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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764화 (764/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764화

또옥. 똑.

햇빛을 보지 못하게 된 지 얼마나 됐을까.

음식을 먹지 못하게 된 지도 얼마나 됐을까.

"......."

홍펭은 여전히 사슬에 붙들려 있었다.

몸은 말라서 갈비뼈의 윤곽이 다 드러나고, 팔다리는 가늘고 힘이 없다. 푸석푸석해진 머리카락은 젖은 볏짚처럼 힘없이 가닥가닥 눌어붙었다.

그녀는 멍한 얼굴로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눈빛만큼은 변하지 않았다.

총총총.

작은 발소리가 들린다. 소리가 난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어린 소녀가 빵과 과일이 담긴 바구니를 든 채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호, 홍펭 님."

마을 소녀는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눈으로 홍펭을 바라보았다. 홍펭은 웃는 얼굴로 소녀를 반겼다.

"다친 곳은 없니?"

훌쩍거리며 고개를 끄덕인 소녀가 홍펭의 앞에 음식을 내려놓았다.

뮤르가 준비한 음식.

물론 홍펭은 먹을 생각이 없었다.

스스스스-

스스스-

무너진 사원의 벽돌 틈으로 뱀들이 혀를 날름거리며 다가왔다. 소녀가 놀란 소리를 내며 홍펭 쪽으로 달라붙었다.

[인간의 몸으로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달을 넘게 버티다니.]

지팡이를 짚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티끌만큼도 몸을 드러낼 수 없다는 듯 붉은 로브로 전신을 감싸고 있는 존재.

에이션트 언데드 뮤르가 모습을 드러냈다.

[역시 그대는 특별하다, 홍펭 교수.]

"......."

소녀가 홍펭을 꼭 끌어안으며 외쳤다.

"나, 나랑 마을 사람들을 인질로 삼지만 않았어도 홍펭 님은 당신 같은 괴물한테 지지 않았을 거야!"

클클클클클.

뒤집어쓴 후드 속에서 음침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아끼는 자가 아직 살아 있는 것도, 그들을 버리지 못하는 나약한 마음도, 모두 결점이고 약함이다.]

그가 칠흑을 흩뿌리며 홍펭에게 다가왔다. 소녀는 '힉!' 소리를 내며 홍펭 뒤로 숨었다.

[까다로운 적이 초원에 나타났다.]

"......."

[혹시 네가 수작을 부렸나.]

홍펭은 눈을 감은 채 묵묵히 있었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굳게 입을 다물었다.

[키젠에서 네 실종에 관심을 가질 시기는 개학 이후라고 생각했다. 그사이 모든 게 끝나도록 준비했는데, 이런 변수는 달갑지 않다.]

그가 로브 안에서 칠흑으로 이루어진 팔을 뻗었다.

이내 주먹 쥔 손을 펼치자 붉은 구슬이 나타났다.

[네가 내 옛 동료를 상대해 줘야겠다.]

그가 홍펭의 턱을 강제로 붙잡았다. 소녀가 막으려고 했지만 어디선가 튀어난 뱀들이 그녀를 휘감아 붙잡았다.

"아, 안 돼요! 홍펭 님!"

후드 안의 빨려갈 듯한 어둠 속에서, 한 쌍의 안광이 번뜩였다.

[쿤다르 히드라를 목 졸라 죽인 솜씨를 보도록 하지.]

* * *

처억.

큰 나무에 올라갔던 시몬이 다시 동료들에게 합류했다.

아까 봤던 상황을 전부 설명하자, 모두의 표정이 돌처럼 딱딱하게 굳었다.

"초원에서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 확실해."

시몬이 말했다.

"그리고 내가 아는 홍펭 교수님이라면, 상황이 이렇게 될 때까지 방치하지 않으셨을 거야. 물론, 이 문제가 해결되기 전까지는 우리를 초대하지도 않으셨을 거고."

"그 말은."

딕이 말을 받았다.

"우리에게 편지를 보낸 직후에, 홍펭 교수님의 신변에 갑작스러운 문제가 생겼다. 사태를 수습할 틈도, 편지를 다시 보내 우리의 초원행을 막을 시간도 없었다는 거네?"

"내 생각은 그래."

메이린과 카미바레즈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시선을 교환했다.

시몬은 자세를 고쳐 앉아 깍지를 꼈다.

"난 홍펭 교수님을 찾으러 갈 거야. 지금 내가 학생회장인지 아닌지도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교수님이 위험에 빠졌다면 못 본 척할 수는 없어."

그러곤 동료들을 쭉 돌아보았다.

"너희들은 초원을 탈출해서 키젠 측 사람들에게 연락을 취하고 지원을 요청해 줘. 어떻게든 바다 쪽으로 나가면 사태를 피할 수 있을지 몰라."

"시몬?"

메이린이 무섭게 웃는 얼굴로 고개를 기울였다.

"네가 생각해도 개뼉다구 같은 소리라고 생각하지 않아?"

"맞아요! 시몬만 두고 우리끼리 도망칠 순 없어요!"

카미바레즈도 날개를 파닥거리며 전의를 불태웠다.

철컥!

딕은 일행들을 가로질러 걸어가 마력엔진에 전원을 켰다.

"갈 거면 같이 가야지! 너만 학생회냐? 우리는 홍펭 교수님 제자 아니냐?"

전원을 최대한으로 올린 그가 힘껏 엔진을 작동시켰다.

부아아아아아앙!

배가 물줄기를 가르며 쏜살같이 나아갔다. 딕이 팔을 번쩍 들었다.

"가자! 홍펭 교수님을 구하러!"

메이린과 카미바레즈가 팔을 들며 '예에!' 하고 호응했다.

시몬이 작게 웃음 지었다.

시도는 해보았지만, 역시 안 먹힐 줄 알았다.

"그래, 그래. 알겠어."

"일단 초원 하부의 깊은 곳까지 무작정 들어가 보자고!"

딕은 그동안 신뢰해 마지않던 초원의 지도를 배 밖으로 던져 버리며 말했다.

"지형이 바뀌고 있다며? 현장 근처까지 가면 힌트가 있을 거야."

킁킁.

카미바레즈가 눈을 감고 코를 킁킁거리더니 앞을 가리켰다.

"그 힌트, 찾은 것 같아요! 희미하지만 이질적인 피 냄새가 나요!"

"나이스 카미! 위치를 말해!"

"여기서 오른쪽으로 꺾으셔야 해요!"

시몬과 딕이 즉각 뛰쳐나가 배의 노를 한 짝씩 붙잡고 지면을 강하게 밀었다. 배가 아슬아슬하게 반대편 방향으로 꺾여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가니 가장 큰 강 외에도 여러 물줄기가 무수히 많았다.

"앞으로 계속 직진이에요!"

하지만 정면은 막혀 있었다. 딕이 시몬을 향해 신호를 보냈다.

"시몬! 옆으로 노를 저어서 저기 바위틈으로 들어가자! 내가 이렇게 손을 들면 오른쪽으로 가고......."

"다들 비켜."

보다 못한 메이린이 앞으로 나왔다. 팔을 걷어붙인 그녀가 마법진을 준비했다.

"그래서 어느 세월에 갈래?"

<메이린 오리지널 - 아이스 트랙>

꽈드드드드드드드!

그녀의 주력 이동기였던 '아이스 로드'의 뒤를 이은 새로운 기술.

전방에 경주로를 연상케 하는 얼음길이 일어났다. 메이린이 뒤쪽으로 팔을 짚고는 배 뒤편에 새로운 마법진을 삼중으로 깔았다.

<메이린 리메이크 - 매직 부스터>

틱틱거리며 검은 불꽃이 몇 번 일어나더니 마법진이 발동 준비를 마쳤다.

"야! 인챈트 원툴!"

"예이, 예이. 밥값 해야죠."

딕이 배에 두 손을 얹고 본인의 특기 기술을 사용했다.

<딕 리메이크 - 툴 인챈트>

배가 검게 물들며 박살 나거나 흠집이 된 각 부위가 자동 수리되며 달라붙었다. 형태도 살짝 바뀌었다.

"간다!"

메이린이 뒤쪽의 마법진에 불을 붙이는 순간, 배가 무서운 속도로 얼음 트랙 위에 올라탔다.

"우와아아악!"

"꺄악!"

그들이 몸이 얼음 트랙을 타고 썰매처럼 뻗어 나가기 시작했다. 이내 높은 고공으로 치달은 그녀가 부스터 마법을 꺼트렸고, 공중에서 경사와 마찰력만을 이용해 트랙 위의 배를 나아가게 했다.

"부탁해 카미!"

"네, 시몬!"

카미바레즈가 배 제일 앞으로 와서 코를 킁킁거렸다. 중간중간 선체가 덜컹거리며 카미바레즈가 배에서 떨어질 뻔했지만, 시몬이 뒤로 와서 끌어안아 주었다.

카미바레즈의 얼굴이 발갛게 변했다.

"어디로 가야 해?"

"네? 아, 그......!"

그녀의 코를 자극하던 피냄새가 갑자기 시몬의 냄새로 가득 덮어졌다. 그녀의 눈이 핑핑 돌았다.

"그, 그러니까아......!"

"어허, 시몬! 떨어져. 카미가 집중을 못 하잖아!"

"?"

딕의 말에 일단 시몬이 뒤로 물러섰다. 카미바레즈가 다시 정신을 차리고 코를 킁킁댔다.

"아, 그......! 왼쪽이에요! 냄새가 끊겼지만 새로운 냄새가 이어졌어요!"

"알았어!"

메이린이 왼쪽으로 트랙을 깔았다. 그들의 몸이 정글 상공의 얼음을 타고 빠르게 내려갔다.

* * *

같은 시각.

환락과 유희의 도시, 베리노.

초원에서 시몬 일행이 난리가 난 사이, 도시에 남아 있던 사샤 일행도 사건이 터져서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타다다닥!

세 사람은 베리노에서 가장 큰 호텔 내부를 빠르게 뛰어다녔다.

곳곳에 사람들이 기절한 채 쓰러져 있는 모습이 보인다.

"저기요, 괜찮으세요?"

몰리 공주가 쓰러진 경비를 붙들고 상태를 살폈다. 사샤가 물었다.

"몸상태는 어때?"

"독가스 같은 기술에 당한 것 같아."

몰리가 그를 다시 바닥에 눕히며 말했다.

"생명에는 지장이 없어. 극독이 아니라 마비나 수면 효과가 있는 독인가 봐."

"흥, 꼴에 살인은 피하려는 건가?"

사샤가 갈색 머리를 휘날리며 혀를 찼다. 한편 아서는 동기들을 내버려 두고 저만치 먼저 앞서나가 있었다.

"기다려라 괴도! 할아버지의 이름을 걸고 반드시 내 손으로 체포하겠다!"

사샤가 한숨을 쉬며 반대쪽 방향을 가리켰다.

"바보왕. 그쪽이 아니라 이쪽이야."

"앗! 고맙다!"

아서가 얼른 다시 되돌아왔다.

세 사람은 함께 걸음을 맞추어 달렸다. 가는 길마다 경비들이 마구잡이로 쓰러져 있다.

사샤는 근처의 화단과 나무들에 흑마법을 걸었다. 식물들의 줄기가 길게 움직이더니 테이블이나 샹들리에에 깔린 사람들을 구했다.

"엄청나군."

걸음을 멈춘 아서가 중얼거렸다.

문 앞에 커다란 충돌 자국이 나 있고, 심지어 호텔 측에 고용된 것으로 보이는 네크로맨서가 피를 흘린 채 주저앉아 있었다. 복부에 커다란 주먹 자국이 나 있었다.

"......얘들아. 근데 좀 이상하지 않아?"

몰리가 말했다.

"보통 괴도란 사람이, 호텔 정문으로 진입해서 경비들을 다 때려눕히고 무력으로 정면돌파해? 원래는 굴뚝이나 창문으로 몰래 들어와서 물건만 홀라당 빼가니까 괴도라고 하는 거 아냐?"

"요즘 트렌드는 그게 아닌가 보지 뭐."

시크하게 대꾸한 사샤가 검지를 세웠다. 호텔 화단의 식물들이 움직여서 잔해에 깔려 있는 사람들을 구해냈다.

"그보다 막차공주? 넌 빨리 그 잘난 사령마법으로 괴도의 위치를 파악해."

"막차공주라고 부르지 말랬지!"

몰리는 그렇게 말하면서 눈을 감았다. 주위의 액자나 테이블 따위가 덜컹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내 눈을 감은 그녀의 눈이 번쩍 뜨였다.

"이쪽이야."

몰리가 뛰쳐나가기 시작했고 아서와 사샤가 뒤를 따랐다. 단숨에 3층 계단을 올라, 한 호화로운 방 앞에 멈춰섰다.

"괴도는 이 방에 있어."

"도망도 안 치고 우릴 기다리는 건가? 태평하네."

사샤가 손의 관절을 풀며 말했다. 그녀의 등 뒤로 각종 식물 소환수들이 꿀렁거리며 대기했다.

스릉!

아서도 아끼는 사복검을 꺼내 들었다.

"그럼 연다!"

쾅!

아서가 제일 먼저 문을 발로 박차고 뛰어갔고, 사샤와 몰리가 뒤따라 들어왔다.

이 건물에서 가장 호화로운 방.

호텔주가 기거하는 장소였다.

"?"

그리고 그곳에는 한 여자가 테이블에 두 다리를 얹은 채 태연히 술을 마시고 있었다. 한 잔 크게 들이마신 그녀가 '캬하!' 하고 탄성을 흘리며 잔을 내렸다.

구멍이 숭숭 뚫려 있는 지저분한 검은 코트 안으로, 붕대를 둘둘 휘감은 괴팍한 옷차림이 보인다.

단추를 푼 채로 허리에 걸친 짧은 반바지도 칼자국이 난 것처럼 찢어져 있었다. 고슴도치처럼 삐쭉삐쭉한 회갈색 머리카락, 인간보다는 야수에 더 가까운 야성미 가득한 눈동자가 번뜩인다.

그런 그녀의 뒤에는 호텔주로 추정되는 뚱뚱한 중년 남자가 속옷 차림으로 엎드려 있었다.

"어, 뭐야."

타악.

술잔을 내려놓은 그녀의 입이 벌어지며 삼각형으로 삐쭉삐쭉한 상어 이빨이 드러난다.

"아직도 경비병이 남아 있었냐?"

"당신은 설마......!"

그녀를 알아본 몰리가 깜짝 놀라며 입을 벌렸다.

"벼, 별야 교수님이...... 괴도였어?"

"아는 사람?"

사샤가 태연히 물었고, 몰리가 제자리에서 껑충 뛰었다.

"너 몰라? 우리 학교 교수님이시잖아! 2학년 맹독학을 가르치시는 분이야!"

별야 입꼬리를 올렸다.

"호오, 니들 우리 학생이구나?"

"네, 넵! 1학년 몰리 드레스덴입니다! 이쪽은 사샤 앤드라실, 아서 블레만입니다!"

"1학년들이었구만."

사샤가 '에이, 뭐야'하고 중얼거리며 흥이 식은 듯 팔을 내렸다. 공격할 기세 만만이던 식물형 소환수들이 촉수와 넝쿨을 늘어뜨렸다.

몰리는 침을 꼴깍 삼키며 입을 열었다.

"교수가 도둑질이라니, 부끄럽지도 않으신가요."

"도둑?"

별야의 표정이 불쾌하게 일그러졌다. 그때 아서가 쿵! 소리를 내며 오른발을 바닥에 내디뎠다.

"비록 교수와 학생의 신분이지만! 지금은 방학이고 괴도와 용병으로 만났습니다!"

그가 검을 비스듬히 세워 들며 칠흑을 끌어올렸다.

"사적인 임무로 만난 이상! 교수님이라고 해도 봐드릴 수는 없습니다!"

몰리가 화들짝 놀라며 팔을 뻗었다.

"잠깐! 아서! 어떻게 된 건지 이야기를 좀 듣고......!"

"우오오오오오!"

아서가 바닥을 박차고 뛰어들었다. 다리로 바닥에 엎드려 있는 호텔주를 밀어낸 별야가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소파에서 일어났다.

"기특하네. 날 즐겁게 해주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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