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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772화 (772/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772화

타다다다닷!

피어의 본 아머를 입은 시몬이 망토를 휘날리며 들판을 질주하고 있었다.

그런 시몬의 앞을 막고 있는 건 초원의 몬스터들과 고대문명의 주민들.

거대 군세가 진형을 이룬 채 대기하고 있었다. 그 너머로 도망치는 히드라의 마지막 머리가 보인다.

'꾸물거릴 시간은 없어!'

어떻게든 따라잡아야 했다. 시몬이 대검을 강하게 틀어쥐며 군세의 선두를 들이받으려는데.

슈우우우우우-!

지원사격이 시작됐다.

공기가 갈라지는 소리와 함께, 하늘에서 난해한 추상화의 색감을 연상케 하는 페인트 덩어리들이 낙하했다.

퍼어어어엉!

퍼어어엉!

그것은 선선한 자연의 초록빛이었던 풀밭을, 화려하고 펑크한 색감으로 바꿔놓았다. 별야의 영역에 닿은 몬스터들이 통째로 녹아내리기 시작한다.

퍼어어어엉!

퍼어엉!

시몬은 살짝 감탄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별야 오리지널 - 천변만화(千變萬化)>

뒤쪽의 산언덕에서 별야가 두 팔을 들어 올리고 있었다. 그녀는 마치 분화구처럼 맹독의 화포를 연신 쏘아 올리는 중이었다.

세상이 그녀의 색감으로 알록달록하게 일그러지고, 주변의 모든 것을 중독시킨다. 독이 통하지 않는 종류의 몬스터라 해도 상관없다. 20가지의 성분 중에서 단 하나라도 유효하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홍수처럼 범람하는 별야의 세계가 몬스터들을 일거에 쓸어버린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시몬이 천천히 손바닥을 펼쳤다.

-효과가 더 좋은 해독제야, 지속시간은 5분.

시몬은 그녀가 건넨 천연 해독제를 깨물어 삼켰다. 표현하자면 눅눅해진 피지맛이다.

'독성을 막아줄 뿐, 직접 맞으면 위험하지만.'

시몬이 대검을 앞세우고 무릎을 굽혔다.

'그 정도 리스크는 감수해야 해. 돌파한다!'

이내 힘차게 바닥을 박차고 무릎을 펴는 것으로, 시몬의 몸이 검은 꼬리를 남기며 가속했다.

몬스터를 벨 필요도 없었다. 그저 별야가 붕괴시킨 진형을 일직선으로 내달린다.

페인트 유성은 시몬 쪽으로는 떨어지지 않았고, 시몬이 달리는 지점만 액체들이 범람하지 않았다.

'대단한 컨트롤이네, 역시 별야 교수님.'

덕분에 몬스터 군대를 안전하게 돌파해 낸 시몬이 고개를 들었다.

도망치는 히드라의 머리를 포착했다. 전신에 칠흑을 끌어올리며 파멸의 대검을 바닥에 대었다.

"후읍!"

카가가가각!

바닥에 닿은 대검이 마찰로 떨린다. 시몬은 대검을 끌듯이 바닥을 베어가다가, 이내 힘껏 위로 쳐올렸다.

쿠구구구구구!

검끝에서 산더미만 한 피어의 참격이 지면을 타고 나아갔지만, 갑자기 지각변동이 일어난 것처럼 지면이 갈라지며 참격이 나아가는 방향이 비틀어졌다.

'또 지형이 바뀌었어!'

마지막 머리만큼은 절대로 내어주지 않겠다는 뮤르의 강한 의지가 느껴진다. 시몬은 대검을 고쳐잡고 다시 달려갔다.

이렇게 되면 따라잡아서 베는 수밖에 없었다.

쿠구구구구구구구구구구!

그러나 지금 이 순간에도 초원의 지형 전체가 끊임없이 변하고 있다. 8시 방향에 있던 숲이 중앙으로 옮겨지고, 남쪽에 있던 호수가 서쪽으로 옮겨진다. 강줄기도 변해서 시몬의 앞을 가로막는다.

시몬은 한 번의 도약으로 강을 뛰어넘었다.

"절대로 안 놓쳐!"

쿠구구구구!

그런 시몬의 외침에 반박이라도 하듯, 시몬의 시야를 가득 채울 정도로 높은 절벽이 솟아올랐다.

시몬이 혀를 차며 반대쪽으로 우회하려는 순간.

퍼어어어어어어엉!

하늘에서 날아온 페인트 유성이 벽에 냅다 들이박혔다. 암벽에 단번에 둥근 모양으로 커다랗게 구멍이 뚫리며, 여름 볕에 녹는 아이스크림처럼 줄줄 흘러내렸다.

'나이스, 별야 교수님!'

시몬은 바닥을 박차고 낮아진 벽을 넘었다.

다시 저 히드라와의 거리가 가까워졌다. 비늘이 선명히 보인다.

[크흐흐! 이 거리라면 공간 베기로 가는 게 좋을 것 같다 소년!]

'네! 피어!'

시몬은 달리면서 대검을 치켜들었다.

히드라의 이동방향, 움직임, 그리고 바람과 지형등의 변수를 고려한다.

타아아!

걸음을 멈춘다. 왼 다리가 풀밭을 거칠게 짓밟으며 미끄러지듯 전진한다. 대검은 허리 뒤쪽으로 기울인 채 고쳐잡는다.

완벽한 베기 자세.

정면에 목표물이 보인다. 대검을 쥔 시몬의 팔이 움직이려는 순간.

쿠콰콰콰콰콰콰콰!

기다렸다는 듯 시몬의 전면으로 바위산이 냅다 튀어나온다. 히드라의 모습이 바위에 가려지고 세상이 갈색으로 뒤덮인다.

하지만 시몬의 집중력은 끊기지 않았다.

물체에 현혹되지 않고 공간만을 자각한다. 시몬의 두 눈은 보이지 않는 제3의 무언가를 찾아서 부릅떠졌다.

'베는 건 목표가 아니라!'

반대쪽 다리가 앞으로 나오며 허리가 틀어진다.

'공간!'

쩌어어어어어어어어엉!

파멸의 대검이 맹렬히 휘둘러진다. 바위산의 일부가 갈라지고, 그와 동시에.

퓨슈슉!

히드라의 등 뒤의 비늘이 갈라지며 핏줄이 튄다. 히드라가 하늘이 떠나갈 듯 고통스러운 외침을 토해냈다. 시몬이 '아' 하고 아쉬운 탄성을 흘렸다.

'살짝 얕았어!'

커다란 부상을 당한 히드라가 다시 이동을 시작한다. 너무 많은 힘을 쓴 시몬은 다리에 순간적으로 힘이 빠졌지만 강제로 몸에 힘을 주며 달렸다.

'잡아야 해!'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른다.

흉부가 꽉 조이며, 악문 잇새로 쇳소리 같은 숨이 흘러나왔다.

다리는 쇳덩이 같고, 심장은 욱신거렸지만 그럼에도 달린다.

'기회는 지금뿐이야!'

부상을 입은 히드라와, 한계에 다다른 시몬의 속도는 거의 동일하다.

하지만 뮤르는 계속해서 지형을 바꾸며 시몬을 방해하고 있었다. 좀처럼 거리가 좁혀지지 않는다.

시간이 얼마나 갔는지도 모르고 정신없이 뒤쫓아가고 있는데.

'잠깐, 저 방향은......!'

시몬은 뒤늦게 히드라가 도망치는 장소를 발견하고는 눈을 부릅떴다.

히드라는 검격에 베이지 않기 위해 엄폐물이 있는 장소로 이동하고 있고, 그 방향은 시몬이 처음으로 갔던 고대문명의 도시였다.

불길한 감각이 몸을 스친다.

'......다들 피했겠지?'

* * *

같은 시각.

유적 사원 내부.

"시몬! 어디 있어요? 시몬!"

"시몬! 들리면 대답해!"

딕과 메이린, 카미바레즈는 랜턴을 하나씩 들고 무너진 사원 곳곳을 수색하고 있었다.

카미바레즈는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사원 내부의 좁은 틈으로 들어갔고, 딕은 자신의 장비들로 잔해를 들추고 있었다.

멤버들에게는 이곳에 남는 게 당연한 결정이었다.

몬스터들을 유인하겠다며 나선 시몬의 행방이 묘연해졌고, 곳곳에 히드라가 나타나 난리가 난 상태다.

결코 시몬을 버리고 떠날 수는 없었다.

"하아, 대체 어디 있는 거야?"

허리에 손을 얹은 메이린이 걱정스러움이 묻어나오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좁은 틈 사이에서 빠져나온 카미바레즈는 벌써 울먹울먹한 얼굴이 되어 있었다.

"시몬이 걱정돼요."

"괜찮아, 카미!"

딕도 무너진 틈 사이를 조명으로 비춰보며 한마디 했다.

"아까 난리 때문에 사원이 무너져서 잠깐 정신을 잃은 거일 수도 있어. 얼른 시몬을 찾아내서 여길 빠져나가자!"

"네!"

두 사람이 열심히 주위를 뒤적거리는 사이, 메이린은 뚜벅뚜벅 걸어 무너진 벽 너머로 사원 밖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방금 뭐지?'

밖에서 묘한 떨림이 느껴진다. 그녀의 눈이 주위를 빠르게 훑었다.

쿠웅!

"와앗!"

"헉!"

그때 사원 전체가 크게 뒤흔들렸다. 금이 가 있던 사원의 벽면이 완전히 갈라지며 우르르 파편이 떨어졌다.

처음의 충격에 미끄러진 카미바레즈가 머리를 부딪히고 말았다. 딕이 얼른 달려가 그녀를 부축했지만, 금이 간 천장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프리징(Freezing)>

싸아아아아아아-

주위의 세상이 하얗게 변했다.

무너지려던 사원이 무너지려는 모습 그대로 꽁꽁 얼어붙었다. 마치 시간이 멈춘 것 같다.

카미바레즈를 감싸고 있던 딕이 놀란 눈으로 천장을 바라보다가, 이내 메이린 쪽을 돌아보았다.

"워후."

"워후는 무슨! 평민 넌 이 틈에 카미를 데리고 나가."

"그럼 넌?"

"아까 그 뱀 같은 몬스터가 나타났어. 그걸 막으러 갈 거야."

그렇게 말한 메이린은 밖으로 뛰어내렸다.

이내 사원이 무너진 원인을 발견했다. 등 쪽에 커다란 검상이 그려진 히드라의 머리가 걸리적거리는 사원들을 무너뜨리며 이동하고 있었다.

등 뒤에는 커다란 상처자국이 나 있었고, 피가 끊임없이 흘렀다.

콰아앙!

히드라가 지나가면서 또 다른 사원을 몸통으로 무너뜨렸다. 시몬이 어디 있는지 모르는 이상 놈을 가만히 둘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 금방이라도 실신할 것 같던 홍펭이 저 히드라를 필사적으로 뒤쫓고 있었다. 틀림없이 이유가 있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아이스 트랙>

공중에 날아오른 그녀가 허공에 얼음길을 만들고 나아갔다. 동시에 다른 한 손으로 새로운 흑마법을 시전해서 사용했다.

<크루얼 블리자드>

콰아아아아아아아아!

얼음우박이 히드라에게 맹렬하게 쏟아졌다. 상처 입은 히드라 또한 흉포하게 울부짖으며 아가리를 벌렸다.

투콰악!

투곽!

포이즌 브레스가 쏟아졌지만, 그녀는 공중에서 얼음 발판을 밟고 멋들어지게 피했다. 이내 공중에서 빙글 몸을 회전시키며, 오른손에는 얼음을, 왼손에는 불꽃을 일으켰다.

"뭘 쳐다봐!"

<다크 프로미넌스>

<다크 에버프로스트>

화르르르륵!

꽈드드드드득!

두 종류의 흑마법이 동시에 히드라의 몸통에 적중했다. 메이린이 숨을 거칠게 헐떡이면서 미소 지었다.

"맛이 어떠......."

그 순간.

그녀의 눈앞으로 갑자기 히드라의 비늘이 훅 다가왔다.

뻐억!

히드라의 몸통에 부딪힌 그녀가 발판째로 날아가 사원의 벽에 부딪혔다.

의식을 잃은 메이린이 사원의 계단 아래로 쓰러졌다. 이마에서 피 한 줄기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스스스스스!

분노한 히드라가 그녀를 죽이기 위해 아가리를 벌렸다.

낼름거리는 혓바닥을 타고 독이 방울져 떨어지고 있었다. 포이즌 브레스의 전조였다.

하아! 하아! 하아!

그리고 저 멀리서.

피어의 본 아머를 입은 시몬이 달려오고 있었다.

'안 돼! 안 돼! 안 돼! 안 돼!"

뮤르의 방해 때문에 늦었다.

그사이 히드라는 사원으로 진입했고, 마침 그곳에서 시몬을 찾던 메이린이 교전하다가 기절하고 말았다.

히드라가 포이즌 브레스를 쏘려고 하고 있다.

'메이린!'

심장에 비수가 틀어박힌 것 같다.

이대로 메이린이 죽는다면.

다시 학교에서의 그 일상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된다면.

돌이킬 수 없다. 평생 죄책감에 시달릴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막아야 해!'

불타는 듯한 격통이 범람하지만 정신이 몸을 이끈다. 두뇌가 가열차게 돌아가며 필사적으로 해결책을 강구했다.

공간 베기. 거리가 너무 멀다.

원거리 참격. 참격이 도달하기 전에 메이린이 먼저 당한다.

파멸의 대검에 담긴 '칼'의 힘을 쓰는 건? 마찬가지로 액체를 날리는 기술은 속도가 부족하다.

대검을 날리는 투사 기술은? 피어의 본 아머가 재조립되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저 달릴 수밖에 없다.

그 사실에 뼈에 사무칠 만큼 괴롭다.

군단장이면 뭘 하겠는가. 눈에 보이는 친구를 지킬 수도 없다.

무력감이 몸을 타고 흐른다.

[벌써 포기하느냐, 소년.]

머릿속에서 피어의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1학년일 때의 너는 조금 더 심플한 맛이 있었지. 하지만 머리가 더 커진 지금의 너는 그때보다 조금 더 재고, 더 계산하고, 더 생각하고 있군.]

'메이린의 목숨이 달린 문제예요! 당연히 더 신중하게......!'

[나쁘지는 않다만, 그 계산 결과가 절망적이면 마음도 꺾이는 게 문제다.]

그 말을 들은 시몬의 동공이 흔들렸다.

피어의 목소리가 점점 더 선명해진다.

[잡생각이 너무 많다. 조금 더 단순하고, 명료하게 생각해라.]

시몬의 눈이 벌겋게 충혈된다.

[네 친구를 구하기 위해 필요한 건 방법이 아니다. 뛰어난 아이디어도 아니다.]

절망감에 흐려졌던 시야가 바로잡히고, 다리에 힘이 붙는다.

[구하겠다는 의지다. 세상의 원리를 비집고, 방해하는 그 모든 것을 꺾어 비틀 기세로 의지를 관철시켜라!]

눈 안에 메이린의 모습이 보인다.

아직도 먼 거리지만, 망원경으로 보는 것처럼 그녀의 몸이 뚜렷하다.

그녀의 곁으로 간다.

그저 그것만을 생각한다.

[크하하하하! 그래 그거다!]

그녀의 모습이 보이는 시야가 위아래로 크게 들썩인다.

[네 아버지가, 프리스트를 구하기 위해 모든 걸 던졌던 것처럼!]

메이린을 구한다.

다른 건 아무래도 좋다. 지금 이 순간, 내 육체와 마음을 폭발시켜서.

화아아아아아아악!

'구한다!'

멀었던 시야가, 망원경으로 보듯 좁고 멀리 보였던 시야가.

휘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눈앞이다.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눈 깜짝할 사이에 히드라의 비늘이 시야를 가득 메웠다.

시몬은 대검을 떨쳐 올렸다. 전신이 검푸른 연기로 폭발하듯 튀어 올랐다. 순간 대검의 형태가 무엇으로 변화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몸은 악마처럼 일그러진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 그딴 사소한 게 뭐가 중요하겠는가.

<군단기 - 비월(飛越)>

시몬이 무기를 휘두르며 그녀의 옆으로 나왔다.

공간을 비집고 비틀어 뛰어나온 것이다.

후우우우우우우우웅-

세상이 반으로 갈린다.

하늘과 대기.

아니, 이 유적 전체가 반으로 갈린 채 공중으로 떠오르고 있다.

시몬은 극도의 평온함을 느끼며 가만히 고개를 들었다.

쩌억.

거대한 히드라의 머리가, 하늘 높이 날아가고 있었다.

이내 중력을 역행하듯 하늘에 떠오른 모든 것들이 갈라져 바닥에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시몬은 메이린을 안고 도약했다.

* * *

정신을 잃었던 메이린이 눈을 떴다.

머릿속이 몽롱했다.

'......여긴, 어디?'

꿈인가?

참, 그 괴물과 싸우고 있었는데.

나 죽은 건가?

온갖 오래된 건축물들이 비처럼 마구 쏟아지고 있는 세계. 찬 바람이 몰아친다. 그녀는 높은 고공에 떠 있었다.

그리고 앞에 흐릿한 얼굴이 보인다.

'시몬?'

그녀는 누군가에게 안겨 있었다.

커다란 본 아머를 입고, 무형의 망토로 몸을 두른 남자의 품속에.

이내 흐릿하던 시몬의 얼굴이 연기처럼 사라지고, 그 대신 커다란 해골 투구의 모습이 보였다.

"......설마, 피온 님?"

치사하다.

꿈치고는, 이건 너무 행복에 겨운 꿈이 아닌가.

깨어난 뒤의 아쉬움이 벌써 걱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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