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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746화 (746/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746화

"누가 허락 없이 들어와도 된다고 했죠?"

그렇게 말한 그녀가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레나."

비에 젖은 발걸음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내 어둠 속에서 흰 머리의 소녀가 군막 안으로 들어왔다.

뒤쪽에는 로브 후드를 눌러쓴 소년도 함께였지만, 이스라필의 시선은 레테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뭐어, 오랜만임다. 이스라필 님."

"무슨 일이죠?"

"긴히 부탁할 게 있어서 왔슴다."

이스라필이 코웃음을 쳤다.

부탁이라니, 이제 와서 내게 부탁을? 이스라필은 무시하고 잉크통에서 깃펜을 뽑아 서신 위에 얹었다.

"난 바쁩니다. 돌아가세......."

"지금 바로 텔레포트 마법진을 쓰고 싶슴다."

이스라필의 깃펜이 멈칫했다.

"......텔레포트 마법진? 또 어디로 가려는 겁니까."

"전장에 있는 안나 선생님 곁으로 가야 해요. 지금 당장."

그 말을 듣는 순간, 이스라필은 마음 한구석에서부터 불길처럼 일어난 감정을 다스리지 못할 뻔했다.

"......어이가 없네요. 보자 보자 하니까 정말."

이스라필이 깃펜을 탁 소리 나게 내려놓았다.

"왜 내가 당신들을 먼저 안나 언니 곁으로 보내야 하죠? 여기엔 당신들보다 훨씬 유능하고, 직위도 높은 프리스트들이 많아요! 차라리 내가 갈지언정, 일개 하인인 당신이 먼저 안나 언니 곁에 가야 할 이유가......!"

"두 가지 있슴다."

레테가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끊으며 두 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첫째, 우리는 전쟁을 멈출 검다. 당신을 포함해 여기 있는 사람들은 모두 전쟁에서 이기려고만 하지, 멈추려고는 하질 않아요."

"전쟁을 멈춘다고?"

이스라필은 슬슬 짜증이 치밀었다.

"100년 가까이 아무도 끝내지 못한 전쟁이에요. 당신이 그렇게 다짐한다고 해결될 일이라고 생각하나요?"

"예, 뭐. 간단하진 않겠죠. 아마 기적이 몇 번이나 일어나야겠죠. 하지만 그게 안나 선생님의 뜻임다. 안나 선생님은 이제 전쟁을 멈추려 하고 있어요."

안나의 이야기가 나오자 이스라필의 입술이 한 차례 떨렸다.

레테는 두 번째 손가락을 접었다.

"그리고 둘째, 우리는 안나 선생님이 진정으로 원하는 결말을 도울 수 있슴다."

"......전쟁을 막는 것 말인가요?"

"아뇨, 그거 말고요."

레테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을 이었다.

"아직 그것도 모른다면, 더 이상 당신과 할 이야기가 없을 것 같은데요."

"지금 날 도발하는......!"

그 순간.

거짓말처럼 머릿속에 흘러 들어오는 생각에 이스라필의 입이 벌어졌다.

봉서가 발견되고, 안나가 암흑연합의 영토로 파견되기 전 날밤.

-이스라필, 할 말이 있어요.

마치 마지막 이별을 고하려는 사람처럼.

혹은 죽음을 앞둔 사람처럼.

슬픈 미소를 지으며 안나는 이스라필을 불렀었다.

붕붕!

이스라필은 거칠게 고갯짓을 하며 회상 속에서 빠져나왔다. 떠올리기도 싫은 일이었다.

"뭐어, 짐작은 하고 있는 것 같네요."

레테가 삐딱하게 웃었다. 그 모습을 본 이스라필이 울컥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전부 당신 때문이야!"

쿵!

충혈된 눈의 그녀가 다가가 레테의 멱살을 붙잡고 벽 끝으로 밀어붙였다.

"당신 때문에 안나 언니가 이상하게 변했어!"

레테의 눈이 게슴츠레 떠졌다.

"......나 때문이라고?"

위험하다.

시몬은 그런 생각을 하며 레테를 보았다. 그녀는 기본적으로 냉정한 성격이지만, '안나'에 관련된 일만큼은 별개다.

극단적일 정도로 감정적이고 충동적인 성격으로 변한다.

"조금 진정......!"

말리려는 시몬을 손을 들어 제지한 레테가, 이스라필을 노려보며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양심이 있으면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을 좀 하십쇼!"

레테가 이번엔 역으로 이스라필의 멱살을 붙잡아 끌고 갔다. 완력에서 밀린 이스라필이 '큭!' 하는 소리를 내며 뒤로 밀려났다.

"지금까지 안나 선생님이 행복했다고 생각함까?"

"......뭐?"

"당신은 알 거 아님까! 신앙생활! 성녀생활! 날마다 원하지도 않는 전쟁터에 불려가서 혹사당하는 나날들! 기도는 신실한 신앙심의 증거가 아니야! 안나 선생님은 그저 기도로 버텼을 뿐이라고!"

쾅!

이번엔 레테가 이스라필을 벽 끝으로 밀어붙였다.

"이 정도면 됐잖아! 몇 번이고 기적을 쥐어 짜내 신성연방을 위기에서 구해냈으면 됐잖아! 이제 용기를 내서 자신의 행복을 찾아가려는 사람을, 당신의 욕망 때문에 방해할 셈이야? '나를 위해 여기 남아 계속 불행해 주세요'라고 말하는 거랑 뭐가 달라!"

털썩!

이스라필이 충격받은 눈으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레테는 숨을 거칠게 헐떡이며 등을 돌렸다.

"안 도와줄 거면, 우리 힘만으로라도 텔레포트 마법진을 탈취하겠슴다."

"......."

레테가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시몬은 안절부절못하며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곤란한데.'

사건의 당사자인 리처드와 안나는 어쩔 수 없지만, 최대한 과거의 인물의 가치관에 간섭하지 말라는 게 네프티스의 지침이었다.

"난 그저-"

그때 이스라필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안나 언니처럼 되고 싶었을 뿐이에요. 그분은 내 목표이자 꿈이니까. 그런 안나 언니가 사라진다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녀가 울먹였다.

"나는 아무것도......."

"아으, 진짜아아아악!"

벅벅 짜증스럽게 머리를 긁던 레테가 다시 성큼성큼 이스라필에게 다가왔다.

"당신은 아무것도 몰라!"

"네......?"

"당신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알기나 해?"

그녀가 거칠게 이스라필의 옷깃을 흔들었다.

"새 시대를 여는 건 안나 선생님이지만, 그걸 현실적으로 유지하는 건 당신이야! 그러니 그렇게 내 앞에서 병신같이 퍼질러 있지 말란 말야!"

"자, 잠깐!"

시몬이 레테를 뜯어말렸다. 어느새 레테의 눈시울도 살짝 붉어져 있었다.

"당신은 몰라! 당신이 앞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구해낼지! 얼마나 많은 전쟁을 막아낼지! 당신이야말로 진짜 위대한 영웅이라고!"

"아......?"

이스라필은 저게 무슨 소린가 싶은 표정으로 레테를 바라보았다. 레테는 시몬의 손길에 밀려나면서도 씩씩거리며 외쳤다.

"제발 정신 차리라고! 이스라필!"

* * *

시몬과 레테는 이스라필의 군막에서 빠져나와 전선 본부 깊은 곳으로 들어왔다. 이곳에서 텔레포트 마법진이 준비되고 있었다.

레테는 살짝 고개를 내밀어 앞을 관찰하고 있었다.

"......레테."

시몬은 여전히 화가 안 풀린 듯했다. 레테가 웬일인지 찔끔한 표정을 지으며 눈치를 보았다.

"미, 미안하다고 했잖슴까."

"나한테 미안할 문제가 아냐. 이스라필 이모를 그렇게 자극하면 어떻게 해? 말이 안 통하면 그냥 떠나자는 게 원래 계획이었잖아."

"......똥 같은 표정 지으면서 세상 다 산 듯 주저앉아 있는 꼴을 보니까 화딱지가 치밀어 올라서요. 주체가 안 됐슴다. 미안해요."

레테가 눈을 감으며 사과했다. 그녀가 반성하는 것 같으니 시몬도 더 말하진 않았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일이 터진 김에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자면, 다행스럽게도 레테는 직접적으로 미래를 밝히지는 않았다.

이스라필이 미래에는 안나의 '기적의 정수'를 받아들여 '신해의 성녀'가 될 거다 같은 이야기를 했다면 위험했겠지만, 단순히 넌 미래에 대단한 사람이 되어 사람들을 구할 거다 같은 이야기는 미래인이 아니라도 누구든지 할 수 있는 이야기였다.

생각해 보면 오히려 이스라필이 죄책감으로 의기소침해지는 상황이 더 위험할지도 몰랐다.

어차피 결사가 과거를 바꾼 상황이니, 변수는 어쩔 수 없이 감수해야 한다. 결과론적으로 레테는 이스라필이 꺾이지 않도록 나름 최선의 선택을 한 걸지도 모른다.

"다 왔슴다."

레테가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저 앞에 텔레포트 마법진이 보인다. 작업자들은 밤을 새워서 마법진을 만들고 있었다.

이제 저걸 탈취해서, 이제 곧 일어날 '배신의 군단장' 사태까지 늦지 않게 도착해야 했다.

"가자, 레테."

"네."

지금 텔레포트 마법진을 준비하는 사람은 모두 15명.

머릿수가 많았지만, 어떻게든 해야 했다.

시몬은 뒤로 멀찍이 돌아가서 구석에서 마법진을 준비하고 있는 두 명에게 '슬립' 저주를 걸었다. 레테는 잠이 와서 쓰러지는 두 사람을 소리 나지 않게 받아서 벽 뒤에 데려다 놓았다.

"이제 13명 남았네요."

다른 13명은 열심히 마법진을 작업하느라 분주했다. 그때 한 명이 말했다.

"앤레드! 어디 갔어?"

"!"

아무래도 방금 슬립으로 재운 사람을 찾고 있는 모양이었다. 시몬과 레테가 불안한 표정으로 시선을 마주했다.

"회로 작업 도와달라니까 뭘 하는 거야! 대답 안 해? 앤레드!"

시몬은 고민에 빠졌다.

그 사람 목소리라도 흉내 내야 하나? 아니면 그냥 가만히 있어야 하나? 하지만 계속 이대로 있으면 앤레드라는 사람이 도착하지 않아 의심을 살 것이다.

"움직이죠."

레테는 먼저 선수를 치자는 의견이었다. 시몬도 다른 뾰족한 수가 없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이 뛰쳐나가려는 순간.

'!'

갑자기 등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두 사람이 뻣뻣한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았다.

"고생하시네요."

어느새 이스라필이 웃는 얼굴로 나타나 있었다. 시몬이 식겁한 표정으로 손에 힘을 주었다.

'설마 우릴 체포할 생각으로......!'

"준비는 잘되고 있나요?"

그런데 이스라필은 두 사람이 보이지 않은 것처럼 행동하며 걸어나갔다. 그러곤 작업자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예! 한두 명 정도라면 지금 당장이라도 보낼 수 있습니다!"

"이제 회로 작업만 마무리하......!"

퍼어어어엉!

난데없이 멀리서 폭음이 울려 퍼지며, 마나 조명 몇 군데가 꺼졌다.

주위가 어두워지자 작업자들이 놀란 표정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무, 무슨 일이야?"

"조명이 끊긴 걸 보니 아무래도 마나 동력 장치에 문제가 생긴 것 같네요."

이스라필이 웃으며 앞을 가리켰다.

"마법진은 제가 보고 있을 테니 수리를 서두르세요."

"예, 옛!"

작업자들이 우르르 몰려갔다. 이내 능숙하게 신성 결계를 펼쳐서 시야를 차단한 이스라필이 시몬과 레테 쪽으로 손짓했다.

"우, 우릴 도와주는 검까?"

레테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걸어왔다.

이스라필은 텔레포트 마법진 한가운데에 손바닥을 대어 작업을 마무리한 다음, 본인의 권한으로 마법진을 실행시켰다.

"당신들이 아니라 안나 언니를 위해서예요."

그녀가 재차 손짓하자, 텔레포트 마법진이 밝게 빛났다.

시몬과 레테가 위로 올라오고 이스라필이 물러섰다.

"레나, 당신의 말이 맞아요. 나는 늘 안나 언니를 위한다고 생각하며 움직였지만, 실은 나 자신을 위한 일이었을지도 몰라요."

키잉!

키잉!

마법진에 연달아 불이 켜졌다.

"나는 아마도 평생 네크로맨서를 사모하는 안나 언니를 이해하지 못하겠죠. 하지만-"

그녀가 미소 지었다.

"이번만큼은 내 이익과는 관계없이, 순수하게 안나 언니의 행복만을 위해서 움직이겠어요."

텔레포트 마법진이 발동한다.

두 사람의 두 다리가 서서히 떠오른다.

"안나 언니가 전쟁을 막으려면 신성연방 측의 공세가 늦어져야겠죠? 그것도 내게 맡겨요."

"이스라필 님......!"

레테가 감격에 목소리를 떨었다. 이스라필은 빙긋 웃었다.

"참고로 당신이 말한 안나 언니의 뒤를 이을 거라는 둥, 미래에 사람들을 구할 거라는 둥 입에 발린 헛소리를 믿어서 움직인 건 아니에요. 난 그 정도 인물이 못돼요. 나는 안나 언니의 하인 출신이고, 객관적인 자기평가는 확실히 되어 있으니까. 그래도-"

마침내 두 사람의 몸이 완전히 붕 떠올랐다. 이스라필이 손을 흔들었다.

"안나 언니를 위해서, 난 몇 번이고 같은 선택을 할 거예요."

* * *

봉서가 발견되고, 안나가 암흑연합의 영토로 파견되기 전 날밤.

-이스라필, 할 말이 있어요.

마치 마지막 이별을 고하려는 사람처럼.

혹은 죽음을 앞둔 사람처럼.

슬픈 미소를 지으며 안나는 이스라필을 불렀었다.

-나는 지금부터 이상한 일을 하러 떠날 거예요.

-안나...... 언니?

-나를 둘러싸고 있던 세상은 급변했어요. 최근에, 어느 사소한 일 하나로.

그녀가 슬프게 웃었다.

-난 아마 지금까지 쌓아온 모든 걸 버릴지도 몰라요. 신성연방의 뜻에 반하는 일일지도 모르겠네요.

-잠깐, 잠깐만 진정해 주세요! 무슨 말씀이신지 잘 모르겠어요!

평소에 이런 적 없던 사람이, 너무나 진지한 눈으로 말하고 있었다.

안나는 진심이다.

그리고 어떤 중대한 결정을 내렸음을 알 수 있었다.

너무 놀라고 당황한 이스라필이 애처롭게 외쳤다.

-지금까지 쌓아온 모든 걸 버린다뇨? 언니가 말씀하셨잖아요! '사소한 일' 하나라고! 고작 그 사소한 일 하나로 어떻게......!"

-하지만.

안나가 해맑게 웃음 지었다.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인생보다, 그 사소한 이틀이 더 밝게 빛났다면요?

화아아아아아아아아아!

그녀의 몸에서 눈부신 신성이 흘러넘친다.

이스라필은 입을 벌리며 뒷걸음질 쳤다. 갑자기 세상이 구름으로 뒤덮이며 천상의 나팔 소리가 울려 퍼진다. 하얀 깃털들이 눈처럼 내리고 천국의 기둥들이 들어선다.

놀랍도록 깨끗하고 선명한 신성.

깨끗한 신성은 '믿음'의 상징이다. 지금까지 수많은 기적을 일으켰던 안나가 발현했을 때의 신성보다 지금의 신성이 더더욱 맑고 순수하다.

그리고 그러한 천국의 광경을 등지고 웃고 있는 안나.

그녀는 이미 중대한 결심을 내렸다. 여신 또한 그녀의 결심을 떠받치듯 그 신성은 선명하다.

가지 말아주세요. 내 곁에 머물러 주세요.

이스라필은 결국 그런 이기적인 말을 입 밖으로 내뱉을 수 없었다.

안나는 등을 돌렸다.

-지금까지 고마웠어요, 이스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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