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745화
"저, 묻고 싶은 게 있어요."
그동안 아무렇지 않은 척하던 안나가 처음으로 레테에게 말을 걸어왔다.
그것도 질문.
레테는 짐작은 갔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척 천연덕스럽게 그녀의 곁에 앉았다.
"제가 답할 수 있는 거라면 뭐든 답할게요, 안나 선생님."
"음, 그게......."
막상 말을 꺼내려니 불안해진 걸까, 안나가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입이 마른 듯 입술을 달싹이기도 했다.
레테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묵묵히 기다렸다.
"제 신분상 입에 담기엔 부적절한 질문이라서...... 역시 다음에......."
"성녀는 뭐 사람 아녜요?"
레테가 툭 내뱉었다.
"어쩌다 보니 성녀의 정수를 받아들인, 남들보다 조금 뛰어난 프리스트일 뿐이잖아요. 무조건 도덕적으로 우월하고, 남들과는 다른 초월적인 사고를 해야 하나요? 인간적인 고뇌는 고뇌도 아니고, 그냥 쭉 마음속에 삭혀야 해요?"
다른 신도들이 들었다면 펄쩍 뛰었을 불경한 대답일 수도 있겠지만, 레테의 말에는 거침이 없었다.
당연했다. 레테 본인도 성녀였으니까.
그런 동질감이 분위기에 섞여 나와 그런지, 안나는 레테의 말이 조금도 불쾌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해야 할 말을 대신 해준 것 같아 속이 시원해졌다.
마침내 안나가 용기를 내어 입을 열었다.
"네크로맨서 중에서도...... 조, 좋은 사람이 있을까요?"
질문을 들은 레테가 눈을 깜빡거렸다.
"네?"
"아, 그게 그러니까......."
안나는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아쥐며 고개를 숙였다.
"조금 충격이었거든요. 내가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 분이, 사실은 네크로맨서였다는 게......."
안나는 늘 사람의 눈을 보아왔다.
그녀는 어릴 때부터 사람의 눈을 보면, 그가 마음이 선한 자인지 악한 자인지 알 수 있었다.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좋은 의도로 접근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주위의 사람들에게도 그녀의 사람 보는 눈은 유명했다.
안나는 리처드를 처음 본 때를 떠올렸다.
처음 봤을 때는 깜짝 놀랐다. 마치 짙은 안개가 낀 듯, 그의 눈에는 어지럽고 혼탁한 기운이 가득했다. 피해야 할 사람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야기를 나누고 그를 알아갈수록 새로운 면모가 보인다. 짙은 안개 너머, 눈동자 안에 딱 박혀 있는 굳은 심지가 보인다.
안개 속에서도 존재감을 발하며 빛을 내뿜는 그것은 너무나 근사했다. 그동안 안나는 그런 눈빛을 가진 사람을 보지 못했다.
첫 번째 만남에 이어, 두 번째 만났을 때 그 안개는 더더욱 많이 걷혀 있었다.
밤하늘의 별처럼 선명히 반짝이는 눈동자. 특히 그의 눈이 자신을 향할 때 더더욱 강렬하게 빛나는 것을 보며, 안나는 가슴이 뛰었다.
처음에 눈에 낀 안개 때문에 선입견을 가졌던 게 미안할 정도로, 그는 좋은 사람이었다. 내면은 깊고 따뜻한 사람이란 걸 알 수 있었다.
그런데.
"그는 네크로맨서였어요."
어린 나이부터 안나는 철저한 신앙교육을 받으며 자랐다. 네크로맨서에 대한 나쁜 말들만 들어왔고, 머릿속에 강하게 뿌리내려 하나의 가치관이 되었다.
사탄과 계약한 하수인들, 사자의 마지막 안식조차 모욕하며 시체에 쾌락을 느끼는 괴물들, 승리를 위해서라면 부모마저도 죽이고 언데드를 만드는 감정 없는 악마들.
-네크로맨서는 악이며, 철저히 배제해야 한다.
그렇기에 안나는 성녀로서 전쟁에 참가했고, 사악한 자들이 대륙의 죄 없는 백성들을 괴롭히는 것을 막기 위해 싸워왔다.
하지만 리처드라는 존재가 등장하면서 그녀의 상식은 산산이 깨져나갔다.
"제가 사람을 잘못 봤을 뿐인 걸까요? 아니면 네크로맨서들도......."
안나는 뒷말은 더 잇지 못하고 말을 삼켰다. 이내 뿌리치듯 고갯짓한 그녀가 애달픈 빛을 띠는 어조로 질문을 바꾸었다.
"저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위태로웠다.
늘 굳건하고 신앙심 가득한 성녀의 모습을 보이던 그녀가 근본부터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었다.
레테는 한 걸음 더 다가왔다. 그러고는 안나의 희고 얇은 손을 두 손으로 꼭 붙잡았다.
"안나 선생님이 앞으로 어떻게 할지는, 제가 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에요."
안나의 인생엔 늘 '정답'이 있었다.
의문을 느낄 여지가 없었다.
의문을 느끼려고 할 즈음엔 누군가 답을 던져주었으니까.
그녀를 가르친 주교들이, 환경이, 사회가.
그저 건네어진 답을 묵묵히 따르도록 시켰다.
하지만 지금 안나는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려 하고 있다. 레테가 답을 준다면, 그건 또 다른 방식으로 그녀를 얽매게 할 뿐이다.
'사실 나도 잘 모르겠기도 하고.'
그렇게 생각한 레테가 잠시 눈을 꾹 감았다.
그녀 자신도 프리스트고, 네크로맨서에게 부모를 잃었다.
시몬이라는 예외도 있었지만, 아직 원수인 네크로맨서들을 완전히 이해하고 받아들인 건 아니다. 지금도 몇 번이고 자신의 신앙과 마음이 부딪히곤 했으니까.
하지만.
"하지만 첫 번째 질문에 대해선 누구보다 자신 있게 답할 수 있어요."
-네크로맨서 중에서도 좋은 사람이 있을까요?
레테는 누군가의 얼굴을 떠오르는 것을 느끼며 말했다.
"좋은 사람이 있어요. 분명히."
안나가 고개를 퍼뜩 들었다.
"저, 정말인가요?"
"네."
레테가 어깨를 으쓱했다.
"프리스트 중에서도 나쁜 사람이 있는 것처럼 네크로맨서도 똑같아요. 칠흑과 신성은 원천 능력의 차이일 뿐, 절대적인 선과 악의 잣대는 되지 못해요."
그런 말을 입에 담고 있는 레테는 스스로에게 놀랐다.
그 모습을 본 안나가 미소 지었다.
"리처드랑 같이 왔던, 그 소년을 생각하시는 거죠?"
레테가 불의의 일격이라도 받은 것처럼 움찔했다.
"아니에요! 그 녀석이랑은 상관없어요!"
"아하하."
안나가 부드럽게 웃었다.
레테는 후우, 하고 숨을 내뱉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학설이니 경험이니 다 필요 없고, 가장 중요한 건 자신의 마음이에요."
안나가 뒤따라 가슴에 손을 얹었다.
"마음."
"네, 본인의 마음이고 본인의 감정이니까요. 그것마저 직위나 환경에 흔들려야 한다면, 우리 인간은 살아갈 필요가 있을까요?"
"......."
"다시 물을게요."
레테가 진지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안나 선생님은 어떻게 하고 싶어요?"
* * *
100년 전쟁의 후반기.
'잿빛심판'이나 '얼굴 없는 마귀' 등, 가장 악독한 전술 병기까지 동원되는 치열한 시기였다.
연합이고 연방이고 할 것 없이 주요 도시가 모조리 폭격으로 초토화되고, 가장 많은 민간인 사상자가 발생했다.
바로 이 100년 전쟁의 후반기를 관통하는 주제가 있다.
봉서(封書).
그동안 전설로 취급되던 봉서가 실재한다는 사실이 알려진 뒤, 암흑연합과 신성연방은 그 병기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두 진형은 이미 고대 문명의 전술병기를 사용한 전적이 있었고 그 파괴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파괴력을 가졌다는 봉서를 손에 넣는 쪽이 전쟁에서 우위를 점하게 되리라는 사실은 분명했다. 그야말로 전쟁의 '키'가 된 것이다.
암흑연합은 상아탑의 고대문헌을 분석했고, 신성연방은 여러 성서들의 기록을 분석했다. 놀라운 점은 두 세력 모두 '봉서'의 추정 위치 지역이 어느 정도 일치했다는 점이다.
가장 발굴 가능성이 높은 곳으로 추정되는 장소는 '바힐라 영지'가 꼽혔다. 두 세력은 최고의 전력인 요나와 기적의 성녀를 이곳에 투입했고, 그 외에도 봉서가 발굴될 수 있는 추정 지역은 모두 전선이 형성되어 치열하게 싸웠다. 이미 국경이니 영토니 하는 게 의미가 없을 지경이었다.
그렇게 봉서를 확보하려는 전쟁이 길어지고 있는 가운데.
거대한 역사적 사태가 발생하게 된다.
<봉서가 암흑연합 페리포드 전선에서 발견되었다.>
정말로 '봉서'가 발굴된 것이다. 페리포드 전선은 암흑연합의 영지였지만, 봉서는 신성연방이 실효지배하는 발굴지에서 발견되었다.
그렇게 봉서는 처음 신성연방의 손에 떨어졌으나, 첩보를 받고 눈치를 챈 암흑연합 측이 야습을 감행.
신성연방 측 세력을 분쇄하고 봉서를 빼앗는 데 성공했다.
이제 전세는 암흑연합 쪽으로 급격히 기울어졌다. 페리포드 영지는 로크섬에서 비교적 가까운 지역이었다. 로크섬까지 봉서를 옮긴 뒤, 키젠 본부에서 봉서를 해석하는 데 성공하면 암흑연합이 승기를 잡을 수 있었으나.
악에 받친 신성연방의 반격도 만만치 않았다.
그들은 즉각 로크섬의 해안으로 출격했고 성유물을 이용해 하늘에 강력한 대기장 폭풍을 만들었다. 이 대기장은 텔레포트 마법진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좌표를 일그러뜨렸고, 로크섬 내로 봉서를 이동시킬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로크섬 해안 최정예 프리스트들과 성녀, 아크 팔라딘 등 최대 규모의 신성함대를 투입, 로크섬 내의 네크로맨서들과 싸우지 않고, 오로지 함대로 바다를 봉쇄한 채 대기했다.
그 뒤 남은 병력을 페리포드 전선 쪽으로 급파, 봉서를 확보하기 위해 움직이도록 했다.
이에 암흑연합도 로크섬 밖의 병력을 페리포드 쪽으로 돌리고, 해군전력을 집결시켜 힘으로 신성함대를 뚫고 로크섬으로 봉서를 전달할 계획을 세웠다.
이렇게 되면 자연히.
-요나. 전장이 바뀌었다. 지금 바로 페리포드로 가도록.
-성녀님, 페리포드로 이동하시겠습니다.
리처드와 안나 또한 봉서가 발견된 페리포드 전선으로 급파됐다.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지도 못한 채, 그들은 바로 텔레포트 마법진을 타고 다음 격전지로 이동해야 했다.
뒤이어 중립지대 바힐라 전선의 군인들도 페리포드로 이동할 준비를 했다. 모든 병력이 텔레포트 마법진으로 이동할 수는 없었으니, 리처드와 안나를 비롯한 중요인물들만 보내고 나머지 병력은 직접 발로 이동해서 페리포드까지 가야 할 상황이었다.
급박하게 상황이 돌아가는 가운데, 시몬과 레테는 다시 약속장소에서 만났다.
"봉서가 발견된 시기가 조금 이르지만, 일단 상황은 역사대로 흘러가고 있어."
시몬이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이제 곧 '배신의 군단' 사태가 일어날 거야."
"우리도 빨리 페리포드로 가야 해요!"
레테가 다급한 표정으로 시몬의 옷자락을 흔들었다.
"두 사람이 걱정돼요. 분명히 결사놈들도 그쪽으로 갔을 거예요! 우리도 어떻게든 텔레포트 마법진을 잡아타고......."
"무리야."
100년 전쟁 후반기, 자원이고 돈이고 바닥을 보이는 이 시기에 텔레포트 마법진은 극도로 귀했다.
중립지대 전선도 각각 리처드와 안나 한 명씩을 무리해서 보냈을 뿐이다. 다음으로 완성될 텔레포트 마법진도 각 진형의 에이스들이 갈 차례였고, 감시자와 하인인 시몬과 레테의 우선순위는 낮았다.
"마차나 말을 훔쳐서 타고 가면 어때요?"
레테가 제안했지만, 시몬은 고개를 저었다.
"거리가 너무 멀어서, 말로 가면 시간에 맞추기 어려워. 우리가 도착할 즈음엔 이미 배신의 군단 사태가 벌어졌을 거야."
"음."
레테가 고민에 빠져 있는데, 시몬이 입을 열었다.
"이스라필 이모, 아직 페리포드에 못 가셨지?"
"네, 그래도 우선순위가 높아서 다음 텔레포트 마법진이 완성되면 갈 것 같슴다."
시몬의 눈이 반짝였다.
"좋아. 그럼 이스라필 이모를 설득하자."
그러자 레테가 '윽'하는 표정을 지으며 딴청을 피웠다.
"왜 그래?"
"아, 그게."
레테가 머리를 베베 꼬았다.
"당신도 봤잖슴까. 최근에 나랑 이스라필 님이랑 사이가 좀 어색함다. 가능할까요?"
"너라면 가능해."
시몬이 씩 웃으며 즉답했다.
"그리고 미래의 이스라필 이모가 어떤 분인지는, 너도나도 잘 알고 있잖아?"
"......."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레테가 결심한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가죠. 배신의 군단 사태가 벌어지기 전에."
* * *
여섯 시간 뒤, 신성연방 진영.
이스라필의 군막.
꾸욱. 꾹.
이스라필은 눈을 감았다. 경건한 마음가짐으로 깃펜에 잉크를 묻힌 다음, 손에 힘을 주어 서신을 써내려갔다.
<항의서>
<전술 제의서>
그녀의 깃펜이 빈 서신 위로 춤을 추었다.
<안나 성녀님의 안위가 무엇보다 중요한 시점에, 적진 한가운데에 보내어 적을 견제하는 역할을 맡기는 것은 부적절합니다. 성녀님은 아군의 온전한 보호를 받고 있을 때 비로소 진가를 발휘합니다. 큰 전공을 세운 전투들로 예를 들자면.......>
빠르게 서신을 작성한 그녀는 이번엔 지도를 훑었다. 그녀의 방에는 대륙 전역의 지도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그중에 몇 가지를 뜯어서 테이블에 내려놓은 다음, 깃펜으로 망설임 없이 선을 그어갔다.
주욱- 죽-
근처에 굴러다니는 압정으로 적과 아군을 표시하고, 진행방향을 예상했다. 지형지물과 적의 심리까지 꼼꼼히 고민한 그녀가 전술 제의서에 새로운 내용을 써내려갔다.
기적의 성녀의 보호를 최우선으로 하면서, 봉서를 탈취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전술로.
<상대는 봉서를 옮기는 데 열을 올리고 있지만, 시간은 충분합니다. 아군의 신성함대를 뚫으려면 적은 더 많은 해군전력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슥.
깃펜이 흐려지며 묽은 글씨가 나왔다. 이스라필이 다시금 깃펜을 잉크통에 집어넣다가, 불현듯 고개를 돌렸다.
"누가 허락 없이 들어와도 된다고 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