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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759화 (759/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759화

방학 이후 다시 만난 친구들과의 조촐한 술자리.

술기운이 돌고, 분위기는 점점 무르익고 있었다. 자연히 속 깊은 이야기가 나왔다.

"저희, 2학기에도 학생회에서 있을 수 있을까요?"

운을 띄운 건 카미바레즈였다.

사실 누구나 꺼내고 싶어 하던 화제였지만, 괜히 좋은 분위기가 누그러질 것 같아 망설이던 와중이었다.

"야, 평민. 너 뭐 알고 있는 거 없어?"

메이린이 눈을 흘기자 딕이 어깨를 으쓱했다.

"아니 뭔, 내가 버튼만 누르면 정보가 튀어나오는 기계도 아니고."

"모르면 모른다고 하든가!"

"당연히 들은 건 있지."

메이린이 으유우! 하고 얄밉다는 듯 할퀴려는 태세를 취했다. 딕이 얼른 몸을 뒤로 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난 방학이라도 하수인들이랑 계속 연락하니까 이런저런 이야기가 들어와. 우선 발락에 대해."

학생회장직을 놓고 시몬과 에이젤이 싸워야 했을 무대에, 대뜸 발락이 난입해서 깽판을 쳐놨다.

시몬은 그 이후의 경과는 모르고 있었다. 당장은 학생회장 자리에 시몬의 이름이 있기는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회장직은 그 이후 공석에 가깝다.

"3학년을 담당하는 교수님들이 대동단결했다나 봐. 에이젤 선배님까지 떠난 이상, 어떻게든 발락을 학생회장직에 올릴 생각이야. 특히 3학년 측 선임교수는 발락의 퇴학을 막으려고 사임서까지 제출했대."

"사, 사임서?"

메이린과 카미바레즈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니, 학생자치회 일에 교수님들이 뭘 그렇게까지 해!"

흔히 말하는 애들 싸움이 어른들까지 번진 셈이다.

딕이 어깨를 으쓱였다.

"자기들 명예에 직결된 일이니까. 키젠 교수들 간의 보이지 않는 경쟁이 학생들만큼 치열한 건 너희도 알지?"

괜히 키젠이 실력만능주의라는 게 아니었다. 교수들 사이에서도 보이지 않는 경쟁과 암투가 존재하고, 학기의 성과에 따라 직급, 권한, 봉급이 왔다 갔다 한다. 성과가 떨어지면 1학기도 못 버티고 잘리는 일이 허다했다.

심지어 로크섬 밖에 있는 키젠 교수 후보들이, 키젠 교수 자리를 호시탐탐 노리며 현역 교수들에게도 영향력을 끼쳐서 끌어내려고 하니 말 다했다.

그런 곳에서 오랫동안 살아남은 키젠 교수의 자부심과 명예가 얼마나 드높을지는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왜 명예와 직결된 문제라고 하냐면, 지금까지는 시몬이 에이젤의 대타고, 에이젤이 돌아오면 교체될 것이다. 그 전에 학교를 이끌어갈 2학년에게 미리 경험치를 먹이고 있는 거다. 뭐 이렇게 외부에 설명이 가능했어. 3학년 교수들도 체면이 상하긴 하지만 명분이 있었지."

딕이 진중한 얼굴로 두 손을 깍지끼었다.

"하지만 시몬이 대타가 아니라 온전한 학생회장이 된다는 건 완전히 다른 의미야. 실력지상주의인 키젠에서, 329기인 시몬이 328기 3학년들보다 더 우수하니 학생회장이 된다는 의미니까."

메이린과 카미바레즈가 허물어지듯 자리에 앉았다.

시몬은 딕을 보았다.

"그럼 2학년인 내가 학생회장이 된다는 의미는 설마......."

"3학년 교수들이 3학년들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했기 때문에-"

딕이 무서운 눈초리로 손가락을 내리찍었다.

"단체로 '무능' 낙인이 찍히겠지."

술자리에 무거운 분위기가 내려앉았다. 메이린은 눈을 감고 와인을 한 모금 마셨다.

"충분히 설명은 됐어. 발락과 3학년 교수님들이 한 패일 수밖에 없는 이유."

"어어."

딕이 안주로 가져온 비스켓을 집어먹으며 말을 이었다.

"3학년 교수들은 자기 학생들 얼른 졸업시키고, 연구시즌 1~2년 꿀 빨고 새로운 1학년들 맡을 생각에 마음 편히 먹고 있었을 거야. 그런데 어? 갑자기 본인들의 대표작이었던 에이젤이 학교를 떠난다네? 커리어가 꼬일 기미를 보이고, 자기들만 바라보고 있을 휘하 조교들은 불안해서 막 보챌 거고, 밖의 네크로맨서들도 교수직 호시탐탐 노리고 있고. 그냥 발등에 불 떨어진 거지."

시몬이 팔짱을 꼈다.

"그래서 현 상황은 어떤데?"

"지금부터 설명할게."

딕의 설명에 따르면, 3학년 교수들의 노력으로 발락은 각종 정학 조치 대신 '징벌임무'를 받게 된다고 했다.

키젠 역사상 거의 100년 만에 실행된 제도라고 한다. 너무 위험해서 유명무실해진 옛날 제도인데, 3학년 교수들이 발락을 구하기 위해 교칙을 뒤지다가 이걸 발견해서 끄집어냈다.

"징벌임무가 뭐예요?"

카미바레즈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징계 대신 엄청나게 위험하고 어려운 임무를 해결하는 걸로 대신하는 걸 말해, 카미. 최소가 신성연방에 진입해서 현역 프리스트들과 싸우는 거야. 학생을 사지로 밀어 넣는 조건이라 지금까지는 제대로 실행된 적이 없었어."

"하지만."

시몬이 입을 열었다.

"발락이라면 어떻게든 그 임무를 마치고 돌아오겠지."

"그래, 그거야."

딕이 손끝을 세웠다.

"학생회장을 정하는 결투는 흐지부지됐고, 턴은 이제 교수들에게 넘어가. 3학년들이 우리 기수에 자격지심이 있는 것처럼, 3학년 교수들도 우리 담당 교수님들에게 쪼옴 그런 감정이 있거든."

그럴 만도 했다. 2학년 교수진은 극도로 호화로웠다.

네프티스의 오른팔인 제인이 2학년 칠흑역학 담당교수고, 스타 중 스타인 바힐, 늘 학생 만족도 최상위권을 놓친 적이 없는 홍펭. 아론 또한 이런저런 이슈가 있어서 그렇지 실력에는 논란의 여지가 없다.

교내 힘의 균형이 2학년 교수진 쪽으로 기울어지려는 가운데, 3학년 교수들은 필사적으로 발락을 학생회장직에 앉히고 최소한의 체면을 유지하려 할 것이다.

"교수님들 간의 이야기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시몬이나 발락, 누가 회장이 되어도 이상할 게 없는 상황이야. 만약 시몬이 학생회장직에 오른다면, 학교를 먹을 야욕을 드러낸 발락은-"

딕이 시몬을 보았다.

"결투든 뭐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널 끌어내리려고 하겠지."

"......."

카미바레즈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시몬을 보았고, 메이린은 애써 씩씩하게 말했다.

"이길 수 있지? 시몬! 너 그때 진짜 발락을 미친 듯이 두들겨 팼잖아!"

시몬은 고개를 내저었다.

"나도 방학 때 발락과의 결투를 계속 복기했어. 하지만-"

당시의 발락은 이미 전교 1위인 에이젤을 쓰러트리고 온 뒤였다.

거기에 에드닉 그레리엄의 마법진을 해킹하고, 그곳에 있던 참관자들을 광범위 맹독마법으로 막아섰다.

사실상 발락 혼자서 시몬은 물론, 그 자리에 있는 참관자들과 에이젤까지 모조리 상대한 셈이다.

"분하지만, 지금의 내 힘으로는 정식결투에서 발락을 이기기 어려운 게 사실이야."

시몬이 고개를 들며 말했다.

"그래서 시간이 필요해."

"시간이요?"

"2학기 때 별야 교수님의 맹독학 수업을 신청해서 들을 거야."

시몬은 발락과의 결전 이후, 며칠간 독에 시달리며 병동 안에서 골골댔다.

만약 안나가 직접 로크섬으로 넘어와서 회복마법을 걸어주지 않았다면 시몬은 방학 내내 병동에 머물러야 했을지도 몰랐다.

"발락의 독에 저항할 수 있는 '저항계'의 수준을 높여야 해. 그게 최소 조건이야."

세 사람이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리고?"

"본 드래곤의 완성."

모두의 입이 떡 벌어졌다.

"지, 지금 내가 잘못 들은 거지?"

"학기 내에 완성할 거야. 네프티스 님에게 약속도 했어."

그 두 가지 조건만 충족한다면, 3학년인 발락과 1:1로 붙어도 밀리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시몬이 빙긋 웃었다.

"2학기는 여러모로 바쁠 것 같아."

* * *

진지한 이야기는 여기까지였다.

-학교랑 어른들 이야기는 이제 그만 하자! 너무 머리 아파!

메이린도 그렇게 외쳤고, 분위기가 무거워지니 화제를 전환할 필요가 있었다. 네 사람은 다시 일상 이야기로 돌아왔다.

레스힐 폭우 사태로 영지를 재건하고 봉사활동을 하던 시몬의 경험담.

딕의 쌍둥이 동생인 '빌'과 '알'이 코어를 개방하고 골골대던 이야기.

메이린이 랭거스틴 대극장에서 주연배우 제의를 받은 사건.

카미바레즈가 버려진 강아지를 집에서 키우기 시작한 일들.

이제는 웃으면서 이야기할 수 있었다. 모두들 왁자지껄하게 웃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문득 학생회가 별건가 싶기도 했다. 꼭 학생회가 아니더라도 이렇게 얼굴을 보며 웃을 수 있으니 말이다.

"화장실 좀 다녀올게."

시몬이 웃는 얼굴로 자리를 나섰다. 왁자지껄하게 웃던 메이린이 카미바레즈를 보며 말했다.

"카미, 카미. 시몬 키 좀 큰 것 같지 않아?"

"그런가요?"

카미바레즈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자기는 아니라고 하는데, 좀 올려다보는 각도가 된 것 같거든."

"저는 잘 모르겠어요. 늘 힘껏 올려다봐서."

카미바레즈가 얍얍 하고 고개를 쭉 드는 시늉을 했다. 결국 메이린이 참지 못하고 달려들어 그녀를 와락 끌어안았다.

"귀여워어! 방학 동안 너무너무 보고 싶었어 카미!"

"메, 메이린. 숨 막혀요."

마침 비스킷에 치즈를 올린 새로운 안줏거리를 만들어 온 딕이 접시를 내려놓고 자리에 앉았다.

"그나저나 우리 내일 초원에 언제 출발하냐? 출발 두 시간 전에 배 상태나 점검해 보려고."

"아침 일찍 가지 뭐."

"너무 기대돼요! 초원에서는 또 어떤 모험이 벌어질까요?"

저벅. 저벅.

세 사람이 재잘재잘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그때.

그들이 있는 오두막으로 초대받지 않은 사람들의 발소리가 들렸다. 놀란 카미바레즈의 동공이 커다랗게 변했다. 딕이 한숨을 푹 쉬고는 말했다.

"누구야?"

이내 한 남자가 우산을 걷고 안으로 들어왔다.

딱 봐도 그들과 비슷한 나이 또래로 보였다.

탈색이라도 된 듯 우중충한 회색 머리, 옆 뒷머리는 바짝 깎아냈고 귀에는 두툼한 귀걸이가 출렁거리며 걸려 있다. 겉에 두른 점퍼는 복잡한 무늬가 그려져 있고, 손등부터 어깨까지 온통 문신이 가득하다.

"실례 좀 할게. 어우, 비 많이 내리네."

그렇게 말한 그는 허락을 받기도 전에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그 뒤로 세 명의 남자들이 뒤따라왔다.

"......너희들."

메이린의 눈이 가늘어졌다.

"마투학과 맞지?"

"어, 유명인을 여기서 다 보네. 반갑다. 메이린 빌렌느 부회장님."

그가 두 손바닥을 붙인 채 인사하는 시늉을 하고는, 치즈 얹은 비스켓을 낼름 하나 집어 먹었다. 이내 친구들 쪽을 돌아보며 우웩 하는 표정을 짓더니 숨죽여 낄낄 웃었다. 나머지 친구들도 덩달아 낄낄거렸다.

"......무슨 일이에요?"

카미바레즈가 어깨를 움츠리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니, 그냥. 같이 놀자고. 내 이름은 킨터라고 해."

킨터가 테이블에 있던 빈 잔을 집더니 비 내리는 밖으로 두어 번쯤 흔들었다. 그러곤 다시 테이블에 내려놓고, 남아 있던 와인을 붙잡아 잔에 따르기 시작했다.

"우리 쪽은 남자만 네 명이라 영- 칙칙하기도 하고."

쪼르르륵-

유리잔에 붉은 와인이 차오르기 시작한다.

"대화에 좀 여자 웃음소리도 들리고 해야 마시는 재미가 있지."

텁.

그는 의자에 두 다리를 붙이고 쪼그려 앉은 듯한 자세로 앉은 와인을 쭉 들이켰다. 이내 인상을 확 찡그리며 딕 쪽을 보았다.

"X바 새끼, 여자애들한테 좀 비싼 것 좀 맥이지."

"......."

"아, 뭐 어때."

빈 잔을 탁 소리 나게 내려놓은 그가, 메이린 쪽을 향해 드르륵 와인 병을 내밀었다.

"한 잔 따라줄래? 동기야."

메이린의 표정이 왈칵 찌푸려지며 이마에 핏줄이 돋아났다.

"야."

"어?"

"돌았냐?"

메이린이 섬뜩한 눈빛을 흘리며 다가왔고, 남자는 한번 해보라는 듯 실실 웃으며 고개를 까닥였다.

"자! 자, 자! 좋은 날에 다들 왜 이러실까."

딕이 얼른 중간에 끼어들어 막았다. 그러고는 마투학과 학생들을 보았다.

"미안하지만 합석할 생각은 없어. 우린 그냥 우리들끼리 시간을 보내고 싶은데."

"와, 신기해."

남자가 반짝이는 금니를 드러내며 웃었다.

"꼴찌 새끼가 사람 말을 하네."

딕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남자는 낄낄거리며 비스켓을 하나 더 쥐어서 혓바닥에 댔다.

"무슨 일이야?"

그 순간 뒤에서 새로운 목소리가 들렸다.

메이린과 딕, 카미바레즈가 뒤를 돌아보더니 얼굴이 환해졌다.

반면 마투학 학생들은 저도 모르게 움찔했다.

"묻잖아."

단숨에 분위기가 바뀌었다.

더 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키젠에서 가장 유명하고,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하나.

"무슨 일이냐고."

시몬이 나타나 그들 앞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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