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771화 (771/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771화

제자들을 끌어안고 잠시 벅찬 감정을 다스리던 홍펭이 눈을 치켜떴다.

어느새 눈빛에는 슬픔과 망설임이 사라지고 결연함만이 남았다.

"여러분은 지금 당장 초원을 빠져나가도록 하제요. 그게 힘들다면 최대한 먼 곳으로요."

"네?"

카미바레즈가 놀란 소리를 냈고, 메이린도 급히 말했다.

"교수님! 저희는......!"

"이건 부탁이 아니라 명령이에요."

메이린의 말을 자른 홍펭이 후들거리는 다리로 몸을 일으켰다.

"내 학쟁들을 위험에 빠트릴 준 없어요. 적은 고대부터 존재해 온 강력한 언데드예요. 나는 그를 잡으러 가야만 해요."

"지금 여기서 가장 위험한 건 교수님의 몸 상태죠."

딕이 불쑥 끼어들어 상기시켰다.

"교수님도 방금 저희가 없었으면 위험할 뻔했잖아요. 저희가 돕는다면......!"

"딕 학쟁, 이건 명령이라고 했어요."

그렇게 대꾸한 홍펭이 눈을 게슴츠레 뜨며 먼 곳을 응시했다.

저 멀리 나무들이 뿌리뽑히며 요란한 지진이 일어나는 지점을 보았다.

"당장 이곳에저 떠나제요. 빨리."

마지막으로 당부한 그녀가 무릎을 굽히더니 텅! 하는 소리와 함께 하늘로 도약했다. 이내 구름을 밟고 빠르게 사라져 갔다.

순식간에 아득히 멀어져 가는 그녀를, 딕은 얼빠진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어차피 돕고 싶어도, 우리는 따라잡지도 못하겠네."

홍펭을 돕는다는 선택지는 사라졌다. 잠시 조용히 있던 카미바레즈가 고개를 들었다.

"이대로 그냥 돌아가기엔 시몬이 걱정돼요."

메이린과 딕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홍펭과 히드라를 발견한 것도, 홀로 괴물들의 시선을 끌어주던 시몬을 찾으려다가 우연히 발견한 덕분이었다.

"나중에 교수님의 명령을 어긴 벌은 달게 받자."

결국 부회장인 메이린이 결단을 내렸다.

"지금은 여기 남아 시몬을 찾는 거야."

"네! 메이린!"

"당연히 그래야지!"

* * *

한편.

피어의 본 아머를 입은 시몬은 정신없이 초원을 헤치며 달리고 있었다. 저 멀리 또 하나의 히드라의 머리가 도망치고 있었다.

'내가 지금 벤 머리는 세 마리.'

시몬은 1인당 세 마리라는 할당량을 모두 채웠다. 남은 시간은 절반도 채 남지 않은 상황.

시몬은 네 번째 히드라를 뒤쫓고 있었다.

"여어! 군단장 선생!"

울창한 초원의 나뭇가지를 뚫고, 알록달록한 형광 물감을 끼얹은 듯한 머리카락의 별야가 튀어나왔다.

두 사람 모두 같은 목표물을 쫓고 있었다.

그녀가 뛸 때마다 머리카락이 이리저리 흔들리며 페인트 형상의 독극물을 사방으로 뿌려댔다. 그녀가 지나가는 곳은 꽃이 시들고 나무들이 메말랐다.

'자연 파괴범이냐.'

시몬은 쓰게 웃은 뒤, 피어의 목소리로 근엄하게 말했다.

[머리 세 개는 베고 이리로 왔겠지.]

"물론이야! 선생은?"

[당연한 이야기는 하지 않겠다.]

시몬이 자꾸만 이쪽으로 튀는 독을 피해 조금 더 거리를 두며 말했다. 별야가 고개를 들었다.

"그러면 저기 도망치는 녀석이 마지막 머리겠네."

에일다르 히드라의 머리 수는 10개.

시몬과 별야가 각각 세 개씩 베었고, 홍펭의 경과는 모른다.

남은 시간은 대충 8분 남짓.

홍펭의 컨디션이 나빠서 걱정이지만, 그녀가 정말로 뭔가 기적을 일으켜서 할당량인 세 마리를 잡아준다면 남은 건 저 한 마리다.

"가보자고 선생!"

[내 발목은 잡지 마라.]

두 사람이 동시에 칠흑을 일으키며 쏘아져 나갔다.

도망치는 히드라가 고개를 돌리더니 입을 벌렸다. 즉각 마법진이 펼쳐졌다.

우우웅!

에일다르 히드라는 머리마다 사용할 수 있는 마법의 종류가 다르다.

그리고 저 녀석이 사용하는 기술은.

-크르르르!

-께르르르르륵!

아무래도 몬스터를 조종하는 능력으로 보인다.

머리 두 개 달린 표범, 나무 위를 걷는 악어, 몸에 전격을 두른 매까지. 갑자기 두 사람에게로 초원의 강대한 몬스터들이 쏟아져 들어온다.

'흐읍!'

하나하나 상대해 줄 틈 따윈 없다. 시몬이 숨을 크게 한번 들이마신 뒤, 대검을 휘둘렀다. 백색의 검광이 주위를 화려하게 수놓으며 몬스터들을 몸통째로 갈랐다.

"끼하하하하!"

별야는 광녀처럼 초원을 쏘다녔다. 온몸에서 흐르는 페인트 같은 맹독으로 무장한 채, 그대로 몬스터 무리를 돌파했다.

몬스터들은 그녀와 부딪히는 것만으로 아이스크림처럼 녹아내린다. 두 다리로 달리던 그녀가 자세를 쭉 낮추더니, 이내 두 팔로도 바닥을 짚고 야수처럼 사족보행으로 달리며 속력을 올린다.

그녀의 몸이 다채로운 색상이 뒤섞인 섬광이 되어 쏘아졌다. 몬스터들은 그녀를 막지 못하고, 그녀가 지난 방향은 어린아이가 물감통을 엎어버린 세상처럼 엉망이 되어버린다.

'진짜.'

뒤따르던 시몬은 식은땀을 흘렸다.

'키젠 교수의 힘은 격이 다르구나.'

질 수 없었다. 시몬도 다리에 칠흑을 더 싣고 속도를 높여 별야를 따라잡았다.

쿠구구구구구구!

그때 달리는 두 사람의 앞으로 지면이 급격히 융기하기 시작했다. 별야가 걸음을 멈추며 인상을 찌푸렸다.

"뭐야 갑자기?"

어느새 주위의 지형 전체가 일그러지며 거대한 산맥이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시몬도 뒤따라 다가왔다.

'이건?'

[크흐흐!]

피어의 목소리가 시몬의 머릿속에서 울려 퍼졌다.

[뮤르가 방해하는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우리를 막아 히드라를 재탄생시킬 속셈이다.]

"귀찮게."

별야가 바닥을 걷어차며 산맥 위를 오르기 시작했다. 잠시 두 사람이 지형지물을 통과하느라 시간이 끌리는 사이, 히드라는 더 거리를 벌리고 있었다.

"서둘러! 선생!"

하는 수 없었다. 시몬도 별야의 뒤를 따라 산맥을 올랐다.

산 위에서도 몬스터들이 있었고, 두 사람이 들어오는 타이밍에 공격해 왔다.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었다.

"후읍!"

쩌어어어엉!

몬스터들을 모조리 베어내며 기어코 산맥을 오른 시몬이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쿵!

쿵!

쿵!

산 아래에는 어느새 몬스터들을 타고 있는 고대문명의 주민들이 검과 창을 든 채 대기하고 있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뮤르의 '군대'가 만들어져 그들을 앞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그 너머로 히드라가 계속 도망치고 있다.

"이 자식 이거, 구질구질하게 나오는데?"

별야갸 입술을 훑으며 웃었다.

시몬은 섬뜩한 느낌을 받으며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몸에서 거대한 칠흑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군단장 선생, 뱀의 목을 베는 건 맡길게."

[뭘 할 속셈이지?]

그녀가 히죽 웃었다.

"직접 두 눈으로 봐."

* * *

초원 하부 북쪽.

이곳에도 커다란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쉬이이이익!

히드라의 또 하나의 머리.

거대한 히드라가 똬리를 튼 채 누군가를 몸통으로 짓이기고 있었다. 그 안에 꼼짝달싹 못 하고 있는 붉은 머리의 소년이 보인다.

"끄허어어걱! 주, 죽는다악!"

바로 용병왕 아서였다.

히드라가 점점 몸에 힘을 가해올 때마다, 그가 숨넘어갈 것 같은 소리를 냈다.

"헛소리 말고 빠져나올 궁리나 해!"

그리고 옆에서 땀을 줄줄 흘리며 흑마법을 시전하고 있는 건 특례 1번, 사샤.

그녀는 이능과 흑마법을 동시에 사용하는 중이었다. 주위의 모든 나무들이 히드라를 휘감아 아서를 구해내려 하고 있었다.

"아서! 조, 조금만 더 버텨줘!"

그리고 조금 떨어진 곳에서 뭔가를 하고 있는 특례 10번 몰리 공주.

그녀는 특별한 사령마법으로 히드라의 정신에 간섭하고 있었다. 히드라의 눈에 동공이 흐려지다가 선명해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하지만 강대한 소환수를 상대로는 그 정도가 한계였다. 잠깐 정신이 흐려졌다가 돌아온 히드라가 다시 아서의 몸에 힘을 주었다.

"으가가가각!"

아서가 고통스럽게 고개를 흔들었다.

그런데 정작 아서를 휘감아 조이고 있는 히드라도 의아한 눈치였다. 아서가 입고 있는 갑옷은 진작에 부서지고, 이제는 몸통만 남았다.

코끼리마저 분쇄해 버릴 만큼 강한 압력으로 조이고 있는데도, 도저히 찌푸려지지 않았다.

"흐어허헉! 할아버지! 저 곧 할아버지를 따라......!"

하지만 이제는 아서도 한계였다.

그의 동공의 힘이 서서히 풀리려는데.

쐐애애애애액!

마치 혜성처럼 나타난 섬광이 히드라의 머리를 강타했다.

<홍펭 오리지널 - 취타>

북이 터지는 맹렬한 소리와 함께, 히드라의 머리가 기우뚱했다.

아서를 조이고 있던 힘이 풀어지며 그가 바닥에 풀썩 떨어졌다.

"흐허허! 살았다아. 할아버지! 좀 더 있다 갑니다!"

"......그런데 누구?"

휘오오오오오.

광풍의 한가운데에, 홍펭이 긴 머리를 휘날리며 모습을 드러냈다.

"맙소사! 우리 이제 살았어!"

몰리가 울먹이며 제 입을 틀어막았다. 키젠에서 가장 유명한 교수진 중 한 사람.

"마투학 담당의 홍펭 교수님이야!"

홍펭이란 말에 사샤와 아서도 고개를 돌렸다. 두 사람 다 그녀와는 초면이지만 누군지는 알고 있었다.

"당진들은?"

홍펭이 물었다. 사샤가 주위의 나무들을 움직여 히드라를 견제하며 말했다.

"키젠 1학년들입니다. 별야 교수님이 데려오셨어요."

"뭐라고요?"

홍펭이 격분한 듯 소리쳤다.

"언니는 무슨 쟁각으로 이런 위험한 곳에 1학년을!"

사샤가 슬쩍 시선을 피했다.

'......정확히는 우리가 멋대로 들어온 거지만.'

사샤 일행으로부터 시몬에 대한 소식을 들은 별야는, 하수인에게 명령해 초원으로 향하는 텔레포트 마법진에 올라탔다.

그때 사샤가 그녀의 바짓자락을 붙잡으며 우리도 데려가 달라며 끈덕지게 졸라댔고, 결국 그녀는 홍펭도 애들 초대했는데 나도 못 할 게 뭐 있겠냐며 세 사람을 데리고 왔다.

그러나 마을은 텅 비어 있었고, 별야는 여기서 꼼짝 말고 기다리라는 말과 함께 초원 하부로 들어갔다.

-시몬 오빠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게 틀림없어!

당연히 얌전히 기다리고 있을 1학년 사고뭉치 삼총사가 아니었다.

그들 또한 초원 하부로 들어왔고, 들어오자마자 저렇게 커다란 히드라를 맞닥뜨렸다.

아서는 저 강력한 몬스터를 밖으로 내보내면 막대한 인명피해가 발생할 거라며, 히드라에게 용감히 달려들었다.

그렇게 역으로 아서가 히드라에게 붙잡히고, 사샤와 몰리가 수습하던 상황이 된 것이다.

아서가 잡아먹힐 뻔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이 세 사람이 초원 밖으로 향하려던 히드라의 머리를 붙잡은 셈이었다. 공이라면 큰 공이었다.

"여긴 내게 맡기고 어저 도망치제요. 1학년들."

"교수님, 죄송하지만요-"

몰리가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 아무래도 저 녀석이 그렇게 두지 않을 것 같은데요!"

-시시시시시시!

히드라가 고개를 치켜들었다. 주위로 마법진 10장이 펼쳐지더니 강렬한 물벼락이 쏟아져 내렸다. 이 히드라는 물의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것 같았다.

"피해요!"

홍펭과 1학년들이 제각기 지면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퍼어어엉!

퍼엉!

곳곳에서 물대포가 터져나갔다. 히드라는 자신의 몸에 마법진을 펼치더니 바닥을 빠르게 기어 다녔다. 그러자 지면이 내려앉으며 끈적한 늪으로 변해갔다.

"우왓!"

"함부로 움직이지 마제요!"

홍펭이 팔을 벌려 그들에게 멈춤 지시를 내렸다. 어느새 홍펭과 1학년들은 늪의 섬에 서 있는 셈이 되었다.

히드라는 커다란 몸집을 이끌고 늪 안으로 머리를 밀어 넣었다. 비늘이 촘촘히 박한 뱀의 신체가 아치형을 그리며 늪 속을 헤집고 다니는 모습은 퍽 공포스러웠다.

꾸르르르륵!

늪이 뒤흔들린다. 거대한 히드라가 늪 안에서 흐느적거리는 게 피부로 느껴진다.

모두가 굳은 얼굴로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는 그때.

푸화아아악!

역시 히드라의 제1 타깃은 가장 강대하면서도, 현재는 취약한 상태인 홍펭이었다.

아가리를 벌린 채 홍펭이 서 있는 섬을 통째로 집어삼켜 들어 올렸다.

"크윽!"

그녀가 다리를 고정하고 두 팔로 입천장을 붙잡아 먹히지 않게 버티면서 외쳤다.

"빠, 빨리 도망치.......!"

"나왔구나! 흐아아아압!"

아서가 빛의 검을 휘둘렀다. 빛이 번쩍이더니, 찬란한 참격이 히드라의 허리에 부딪혔다.

콰콰콰콰쾅!

히드라가 고통스러운 소리를 내며 몸을 뒤흔들었다.

"내 차례네."

히드라의 비늘 틈에 껴 있던 씨앗들이 발화의 준비를 마쳤다. 사샤가 팔을 풍차처럼 휘두르며 흑마법을 발동시켰다.

<플라워 샤워(Flower Shower)>

사아아아아아아아-

히드라의 비늘과 비늘 틈으로 꽃이 무서운 속도로 피어나기 시작했다. 히드라의 몸 전신이 꽃으로 뒤덮이며 순식간에 화려한 꽃밭으로 변모했다.

'무는 힘이 약해졌어.'

홍펭은 바로 변화를 실감할 수 있었다. 한쪽 팔만으로도 버틸 수 있게 된 그녀가, 오른팔을 들어 올려 히드라의 콧잔등을 힘껏 주먹으로 내리쳤다.

꾸우우웅!

-끼이이이이!

히드라가 괴성을 부르짖으며 몸부림쳤고, 그사이에 홍펭은 탈출에 성공했다.

고통에 울부짖던 히드라가 무섭게 눈을 뜨며 입을 벌렸다. 거의 스무 장의 마법진이 허공에 펼쳐졌다.

"홍펭 교수님! 조심하......!"

그녀가 대처하기도 전에, 마법진에서 물벼락이 쏟아졌다.

쿠구구구구!

콰콰콰콰!

물벼락이 쏟아진 뒤, 주위가 하얀 수증기로 뒤덮였다.

"교수님!"

"크윽!"

이내 바람이 불어오며 하얀 수증기가 걷혀 나갔다.

"......."

바닥에 착지해 방어자세로 버티고 서 있던 그녀가 눈을 떴다.

몸은 멀쩡했다.

동시에 그녀의 몸에 칠흑으로 이루어진 옷이 덮여 있는 게 보였다.

'이건 흑의? 지금 내 몸상태로 흑의를 쓸 수는.......'

"교수님."

그녀가 뒤를 돌아보았다.

죽을 듯이 숨을 헐떡이고 있는 한 소년이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은 채 서 있었다.

<흑의 연계기 - 의복이전>

"하, 한 가지만 묻겠습니다."

탈진 직전의 킨터가 쉰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시몬 녀석들보다 제가 더 빨리 왔습니까?"

홍펭은 희미한 미소를 그리며 대답했다.

"지몬 일행이 더 빨랐어요."

"제길."

저벅. 저벅. 저벅.

홍펭이 고개를 돌렸다. 2학년 마투학과 학생들이 몸을 풀며 그녀의 곁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이러면 더 이상 고집을 부릴 때가 아니겠네요."

홍펭 자리에서 일어났다.

남은 시간은 2분 남짓.

이제는 지푸라기도 잡을 심정으로 싸워야 했다.

"책임은 전부 제가 지겠즙니다. 모두 나를 도와주제요."

"네!"

사샤와 아서, 몰리.

그리고 네 명의 2학년 마투학과 학생들까지. 모두가 바닥을 박차고 히드라를 향해 뛰어들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