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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753화 (753/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753화

존재가 사라져 가는 건 묘한 기분이었다.

리처드와 안나가 봉서를 부수고 뒤를 돌아보기 전에, 시몬은 허공에 녹아들 듯이 사라졌다.

'마지막으로 얼굴은 보고 싶었는데.'

순식간에 시야가 황금색으로 뒤덮였다.

째깍! 째깍! 째깍!

시곗바늘 소리가 귓가를 가득 어지럽힌다.

어지럼증에 머리가 빙빙 돌아간다.

정신이 날아갈 것만 같다.

이제 더는 못 버티겠다고 생각할 즈음.

"......허억!"

눈이 번쩍 뜨였다.

휘이잉 하고 선선한 바람이 분다. 호흡이 안정되고, 몸에 힘이 붙고, 이성도 맑아졌다.

풀밭에 누운 채로 멍하니 밤하늘을 보다가 두 손을 들어서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해보았다.

잘 움직인다.

상체를 일으킨 시몬이 주위를 둘러보니 레스힐이었다. 그동안 있었던 일이 전부 한 여름밤의 꿈결처럼 느껴졌다.

'아.'

퍼뜩 정신을 차리고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한 소녀가 그림처럼 쓰러져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녀의 백발이 풀밭 위로 부채같이 펼쳐져 있었다.

"레테! 레테!"

시몬이 다급히 그녀를 흔들어 깨웠다.

'으음-' 하는 소리를 내며 눈꺼풀을 파르르 떨던 그녀가 이내 천천히 눈을 떴다.

"아."

시몬의 얼굴을 본 레테가 다소 얼떨떨한 목소리로 말했다.

"돌아왔네요."

"맞아."

시몬이 그녀의 어깨를 받쳐서 일으켜 주었다. 레테는 잠이 덜 깬 눈으로 슥슥 눈을 부볐다.

"안뇽!"

그때 갑자기 네프티스 얼굴이 불쑥 튀어나왔다. 놀란 시몬이 헛숨 삼키는 소리를 냈다.

"네, 네프티스 님......!"

"잘 다녀왔어?"

네프티스는 휘유~ 하고 손등으로 이마를 쓰는 시늉을 했다.

"아슬아슬했어! 사라지기 직전에 간신히 세이프!"

여전히 현실감이 없던 시몬은 다소 멍하니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 끔찍하게 오염된 레스힐이 아니었다.

폭우 때문에 풀과 나무가 조금 흐트러지긴 했지만, 그래도 아름다운 원래 고향의 모습이었다.

"......현대에는 시간이 얼마나 흘렀어요?"

시몬이 물었다.

네프티스가 고사리 같은 손가락을 접으며 생각하다가 이내 헷 웃었다.

"너희들이 포탈에 들어간 뒤로 5, 6분 정도? 세고 있었는데 까먹었어!"

"혹시 역사 중에-"

시몬이 벌떡 일어났다.

"뭔가 바뀐 건 있고요?"

"으음."

시간여행을 한 직후다.

만약 변화가 있다면, 그건 시몬과 레테, 그리고 결사가 간섭한 탓일 확률이 높았다.

인상을 구기며 생각에 잠겨 있던 네프티스가 이내 말했다.

"딱히 없는 것 같은데?"

"......진짜 확실함까?"

레테가 미간을 좁히며 수상쩍다는 듯 물었다.

네프티스는 빙글빙글 웃었다.

"졸졸 흐르는 계곡물에 손가락을 넣으면 물살이 갈라지지?"

그녀가 손가락을 내리는 시늉을 했다.

"당장 보면 내 손가락 때문에 물살이 갈라지고, 파문도 이상하게 일어나고, 엄청나게 큰 변화가 생긴 것처럼 보이잖아? 하지만 다시 손가락을 물에서 떼면? 다시 갈라졌던 부분이 채워지면서 평소로 돌아가. 수백 년간 그 자리에 흘렀던 그대로 말야."

그녀가 손가락을 다시 들어 올린 뒤, 엉덩이 뒤로 감추었다.

"그런 거야! 과거에서 만났던 사람들은 너희들의 존재를 제대로 기억하지도 못할걸? 시간 여행자는 이 세계의 법칙에 위반되는 존재고, 이 세상 전체가 그렇게 만들거든."

"아, 뭐야."

레테가 떫은 표정을 지었다.

"그럼 우리가 막 개고생 필요 없이도, 결국은 원래 역사대로 흘러간단 이야기 아님까?"

"그건 아무도 모르지~"

네프티스가 어깨를 으쓱했다.

"무려 '시간'에 관련된 문제인걸? 시간 사건의 변수는 무수히 많아. 특히 결사는 흐르는 계곡에 손가락이 아니라 바위라도 올릴 생각이었을 거야."

"......."

"뭐 어쨌건! 아무 일도 없다는 건 너희들이 일을 잘해내 준 덕분이겠지! 수고했어!"

네프티스는 그 뒤로 과거에 있었던 일들에 대해 간단히 물어보았다.

결국 배신의 군단 사태는 온전하게 벌어졌고, 미래에서 넘어온 블레타가 너무 오래 존재한 대가로 사라졌다는 말을 들은 뒤에야 네프티스는 안심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고맙습니다! 네프티스 님."

시몬이 고개 숙여 인사했다.

"저희를 과거로 보내 아버지와 엄마가 다시 이어지게 해주셔서요. 이 은혜는 꼭 갚겠습니다."

시몬은 그곳에서 리처드와 안나의 사랑을 목격했다. 자신의 존재가 온전한 걸 떠나, 두 사람이 다시 이어진 게 무엇보다 고맙고 다행스러웠다.

"헤헤, 내가 더 고맙지!"

네프티스가 활짝 웃었다.

"평화의 시대가 열렸고, 사라질 뻔했던 우리 학생회장도 다시 돌려받았...... 응?"

주르륵-

네프티스의 코에서 까만 피가 흘러나왔다. 그녀가 핫! 하고 뒤로 물러나 얼굴을 가렸다.

"네프티스 님!"

"아, 아하아! 조금 무리했나? 시간여행은 역시이-"

그녀가 얼굴을 가리며 털썩 풀밭에 쓰러졌다. 시몬이 허둥지둥 그녀의 곁에 다가왔다.

"이, 일단 좀 쉬세요! 저희 집으로 가실래요?"

"아냐 아냐. 이미 제인한테 연락했어. 회복시설이 있는 로크섬에서 쉬는 게 나아."

그녀가 눈을 찡긋했다.

"약소하지만 임무 의뢰비도 빠르게 보내놓을게. 밤도 늦었고, 너희들은 얼른 돌아가 봐."

네프티스가 걱정됐던 시몬이 망설이자, 그녀가 웃는 얼굴로 덧붙였다.

"궁금하잖아? 너희들이 과거를 바꾼 뒤로, 리처드와 안나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지."

* * *

시몬과 레테는 집으로 돌아갔다.

걸음걸음이 무거웠다. 시몬은 자꾸만 마른침이 넘어갔다. 레테도 마찬가지인 듯 잔뜩 긴장한 표정이었다.

현대에선 고작 5~6분 지났다고 하지만, 두 사람은 방금 전만 해도 과거의 리처드와 안나와 함께 지냈고 배신의 군단 사태까지 겪었다.

그런데 이제 그 두 사람의 22년 뒤의 모습을 만날 차례다.

'현실감이 정말 하나도 없네.'

네프티스는 흐르는 계곡에 손가락을 넣는 것으로 비유했지만, 시간에 관련된 일이니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원해서 그렇게 한 건 아니지만, 과거에서 워낙 변수가 많았고 영향을 끼친 부분도 많아서 걱정스러웠다.

'제발.'

문 앞에 선 시몬이 걸음을 멈췄다.

'제발 별일 없었으면......!'

그의 손끝이 문고리 앞에서 망설이고 있는 그때.

"벌써 돌아왔니 시몬?"

문 너머로 안나의 목소리가 들렸다.

성녀시절의 다소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아닌, 부드럽고 인자한 음성.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시몬은 거짓말처럼 망설임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문 앞에서 덜덜 떨던 손에 힘을 주고, 문고리를 잡아 열어젖혔다.

벌컥!

문이 열리고, 시몬은 그대로 굳어졌다.

'아.'

그 두 사람이.

제7군단장 악동 요나와, 기적의 성녀 안나가.

22년 뒤의 시간이 지나 중년이 된 모습으로 온화한 미소를 지은 채 나란히 서 있었다.

"어서 들어오거라, 시몬."

"네프티스 님이 너무 혼내신 건 아니지?"

두 사람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안도의 감정이 파도처럼 쏟아지며 눈가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아버지! 엄마!"

시몬은 힘껏 소리 지르며 달려가 두 사람을 동시에 힘껏 껴안았다.

"시, 시몬?"

"다행이에요! 다행이에요!"

시몬이 쉰 목소리로 소리쳤다.

"두 분이 그대로셔서......! 정말로 다행이에요......!"

리처드와 안나가 의아한 표정으로 눈을 깜빡였다.

"무슨 말을 하는 게냐, 시몬. 시간이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시몬은 대답도 못 하고 두 사람을 끌어안은 채 울었다. 그때 안나가 고개를 돌렸다.

"어머."

뒤따라 들어온 레테가 눈시울이 붉어진 채 눈물을 참고 있었다. 그러다 안나와 눈을 마주치자, 참지 못하고 히끅거리는 소리를 냈다.

들어오면서 절대로 안 울겠다고 다짐했지만.

"레테?"

그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안나 선생니이이임!"

레테도 참지 못하고 달려들어 힘껏 안나를 끌어안았다.

흐흑. 흑.

끅.

리처드와 안나는 펑펑 울음을 터뜨리는 시몬과 레테를 각각 안은 채, 당황한 시선을 주고받고 있었다.

"여보, 갑자기 애들이 왜 이럴까요?"

"네프티스 님이 너무 따끔하게 혼내신 게 아닐까."

"쫌! 아이들이 그런 걸로 이렇게까지 울겠어요?"

그렇게 한동안.

리처드와 안나만 어리둥절한 감격의 재회가 이어졌다.

* * *

잠도 이미 달아났겠다.

네 사람은 늦은 새벽 파티를 하기로 했다. 안나는 바로 주전부리를 만들어왔고, 리처드는 창고에서 아끼던 와인 한 병을 가져왔다. 가볍게 즐기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시몬과 레테는 첫사랑 이야기를 처음부터 다시 해달라고 졸라댔고, 리처드와 안나는 조금 쑥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뗐다.

"그래, 네 엄마와는 중립지대의 고아원에서 봉사활동을 하다가 만났다. 아직도 그 엄격한 원장 얼굴이 선명히 떠오르는군."

"당신, 첫인상은 참 나빴던 걸로 기억해요. 다른 봉사자랑 싸우고 그랬잖아요."

"흠흠, 그 자식이 먼저 시비를 걸었다니까."

시몬과 레테는 웃음을 터뜨렸다.

이럴 수가.

작은 변화지만 정말로 과거가 바뀌었다. 시몬과 레테가 얼마 전에 직접 겪었던 그 이야기를, 두 사람은 추억을 되새기며 먼 옛날이야기처럼 말하고 있었다.

"정령을 타고 네 엄마를 바다에 데려갔지. 그때 네 엄마 표정을 너희들도 봤었어야 했는데."

이야기를 듣던 레테가 휙 끼어들었다.

"고백은 누가 먼저 했어요?"

"그야 고백은 한참 뒤에 내가 하긴 했지만, 먼저 유혹한 건 안나가......."

"리처드!"

안나가 벌게진 얼굴로 벌떡 일어났다.

"아이들 앞에서 그런 헛소리할 거면 들어가 자요! 당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다 알고 있는데 무슨......!"

리처드는 술기운에 붉어진 얼굴로 킥킥 웃었다.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했더니 먼저 키스한 게 누군데. 헤어질 때 한 번 더 하고."

"리처드!!"

아하하하하하하!

시몬과 레테는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하아.'

시몬은 의자 등받이에 등을 기대며 커다란 행복감과 안도감을 느끼고 있었다.

동시에 이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 절감했다.

리처드와 안나는 이 작은 산골에서의 평범한 일상을 손에 넣기 위해 세상과 싸웠다. 수많은 편견과 악의에도 꺾이지 않았다.

자신의 부모님이지만 진심으로 존경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 설마 또 우는 검까?"

레테가 장난스럽게 시몬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리처드를 혼내던 안나가 놀라서 시몬을 보았다.

"아들, 밖에서 무슨 일 있었니?"

"아무것도 아니에요."

혹시 모르니 리처드와 안나에게는 시간 사태에 대해 직접적인 이야기는 하지 않기로 네프티스와 상의했다.

들으면 두 사람도 혼란스러울 테고.

대신 시몬은 웃으며 대답했다.

"그냥 행복해서요."

아들의 그 한마디에, 눈물이 전염되기라도 한 건지 안나도 눈시울이 붉어졌다. 리처드만이 술에 취해 이를 드러내며, 좋은 자리에 그만 좀 울라고 놀려댔다.

서서히 술자리의 분위기는 무르익어갔다.

"안나 선생님 안나 선생님, 그런데요~"

마찬가지로 뺨이 붉어진 레테가 턱받침을 하며 물었다.

"혹시 봉사활동 할 때 혹시 곁에 사람이 있었던 것 같은 기억, 안나세요?"

"응?"

"사랑의 전달자! 같은 사람이요."

안나가 쓰게 웃었다.

"그, 글쎄?"

리처드와 안나가 말한 이야기의 공통점.

시몬과 레테의 존재는 쏙 빠져 있었다는 점이다.

한편으로는 다행스럽기도 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아쉽기도 했다.

가장 와인을 많이 마신 리처드가 뒷목을 긁으며 말했다.

"사랑의 전달자는 모르겠고, 그때 누군가 날 감시해서 스트레스받은 기억은 나는데."

"!"

그 말을 들은 시몬이 밝게 피어나는 얼굴로 활짝 웃었다. 리처드도 제 아들을 보더니 픽 웃음을 흘리며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으음- 그러고 보니 그즈음 누가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안나가 입술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생각하려 해도 생각이 안 나고 간질간질한 기분이네. 소중한 사람이 기억나지 않아서 가슴이 답답하구나."

"괜찮아요!"

소중한 사람이라.

그 한 마디에 레테는 세상을 다 가진 표정으로 안나의 품에 안겼다.

-지금은 헤어지지만, 우린 언젠가 다시 만날 거예요.

그녀가 환하게 웃으며 소리쳤다.

"이렇게, 우리가 다시 만났잖아요!"

* * *

신성연방, 하늘섬.

또각또각.

장교복을 입은 한 젊은 프리스트가 문 앞에서 멈춰 섰다. 그녀는 대리석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며 옷매무시를 가다듬은 다음, 후읍 하고 숨을 들이마시었다.

이내 긴장한 얼굴로 똑똑 문을 노크했다.

"이스라필 성녀님. 페넬로피입니다, 서부 지방 보고서 전달 드리고자 왔습니다.

"들어오세요."

이스라필의 목소리에 프리스트는 안으로 들어갔다.

고즈넉한 디자인의 집무실에, 눈을 감은 바다색 머리의 여인이 깃펜을 들고 서류에 서명을 하고 있었다.

"어서 와요."

"아, 네!"

동경하는 신성연방의 평화의 상징, 이스라필과 한 공간에 있다는 건 흔히 할 수 없는 경험이었다.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고 젊은 프리스트는 공손히 보고서를 내려놓으며 이런저런 보고사항을 이야기했다.

이스라필은 바쁜 와중에도 불구하고, 친절한 미소를 지으며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수고했어요. 페넬로피."

"감사합니다! 아......."

그때 그녀의 시선이 이스라필의 집무실 중앙에 있는 액자로 향했다. 정성껏 재단한 커다란 액자에는 어떤 글귀가 적혀 있었다.

"뭔가 더 할 말이 있나요?"

"저 글귀......."

프리스트가 손끝으로 액자를 가리켰다.

"집무장소를 자주 옮기시지만, 저건 항상 가지고 다니시더라구요. 무슨 특별한 의미가 있나요?"

"아, 저거요?"

이스라필이 입을 가리며 부끄럽게 웃었다.

"늘 제 마음을 지탱해 준 글귀랍니다. 저 말이 위로해 주지 않았다면, 지금쯤 저는 시련들을 견디지 못하고 무너졌을지도 몰라요."

"멋지네요. 누가 해준 이야기인가요?"

"글쎄요."

이스라필이 눈을 감은 채로 고개를 갸웃했다.

"누군가 제게 말해줬었던 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그냥 스스로 머릿속에서 떠올린 것 같기도 하고? 알쏭달쏭하네요."

"??"

이스라필이 생긋 웃었다.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뭐 어때요?"

"네! 이스라필 님이 좋으시다면......!"

이스라필은 뿌듯한 표정으로 액자를 돌아보았다.

<새 시대를 여는 건 안나지만, 그걸 유지하는 건 당신이다.>

볼 때마다 새롭고.

볼 때마다 가슴이 뜨거웠다.

"어쩐지."

그녀가 아련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레테의 얼굴이 그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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