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758화
시몬 일행은 해변가를 빠져나와 도심지로 들어왔다. 날이 어두워지고 건물가 곳곳에 불이 들어온다. 야간 도박장이 운영을 시작하면서 주위가 시끌벅적하다.
"그런데 딕, 그 짐작 가는 곳이란 게 어디야?"
시몬의 물음에 딕이 어깨를 으쓱했다.
"아까 장사하면서 슬쩍 주워들은 이야긴데, 광장에서 큰 싸움이 일어났대. 뭔 덩치 큰 사람이 팔을 휘두르는데 도로가 엎어지고 건물벽이 갈라졌다나 뭐라나."
그 말을 들은 메이린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 바보 같은 이야기가 카미랑 무슨 상관?"
"자, 다들 카미랑 주고받은 편지 생각해 봐. 아빠를 떼어놓을 방법을 떠올리고 있다고 했지? 과연 진짜로 팔불출 뱀파이어 로드를 떼어놓고 혼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을까?"
어쩐지 알 것 같았다.
시몬과 메이린이 고개를 주억였고, 딕이 으스대며 팔짱을 꼈다.
"이런 사소한 힌트도 놓치지 않고, 조각조각 맞춰서 단서를 만들어내는 게 실력이지!"
"너 그 입 딱 한 번만 세게 때려보면 안 돼?"
딕과 메이린이 싸우는 사이, 시몬이 걸음을 멈췄다.
'여기다.'
도심지 광장.
진짜로 건물 벽이 쩍쩍 갈라져 있었다. 시몬은 갈라진 틈 안으로 손을 넣고 만져보았다. 칼에 베인 것처럼 예리하고 매끈하지만, 일직선으로 그어진 게 아니라 묘한 굴곡이 있다.
'손톱의 흔적.'
시몬은 이어서 바닥을 살펴보았다. 광장의 분수가 범람했는지 물이 번져 있었고, 진흙 묻은 여러 발자국이 나 있었다.
여러 사람들의 발자국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는 가운데, 시몬은 안에서 밖으로 향하는 발자국을 발견했다.
보폭이 크고, 발자국도 상당히 넓다.
"이쪽이야."
시몬이 손짓했다.
세 사람은 빠른 걸음으로 골목을 지나 이동했고,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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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들썩한 소란과 함께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시몬은 즉시 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달려나갔다.
"크하하하! 감히 내 딸을 음흉한 눈으로 노려봐? 그 눈깔을 후벼 파주마!"
"아빠!"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목소리도 점점 더 선명해진다.
칠흑을 일으켜 단숨에 건물벽을 몇 개나 뛰어넘은 시몬이 바닥에 착지했다.
관광객으로 보이는 한 남자가 공포에 질린 얼굴로 주저앉은 채 덜덜 떨고 있었고, 그 앞에는 커다란 망토를 전신에 두른 남자가 보인다.
망토에 둘러싸인 하체는 말라 보이지만, 다리를 지나 위로 올라올수록 상체는 비대하게 커져갔고 어깨는 벌판처럼 벌어져 있었다. 기둥처럼 두꺼운 목, 붉은 눈과 날카로운 송곳니가 보인다.
카미바레즈의 아버지이자, 현 뱀파이어 로드.
디트리히 혼 우르슬라.
그리고 그를 붙잡은 채 낑낑대며 말리고 있는 소녀가 보인다. 연보랏빛 머리카락을 두 가닥으로 묶어서 늘어뜨린 모습은 틀림없는 카미바레즈였다.
마침 디트리히와 카미바레즈가 시몬을 보았다.
"오! 이게 누구야."
일그러져 있던 디트리히의 표정이 풀리며 히죽 웃는 얼굴로 변했다. 화를 내던 카미바레즈도 갑자기 얼굴에 화색이 돌더니 손을 붕붕 흔들었다.
"시몬~ 여기에요!"
"안녕, 카미."
시몬이 시선을 끌어주는 사이, 관광객이 자리에서 일어나 후다닥 골목으로 도망쳤다. 디트리히는 잔챙이에겐 관심이 떨어졌는지 뒤쫓지 않았다.
뒤이어 딕과 메이린도 도착했다. 세 사람을 본 디트리히가 크하하하! 통쾌하게 웃었다.
"그래, 너희들! 저번 방학식 때 본 뒤로 처음이구나!"
친구 아빠다.
세 사람은 허리를 직각으로 숙이며 공손히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오냐! 오냐! 하하하하!"
디트리히는 여전히 호탕한 성격이었다.
그리고 시몬이 고개를 들 즈음에는, 어느새 디트리히가 코앞으로 다가와 그의 어깨를 붙잡고 있었다.
"불량한 양아치 놈들이 저리 돌아다니며 내 딸을 훑어보는데, 뭘 하다 이제 오느냐?"
"네?"
"이전에 분명 내 딸을 부탁한다고 했을 텐데, 내 지시를 띄엄띄엄 들었군."
"아빠아!"
얼굴이 홍당무처럼 빨개진 카미바레즈가 디트리히의 몸을 콩콩 때렸다. 디트리히는 이죽거리며 시몬의 어깨를 가볍게 한번 두들기는 고개를 돌렸다.
"그래, 상아탑의 메이린 빌렌느!"
"안녕하세요, 카미 아버님! 강녕하셨어요?"
메이린이 두 손을 모으며 예쁘게 웃었다. 디트리히가 허허 웃었다.
"예법의 기본이 되어 있구나. 상아탑의 다니엘라가 딸내미 하난 잘 키웠어!"
"과찬의 말씀이세요."
"그리고 놈팽이! 너는 여전하구나!"
딕이 제 얼굴을 가리켰다.
"저, 저요? 저만 왜 놈팽이입니까 아버님!"
"내 태생부터 장사치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만, 내 딸이 네 그 잡다한 잔기술에 도움을 받은 적이 있으니 살려는 주겠다!"
"예입, 생명의 은인으로 뫼시겠습니다!"
딕도 유쾌하게 대답했다.
디트리히는 턱을 슥슥 쓸다가 다시 빙 돌아와 시몬을 보았다.
"자, 그럼. 시몬 폴렌티아."
"네."
디트리히의 동공이 번쩍거렸다.
"얼마나 달라졌는지 시험해 볼까."
그와 눈을 마주치고 있던 시몬의 동공이 열렸다. 갑자기 심장이 요동치고 전의가 들끓었다.
파르르륵!
그리고 앞에 있던 디트리히의 몸이 박쥐 떼로 변해 날아갔다. 멍하니 있던 시몬은, 순간 몸을 벼락같이 회전시키며 다리를 들었다.
부아아아아앙!
번개 같은 돌려차기가, 어느새 뒤쪽에서 나타난 디트리히의 얼굴로 향해 있었다.
"과연."
디트리히는 손끝으로 시몬의 다리를 가뿐히 붙잡고 있었다.
"감각이 더 예리해졌군. 힘과 속도도 붙었고, 불필요한 동작을 줄인 것도 좋다!"
눈이 충혈된 시몬이 팔을 치켜들자 아공간이 열리고, 스켈레톤들을 우르르 소환해 냈다. 딕과 메이린이 화들짝 놀라며 뒤로 물러났다.
"크하하!"
쿵-!
디트리히가 신이 나서 바닥에 발을 굴렀다. 바닥에서 달리던 스켈레톤들이 일제히 무너져 내렸고, 시몬도 충격이 휘청이며 한쪽 무릎을 꿇었다.
뒤이어 디트리히의 망토 속에서 비대한 팔이 튀어나왔다. 시몬은 침착하게 손가락을 세 개를 붙인 뒤, 옆으로 치켜드는 시늉을 했다.
<본 네트>
무너져 내렸던 스켈레톤의 뼈가 그물처럼 변해 디트리히의 팔을 막아섰다. 뼈들이 디트리히의 팔에 엮인 채 인력을 발휘하여 진행 방향을 살짝 꺾었다.
시몬도 어깨를 기울이고 고개를 젖혀 가까스로 디트리히의 공격을 피했다.
"막지 않고 방향을 비튼 건 현명하구나!"
'개문!'
촤르르르르르르!
뒤에서 다섯 개의 오버로드의 촉수칼날이 튀어나오고, 시몬은 몸을 일으키며 왼팔을 뒤로 보냈다.
남은 뼈들이 모조리 왼팔을 뒤덮으며 디트리히의 팔처럼 비대해졌다.
<본 아머 - 헤비 아머 타입>
"그래! 와봐라!"
디트리히도 망토 속에서 반대쪽 팔을 꺼냈다.
두 사람의 팔이 중앙에서 맞붙으려는 그때.
"그-만! 하세요!"
카미바레즈가 끼어들었다.
우르슬라의 피를 개방한 그녀의 눈동자가 선명하게 붉어졌다. 몸을 둥글게 말아서 움츠리고는, 이내 두 팔을 강하게 좌우로 떨쳤다.
시뻘건 광풍이 맹렬하게 휘몰아치며 디트리히와 시몬의 팔을 동시에 밀어냈다.
"와우."
딕이 감탄사를 흘렸다.
"카, 카미도 화나면 무섭네."
메이린이 손목을 문지르며 말했다.
착!
바닥에 내려온 카미바레즈가 이내 시몬에게 뛰어들었다. 시몬은 여전히 멍한 얼굴로 디트리히를 향한 다음 공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카미바레즈는 힘껏 달려들어 시몬을 끌어안고는 속삭였다
"캔슬레이션."
우뚝.
친위대까지 준비하려던 시몬의 동공에 빛이 돌아왔다. 그가 '어?'하는 표정을 지으며 눈을 깜빡였다.
"내, 내가 왜?"
"죄송해요, 정말 죄송해요 시몬! 아빠가 저주를 건 거였어요!"
카미바레즈가 꾸벅꾸벅 고개를 숙여 몇 번이고 사과하더니 이내 디트리히 쪽을 날카롭게 흘겨보았다.
디트리히가 움찔한 표정을 지었다.
"제가 친구들한테 손대지 말라고 몇 번을 말씀드렸죠!"
"아, 아니. 난 그저 저놈이 널 지킬 자격이 있는지 시험을......!"
카미바레즈가 꽉 쥔 두 주먹을 뒤로 뻗은 채 힘껏 소리 질렀다.
"아빠 정말 미워요!"
미워요- 미워요- 미워요-
그 말이 디트리히의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애지중지 키운 딸의 일격에 비로소 전의가 꺾인 그가 휘청거리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지금이에요! 빨리 가요 시몬!"
"카, 카미?"
카미바레즈가 시몬의 손목을 잡고 뛰었다. 딕과 메이린도 휙휙 그들을 번갈아 보다가 시몬을 따라갔다.
"먼저 실례하겠습니다 아버님!"
"안녕히 계세요!"
시몬도 카미바레즈에게 끌려가며 뒤를 돌아보았다.
힘없이 주저앉아 있는 줄 알았던 디트리히가 이내 히죽 웃으며 제 두 눈을 찍은 다음 시몬 쪽으로 향하게 했다.
'안심하세요.'
시몬은 입 모양으로 그렇게 말하고는 그녀를 따라갔다.
* * *
이런저런 사건 사고가 있긴 했지만, 결국 네 사람 모두 무사히 합류했다.
카미바레즈는 몇 번이고 고개 숙여 사과했고, 시몬은 정말 괜찮다며 손사래를 쳤다.
간단한 해프닝일 뿐이었다.
"숙소는 내가 깔끔한 곳으로 잡아놨어. 이쪽이야!"
딕이 앞을 가리키며 걸음을 옮겼다.
도심지에서 살짝 떨어진 곳에 위치한 이곳은 제법 큰 규모의 야외 오두막이었다. 다른 오두막들에도 불이 켜져 있고 시끌시끌한 걸 보니 손님들도 꽤 되는 모양.
네 사람은 쉴 틈 없이 준비를 했다.
바로 오두막 앞에 모닥불을 피우고 돼지고기 꼬치들을 매달았다. 딕이 모든 재료를 다 준비해 왔다. 심지어 와인도 있었다.
한 시간 만에 후다닥 세팅을 끝마친 뒤, 네 사람은 와인잔을 들어 올렸다.
"자, 2학기도 무사히 살아남자! 우리가 키젠 3학년이 되는 그 날을 위하여!"
"위하여!"
네 사람은 왁자지껄하게 떠들며 웃었다.
오랜만에 보니 할 이야기가 너무나 많았다. 역시 편지를 주고받는 것과,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 건 다른 문제였다.
"홍펭 교수님 댁에 가는 거, 너무너무 기대돼요!"
카미바레즈가 앙증맞은 박쥐 날개를 파닥거리며 말했다. 딕은 벌써 초원에 가서 어떤 활동을 할 수 있는지 떠벌떠벌 이야기하고 있었다.
초원에도 모험가나 현지인들이 운영하는 가이드가 있었는데, 그들이 제공하는 여행 팸플릿을 꺼내 보였다.
"이것 봐! 진흙강을 하마 타고 건너기! 괜히 홍펭 교수님 수업에 하마가 있는 게 아니라니까!"
"악어 숲에 가는 것도 재밌겠어요! 초원에는 악어가 나무를 탄대요!"
"나는 유목민족 숙소에서 자보고 싶네."
세 사람이 각각 해보고 싶은 걸 이야기하고 있는데 딕이 검지를 휘휘 저었다.
"너희들, 진짜 재밌는 걸 모르네."
"?"
"가장 재미있고 유익한 건 이거야!"
딕이 팸플릿 뒤편을 가리켰다.
"고대문명 발굴?"
"그래!"
흥분한 딕이 두 손바닥으로 테이블을 팍팍 때렸다.
"대륙에 존재했던 또 하나의 고대문명이 초원 어딘가에 잠들어 있다는 거야! 유적도 진짜 많이 나온대! 하나 발굴해서 팔면 돈이......!"
"또 돈돈."
메이린이 시큰둥한 표정으로 턱을 괴었다.
딕은 실실 웃으며 그녀를 보았다.
"초원에서 발굴된 석판에 고대 룬어가 있었대! 너희 상아탑이 환장하는 마도문명과 관련된 문명일지도 모른다니까?"
"뭐만 하면 마도를 붙이네 아주. 마도문명이 똥으로 보이냐? 난 그런 근본 없는 미스테리는 난 안 믿어."
"진짜라니까!"
딕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초원에 있던 것도 무섭지만 강대한 문명이었대! 막 사람을 인신 공양하는 걸로 유명해. 그리고 그 문명을 다시 일으키려고 죽음에서 되살아난 제사장이 있는데, 이미 죽었지만 그 강대한 원한 때문에......!"
"응, 관심 없어."
메이린이 시큰둥하게 말했다. 카미바레즈도 걱정스럽게 말했다.
"딕, 괜찮으세요? 조금 취한 것 같아요."
"크윽."
딕이 이마를 덮으며 자리에 앉았다. 그때 시몬이 고개를 쭉 기울였다.
"그래서? 그 제사장의 원혼은 어떻게 됐는데?"
"여윽시! 내 베프라면 관심 있을 줄 알았다니까!"
딕이 시시덕거리며 말을 이어나갔다. 메이린의 원망스러운 시선이 꽂혔지만 시몬은 정말 즐겁게 들었다.
* * *
"끄윽, 배부르다."
"으어, 조금 마셨는데 취하는 것 같구만."
한편, 맞은편 오두막에서는 이미 파티가 끝나 있었다.
그들 또한 시몬의 또래 정도로 보이는 10대들이었다. 하품을 쩍쩍 하며 뒷정리를 했다.
"그러게 적당히 마시랬지? 내일 초원에 들어가려면 컨디션 조절해야 한다고."
"알았어. 알았어."
뒷정리를 하는 도중, 한 소년이 고개를 돌렸다.
유난히 힘이 넘치고 시끌벅적한 모임이 있었다.
"쟤들은 에너지도 좋네."
"어, 잠깐."
소년이 고개를 들고 눈을 게슴츠레하게 떴다.
"쟤들,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데."
"저기 저 제일 눈에 띄는 푸른 머리 여자애. 메이린 부회장이잖아! 그리고 옆에는......."
덜컥.
그때 오두막의 문이 열리며 늘어지게 하품을 하는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뭔 소란이야, 누구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