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775화
시몬과 메이린은 나란히 앉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제 메이린은 시몬을 피온으로 의심하지 않는 건지, 피온에 대한 속 깊은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다.
"피온 님께 말씀드렸어."
하늘색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며, 메이린이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초원의 밤하늘은 별이 많고 밝았다.
"나만큼은 늘 응원하니 꺾이지 말아달라고. 평범하게 학교에 다니는 내가 그분의 고충을 헤아리는 것도 우습지만 말야."
분위기 때문일까. 시간 여행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라 그럴까. 시몬은 가슴이 뭉클해졌다.
배신의 군단장으로서, 사람들에게 이런 응원이나 격려를 받아본 게 얼마 만일까 싶었다. 하지만 티를 낼 수는 없었다. 애써 요동치는 속마음을 자제시키고, 고개를 들어 뜨거워진 얼굴을 밤바람으로 식혔다.
"피온 님도 네 말을 듣고 고마워할 거라고 생각해."
"응응."
시몬은 속으로 감사인사를 보냈다.
'고마워 메이린.'
* * *
다음 날 아침이 밝았다.
이래저래 초원에서의 4일 차, 개학까지는 불과 며칠 남지 않았다.
-학쟁들! 기껏 먼 곳에서 왔는데, 그냥 시간을 보낼 주는 없잖아요?
홍펭은 여기까지 온 제자들에게 좋은 추억을 만들어주지 못해 미안했는지, 다시금 초원 투어를 제안했다.
물론 그녀의 건강 상태가 나빴기에 직접 가이드로 나갈 수는 없었고, 마르라트 일족에서 지원자들을 뽑아 붙여주기로 했다.
마투학과 학생들과 1학년들은 신이 난 반응이었으나 학생회 멤버들은 그렇지 못했다.
시몬이 다쳐서 도저히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 멤버들은 시몬이 신경 쓰였는지 초원투어를 한번 사양했지만.
-난 괜찮으니까 다녀와. 나 때문에 너희들이 못 가는 상황이 더 불편해.
오히려 시몬이 그들의 등을 떠밀었다.
사샤가 흑심을 갖고 시몬을 간호하겠다며 떼를 쓰다가, 결국 몰리에게 붙잡혀 같이 떠났다. 그들이 말을 타고 떠나는 모습을 손을 흔들어주며 배웅한 뒤, 시몬은 홍펭의 집 소파에 털썩 누웠다.
"정말 미안해요 지몬."
홍펭이 다가와 말했다.
"교주로서 면목이 없어요. 제가 지몬을 끌어들이는 바람에......."
"그 말씀, 한 번 더 하면 열 번째인 거 알죠? 저는 괜찮아요."
시몬이 웃으며 말했다.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그녀는 정말로 지극정성으로 시몬을 보살폈다.
"개학까지 지몬이 낫지 못하면, 내 마음은 찢어질 거예요."
그녀가 방바닥에 앉았다.
"그러니 지금부터 재활훈련을 하겠어요."
"후, 훈련이요? 여기서?"
"네!"
홍펭은 남은 시간, 투어를 떠나지 못하는 시몬에게 이런저런 기술들을 가르쳐 주기로 했다.
다양한 종류의 호흡법들.
명상 기술.
그리고 룬어를 사용하는 마법진과는 다른, 마투학과 전공자들만이 마법의 대용으로 쓸 수 있는 '법진'까지.
그야말로 바겐세일처럼 펑펑 퍼주었다. 물론 이 모두가 발을 쓰지 않고도 할 수 있는 기술들이었다.
"자, 쭉쭉."
시몬은 눈을 감고 명상을 시작했다.
잡생각과 머리가 사라지고, 정신이 맑아지는 게 느껴졌다.
"지금이에요!"
시몬이 눈을 부릅뜨고 흑마법을 시전했다. 홍펭이 가르쳐 준 명상 직후에 흑마법을 사용하면, 시전시간을 대폭 줄일 수 있었다. 컨디션과 집중력이 확 오른 덕분이다.
"와!"
처음 해보는 경험에 시몬이 아이 같은 얼굴로 방방 뛰었고, 홍펭은 흡족하게 웃었다.
"하지만 아직 집중력이 부족해요."
홍펭은 명상 중인 시몬을 방해했다. 집중력이 떨어지도록 계속 말을 걸거나, 어디 털 뭉치 같은 걸 가지고 와서 시몬을 간지럽히기도 했다.
"으악!"
귓가에 숨결을 불어넣기도 했다. 이건 참을 수 없었다.
시몬이 벌게진 얼굴로 뒤를 돌아보자 홍펭이 후후 웃고 있었다.
"교수님!"
"장난이 짐했나요?"
이렇게 같이 지내다 보니, 홍펭도 조금씩 표정이 밝아지고 있었다.
스트레칭도 체계적으로 배우고, 근육을 풀어주는 마사지도 배웠다. 다리 근육을 조금씩 움직이며 재활도 했다.
식사 시간에는 홍펭이 나중에 본인이 먹으려고 했던, 천하의 몸에 좋다는 약초나 음식들을 먹었다. 사람 몸통만 한 산삼도 먹었고, 매일매일 새벽의 이슬만 먹고 자란다는 불초새의 간도 달여 먹었다.
그 덕분인지 시몬은 부상당한 다리를 제외하면 전신에 활력이 마구 돌았다.
그야말로 가만히 있어도 건강해지는 '강제 건강 패키지'. 시몬은 이렇게 귀한 건 못 먹는다고 한사코 사양했지만, 홍펭은 막무가내였다.
"자, 아-"
저녁은 거북 종류의 몬스터를 끓인 것으로 보이는 탕이다. 홍펭이 수저를 들고 시몬의 입을 향해 밀어 넣었다.
시몬이 땀을 삐질 흘리며 말했다.
"저...... 다친 부위는 다리고, 손은 제힘으로 움직일 수 있는데요."
"그래도 지몬은 환자니까요. 저는 저 때문에 부장당한 지몬을 간호할 의무가 있어요."
시몬은 하는 수 없이 입을 벌렸다. 그녀가 그 안으로 정성껏 달인 약초를 넣어주었다.
부끄러웠던 시몬이 얼굴을 붉힌 채 말없이 입을 오물거리는 모습을 본 그녀는 장하다는 듯 머리를 쓰다듬었다.
"한 줃가락 더 먹어요!"
'......호강하는 것 같아서 좋긴 하지만 뭔가 부끄러운데.'
그렇게 강제 건강 패키지를 받고 다음 날 아침.
'와.'
하루 만에 다리의 상태가 말도 안 되게 좋아졌다.
쑤시는 듯한 통증 때문에 서 있을 수도 없었던 걸 생각하면 커다란 발전이다. 이제는 통증이 가라앉고 몸을 일으킬 정도는 되었다.
얼굴에 혈색이 확 돌고 몸은 날아갈 듯 힘이 붙었다. 이렇게 상쾌한 몸 상태로 기상한 게 얼마 만이던가.
"일어났어요? 지몬."
오늘도 홍펭이 뭔가 몸에 좋은 걸 잔뜩 달이고 있었다. 방 전체에 냄새만 맡아도 건강해질 것 같은 보약냄새가 풍겼다.
"네, 좋은 아침이에요 교수님."
시몬은 그렇게 인사하면서, 눈썰미로 그녀의 어깨나 다리에 새로 생긴 생채기들을 발견했다. 그러고 보니 어제 새벽에 그녀가 몰래 집 밖으로 나가는 걸 본 것 같다.
걱정이 됐던 시몬이 말했다.
"교수님, 어제 새벽에 어디 가셨어요?"
"화장질요."
대수롭지 않게 말한 그녀가 온갖 기구로 음식과 약물을 끓이기 시작했다. 다리를 간신히 움직일 수 있게 된 시몬은 은밀하게 몸을 일으켰다.
'아침인데 왜 오두막의 커튼을 치신 거지?'
시몬이 조심스레 다가가 창문의 커튼을 걷으려는 그때.
샤악!
어느새 홍펭이 귀신처럼 나타나 웃는 얼굴로 커튼을 강제로 붙잡아 내렸다. 그러고는 시몬을 번쩍 들어 침대에 퉁 하고 내려놓았다.
"환자가 그러면 못써요."
홍펭이 다시 조리대 쪽으로 돌아가며 말했다.
"일어났으면 치료 명상 지작."
"교수님, 방금 밖에 뭔가 보이......."
"지작."
하는 수 없이 시몬이 가부좌를 틀고 명상을 시작했다.
뭔가 집 앞마당에 몬스터들의 시체가 산을 쌓고 있고, 주위가 피바다가 된 것 같지만, 너무 엄청난 광경이라 착각일까 싶었다.
* * *
시몬이 아침을 먹은 그 짧은 시간 동안 앞마당은 깨끗하게 변해 있었다. 시몬은 홍펭과 함께 시원한 바람도 쐬고 햇빛도 받으며 스트레칭을 했다.
그리고 들어가서 다시 명상훈련.
법진의 기본기도 배우고, 기존의 마투 동작도 1:1로 코칭 받았다.
"근육을 100% 다 쓰지 않고 있어요. 주먹을 뻗을 때 조금 더 어깨의 움직임을 느껴보제요."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밀착 코칭. 훈련이 끝난 뒤에는 스트레칭하는 것도 도움받았다.
이 뒤에는 다시 명상과 호흡법 훈련이 기다리고 있었다.
"교, 교수님!"
바닥에 다리를 쭉 벌린 채 앉아 몸을 쭉쭉 빼고 있는데, 홍펭이 그 위로 올라와 눌러주고 있었다.
"조금 더 내려갈 주 있어요."
목소리가 가깝게 들렸다. 그녀의 흘러내린 머리카락이 시몬의 뺨에 맞닿았다. 등에 올라간 그녀의 손바닥에 더 힘이 들어갔다.
"조금 더."
"자, 잠깐! 으악!"
그래도 늘 홍펭의 말이 정답이었다. 조금 더 내려갈 수 있다면 내려갈 수 있었고, 근육의 움직임이 잘못됐다고 말하면 교정 후에 훨씬 좋은 결과를 얻어냈다.
그렇게 시몬이 훈련을 박차고 있는 가운데.
"이것들 봐라!"
콰앙!
문을 걷어차며 부리부리한 눈의 별야가 들어왔다.
<언니, 아직 키젠에 안 갔어?>
홍펭이 초원어로 물었다. 별야가 인상을 찡그렸다.
<그래! 네가 이럴까 봐 안 가고 아버지랑 술 마시고 있었다! 잠시 한눈파는 사이 내 귀염둥이를 독차지해? 넌 늘 이런 식이야! 평소엔 착한 척하면서 뒤꽁무니로는 이런 수작을......!>
<무슨 소리야, 언니. 시몬이 부상을 당했고, 나는 책임감으로 재활훈련을 돕는 중이야.>
<아, 그래? 그 녀석의 진가를 알아 버려서 눈 돌아간 게 아니고?>
저게 대체 무슨 소릴까.
시몬은 멍한 얼굴로 이상한 언어를 주고받는 자매의 이야기를 들었다.
<너만 쟤 가르치냐 이것아! 나도 가르칠 거야!>
그렇게 일갈한 별야가 히죽 웃으며 삼각형 이빨을 드러냈다.
시몬은 괜히 오한이 돋는 걸 느꼈다.
"헤이, 학생회장. 온갖 호강이란 호강은 다 받고 있는 것 같은데."
그녀가 터덜터덜 걸어가서 약재통과 그릇을 뒤적거렸다. 재료를 확인한 그녀가 오호 하고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홍펭을 바라본 뒤, 시몬을 보았다.
"물론 이런 값비싼 영약, 보약, 음식들과 건강해지는 훈련들. 다 좋다 이거야.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그렇지도 않아."
"또 무즌 말을......."
홍펭이 별야를 노려보며 중얼거렸다. 별야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진짜 건강은 말이야, 아이러니하게도 건강을 해칠 때 나오는 법이다."
"네?"
"악조건 속에서 적응하고 살아남은 몸이 강한 거야. 역사에서 최강의 무기와 육체조건을 가진 제국군이 왜 산골 패잔병에게 무너졌는지 알아? 돌림병 때문이었어. 시골애들에 비해 도시애들이 툭 하면 픽픽 쓰러지는 것도 마찬가지야. 어릴 땐 흙도 좀 퍼먹고, 자연에서 자란 생것도 먹고 하면서 단련을 해야 하는 거거든."
그녀가 주먹을 꾹 움켜쥐었다.
"특히 칠흑을 담는 네크로맨서의 육체는 특별해. 몸에 더 많은 스트레스를 주고, 약물로 건강한 항체도 만들면서 강하게 담금질해야 하지. 겉으로만 건강해 보이는 근육돼지들이 빗줄기만 내렸다 하면 컨디션 팍팍 떨어지고, 땡볕에 픽픽 나가떨어지는 것 봐. 살아남는 자가 강한 거야."
"제발 내 학쟁 앞에서 헛조린 그만하지?"
시몬은 가만히 별야와 홍펭을 바라보았다.
닮은 듯 닮지 않은 쌍둥이 자매.
태어난 곳은 같지만, 자라난 환경은 완전히 달랐기에 전혀 다른 종류의 네크로맨서로 성장했다.
홍펭은 극도로 육체를 단련했다. 탄탄한 구릿빛 피부와 근육질 몸매. 한 달을 먹고 마시지 않아도 버틸 수 있는 지구력. 성벽도 부수는 주먹과, 한 번의 도약으로 하늘을 나는 각력까지.
반면 별야는 그리 단련한 육체는 아니었다. 가늘고 긴 몸, 적당한 체구. 하지만 그 어떤 질병이나 외부의 간섭도 그녀를 흔들 수 없다. 체내에서 독을 생성해 분비하는 육체를 갖췄고, 동물적 감각이 극도로 발달해서 어떤 전투에서든 자신에게 유리한 상황을 만들어 싸울 수 있다.
이 두 자매의 강함에는 우열을 가릴 수 없다.
홍펭은 홍펭의 철학이, 별야는 별야의 철학이 있다. 같은 자매지만 서로 다른 강함. 그 점이 시몬은 무척이나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그럼 이렇게 하자."
별야가 말했다.
"아침에는 내가 애를 데리고 다니면서 철저하게 나쁜 독들을 쑤셔 박으면서 저항계를 단련시킬게. 저녁에는 네가 그 명상인지 호흡인지로 독소를 빼내면서 다시 건강하게 만들어. 그러면 문제없지?"
면역과 건강 모두를 챙긴다.
홍펭도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시몬이 웃는 얼굴로 제 자신을 가리켰다.
"......제 생각은 안 들어도 되는 건가요?"
"입 다물고 빨리 옷 갈아입고 튀어나와!"
별야가 히죽 웃었다.
"발락을 이기고 싶은 거지? 개학 전까지 제대로 단련해 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