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768화
'홍펭 교수님이 왜 여기에?'
학생회 멤버들이 그녀를 탈출시키는 건 성공한 듯했지만, 어쩐지 그녀의 상태가 정상적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뮤르의 사술이군.]
머릿속에서 피어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놈의 냄새가 난다. 지금 저 여자는 뮤르의 지배를 받고 있다!]
'뭐라고요?'
홍펭의 초점 없는 눈이 이쪽을 응시했다. 시몬은 순간 그녀를 호칭으로 부를 뻔하다가, 자신의 상태를 깨닫고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피어의 본 아머를 입고, 망토를 두르고, 투구도 썼다.
지금은 제7 군단장의 모습, 일명 '피온'으로 와 있는 거다. 사념으로 일체화된 피어의 목소리를 빌려 입을 열었다.
[우리는 서로 싸울 이유가 없다.]
낮고 차가운 음성이 울려 퍼졌다.
[정신 차려라. 홍펭 툰 소쿰 마르라트.]
"......."
가만히 시몬을 바라보던 그녀의 신형이, 아무런 기척도 없이 사라졌다.
'!'
시몬의 눈이 부릅떠지며 심장이 철렁했다.
뭘 할 틈도 없이 시야에서 놓치고 말았다. 지켜보고 있던 피어가 직접 본 아머를 움직여 파멸의 대검을 앞세우게 했다.
난데없이 정면에서 튀어나온 홍펭이 무심한 얼굴로 대검을 후려쳤다.
꽈아아아아아앙!
마치 폭탄이라도 터진 것 같은 소리가 울려 퍼졌다.
시몬의 잇새가 빠득 하고 갈렸다. 공기마저 일그러지고, 딛고 있던 사원의 바닥이 위태롭게 흔들렸다.
'크윽!'
장기가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은 충격이 몸을 뒤흔든다. 그녀의 검은 머리칼이 한번 휘날리는 듯하더니, 이번에는 자세가 무너진 시몬의 머리를 향해 발차기를 날린다.
[정신 차려라! 소년!]
피어가 다시 본 아머로 시몬을 조종했다. 시몬의 고개가 강제로 뒤로 젖혀지고, 그녀의 다리가 쐐애액! 소리와 함께 눈 바로 위로 지나갔다.
피어의 투구 이마에 '카각!'하고 뭔가 그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만약 맨 얼굴이었으면, 그대로 이마에 피가 터져 죽었으리라.
'크읍!'
잠깐이라도 집중력이 흐려지면 죽는다.
상대는 진짜 홍펭이다.
'집중해야 해!'
대담하게 한 걸음 크게 앞으로 나온 시몬이 대검을 휘둘러 반격했다. 그녀가 발을 회수하며 뒤로 물러섰다.
톡톡.
거리를 넉넉히 두고 물러난 그녀가 제자리에서 가볍게 두어 번 뜀박질했다.
방심할 수 없다. 저건 준비 동작에 불과하다. 이내 그녀가 허공을 일그러뜨리며 전신을 격렬하게 좌우로 흔들며 쇄도했다.
시몬은 대검으로 견고하게 정면을 가렸다.
쩌어어어엉!
꽈아아앙!
뭐가 어떤 방식으로 오는지도 모르고, 각각 오른쪽과 왼쪽에서 대검이 충격을 받았다. 하나하나의 공격이 대형충차가 성문을 후려치는 것 같다.
'떠올려!'
그녀의 신형을 볼 수는 없지만, 머리카락이 휘날리는 이미지를 캐치했다. 시몬은 방향을 예측하고 허리를 틀어 대검을 휘둘렀다.
'그동안 내가 봐왔던 교수님의 움직임을!'
부아아아아앙!
한 박자 빠른 반격이 정답이었는지, 그녀가 뒤로 물러나 피했다.
시몬은 홍펭과 여러 번 대련을 해서 알고 있었다.
그녀의 습관과 패턴, 그리고 성향.
그 기억들을 머리에 꽉 박아넣고, 다시금 총탄처럼 쇄도해 오는 그녀에 맞선다.
'정면이 아니야, 측면!'
지금까지 홍펭이 가르쳐 줬던 기술들을 떠올린다.
맞으면 맞으라는 듯 정면을 과감하게 내주고, 오른쪽으로 검을 휘두른다.
쩡!
정답.
공격을 중단한 그녀가 손등을 들어 대검을 막아낸다.
'다음은 뒤로 물러나겠지만!'
시몬이 이를 악물었다.
'이쪽에서 한 발 더 앞서가! 공간을 주면 안 돼!'
나는 지금 피어를 입고 있다.
그 사실을 자각하는 게 중요하다.
피어의 초월적인 각력으로 바닥을 걷어차고, 역으로 그녀의 등을 선점한다.
부우우우웅!
대검을 사선으로 그어서 그녀를 공중으로 피하게끔 유도한 뒤, 몸을 팽이처럼 빙글 돌리며 대검에 칠흑을 싣는다.
'공간째로......!'
시몬이 그녀를 향해 참격을 일으키려는 그때.
후웅! 훙! 훙! 후웅! 훙!
그녀가 허공에서 주먹을 여러 번 내뻗었다. 거대한 충격파가 공중에서 폭풍처럼 내리꽂히고, 시몬은 급히 검로를 수정해 충격파를 일일이 베어내야 했다.
파악!
팍!
본 아머의 틈으로 살갗에 베인 듯한 검상이 남겨진다. 그사이 바닥에 안전하게 착지한 그녀가 두 손바닥을 맞부딪힌다.
우우우웅-!
'뭔가 온다!'
사실 지금까지는 제대로 '마투기'를 쓰지도 않았다.
시몬은 식은땀을 흘리며 대검의 손잡이를 고쳐잡았다.
[뭘 하는 거냐 소년! 검 끝에 망설임이 느껴진다!]
'그, 그야!'
상대는 홍펭이다.
그녀의 환하게 웃는 얼굴이 아른거렸다. 지금까지 학교에서 그렇게 같이 지내고, 여러 기술들을 전수해 준 은인을 어떻게 쉽게 벨 수가 있겠는가.
쿠구구구구구구구!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칠흑이 홍펭의 몸에서 넘실거렸다.
시몬은 그녀가 무슨 기술을 쓰려는 지 깨달았다.
<흑의>
검은 옷감이 마치 타이즈처럼 휘감겼다. 극단적으로 활동성에 치중한 형태의 옷. 어마어마한 살기를 전신에 휘감은 여성이 눈앞에 서 있었다.
[마수에서 빠져나와라! 홍펭!]
시몬도 그렇게 외치며 대검을 앞으로 내뻗었다. 파멸에 대검에 깃든 에이션트 언데드, '칼'의 힘이 깃들며 대검이 녹색으로 일그러졌다.
이대로 뒤가 없이 싸우면 진짜 둘 중 하나가 죽을지도 모른다.
[정신을......! 어?]
시몬은 자신도 모르게 놀란 소리를 내뱉고 말았다.
사납게 일그러진 그녀의 눈동자의 한쪽이, 평소에 시몬이 아는 그 홍펭의 순박한 눈망울로 변해 있었다.
"고마워요."
그녀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내가 흑의를 쓸 만큼 몰아붙여 줘서."
갑자기 홍펭이 가부좌를 틀고 자리에 앉았다. 그녀가 입고 있던 흑의가 꿈틀거리며 바닥으로 내려가, 마법진의 형태를 이루었다.
아니, 정확히는 마법진이 아니었다. 소수의 마투 사용자들이 쓰는 '법진'. 그 중앙에 앉은 홍펭이 현란한 동작으로 팔을 휘젓다가 다시 맞부딪혔다.
이내 크게 공기를 들이마신다.
그러자 그녀를 잠식하고 있던 뮤르의 사술이 서서히 씻겨 내려가기 시작했다. 찢어질 듯한 비명소리를 내다가 흩어지며 사술이 점점 옅어져 갔다.
시몬은 이때 메이린의 칠흑도 함께 느꼈다.
"나는."
그녀의 반대쪽 눈마저도 서서히 돌아오기 시작했다.
"남에게 내내 조종당할 만큼 약하지 않아요."
화아아아아악!
이내 그녀의 몸에서 뮤르의 사술이 완전히 빠져나갔다. 얼마나 강력한 기술이 그녀에게 깃들어 있었는지, 마치 거대한 검은 태풍이 그녀의 몸에서 빠져나가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지켜보던 피어도 놀라운 듯 클클 웃었다.
[크흐흐! 뮤르의 영향력에서 제힘으로 빠져나간 자는 저 여자가 처음이군!]
그녀의 육체는 강력한 저항력을 가지고 있다. 숱한 육체의 단련 끝에 어떤 외부의 공세에 저항할 수 있는 강력한 몸이었다. 이내 뮤르를 몰아낸 그녀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홍펭 교수님.'
시몬은 감격에 찬 얼굴로 다가갔다. 하지만 그녀는 바짝 경계하는 눈빛으로 자세를 낮추었다.
아차 싶었던 시몬이 공격할 의지가 없다는 뜻으로 대검을 어깨에 짊어졌다. 시몬이 제자리에서 정지하자, 그녀가 어눌한 대륙어로 입을 열었다.
"그대에 대해 들은 적 있즙니다. 몸이 저릿저릿할 만큼 극도로 불길한 느낌의 칠흑."
그녀의 입술이 달싹였다.
"7군단의 재로운 군단장이군요."
[.......]
"키젠에서는 주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그대를 붙잡아 오라 명령했즙니다."
시몬이 고개를 들어 피어의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다면 나와 나의 군단에 대적할 생각인가.]
블러핑이다.
솔직히 지금 다른 에이션트 언데드나 군대도 없고, 가진 건 피어 하나뿐이지만, 최대한 뭔가 있어 보이는 척해야 했다.
군단을 발음할 때 나름 위협적으로 힘을 주어보았다.
"그대의 목적에 따라 다르겠지요. 그대의 군단이 저 저주즈러운 망자의 죄악, 뮤르를 데려갈 목적으로 왔다면."
그녀의 눈이 치켜 떠졌다.
"협력하겠즙니다. 나는 내 고향과 내 자람들, 그리고 초원을 지키기 위해, 악마와도 존을 잡겠어요."
'...악마라니, 너무하시네.'
시몬은 속으로만 소심하게 투덜거렸다. 그나마 다행히도, 이쪽의 정체는 전혀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다.
시몬은 더더욱 살벌한 군단장 연기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뮤르는 나의 것이다!]
피어의 목소리는 시몬이 들어도 무시무시하다.
목소리를 최대한 깔고 고압적으로 내뱉으니 천하의 홍펭도 흠칫하는 기색을 보인다.
이거 살짝 재미 들릴 것 같기도 하다.
[그의 위치를 내게 고하라. 그리하면 초원의 누구도 피를 보지 않을 것이다!]
"위치는 나 또한 모릅니다."
홍펭이 고개를 내저었다.
"하지만 그가 여기저 무즌 짓을 꾸미고 있는 건 확질합니다. 일단 같이 그의 계획을 막고......."
-흐하하하하하하하!
두 사람의 대화가 즉각 멈췄다. 사원 전체에서 거대한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시몬은 바짝 긴장하며 대검을 움켜쥐었고, 홍펭 또한 예리한 눈으로 주위를 훑었다.
[소용없다.]
고오오오오오오오오오!
시몬과 홍펭이 동시에 칠흑이 느껴지는 곳으로 고개를 들었다.
'저 녀석이 바로.'
전 7군단의 대장, 뮤르가 고공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붉은 로브를 두르고만 있을 뿐, 그 외에 어떤 모습도 보이려 하지 않고 있었다. 그저 로브 안의 눈 두 덩이만 번쩍이며 빛나고 있을 뿐이다.
[이렇게 쉽게 빠져나올 줄은 몰랐지만 상관없다. 시간은 끌었고 모든 준비는 끝났다.]
'뭐?'
시몬의 고개가 제단의 꼭대기로 향했다.
활활 타오르고 있던 불길이 어느새 꺼져 있었다.
[모습을 드러내라, 재앙의 뱀이여.]
쿠구구구구구구구구구구구구구구!
사원, 이 도시.
아니.
초원 전체가 뒤흔들리기 시작했다. 특히 시몬은 발을 딛고 있는 사원에서 이질적인 움직임을 느꼈다.
콰아아아아아앙!
이내 사원의 꼭대기를 박살 내고, 형언할 수 없이 거대한 뱀의 머리가 튀어나왔다.
콰아아아앙!
쿠우우우우웅!
마찬가지로 근처의 다른 사원에서도 뱀의 머리가 올라왔다.
그리고 이쪽 도시를 넘어, 한참을 떨어진 곳에 위치한 고대도시의 사원에서도 뱀의 머리가 일어났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거야?'
"설마 이건......!"
홍펭의 동공이 흔들렸다.
"쿤다르 히드라!"
그것에 대해선 시몬도 들은 적이 있었다.
쿤다르 히드라는 대륙의 도시 몇 개를 멸망시킨 몬스터였다. 홍펭이 유명세를 얻고 키젠 교수가 된 것도, 100개의 머리를 가진 쿤다르 히드라를 목 졸라 죽인 일화 때문이었다.
[쿤다르 히드라 정도가 아니다.]
하지만 피어는 부정했다.
[에일다르 히드라. 최악의 심복을 기어이 초원에서 불러냈군.]
초원 전역에 튀어나온 열 개의 머리가 드높은 창공을 잡아먹듯 입을 벌린 채 대기했다.
고공에 떠 있는 뮤르가 두 팔을 벌렸다.
[갓 태어난 개체라 10개의 머리로 시작하나, 시간이 지나면 쿤다르 히드라처럼 100개의 머리로 증식할 것이다.]
그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이제 이 지역은 내 것이다.]
터어어어어엉!
그때 시몬이 사원 바닥을 걷어차며 몸을 던졌다.
그의 몸이 벼락처럼 쇄도하여, 순식간에 까마득한 거리에 있던 뮤르에게 도달했다.
[뮤르!]
뮤르의 머리 위에서, 시몬이 파멸의 대검을 치켜들었다.
후드 너머로 뮤르의 안광이 일렁였다.
[저런 애송이가 요나의 대타인가? 피어.]
[하아아아아!]
시몬의 대검이 단번의 뮤르의 머리를 쪼갤 기세로 휘둘렀지만, 그에 앞서 뒤쪽에서 들이닥친 뱀의 머리가 시몬의 몸을 들이받았다.
'커흑!'
뱀은 그대로 시몬을 이끌고 일직선으로 쇄도하다가 근처의 사원의 벽에 부딪혔다.
굉음이 터지며, 거대한 사원이 우르르르 무너져 내렸다. 뱀의 머리는 사원을 관통해 빠져나와 시몬의 몸을 지상에 내리찍었다.
굉음과 함께 자욱한 먼지구름이 피어올랐다.
스스스스-
뱀은 시몬을 바닥에 박아넣고 다시 올라갔다. 큼지막한 크레이터 한복판에 피어를 입은 시몬이 쓰러져 있었다.
'이런!'
큰일 났다.
충격으로 몸이 움직여지지 않는다. 히드라는 다음 공격을 위해 아가리를 쩍 벌렸다.
쩌어어어어엉!
이번에는 홍펭이 날아와 발차기로 히드라의 머리를 강타했다. 저 거구가 기우뚱 기울어지더니 근처의 사원을 박살 내며 주저앉았다.
터업.
홍펭이 바닥에 내려와 시몬을 돌아보았다.
"괜찮나요? 군단장."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시몬은 부끄러움을 느끼며 다리에 힘을 주었다.
스스스스스스-
힘들게 하나를 물리쳤더니, 또 하나의 뱀의 머리가 시몬과 홍펭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마치 세상을 삼킬 듯한 거대한 아가리가 벌어지며, 입구멍에서 독극물이 뿜어져 나올 준비를 했다.
[히드라의 포이즌 브레스다! 피해라 소년!]
하지만 아직 충격이 회복되지 않아서 완전히 일어설 수가 없었다. 시몬이 파멸의 대검으로 직접 베려고 마음먹은 순간.
후웅!
홍펭과 체격이 비슷한 누군가가 그 앞으로 뛰어나왔다.
퍼어어어어어엉!
포이즌 브레스가 그것에 정통으로 부딪혔다. 그러나 독극물은 그것에 닿자 흐물거리며 마치 녹은 껌처럼 힘없이 흘러내렸다.
이내 에일다르 히드라의 독을 막아낸 자가 바닥에서 내려왔다.
'설마!'
시몬의 눈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홍펭과 비슷하지만 다른 흑갈색 머리카락에.
롱코트에 붕대를 두른 복장.
"귀염둥이가 우리 집에 간다길래 오랜만에 고향에 들러서 깽판이나 칠까 했더니-"
삐쭉삐쭉한 삼각형의 상어이빨을 씩 드러낸 그녀가 두 사람을 돌아보았다.
"이게 다 무슨 일이야?"
투구에 가려져 있던 시몬의 입가가 환희로 올라갔다.
'별야 교수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