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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751화 (751/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751화

시몬은 아공간에서 마누스의 두개골을 꺼냈다.

"──────!!"

전 소드마스터의 두개골은 등장하기 무섭게 맹렬한 살기와 분노를 터뜨렸다. 시몬은 빠르게 용의 마법진 수식과 회로를 변경했다.

[또 이상한 걸 꺼냈나.]

블레타도 가만히 두고 보지는 않았다. 어둠의 정령을 자신의 몸에 받아들여 새까만 괴물의 팔처럼 변질시킨 뒤, 그 거대한 손아귀를 시몬 쪽으로 뻗었다.

"헤르세바! 10분만 버텨줘!"

[알았어! 꼬맹아!]

쿠구구구구구구!

기다렸다는 듯 헤르세바가 권능을 일으킨다. 블레타의 사방에서 모래창살이 지면을 뚫고 올라와 단숨에 감옥의 형상을 이루어 그를 가두었다.

블레타가 감옥을 부수려고 했지만, 주위의 건축물에서 붕대가 창살 사이로 날아들어 비대해진 블레타의 몸을 휘감았다. 단번에 목과 팔, 허벅지와 발을 봉쇄했다.

[이어서 감방 동료들 모시겠습니다!]

덜컹! 덜컹!

감옥 안에서 여러 건축물이 생기더니, 크고 작은 미라들이 침을 줄줄 흘리며 튀어나왔다. 블레타처럼 거대하고, 괴이한 양식의 모자를 쓴 미라들도 있었다.

콰콰콰콰콰!

바닥에서 붕대에 휘감긴 모래 악어가 튀어나와 블레타의 다리를 물고, 세워진 관 안에서 두 팔을 교차한 여우 형태의 미라들이 붉은 눈을 치켜떴다.

철컹!

감옥 위로 붕대를 두른 거대한 독수리 미라까지 내려앉아 포효했다.

[방해하지 마라!]

블레타가 모래감옥에서 미라들과 혈투를 벌이는 사이, 시몬은 차근차근 기술을 준비했다.

우선 용의 마법진의 사양을 변경했다. 드래고니안 슈트는 딸칵 거리는 소리와 함께 몸체가 재구성되어 가슴 중앙에 공간을 남겼다.

바로 이 슈트의 빈 공간에 마누스의 두개골을 넣고, 용의 마법을 작동시킨 채 마누스의 사념에 접속했다.

"!!"

그 순간, 마누스의 증오와 분노가 머릿속을 가득 메운다. 눈이 시뻘게진 시몬이 거칠게 몸을 비틀었다.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하는 것 같았다.

딸칵!

드드드득!

마누스의 지배를 받게 된 드레이크의 투구에서 거친 마찰음이 들렸다. 수트가 폭주하여 시몬의 몸을 역으로 통제하려 했다.

"마누스! 그만!"

발락 사태 이후로 마누스는 더더욱 살의에 미쳐 날뛰었다. 아론도 조언했듯, 어지간한 상황에서는 마누스를 직접 사용하기 어려워진 게 사실이다.

통제하려는 시몬의 의지와, 적을 베어 죽이려는 마누스의 의지가 정면으로 맞부딪힌다.

[힘에 겨운 기술로 보이는군.]

블레타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블레타는 어둠의 정령에 파묻혀 있지만, 그의 이성은 마이너스 감정에 잠식당하지 않고 멀쩡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감옥에 불을 질러서 미라들을 불태우고, 길어진 팔로 모래 감옥의 창살을 부수고 있었다.

'뭔가 수를 써야 해.'

시몬은 직감했다.

폭주한 마누스의 사념은 자신의 여력으로는 통제 불능이라고.

그러니.

'일체화한다.'

블레타는 목숨을 걸고 죽일 각오로 덤비지 않으면 이길 수 없는 강자다.

마누스에 맞춘다.

그의 살의에 맞춘다.

상반되어 부딪히던 의지가 조금씩 타협점을 찾고 일체화되며 서서히 드래고니안의 폭주가 가라앉는다.

시몬은 길게 호흡하며 두 팔을 축 늘어뜨렸다. 그러고는 아공간을 열고 별 특징 없는 검 한 자루를 꺼내 바닥에 떨어뜨렸다.

'검을 쥐는 순간 걷잡을 수 없어.'

하지만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다.

블레타가 헤르세바의 모래감옥에서 빠져나오려 한다. 시몬은 바닥에 떨어진 검을 붙잡아 들어 올렸다.

'아.'

마누스의 사념에 지나치게 일체화된 걸까, 검집을 쥐는 것만으로 심리적인 안정감이 찾아온다.

시몬은 검집을 허리의 벨트에 끼우고, 검을 뽑았다.

스르릉-!

새하얀 검이 태양광을 반짝이며 뽑힌다. 이내 완전히 뽑아 든 검을 앞으로 세우는 순간, 비로소 마누스도 만족한 듯 폭주를 멈추고 경건하게 전투에 임할 준비를 마친다.

'간다.'

콰콰콰쾅!

모래창살을 부수고 블레타가 짐승처럼 달리며 시몬을 향해 쇄도했다. 이에 시몬은 그저 맞잡은 검을 수평으로 그었다.

쩡.

문득 그런 소리가 났다.

마치 맑은 종소리와도 같은 타성음.

하지만 검을 쥔 손으로부터 팔을 타고 어깨를 지나 전신이 소름으로 뒤덮인다.

고오오오오!

블레타의 머리가 하늘 높이 날아가고 있었다. 머리 잘린 정령의 괴수가 바닥에 균형을 잃은 채 요란스럽게 엎어졌다.

[꼬맹아! 조심해!]

헤르세바의 외침이 들렸다. 머리를 잃고 쓰러진 블레타의 몸체에서 작은 정령의 얼굴들이 일어나더니, 검은 투사체를 연신 쏘아 보냈다.

이번엔 시몬의 차례였다.

<드래고니안 - 디펜스 모드>

벌집 모양을 이룬 자줏빛 비늘이 그림처럼 펼쳐지며 모든 공격을 막아낸다. 시몬과 마누스는 보호막을 유지한 채 검을 쥐고 블레타에게 전진했다.

그그극!

머리 잃은 블레타가 몸을 일으킨다. 머리가 잘린 부위에 새로운 머리가 돋아난다. 이번에는 주둥이가 툭 튀어나온 개의 형상을 이루었다.

척.

시몬이 검을 고쳐서 반대쪽으로 쥐었다.

그러자 놀랍게도 머릿속에 사용할 수 있는 검술의 기능, 위력, 용도가 무수히 떠올랐다.

마치 커다란 도서관에 들어온 것처럼, 책장에 있는 책을 뽑아 사용하듯 저 검술들을 마음대로 구사할 수 있었다.

척.

다시 움직여 반대로 쥐었다.

그러자 도서관이 뒤집히며 사용 가능한 검술의 목록이 바뀌었다. 시몬의 입꼬리가 용솟음쳤다. 이건 정말 말도 안 되는 경험이었다.

[흥미롭군. 네크로맨서가 재현한 소드마스터인가.]

블레타가 개의 머리로 히죽 웃었다.

[공교롭게도 프리스트와 네크로맨서들이 지배하는 이 시대에서, 구시대의 소드마스터와 정령술사의 대결이 일어나는구나.]

"구시대는 아니지."

근본은 먼 시대의 기술이지만, 이쪽이나 저쪽이나 네크로맨서의 흑마법으로 각각 검술과 정령술을 새롭게 변형했다.

소드마스터와 고위 정령사의 대결.

그러나 정확히는 두 네크로맨서의 대결이다.

"헤르세바."

[오케이! 이 싸움에 걸맞은 새로운 무대가 있어야겠지?]

쿠구구구구구구구!

두 사람의 지형이 발이 푹푹 빠지는 모래에서 평탄한 평지로 바뀌고 벽으로 뒤덮이며 주위에 커다란 관중석이 들어선다.

어느새 두 사람은 거대한 콜로세움 안에 들어와 있었다.

화르르륵!

블레타가 두 팔을 들어 올렸다. 그의 몸에서 방울지듯 떨어져나온 여섯 개의 어둠의 정령이 이글거리며 날아왔다.

시몬은 그저 검을 휘둘렀다.

쩌엉!

감응력이 없는 이상 금속으로는 벨 수 없어야 할 정령의 신체가, 정확히 반으로 갈라졌다.

시몬은 앞으로 걸으면서 검을 무심하게 휙휙 휘둘렀다. 그때마다 쇄도하던 정령들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속 내부의 '핵'을 훤히 드러낸 채 갈라진다.

[정령을 존재까지 베어 없애다니!]

블레타가 정령을 계속 쏘아 보내면서도 탄성을 흘렸다.

[일개 쇠붙이를 휘두르는 기술이 어찌 현인의 덕목인가 싶다가도, 그 또한 극의에 달하면 무시할 수 없구나.]

"글쎄."

날아오는 모든 정령을 베어낸 시몬이 씩 웃으며 손목의 힘만으로 검을 빙글빙글 돌렸다.

"너무 이 녀석을 자극하는 건 좋지 않을걸?"

그러고는 팔을 위로 홱! 젖혀 올렸다.

<제국 검술 - 우화(雨華)>

시몬의 팔이 올라가는 동시에, 내뻗던 블레타의 오른팔까지 잘려 올라갔다.

그러나 블레타는 냉정히 자신의 잘린 오른팔을 붙잡더니 검의 형태로 바꾸어 시몬에게 내리쳤다.

시몬도 검로를 수정해 휘둘렀다.

꽝!

두 검이 부딪히며 콜로세움이 뒤흔들린다.

꽈앙! 쩡! 쩌엉!

압도적인 체격 차이였지만, 시몬은 전혀 밀리지 않았다. 이내 빈틈을 포착하고 그 틈으로 검격을 쏘아 보내 왼팔마저 잘라냈다.

"지금이야!"

[언제 신호하나 기다렸지!]

그저 장식으로 콜로세움을 만든 건 아니었다. 블레타가 양팔을 잃자마자 콜로세움이 단숨에 좁아지더니 그 모래로 블레타의 몸을 휘감았다.

[이놈!]

블레타의 몸이 모래에 점점 파묻히며 거대한 마름모꼴의 황금 감옥이 되었다. 사슬들이 튀어나와 황금 감옥을 공중에 고정시켰다.

붕!

그리고 공중에 떠오른 시몬이 두 손으로 검을 맞잡고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마누스가 자랑하는 최강의 검술.

<제국검술 - 창천(漲天)>

사선으로 그어진 검격과 함께 시몬이 바닥에 내려왔다. 갈라진 황금 감옥의 틈 사이로 빛이 번쩍이고, 시몬은 천천히 검을 검집에 집어넣었다.

딸칵!

검이 검집에 들어가는 순간. 황금 감옥이 폭발한다.

감옥에 갇혀 있던 블레타가 가슴에 긴 상처를 입은 채 피를 토하는 모습이 보인다.

쿠르르르르르!

황금 감옥이 모래로 되돌아가고, 주위의 황량한 모래벌판도 사라진다.

하늘에 떠 있던 거대한 헤르세바의 눈동자도 눈을 감는다.

세상은 어느새.

다시 원래대로 돌아와 있었다.

"......."

남은 것은, 가슴에 커다란 검상을 보인 채 바닥에 누워 있는 블레타와, 검을 검집에 넣은 자세로 등을 돌리고 있는 시몬의 모습이었다.

"해내셨슴까!"

시몬이 돌아오자 레테가 달려와 맞아주었다.

시몬은 웃는 얼굴로 손을 흔들다가, '윽' 소리를 내며 몸을 움츠렸다.

파르르르르-!

전투가 끝났는데 마누스가 또 폭주하려 하고 있었다.

시몬은 얼른 용의 마법을 해제하고 마누스의 두개골을 드래고니안 슈트에 빼내어 아공간에 집어넣어야 했다. 그 와중에 마누스가 반항하면서 시몬의 손을 물었다.

'쓰려라.'

사실 이 정도로 끝난 게 운이 좋았다.

시몬은 고개를 돌려 블레타를 보았다.

"당장 상처를 회복하면 살 수 있을 거야. 결사에 대한 정보를 불어줘야겠어."

블레타는 큭큭 웃었다.

"이미 늦었다."

"뭐?"

그가 팔을 들어 올렸다. 흐느적거리는 장갑을 벗자 몸이 가루처럼 변해 흩어지고 있었다.

"......이건!"

"시간여행의 리스크지."

어느새 블레타의 얼굴도 서서히 흐려지고 있었다.

"이 시대에 존재해서는 안 될 존재여서 이렇게 사라지는 거다. 너희는 네프티스가 돕고 있겠지만, 난 온갖 정령마법으로 사라져야 할 시기를 억지로 늦추고 있었을 뿐이다."

그의 몸이 빠르게 사라져갔다. 블레타가 눈을 감았다.

"그래도 마지막으로 본 게 너라서 다행이구나. 시몬 폴렌티아."

시몬의 눈이 부릅떠졌다.

"뭐? 잠깐, 그게 무슨 소리야!"

사아아아아아아아!

그는 시몬의 물음은 무시한 채, 사라지려는 팔을 들어 올리며 하늘을 바라보았다.

"결사를 위해."

이내 그의 몸이 깨끗하게 허공에 흩어져 사라져 버렸다.

시몬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괜찮으심까."

레테가 다가오며 물었다. 시몬이 뒤를 돌아보았다.

"다른 결사 요원들은?"

"당연히 다 박살 냈죠. 살려보려고 했는데 전부 입에 있던 독을 물고 뒈져 버리더라구요."

레테가 한숨을 푹 쉬며 쪼그려 앉았다.

"그래도 뭐 소지품이라도 뒤져보죠. 뭐라도 있을지 모르니까."

시몬도 고개를 끄덕이며 사라지고 옷만 남은 블레타의 주머니를 뒤졌다. 정령사라 그런지, 공간 마법이 걸려 있는 가방에 각종 소지품들이 많았다.

"입국서류랑, 지갑이랑 가짜 신분 증명서. 이제 뭐 개인적인 물건밖에 안 남았네요."

"이건......."

시몬은 옷에서 작은 수첩 한 권을 꺼냈다.

"뭠까?"

촤르륵-

수첩을 넘기던 시몬의 표정이 가늘어졌다.

"어둠의 정령마법, 연구설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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