉내 내자 아이들이 꺄르르르 웃음을 터뜨리며 도망쳤다. 어느새 고아원의 절반이 넘는 아이들이 리처드와 놀고 있었다.

"......."

그리고 아이들에게 간식 먹으라는 이야기를 하러 온 안나는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 불량한 사내가 아이들과는 무척이나 잘 놀아주고 있었다. 얼굴엔 낙서가 가득하고, 머리카락도 여자아이들이 끈으로 꼬아놓았지만 개의치 않았다. 네 발로 뛰어다니며 '크악!'하고 소리 지르자 아이들이 배꼽이 빠져라 웃으며 도망쳤다.

"얘들아. 이만 밥 먹으러 가야지?"

안나가 말했다.

"리처드 아저씨랑 더 놀고 싶어요!"

"나도!"

아이들은 더 놀고 싶어 하는 분위기였다.

그때 리처드가 안나에게 눈짓으로 신호를 보내더니, 흠흠 헛기침을 했다.

"저 멀리 섬! 새로운 섬이 보인다. 우리 바이킹의 전사들은 육지에 정박하여 잠시 쉬어가기로 한다!"

"와아!"

쿵!

그가 나뭇가지를 바닥에 찍었다.

"항구에서는 뭘 해야지? 올리버 항해사."

"다음 항해를 준비해야 합니다!"

"그래, 저기 보니 맛있는 냄새가 난다."

툭툭.

"다음 항해를 위해 식량을 확보하라! 가라!"

"와아아앙!"

아이들이 우르르 식당을 향해 달려갔다. 안나는 정신없이 달리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나긋한 미소를 지었다.

"......."

이내 아이들이 가고 두 사람만이 남겨졌다.

리처드가 제 허리를 두들기며 한숨 돌리고 있는데.

"아이들이랑 잘 놀아주시네요."

놀랍게도 안나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

목소리를 보니 그에 대한 경계심도 많이 누그러져 있었다.

"아이들이 나랑 놀아준 거죠. 원래 방 안에서 혼자 이렇게 놉니다."

"푸훗."

안나가 입을 가리며 웃었다.

이내 두 사람은 그 자리에서 이런저런 잡담을 나누었다.

생각보다 이야기가 잘 통했다. 리처드는 느끼한 멘트 없이 담백하게 술술 대화를 이어나갔고, 안나도 손뼉을 치며 말을 잘 받아주었다.

"저는 아일라라고 해요. 이름을 여쭤봐도 될까요?"

이제야 물어보는 건가.

안나의 물음에 답하려고 했던 리처드는 순간 말문이 턱 막히는 것을 느꼈다.

가문에서 나온 뒤, 늘 '요나'라는 가명으로 살아왔다. 이제는 그 요나란 이름이 자신의 진짜 이름이 됐고, 세상에 널리 알려져 암흑연합을 대표하는 상징 중 하나가 됐다.

하지만 여기선 그 이름을 댈 수 없다.

"내 이름은......."

안나가 고개를 갸웃했다.

"왜 그러시나요?"

이게 어떻게 얻은 관심인데. 이름 가지고 질질 끌어봐야 좋을 게 없었다. 결국 그는 입 밖으로 튀어나오는 것을 말했다.

"리처드라고 합니다."

그렇게 말하고는 스스로 놀랐다.

학대하던 가문에서 나온 뒤 처음으로 입 밖으로 내뱉어본 자신의 실명.

그 아버지가 지은 끔찍한 이름이었고, 다시는 그 이름으로 불릴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머."

안나가 꽃봉오리가 만개한 것 같은 미소를 지었다.

"멋진 이름이네요, 리처드."

"......."

심장이 뛰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리처드는 그 이름이 좋아졌다.

* * *

시몬과 레테는 아이들의 배식을 마치고 밖으로 나왔다.

"히, 힘드네."

시몬이 건물 밖에 나와 터덜터덜 걸으며 중얼거렸다.

워낙 정신없이 일하느라 리처드와 안나에 전혀 신경을 쓰지 못했다.

"그런데 두 사람은?"

"쉿!"

레테가 입술 위에 검지를 올리더니, 시몬의 멱살을 잡고 벽 옆으로 끌어당겼다. 이내 고개만 빼꼼 내밀어 리처드와 안나를 보았다.

벤치에 나란히 앉은 두 사람이 살갑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리처드는 이미 빨갛게 상기된 얼굴이었고, 안나도 호감 어린 미소를 짓고 있었다.

"됐어! 됐어! 됐다구요오오!"

흥분한 레테가 숨죽인 비명을 지르며 시몬의 몸을 마구마구 흔들었다.

"우리가 해냈어요!"

"지, 진짜 사이가 좋아진 거야? 저렇게 쉽게?"

"괜히 미래의 부부겠슴까?"

레테가 두 뺨을 감싸며 은근한 미소를 지었다.

"흥, 인정하긴 싫지만 이렇게 보니 잘 어울리긴 하네요."

멋들어진 선남선녀의 모습이었다.

리처드가 뭔가 농담을 했는지, 안나가 청초하게 입을 가리며 웃음을 흘렸다. 점점 두 사람의 사이가 가까워지고 있는 게 느껴진다.

'이제 됐어.'

시몬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역사가 조금씩 바로잡히고 있어.'

레테가 킥킥거리며 시몬의 어깨를 두들겼다.

"안 태어나는 꼴은 면해서 다행임다?"

"조용히 해."

* * *

리처드와 안나는 봉사활동 시간 내내 붙어 다녔다.

고아들을 돌보면서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리처드는 자신이 대륙을 돌아다니면서 겪은 모험담을 이야기했고, 여행은커녕 늘 신전에 갇혀 지냈던 안나는 설렘을 느끼며 그 이야기를 들었다.

안나는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다니는 리처드의 모험을 동경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어느새 날이 저물어갔다. 신나게 뛰놀던 아이들도 하나둘씩 보호소에 들어갔고, 이제는 헤어질 시간이 다가왔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네, 즐거웠어요."

"그럼."

두 사람이 고개 숙여 인사하고는 등을 돌려 걸어갔다.

그러다 안나가 먼저 걸음을 멈추고 돌아보았다.

"리처드."

"아, 예."

안나가 부끄러운 낯을 끌어올리며 발끝을 모으다가 말했다.

"다음 주 봉사활동도 오실 건가요?"

그 말을 들은 리처드가 다소 멍한 표정으로 그녀를 돌아보았다. 이내 입가에 서서히 환희가 올랐다.

"반드시."

"반드시까지야."

두 사람이 웃음 지었다.

이내 리처드가 성큼성큼 다가와 안나의 손안에 뭔가를 쥐여주었다.

"이건?"

"바다, 아직 한 번도 본 적 없다고 하셨죠."

작은 소라 껍데기였다. 그녀가 감탄성을 흘렸다.

"예쁘다."

"언젠가 내가 데려다주겠습니다."

두 손을 꼭 맞잡은 안나가 감격에 떨리는 목소리로 답했다.

"네!"

그렇게 하루 만의 봉사활동이 끝나고 두 사람은 시몬, 레테와 함께 각자의 진형으로 돌아갔다.

"안나 선생님! 어땠어요?"

마차 안에서 레테가 은근슬쩍 물었다. 안나는 가슴에 손을 올리며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행복했어요! 보람도 넘치고요! 힘든 상황에도 씩씩하게 웃는 아이들을 보니 마음이 들뜨네요. 레나의 말대로 오길 잘했어요."

"흐흠-"

레테가 눈을 가늘게 뜨며 고개를 내밀었다.

"그러고 보니 오늘 내내 누군가랑 붙어 다니시던데~"

안나가 흠칫 몸을 떨었다. 두 볼이 어쩔 도리 없이 발그레해지는 것을 레테는 놓치지 않았다.

'으으, 귀여워!'

소리 없이 발을 동동 구른 레테가 이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 사람 누구였어요?"

"아. 리처드라고 하는 분이에요. 대륙을 떠돌아다니는 모험가인데......."

놀랍게도 말수가 없는 안나가 재잘재잘 리처드의 모험 이야기를 했다. 레테는 이야기를 들어주며 안나의 손안을 보았다.

리처드가 준 소라 껍데기를 보석처럼 소중히 쥐고 있었다.

* * *

"즐거우셨나 봐요."

말을 타고 돌아가는 길, 시몬이 빙글빙글 웃으며 말했다.

"...닥쳐라."

"하하하."

말을 몰고 가던 리처드가 잠시 무표정한 얼굴로 앞을 보며 말했다.

"그래도 네 조언이 도움이 됐다. 고맙다."

"네, 정말요?"

"그래."

사실 먹힐 거라고 생각했다. 안나가 리처드의 어떤 점을 좋아하는지 아들로서 많이 봐왔으니까.

"그나저나 이쪽은 그럭저럭 진전은 있는 것 같은데."

리처드가 시몬을 쓱 보며 미소 지었다.

"아일라 옆에 같이 온 그 여자는 네가 맡기로 한 거 아니었냐? 어떻게 됐냐."

시몬의 얼굴이 벌게졌다.

"가, 갑자기 무슨 말씀이세요!"

"남에게 조언할 때가 아니었군."

리처드가 시몬의 가슴을 툭 때렸다.

"넌 생긴 것도 은근히 나랑 비슷하니, 센스만 가다듬으면 여자쯤은 바로 꼬실 수 있다."

"그런 거 아니라니까요!"

무슨 말을 하든 리처드는 유쾌하게 웃으며 시몬의 목에 팔을 둘렀다.

"다음 주에도 꼭 같이 가야지, 알겠냐? 하하하하!"

* * *

"위치는?"

-아직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새까만 물감을 끼얹은 듯한 어두컴컴한 저택. 소파에 앉아 있는 한 남자가 통신 수정구를 책상에 내려놓았다.

사락-

그는 천천히 오른손에 낀 장갑을 벗었다.

장갑이 벗겨지고 드러난 그의 맨손은 금방이라도 사라질 것처럼 희미해져 있었다.

"......."

그는 장갑을 다시 끼고는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저벅. 저벅.

남자는 걸어가 벽에 붙어 있는 지도를 들여다보았다.

바힐라 영지라는 이름 대신 '중립지대'라고 표기된 지도에는 무수한 표시들이 새겨져 있었다.

X자로 표시된 지역들. 그리고 어떤 지점은 체크표시가 된 뒤 '해결'이라고 적혀 있었다.

"......분명 네프티스도 사람을 보냈을 터."

어둠 속에서 남자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그들을 찾아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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