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740화 (740/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740화

5일 후.

현재도 바힐라 전선에서 싸우는 두 진형은, 침략전은 펼치지 않고 자신의 점령지를 확고히 지키며 봉서 발굴에 집중하는 모양새였다.

전선의 분위기가 조금은 풀어지고 있었는데, 정작 이런 시기에 가장 날뛰어야 할 리처드는 자신의 천막에 틀어박힌 채 나오지 않고 있었다.

"이봐, 요나! 내 동기! 거기 있냐!"

한 덩치 하는 네크로맨서들이 껄렁거리며 그의 사령관 천막에 들어왔다. 그들 모두 요나의 군 동기들이었다.

"여기서 뭐 해? 나가자."

"오늘 밤 재미 좀 보러 가야지?"

깡-!

깡-!

리처드는 등을 돌린 채 연신 망치질을 하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말 안장 같은 것을 제작하고 있었다.

"난 됐어."

"바로 파티장으로 넘어갈 테니까 준비...... 음?"

그들이 뭔가 잘못들은 사람처럼 해괴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 설마 안 간다고 한 거냐? 네가?"

"세상 모든 놀이를 섭렵한 악동 요나가 안가면 누가 가는데?"

리처드는 파리 쫓듯 팔을 휘저었다.

"난 관심 없다."

"......이 새끼, 갑자기 고자가 됐다는 소문이 진짠가 본데."

"무슨 일이야 요나. 진짜 병이라도 생겼냐? 혹시 그쪽 병?"

동기들이 실실대며 다가와 리처드를 건드리려고 하자, 그는 단숨에 의자에 앉은 몸을 회전시키며 동기 한 명의 다리를 걸었다.

"커헙!"

동기가 그대로 바닥에 나자빠졌다. 자리에 일어선 리처드가 짜증스럽게 말했다.

"선 넘지 말고 꺼져, 새끼들아."

"이, 이 새끼......!"

그들이 일그러진 표정으로 리처드를 보았지만 리처드의 살벌한 눈빛과 마주하자 결국 한풀 꺾이고는 천막 밖으로 나갔다.

"나중에라도 마음 바뀌면 와."

그중 안경 쓴 동기 한 명은 다시금 천막 안으로 고개를 내민 채 손을 흔들었다.

요나는 냉랭하게 말했다.

"꺼져라, 킨 무어."

"섭섭한데."

방해자들이 사라지자, 요나는 다시 자리에 앉아 망치를 들어 올렸다.

깡! 깡!

연달아 말 안장을 두들긴 그가 작업물을 눈앞까지 들어 올려 보았다. 그리 만족스럽지는 않은지 다시 작업 테이블에 놓고 망치를 두들겼다.

"안녕하세요, 요나."

그리고 마침 새로운 인물이 들어왔다. 리처드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대꾸했다.

"왔냐. 감시자."

"네, 근데 방금 나간 사람들 누구예요? 한바탕 욕하면서 가던데."

"모르는 새끼들이야."

그렇게 중얼거리며 작업에 열중하던 그가 얼른 고개를 돌려 시몬을 보았다.

"이틀 뒤에 시간 나지?"

시몬이 능글맞은 미소를 흘렸다.

"고아원 봉사활동 가는 거요? 오늘만 벌써 여섯 번 물어보시는 거예요."

"...닥쳐 인마."

"하하하하하!"

시몬은 소리 내어 웃음을 터뜨렸다.

우리 아버지지만 이런 모습은 너무 재미있었다.

"좀 풀어줬더니 머리끝까지 기어오르는구만."

리처드가 혀를 차며 망치질을 반복했다.

"누굴 닮아서 여기서 지내는 동안 능글거리는 것만 늘었냐?"

"요나를 닮았겠죠."

"끔찍한 소리 하지 마."

시몬이 다시 웃음을 터뜨렸다.

요 몇 주간, 시몬은 과거의 아버지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리처드가 놀러 다니질 않아서 생활에 여유도 생겼다.

"참, 오늘도 가르쳐 주실 거죠?"

"이마고 말이냐."

'이마고'는 벗어둔 본 아머에 자신의 사념을 잔류시켜, 마치 자신의 몸처럼 움직이게 할 수 있는 최상급 난이도의 복원기였다.

원래는 현대로 돌아가 리처드에게 배울 생각이었지만, 언제 결사와 싸울지 모르니 겸사겸사 지금 훈련하고 있었다.

확실히 어떤 부분들은 현대의 리처드보다 과거의 리처드가 나았다. 일단 지금의 리처드가 가장 강한 전성기 시절인 건 분명한 사실이니까.

레스힐의 영주 리처드가 아닌, 7군단의 요나에게 기술을 전수받을 다시 없을 기회였다.

"좋아, 나와라."

쿵.

망치를 내려둔 리처드가 겉옷을 어깨에 둘러멘 채 앞장섰다.

"네놈의 콧대도 꺾어줄 겸 제대로 한번 가르쳐 주마."

시몬이 활짝 웃으며 뒤따랐다.

"네! 요나."

"아이 씨, 자꾸 들러붙지 좀 마라! 너 혹시 그쪽 취향이냐?"

"그런 건 아니지만 저희 둘 사이엔 괜찮잖아요."

"자꾸 무서운 소리 하네. 이 자식."

* * *

"안나 성녀님. 오늘 일정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신성연방 진형.

안나가 기거하는 흰 천막에는 말끔한 장교 제복으로 갈아입은 이스라필이 군기 넘치게 기립한 채 서류철을 들어 올렸다.

"석식 후 감사 기도, 대축일 기도, 저녁 정규 예배, 이후 산책과 새벽기도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절도 있는 동작으로 서류철을 내린 이스라필이 열중쉬어 자세로 돌아가며 말했다.

"부대 내 프리스트들이 모두 기도실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보고 수고했어요. 이스라필."

안나가 빙긋 웃었다. 그런 그녀의 무릎 위에는 레테가 매미처럼 달라붙어 있었다. 이스라필은 이를 갈며 레테를 노려보았다.

그때 안나의 입에서 의외의 말이 튀어나왔다.

"오늘부로 정규예배 외의 단체 기도들은 전부 개인 기도로 대체하도록 하죠."

"예?"

이스라필의 동공이 흔들렸다.

지금 내가 무슨 소릴 들은 거지?

"그동안 제 신앙생활에 너무 많은 분들을 고생시키고 시간을 빼앗은 것 같아서요."

이스라필이 펄쩍 뛰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저를 포함한 모든 프리스트들은 매일매일 존경하는 안나 성녀님과 함께 기도하는 것을 무궁한 영광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저도 눈이 있고 귀가 있답니다."

안나가 무안한 웃음을 흘렸다.

"그동안 제 직위를 생각하지 못하고,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불편함을 끼쳤다는 걸 깨달았어요. 앞으로 불필요한 기도는 줄이겠어요. 믿음을 되새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전쟁이 길어질수록 지친 몸과 마음을 다스릴 휴식도 필요할 테니까요."

이스라필이 고개를 푹 숙였다.

"......예. 그럼 기도실에 모인 프리스트들에게 말하고 오겠습니다."

"늘 고마워요 이스라필."

뚜벅뚜벅.

이스라필은 기도실로 걸음을 옮기며 생각에 잠겼다.

'역시, 요즘 들어 안나 언니가 이상해.'

원인은 거의 확실하다. 저 레나인가 뭔가 하는 여자가 들어온 뒤로 이상해졌다.

대체 뭐란 말인가.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처럼 튀어나와선.

'레나.'

이스라필은 주먹을 꽈악 쥐며 그녀에 대해 생각했다.

나이는 자신과 엇비슷해 보였다. 몸가짐이나 말투, 신성마법의 수준 등은 엄격한 신전에서 제대로 배운 느낌이다. 혹시나 해서 물어본 성서의 구절도 디테일한 부분까지 외우고 있고, 무엇보다 그 순수하게 깨끗하면서 방대한 신성.

사람들은 그녀의 신성을 당대 최고인 안나와 비할 정도로 높게 평가하고 있다.

하지만.

'이게 말이 돼?'

신분도 불명확한 인물이다.

아무리 기적의 성녀의 보증을 받았다고 한들, 모두가 너무 쉽게 넘어간다. 신성이 전부는 아니지 않는가. 안나 언니의 보는 눈이 한 번은 틀릴 수도 있지 않은가.

레나는 온종일 안나에게 철썩 들러붙어서 뭔가 이상한 말들을 흘리고 있다. 안나는 그녀의 영향을 강하게 받고 있다.

"야, 이스라필."

상념에 빠져 있던 이스라필이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정신없이 걷다 보니 어느새 기도실에 도착해 있었다. 몇 기수 위의 에프넬 선배 프리스트가 인상을 팍 구긴 채 꿇어앉아 제 허벅지를 쭈물거리고 있었고, 다른 프리스트들도 마찬가지였다.

"우리 언제까지 이러고 있어야 해? 성녀님은?"

"아, 그."

바짝 긴장한 이스라필이 다급히 말했다.

"앞으로 정규예배를 제외한 나머지 기도 시간들은 모두 '개인 기도'로 대체하겠다는 성녀님의 말씀이십니다."

"진짜?"

꺄아아아아아!

곳곳에서 커다란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기적의 성녀님 감사합니다!"

"데바 여신께서 고통받는 우리를 굽어보신 걸 거야!"

세상에 저렇게 좋을까.

프리스트들은 마치 오랜 감옥에서 해방된 것 같은 반응이었다. 거울을 보고 제 머리카락을 한번 다듬더니 냅다 밖으로 뛰쳐나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안나 성녀님이 요즘 편하게 해주셔서 너무 좋네."

선배 프리스트가 저린 다리를 펴고 일어나며 말했다. 늘 얼굴에 짜증이 가득했던 선배가 빙글빙글 웃고 있었다.

저 마귀할멈 웃는 얼굴을 몇 년 만에 보는 거지?

"네가 성녀님께 슬쩍 언급해 준 거야? 이스라필."

"아, 그게......."

"흥, 고지식한 네가 그럴 리 없지. 그 레나인가 뭔가 하는 새로 들인 하인 덕분이겠지?"

"그 레나란 아이, 말도 참 예쁘게 하더라구요."

"됐고! 이번 전선에 합류했다는 남부 팔라딘들 얼굴이나 감상하러 가자!"

꺄하하하하!

선배들이 시끄럽게 떠들며 떠나갔다.

꼭 모으고 있던 이스라필의 두 손에 힘이 꽈악 들어갔다.

'......레나!'

대체 뭐란 말인가.

그 인간이 나타난 뒤로 모든 게 바뀌고 있다. 안나 선생님도, 다른 프리스트들도 그녀를 좋아한다.

자신의 자리를 그녀가 대체해 가고 있는 느낌.

'반드시.'

약 올리듯 혀를 삐쭉 내민 레테의 얼굴을 떠올린 그녀는 얼굴에 피가 확 쏠리는 걸 느꼈다.

'언젠가 반드시 네 실체를 까발려 주겠어!'

* * *

다시 이틀이라는 시간이 지나, 드디어 봉사활동 당일이 왔다.

"얼른 서둘러라, 감시자!"

"네!"

리처드는 시몬을 보채며 달리고 있었다.

시몬은 빙그레 웃었다. 그가 새벽 내내 잠에서 깨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모른 척해주는 중이었다.

"어."

그러다 시몬은 리처드의 몸에 난 상처를 보았다. 얼굴뿐만 아니라 몸 곳곳에 반창고 같은 걸 붙이고 있었다.

"혹시 누구랑 싸우셨어요?"

"싸우긴 얼어 죽을, 빨리 말에 타기나 해라."

리처드가 훌쩍 뛰어올라 사령마에 올라타며 말했다.

"아이들 깨기 전에 아침밥 만들어야 할 것 아니냐."

"네, 네."

시몬은 싱글벙글 웃으며 말에 올라탔다. 리처드가 인상을 확 구겼다.

"내가 그렇게 능글맞게 웃지 말랬지. 죽고 싶냐 진짜."

"하하하! 죄송해요."

그리고 비슷한 시간.

신성연방 진형에서도 난리가 나 있었다.

"이, 이 옷은요?"

"예뻐요! 안나 선생님!"

"그...... 그럼 이 옷은?"

"그 옷도 예뻐요!"

안나와 레테는 봉사활동 하러 갈 때 입을 의상을 마지막으로 맞춰보고 있었다.

세 벌째 옷을 바꿔 입은 안나는 뭔가 마음에 안 드는지 계속 고민하고 있었다.

"이른 새벽부터 죄송해요. 레나."

안나는 자신이 입을 옷을 직접 고른 적이 없었다.

그저 위에서 내어준 거라면 드레스든 원피스든 아무 불만 없이 잘 입어왔고,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평생 불만을 가진 적이 없었다.

그런데 오늘, 거울을 보니 갑자기 옷이 마음에 안 들었다. 그래서 급하게 잘 자고 있던 레테를 깨우고 말았다.

"에이, 당연한 거죠! 이 옷은 어때요?"

레테는 잠에서 깨어났으면서도 한 마디의 군말 없이 옷을 골라주고 있었다. 새로운 원피스를 입은 안나는 거울 앞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이제 알았다. 내가 마음에 들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 사람은 어떤 옷을 좋아할까?'

그런 식으로 생각해 본 건 처음이었다. 그때 레테가 불쑥 고개를 내밀었다.

"잘 보이고 싶어요?"

안나의 얼굴이 홍당무처럼 붉어졌다. 딸꾹 하고 이상한 소리를 흘린 그녀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었다.

"그, 그런 게 아니라....... 그냥 음. 제 개인적인 변덕이라서......."

'귀여워!'

레테는 내적 비명을 질러댔다.

미친 듯이 귀엽다. 너무너무너무 사랑스럽다. 진짜 콱 깨물어주고 싶다는 강한 충동을 억누른 그녀가 두 손을 맞잡으며 말했다.

"안나 선생님, 지금 옷도 무척 잘 어울리세요. 리처...... 아니, 사람들도 분명 좋아할 거예요."

"그, 그럴까요?"

눈이 똥그래진 채 솜사탕 같은 목소리로 기뻐하는 과거의 안나를 보며, 레테는 안나를 깨물어주는 대신 제 옷깃을 한번 꽉 깨문 뒤 말했다.

"그럼요!"

사실 이런 사람이 누더기를 입든 거적때기를 입든 무슨 상관이 있을까.

뭘 입고 나오든 그 바보 바람둥이 리처드는 헬렐레 혓바닥을 내민 채 좋아할 모습이 눈에 훤했다.

레테가 안나의 손을 잡았다.

"가요! 그 사람을 만나러!"

안나가 만개하는 꽃처럼 활짝 웃었다.

"네!"

그렇게 두 사람이 준비하는 가운데.

"......."

조금 떨어진 곳에서 이스라필이 고개를 빼꼼 내민 채 지켜보고 있었다. 질투심에 불타는 그녀는 주먹을 파르르 떨고 있었다.

'나만 빼고 또 어딜 놀러 가려는 거야?'

이번에야말로 저 레나라는 여자의 실체를 까발리고 말리라.

이스라필은 마음속으로 결의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