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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755화 (755/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755화

다음 날 아침.

시몬이 홍펭에 초대에 응할지 말지 고민하고 있는데, 학생회 멤버들로부터 새로운 편지를 받았다.

홍펭의 편지가 도착한 지 고작 하루 만에 도착한 편지들이었다.

아무래도 초원에 있는 홍펭은 네 사람에게 일괄적으로 편지를 보냈을 테지만, 험지인 레스힐이라 시몬의 편지가 유독 늦게 도착한 모양이었다.

시몬은 바로 멤버들이 보낸 편지를 확인했다. 그 내용은 알기 쉬웠다.

-가자! 가자! 가자! 가자! 가자! 가자! 가자! 가자! 무조건 가자! 가자! 안 간다고 하면 진짜 죽여 버릴 거야! 나 너무 신나! 가자! 가자 가자!

잔뜩 흥분한 듯한 메이린의 편지.

-저도 너무 가고 싶어요! 다름 아닌 홍펭 교수님의 고향이잖아요! 초원에 가면 악어도 있고 들소도 있겠죠? 물론 벌레가 조금 무섭지만 모두 함께 가면 괜찮을 거라고 생각해요!

기대감이 커 보이는 카미바레즈의 편지.

그리고 가장 아래 편지의 딕은 한술 더 떴다.

-자, 자. 구매할 물건 체크 표시해 줘. 원가 반만 받고 넘긴다.

<비상용 텐트, 전등, 신발, 다용도 나이프, 정글옷.......>

이 녀석은 당연히 가는 것처럼 말하고 있었다.

'다들 갈 생각 만만인 것 같은데.'

시몬은 헛웃음을 흘리며 침대에 벌러덩 누웠다.

'초원이라.'

암흑연합민들 사이에서 '초원'이라고 하면, 샤헤드 왕국에서도 극남부에 위치한 메크리아 초원을 뜻한다.

가보고는 싶었지만 일단 부모님의 허락을 받는 게 우선이었다.

시몬은 바로 계획을 세웠다. 시간이 되어 오늘도 늘 그렇듯 오늘도 봉사활동을 나갔고, 복구 작업 중에 리처드와 안나를 각각 만났다.

-메크리아 초원 일대를 말하는 게냐? 아주 좋지. 살면서 한 번은 다녀올 만하다.

리처드는 젊은 시절 초원에 갔었던 모험담과 일화를 장황하게 이야기했다. 시몬도 적극적으로 호응하며 이야기를 들어주었고, 이내 가볍게 허락을 받아냈다.

문제는 안나였다. 그녀는 걱정하는 눈초리였다.

-초원지대는 위험하지 않겠니?

-괜찮을 거예요!

시몬은 키젠 교수인 홍펭의 초대를 받아서 간다는 점을 강조했고, 메이린, 딕, 카미바레즈 세 사람과 함께 가니까 안전할 거라고 이야기했다.

안나는 다른 사람도 아닌 키젠 교수의 초대라는 말에 안심하는 듯했다.

조금 생각해 보겠다고 말하더니, 결국 점심때 허락을 받아내는 데 성공했다.

'뭔가 순조롭네.'

경험상, 뭔가 이렇게 순조롭다고 느낄 때일수록 위험이 도사릴 때가 많았다. 하지만 이번 초원 투어는 위험이 있으려야 있을 수 없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홍펭'이 있으니까. 그만큼 시몬은 그녀와 그녀의 강함을 신뢰했다.

까악- 까악- 까악-

그렇게 오늘 작업을 마친 시몬이 풀밭에 누워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 하늘에서 익숙한 새 울음소리가 들렸다.

언데드 까마귀가 날아다니고 있었다.

"아."

군단형 언데드 새, 그렇다면 '북부'에서 온 서신이었다.

시몬이 팔을 들어 올리자, 까마귀가 얼른 시몬의 팔에 앉아 서신을 툭 떨어뜨렸다. 총 두 장의 서신이었는데, 한 장은 북부대공 진이 보낸 거였고, 다른 한 장은 피어가 보냈다.

"일해볼까."

시몬은 학생이라는 자각은 잠시 내려놓고, 한 사람의 군단장으로서 진지한 마음가짐으로 서신의 내용을 살폈다.

'협상이 진행됐구나.'

그 협상은 당연히 마정석 광산에 대한 내용이었다.

마정석 광산의 위치는 프로스트 필드에 있지만, 발굴한 마정식을 실어서 대륙 내로 옮기려면 칼로스 북부의 영토를 통과해야 한다. 광산개발도 언데드들로만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인간의 기술력이 필요하니 북부와의 협력은 필수적이었다.

피어와 대공이 협상한 결과, 수익 비율은 6:4.

북부에서는 4를 받는 대신 광산개발에 필요한 자본, 기술, 제반비용, 그리고 대륙으로 실어나르는 물류비까지 모두 부담하겠다는 것 같았다.

'이러면 나쁘지 않네.'

시몬은 광산의 소유권만 가지고 있어도 돈이 들어오는 셈이다. 필요하다면 가끔 북신의 병력으로 언데드 노동력을 제공하면 된다.

시몬은 이대로 진행하기로 했다.

시몬 개인의 수익이 오르는 건 물론, 7군단과 2군단의 동맹이라는 큰 그림. 무엇보다 전쟁으로 황폐해진 북부의 재건을 위해서도 이번 일은 중요하다.

'좋아, 좋아.'

역시 프로스트 필드를 차지한 보람이 있었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조금 더 기다리면 가만히 앉아 있어도 돈이 들어오는 수익구조가 생긴다.

그렇게 계약에 대한 내용은 끝나고, 대공은 그 아래의 작은 편지에서 자신의 사적인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전쟁이 끝난 뒤 북부인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자신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이야기했다.

가문의 의무에서 해방되어 방황하던 그녀도 이제 다시 의욕을 내는 모양이었다.

<개인적으로 준비하고 있는 게 있다. 키젠 학생인 너도 기대해도 좋을 내용이니라.>

뭘 준비한다는 거지?

이렇게 궁금하게 해놓고 아무 말도 안 해주다니. 시몬은 아쉬움에 웃었다.

마지막으로 대공은 어린 시절, 군단장 선배이자 생명의 은인이었던 리처드에게 안부를 전해달라는 이야기와 함께 편지내용을 끝마쳤다.

시몬은 뿌듯한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편지를 내려놓았다.

"그럼 다음은......."

피어가 보낸 서신이었다. 시몬은 부스럭거리며 편지를 펼쳤다.

오랜 세월 존재했던 언데드답게 옛날 느낌 물씬 나는 고풍스러운 필체였다.

-대공의 편지를 봤다면 알겠지만 북부와의 일은 수월하게 풀렸다. 자이로스 놈도 가끔 북신의 인격이 튀어나오는 것 외에는 큰 이상이 없어 보이는군.

자이로스가 제 얼굴을 때리는 모습을 떠올린 시몬이 피식 웃었다.

-북부에서의 일정은 끝이다. 나도 이제 곧 대륙을 횡단해 로크섬에 복귀하겠다. 거리가 멀어서 네 개학시기와 맞추진 못하겠지만 빠르게 움직여 보도록 하지.

"잠깐."

대륙 최북단인 프로스트 필드에서 로크섬까지 걸어서 이동하기엔 너무 멀다.

피어 본인도 개학시기에 맞추지 못할 거라고 했으니까.

하지만.

"중간에 초원에서 피어와 만나면 되겠는데?"

피어가 있으면 시몬도 초원에서 든든할 것 같았다.

시몬은 바로 답신을 작성해 언데드 까마귀를 날렸다.

* * *

그렇게 시간이 흘러.

'......큰일 났다.'

시몬은 방학 동안 커다란 어려움에 직면했다.

그간 겪어보지 못한 종류의 어려움이었기에 더 곤란했다.

그건 바로.

'아직 일주일도 안 지났어?'

시간이 안 간다는 점이었다.

그동안은 아무 생각 없이 영지일과 훈련에 집중하다 보면 하루가 금방 가곤 했지만, 친구들과 초원에 놀러 갈 약속을 잡아버린 뒤로 문제였다. 갑자기 하루하루를 의식하게 되고 시간이 안 간다고 느껴졌다.

일과를 마치고 방에 돌아온 시몬은 제 방 달력에 체크표시를 하면서 팔을 늘어뜨렸다.

'여기서 일주일을 더 어떻게 버텨!'

시몬이 책상 앞에서 주르륵 쓰러졌다. 그나마 생활의 낙은 친구들로부터 오는 편지였다. 메이린과 딕, 카미바레즈 모두 같은 생각인지, 너무 기다려져서 시간이 안 간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메이린은 벌써 초원에서 입을 옷을 사러 간다고 했다. 무슨 색이 좋을지 골라달라고 했다.

카미바레즈는 과보호하는 뱀파이어 로드인 아빠를 어떻게 따돌리고 혼자 약속장소까지 갈지 고민하는 것 같았다.

딕은 초원에 가서 돈 벌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쿨링 포션! 이건 진짜 날개 돋친 듯 팔릴 것 같지 않냐?

-쿠션 달린 말 안장!

-모기를 쫓는 물약을 만들었는데, 사람도 쫓을 것 같긴 해. 그래도 괜찮겠지?

시몬은 마지막 아이템은 버리라며 절친에게 조언하고는, 편지지를 편지봉투에 담았다. 이내 다시 슬라임처럼 축 늘어져 벽에 몸을 기댔다.

'딱 눈감았다가 뜨면 일주일이 지나 있으면 좋겠다.'

툭툭툭-

그때 창가를 두들기는 소리가 들렸다. 시몬이 고개를 돌려보니 언데드 까마귀가 창문을 두들기며 까악거리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피어의 답장이다!'

시몬이 얼른 창가를 열었다. 뒤이어 언데드 까마귀가 가져온 편지를 풀어보았다.

-완벽하군. 그렇지 않아도 초원에는 나중에 한 번 방문하려던 참이었다.

피어가 왜 초원에?

그렇게 생각하던 의문은 곧 다음 문장에서 풀렸다.

-우리 군단의 소속이었던 에이션트 언데드, 뮤르의 마지막 흔적이 15년 전 초원에서 발견되었다고 하더군.

시몬이 움찔한 표정을 지었다.

-뮤르는 7군단의 에이션트 언데드 중에서도 가장 위험한 녀석이다. 그래서 가장 마지막에 찾으러 갈 생각이었다만, 녀석은 진작에 초원을 떠났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단서를 확인하러 가는 정도로 가보는 건 좋겠지.

시몬은 옆머리를 긁적였다.

"......10년 전이라면 다행이지만, 설마 진짜 있지는 않겠지?"

갑자기 살짝 불안해졌다.

하지만 홍펭은 학생들을 위험에 빠트릴 성격이 아니다. 위험하다고 생각됐다면 애초에 학생들을 초대하지도 않았으리라.

그리고 이런 걸 다 떠나서, 정말로 군단과 관련된 문제라면 시몬이 가만히 앉아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어쨌거나, 가보긴 가봐야 한다는 거네.'

* * *

그렇게 일주일 뒤.

기다리던 그 날이 왔다.

-다녀오겠습니다!

부모님의 허락까지 받은 시몬은 거칠 게 없었다. 레스힐에서 내려와 호브에서 마차를 잡아타고 드레스덴 왕국을 향해 이동했다.

긴 장거리 마차여행이 될 것 같았다.

시몬은 늘 그랬듯, 마차 안에서 초원에 대한 상식과 역사에 대해 읽었다. 아무리 놀러 가는 거라고 해도 목적지에 대한 정보수집은 필수였다.

<대륙의 지리 및 역사>

메크리아 초원.

이곳은 수많은 유목민족들이 살던 곳으로, 수목이 울창한 지역도 있지만 목초지가 넓어서 말이나 염소 등의 가축을 기르기 좋은 지역이다.

'홍펭 교수님이랑, 별야 교수님도 이곳의 소수민족 출신이었지.'

시몬은 다리를 쭉 뻗고 다시 독서에 집중했다.

과거에 유목민족은 대륙 최초로 몬스터와 말을 교배하는 데 성공했으며, 그 특수종을 타고 대륙을 내달리며 숱한 왕국들을 무너뜨렸다.

한때는 '유목제국'을 세울 정도로 그 위세가 대단했는데, 전성기 때는 반대편의 신성연방 쪽 영토까지 그 영역을 확장할 정도였다.

그 유목민족들 중에서, 가장 강성한 세력이 현재의 '샤헤드' 왕국을 세우고 정착한 것이다.

물론 이들 유목민족은 기사와 마법사의 시대를 거치며 세력이 약화되었고, 네크로맨서와 프리스트의 시대에서는 기를 못 펴고 소수민족으로만 남아 있다. 역사를 아는 자들만이, 샤헤드의 초원 민족이 한때는 대륙을 호령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흥미롭네.'

시몬은 마차 내내 새로운 장소에 대해 공부했다.

물론 바로 초원으로 향하는 건 아니다. 드레스덴 왕국에서 상당한 유명한 휴향지인 '베리노'라는 도시가 있는데, 해변이 무척이나 아름다운 곳이라고 한다.

바로 여기서 학생회 멤버들과 합류할 계획이었다.

여기서 이틀 정도 해수욕도 하면서 즐겁게 놀다가, 딕이 준비해 둔 배를 타고 바다를 가로질러 메크리아 초원 일대를 흐르는 강으로 진입할 예정이었다.

딕의 말에 따르면 육로를 통해 가는 것보다 훨씬 시간을 절약할 수 있는 건 물론이고, 문명화가 진행되지 않은 초원에 가기 전에 베리노에서 문명의 이기를 실컷 즐기며 놀 수 있는 일석이조의 코스라고 한다.

다른 멤버들도 모두 동의했다.

'다들 잘 지내고 있으려나.'

그렇게 역사책을 보고 있던 시몬이 잠시 잠든 사이, 마부의 외침이 들렸다.

"손님! 거의 다 도착했습니다!"

그 말에 시몬이 벌떡 일어나서 침을 스읍 닦고는 창문을 열었다.

그의 눈동자가 커졌다. 수풀이 듬성듬성 자라난 평지 너머로, 하얀 건축물들이 세워진 아름다운 도시가 보인다.

"환락과 유희의 도시, 베리노입니다!"

* * *

아름다운 바다가 펼쳐진 해변길.

베리노의 길거리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있었다. 수영복 차림으로 떠돌아다니는 커플들, 음악을 연주하는 바드들, 화기애애하게 웃고 있는 가족들까지.

그리고.

"왜 그래? 사샤."

"아."

바람결에 휘날리는 갈색 단발머리를 붙잡아 내린 소녀가 문득 뒤를 돌아보았다.

한동안 우두커니 뒤를 돌아본 채 멍하니 있던 그녀가 이내 고개를 되돌렸다.

"아니, 그냥. 바람이 기분 좋아서."

"뜬금없이 뭐래, 빨리 가자! 임무 브리핑에 늦겠어."

사샤는 고개를 끄덕이며 어깨에 멘 가방을 고쳐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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