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777화
시몬은 텔레포트 마법진을 타고 무사히 학교에 돌아왔다.
홍펭과 별야, 그리고 학생회 멤버들을 비롯한 일행들과 작별인사를 마친 뒤, 골렘보드를 타고 소환학과 기숙사에 도착했다.
"웃차."
거대한 나무가 얽혀 있는 기숙사의 모습. 이제는 집에 온 것처럼 정겹기만 하다. 시몬은 느긋한 걸음걸이로 문을 열고 들어왔다.
'텅텅 비었네.'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기숙사 로비는 한적했다. 가끔 지나가던 기숙사 관리원들이 인사를 해왔고, 시몬도 인사를 받아주며 계단을 걸어 올라갔다.
달칵!
이내 기숙사 방문을 열어보니, 침대에 앉아 있던 키 작은 소년이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일어났다.
"아, 시몬!"
"토토! 와 있었구나."
룸메이트이자, 소환학과 내에서 같은 10조인 토토 아모리. 마침 그도 이제 막 도착한 건지 가방이 그대로였다.
"여전하네, 시몬! 방학 잘 보냈어?"
"응! 나야 뭐."
두 사람은 함께 짐을 풀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토토는 방학 동안 랭거스틴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보냈다는 모양이다. 2학년 2학기 수업을 따라가기 위해서라도 자금 확보는 필수적이었다. 소환학은 워낙 돈이 많이 드는 학문이었으니까.
"실은 에슈가 랭거스틴에서 할 수 있는 괜찮은 알바자리를 몇 개 추천해 줬거든."
"그래?"
"아, 아르바이트나 일자리에 대해서는 에슈가 워낙 빠삭하니까!"
갑자기 다리를 배배 꼬며 변명처럼 말하는 토토였다. 시몬이 물었다.
"그럼 둘이 같이 일하다가 자주 마주쳤겠네."
"가, 가끔이야! 정말 가끔! 시간대가 달랐어!"
토토가 땀을 뻘뻘 흘리며 얼른 화제를 돌렸다.
"시몬은 방학 동안 어떻게 지냈어?"
"아, 나는 아버지를 따라서 영지일을 도와드리다가 초원에......."
퉁! 퉁!
초원에 갔던 장황한 모험담을 늘어놓으려는데, 갑자기 창밖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란 토토가 흐익! 소리를 내며 펄쩍 뛰었다.
고개를 돌려보니 딕이 소환학과 기숙사 창문에 붙어 있었다. 유리창에 얼굴을 바짝 대고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보였다가, 이내 호호 입김으로 창문을 뿌옇게 만들더니 손가락으로 글자를 썼다.
<긴급사태야.>
학교에 돌아온 지 얼마나 됐다고 새로운 정보를 물어온 모양이다. 시몬이 창문을 열어주자, 딕이 안으로 쑥 들어왔다.
"오! 토토, 오랜만!"
딕이 1학년 때 같은 A반이었던 토토에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토토도 어색하게 인사를 받았다.
"무슨 일이야, 딕?"
"아, 그게 말이야. 학생회에 대한 건데."
눈치를 보던 토토가 얼른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 중요한 이야기 같은데. 자리 비켜줄까?"
"아, 괜찮아 괜찮아."
딕은 시몬과 토토에게 자신이 본 광경을 이야기했다.
그는 기숙사에 돌아가지 않고 바로 학생회 건물로 향했다. 교수회의에서 2학기 학생회에 대한 결론이 어떻게 내려졌는지 궁금해서 직접 확인하러 간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딕은 학생회실에 들어온 하수인들이 짐을 옮기는 모습을 발견했다.
"자료들을 빼고, 가구배치를 바꾸는 것 같더라. 이건 역시......."
사실 예상하고 있던 바였다.
시몬은 그리 놀랍지도 않다는 듯 태연한 표정으로 겉옷을 챙겼다.
"내가 가볼게."
방을 나선 시몬은 빠른 걸음으로 계단을 내려와 기숙사 밖으로 나왔다.
하지만 멀리 갈 필요도 없었다.
"아."
기숙사 문 앞에서 말끔한 정장을 차려입은 성인 남성 네 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키젠 본부에서 왔습니다."
그중 한 명이 선글라스를 벗으며 시몬을 보았다.
"시몬 학생이시죠? 잠시 이야기 좀 나눌 수 있겠습니까."
* * *
시몬은 번쩍번쩍 호화로운 방 안으로 안내되었다.
'학교에 이런 곳도 있었구나.'
시몬은 가볍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맞은 편에는 본부 직원 한 명이 서류가방을 내려놓고 자리에 앉았다.
하수인이 두 사람이 마실 커피를 내어왔다.
"방학 잘 보내셨기를 바랍니다. 혹시 이야기는 들으셨습니까?"
"아직이요."
"그렇군요."
본부 직원은 시몬에게 커피를 권한 뒤, 찻잔을 들어 올렸다.
시몬도 사양하지 않았다. 잠깐의 티타임 이후, 넥타이를 고쳐 잡은 본부 직원이 먼저 입을 열었다.
"우선은...... 이런 말씀을 드리게 되어 유감입니다."
"2학기의 학생회장은-"
시몬이 찻잔을 내려놓았다.
"발락이 하게 된 것 같네요."
"......."
본부 직원은 묵묵히 가방에서 서류를 꺼내 테이블 위에 쭉 펼쳐놓았다.
"차근차근 설명 드리겠습니다. 본교에서는 현재 학생회장 자리를 공석으로 보고 있습니다."
시몬은 장기파견 중이던 에이젤의 대리로 '2학년 학생회장'이 되었다. 그러다 에이젤이 돌아왔고, 두 사람의 결투로 학생회장직을 결정지으라는 게 전대 학생회장인 판타서스의 조건이었다.
이에 판타서스에게 의뢰받은 그레리엄 가문이 직접 개입해서 '명예로운 결투'를 선언했다. 명예로운 결투에서는 챔피언과 도전자가 나누어져 있지 않다. 두 사람 다 일반 학생으로 내려와 공평한 조건에서 결투를 진행해 이기는 쪽이 학생회장이 된다.
그런데 발락이 난입해 결투 자체가 무효가 되어버렸고, 교칙상 키젠의 학생회장석은 현재 공석이다. 결정권은 교직원들에게로 돌아갔는데, 여기서부터 갈등이 시작됐다.
논제 자체는 심플했다.
누구를 학생회장으로 올릴 것인가.
-에이젤 학생이 떠났으니, 기존의 학생회장 대리를 공식 학생회로 인정하고 진행하는 게 올바른 순서입니다. 뜬금없이 발락 학생을 올려야 한다니, 말이 되지 않는군요.
이게 2학년 교수들의 주장이었고.
-학생회장석 자체가 공석이지 않소. 1학기 때 누가 그 자리에 있었는가는 중요하지 않소. 이 학교에서 누가 가장 그 자리에 걸맞은가가 중요하오!
이게 3학년 교수들의 주장이었다.
누구도 양보할 수 없는 논의였다. 명성과 이름값은 2학년 교수진이 더 컸지만, 당장의 커리어와 밥그릇이 걸려 있는 3학년 교수들도 필사적이었다.
-여긴 키젠이오! 실력지상주의의 키젠이란 말이오! 가장 강하고 뛰어난 학생이 톱의 자리에 올라야지, 2학년이 잠깐 학생회 일을 했다고 그 자리를 계속 유지해야 할 이유는 없소!
-아무리 실력이 중요해도, 인성과 인품은 인간의 기본입니다. 엄연히 잘못을 저질러 징계 중인 학생을 회장직에 앉히는 건 학교의 명예에 침을 뱉는 행위입니다.
-그러니 징벌임무를 보냈지 않소!
사실 3학년 교수들의 입장에서도, 발락을 징벌임무를 보내는 건 도박인 동시에 배수의 진이었다.
징벌임무는 현역 까마귀급들이나 수행하는 신성연방 관련 임무로, 프리스트들과의 교전을 피할 수 없다.
에이젤조차 4개월 이상이 걸렸던 장기임무와 같거나 그 이상의 난이도로 평가받는다. 만약 발락이 방학 동안에 이 임무를 끝내지 못한다면, 논의의 여지도 없이 학생회장 자리는 시몬에게 가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발락의 징벌임무 중에 '빅이슈'가 터지고 말았다.
"...발락이 아크 팔라딘을 쓰러트렸다고요?"
본부직원의 설명을 들은 시몬이 입을 딱 벌렸다.
"예, 발락 학생은 교전 도중에 11명의 연방 측 전사들을 사살했고, 그들을 지휘하는 아크 팔라딘까지 쓰러트렸습니다."
이건 정말로 어마어마한 성과였다.
이 소식은 즉각 로크섬 전체에 퍼졌고, 인성 문제가 있던 발락에 대한 교내 여론이 송두리째 뒤집히는 계기가 되었다.
-발락은 이미 에이젤을 뛰어넘었소! 역대 최고라는 판타서스와 비견해야 하오!
-19세의 나이에 아크 팔라딘을 잡은 천재 중의 천재를 두고, 2학년을 학생회장직에 유지하는 게 말이 되나?
결국 키젠의 근본은 철저한 실력주의. 여론이 발락 쪽으로 기울어지기 시작했고, 이번 문제에 심드렁하던 원로회까지 교수회의에 입김을 흘려 발락을 원한다는 의견을 표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VVIP께서 결단을 내리신 듯합니다."
본부 직원의 말에 시몬은 생각에 잠겼다.
저 호칭이 가르치는 게 누군지 장담할 수는 없지만.
'혹시 네프티스 님이라면.'
권력이나 여론에 휘둘리지 않는 그녀가 그런 결론을 내렸다면, 틀림없이 이유가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몬은 이상하게 마음이 조금 더 편안해지는 걸 느꼈다.
"결국 2학기의 학생회장직은 발락 학생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본부 직원이 목소리에 힘을 주며 깍지를 꼈다.
"교수회의에서는 전대 회장이었던 시몬 학생에게 충분한 대우를 해야 한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여론이 불리해지는 가운데, 2학년 교수진도 최대한으로 얻을 수 있는 것만큼은 얻어낸 모양이었다.
"대우라면......."
"첫째로, 지금 당장 회장직 유지는 어렵겠지만 내년 331기 키젠의 학생회장직은 시몬 폴렌티아 학생으로 확정할 예정입니다."
적어도 내년의 학생회장 직은 보증하겠다는 이야기.
이 문제는 교수회의에서 결론 내려진 사항이며, 발락 학생과의 협의도 끝난 상황이라고 본부직원이 말했다.
"그리고 둘째."
지금부터가 본론일 가능성이 높았다.
시몬도 집중력을 끌어올렸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떠나, 결국 발락 학생은 시몬 학생보다 실력이 더 뛰어나다는 평가 때문에 회장직을 차지했습니다."
"그렇죠."
"하지만 만약 시몬 학생이 그 평가에 동의하지 않고-"
그의 눈빛이 번뜩였다.
"자신이 발락 학생보다 더 뛰어나다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죠."
이건 또 무슨 소리야?
시몬이 물음표 가득한 눈으로 본부 직원을 보자, 그는 서류 한 장을 내밀었다.
"교내에서는 시몬 학생에게 '도전권'을 부여하기로 했습니다."
도전권이라니?
시몬은 눈으로 빠르게 내용을 훑었다.
"발락 학생을 이길 자신이 있다면 오늘 당장이라도 그를 끌어내리고 학생회장직을 돌려받으실 수 있습니다. 발락 학생은 반드시 시몬 학생의 도전에 응해야만 할 의무가 있고요. 응하지 않을 경우, 학생회장직은 시몬 학생에게 넘어갑니다."
이거였나.
결국 중요한 건 실력이고, 평가가 불만이라면 자신의 힘으로 쟁취하라는 의미였다.
"기일은 제가 정하는 건가요?"
"예."
원하는 때에 얼마든지 발락 학생에게 도전할 수 있는 권한. 시몬은 슬쩍 시선을 내려서 자신의 다리를 보았다.
여전히 오른쪽 다리가 지끈거린다. 부상을 입은 지금, 발락과 싸워봐야 결과는 뻔하다. 시몬에게는 조금 더 시간이 필요했다.
'이런 조건이라면 나쁘지 않지.'
여전히 학생회장 자리를 유지하고 있었다면, 발락이 언제 자신에게 도전해올지 계속 걱정하고 노심초사했을 것이다.
중책에 내려와서 도전자가 되는 게 마음은 오히려 편하다. 차근차근 도전할 준비를 하는 것도 수월해졌다.
우선은 부상에서 완전히 회복하고, 별야의 수업을 들어서 저항계를 수준급으로 끌어올린 뒤, 마지막으로 본 드래곤을 완성할 것.
그렇게 모든 준비를 마치고 발락을 쓰러트릴 수만 있다면, 단순히 판타서스에게 물려받았을 뿐인 학생회장직을 스스로 쟁취한다는 의미도 생긴다.
'못할 것도 없지.'
정말로 못할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뀐 시몬의 눈빛을 본 직원도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번 임무에서 발락 학생이 워낙 큰 이슈를 터뜨린 터라, 3학년 교수진의 체면을 살리기 위해서라도 처우가 이렇게 된 점, 그리고 번거롭게도 시몬 학생이 다시금 실력을 증명해야 하는 점. 사과드립니다."
"아니에요."
시몬도 빙긋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른 누구도 아니고 아크 팔라딘을 잡았다면서요? 제가 교수진이라도 지금의 결정을 내렸을 것 같네요."
"그렇게라도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두 사람이 가볍게 손을 맞잡아 악수했다.
본부 직원이 정장 재킷을 추켜올렸다.
"제 개인적으로는, 논란이 많은 발락 학생보다 시몬 학생 쪽을 더 응원하고 싶군요. 도전권을 사용하시겠다면 언제든지 키젠 측 직원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 * *
다음 날 아침, 개학식.
키젠이 발칵 뒤집혔다. 막 학교에 복귀해서 방학 때 있었던 이야기를 나누어야 할 학생들이 전부 한 가지 화제로만 떠들고 있었다.
-시몬이 물러나고, 3학년의 발락이 학생회장이 됐다던데.
-이제부터는 발락의 시대야!
학교에 돌아왔더니 난데없이 '학생회장'이 바뀌어 있었다. 학생들은 모두 그 이슈에 대해 떠들고 있었다.
-앓던 이가 빠진 기분? 진작 이랬어야 했어.
-이제 좀 3학년의 체면이 서겠다.
3학년들은 전반적으로 당연한 수순이며, 통쾌하다는 반응이었지만.
1학년과 2학년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웅성 웅성 웅성!
오랜만에 전교생이 모여서 진행하는 '합동 개학식'.
화기애애해야 할 분위기는 극도로 험악했다.
-저 새끼들 왜 이쪽 꼴아보냐?
금빛 배지를 단 하늘 같은 3학년이 걸어가고 있는데, 허리를 꺾어 인사해야 할 1학년들이 적대심 가득한 눈으로 수군거리고 있었다.
-야, 그냥 가자. 괜히 우리가 1학년 건드렸다가 문제 생긴다.
-쓰읍. 찝찝한데.
3학년들은 툴툴거리며 대강당으로 들어갔다.
그들이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폭발과도 같은 웅성거림이 사방에서 터져 나왔다.
어른들은 계산기를 두들겨 타산적인 선택을 했다. 2학년인 시몬보다, 능력과 실적이 더 뛰어나다고 평가받은 발락을 회장직에 세웠다.
물론 그 선택 자체는 조직의 합리적인 의사판단일지도 모르겠지만.
-시몬 폴렌티아 선배님이 왜? 잘못한 것도 없는데?
-이건 부당해!
학생들의 인식과는 전혀 동떨어진 판단이었다.
1학년들 사이에서 시몬은 영웅이었고, 가장 존경받는 선배 중 하나였다. 그런 시몬이 갑자기 물러나고 발락이 회장직을 차지했다. 좋게 보려고 해도 도저히 좋게 볼 수가 없었다.
2학년들의 분위기도 다를 바가 없었다.
-이번 3학년들은 진짜 자격지심이 있다니까. 회장직을 이렇게 꿀꺽해 버리네.
-시몬 폴렌티아를 아주 좋게 보는 건 아닌데...... 아닌 건 아닌 거지.
2학년 중에는 시몬과 말 한마디 섞어보지 못한 학생들도 많았지만, 그래도 동기는 동기.
막상 시몬이 회장직을 박탈당했다는 소식을 들으니 내면의 분노가 들끓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분노는, 잠시 후의 합동 개학식 때부터 터지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