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780화
학생회관 건물 앞은 클라우디아의 시위대가 점거한 상태였다.
그나마 학생회관을 지키는 '학생회 직속 하수인'들은 명령이 떨어지지 않는 한 키젠 학생들의 몸에 손을 댈 수 없다. 건물 안에서 발만 동동 구르는 중이었다.
"신 학생회는 이번 사태에 대해 해명하라!"
"해명하라!"
곳곳에서 1학년과 2학년 학생들의 외침이 울려 퍼졌다. 소수만 진행하던 피켓시위가, 꽤 덩치를 키운 중규모 시위로 바뀌어 있었다.
그들은 이제 신 학생회의 출근시간에, 학생회관 주위를 빈틈없이 둘러싸고 있었다.
"클라우디아 선배님!"
1학년 후배가 후다닥 뛰어왔다.
"발락이 옵니다!"
"나도 보고 있어."
클라우디아가 긴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갑자기 주변 하늘이 먹구름이 몰려온 것처럼 시커멓게 변했다. 순식간에 주위가 어두워지고, 자욱한 안개가 사방을 덮었다.
저벅. 저벅. 저벅.
조용한 가운데 묵직한 발소리가 울려 퍼진다. 모두가 침을 꿀꺽 삼키고, 손에 든 피켓을 높이 들어 올린 채 정면을 주시한다.
검은 안개를 뚫고 한 무리의 인형들이 이쪽으로 몰려오고 있었다. 아직까지는 흐릿한 실루엣만 보일 뿐이다.
후우우욱-
이내 검은 연기를 뚫고, 거구의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쩍 벌어진 어깨와 두꺼운 목, 투박한 피부 사이로 흉터나 상처자국들이 보였고 눈동자는 음침하다. 숱이 얼마 없는 머리와 움츠러든 만두귀가 보인다.
얼굴의 절반을 가리고 있는 금속 마스크에서는 호흡할 때마다 독성 숨결이 흘러나온다.
"......!"
새로운 3학년 전체 1위이자, 명실상부 키젠 최강.
학생회장 발락.
학생회장을 상징하는 검은 코트를 어깨에 두르고 걸어가는 그 모습은 실로 어마어마한 위압감을 뿜어내고 있었다. 숨도 쉬지 못할 공포감에 학생들은 저도 모르게 움찔하며 입을 다물었다.
'바, 발락이 원래 저런 느낌이었나?'
'카리스마 미쳤네.'
그동안 에이젤에 가려져 있다고 들었는데, 막상 실물로 보니 모두가 기세에 밀려서 입도 뻥긋하기 힘들었다. 발락의 뒤를 따르는 새로운 학생회 멤버들이 비릿한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후읍.
그때 피켓을 든 클라우디아가 목소리를 높였다.
"우리는 부적절한 학생회장직 교체를 결정한 3학년 교수진과 신 학생회를 규탄한다!"
그제야 퍼뜩 정신을 차린 몇몇 학생들이 '규탄한다!' 하고 억지로 목소리를 쥐어짜 냈다. 몇몇은 두려움에 벌벌 떨면서도 호응했다.
그러자 시위대 사이를 걸어가고 있던 발락의 눈동자가 스르륵 움직여 클라우디아를 보았다.
[본 적 있는 얼굴이군.]
마스크 속에서 묵직하게 내리깔린 음성이 흘러나왔다.
클라우디아는 맹독학과였고, 당연히 맹독학과의 3학년 학과대표였던 발락과도 기숙사에서 몇 번 마주친 적 있었다.
발락의 직접적인 영향권 내이니 척을 지기 어려운 처지였지만, 클라우디아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위해 나왔다.
그녀는 대담하게 말했다.
"그러네요, 선배님."
[왜 이번 일을 반대하지?]
"그 과정이 올바르지 않고, 정의롭지 않기 때문입니다."
발락의 바로 옆에서 뒤따르던 전 사령학과 대표, 소타 프쉬케가 인상을 확 찌푸렸다.
"뭐 이 새끼야? 2학년이 지금 미쳤......."
발락은 눈빛으로 소타의 입을 다물게 한 뒤, 다시 클라우디아를 보았다.
[이곳에서는 힘이야말로 정의다.]
"만약 그렇다고 해도, 그 힘을 가리는 정당한 절차 없이 학생회장 직위를 갈아치우는 건 부조리합니다."
펄럭!
발락이 다시 움직였다. 시몬과는 사이즈가 다른 거대한 학생회장 코트가 펄럭이며, 그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불만이 있으면 시몬 폴렌티아에게 말해라. 놈이 정녕 힘에 자신이 있다면, 도전권으로 내 자리를 빼앗으러 오겠지.]
클라우디아의 눈이 깜빡였다.
'......도전권?'
* * *
드디어 새로운 학기, 소환학과의 첫 전공 수업이 시작되는 날이었다.
1년중에 가장 활기가 넘치는 학기 첫날. 방학이 끝나고 오랜만에 만난 학생들은 반가움에 활짝 웃으며 와글와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마침 시몬도 가방을 둘러맨 채 강의실에 들어왔다.
"......."
"......."
주위에서 신나게 떠들던 소리가, 시몬의 주위에서만 살짝 줄어들었다.
시몬이 동기들을 보며 먼저 반갑게 인사했다.
"안녕."
그러자 주위의 학생들이 어깨를 움찔하더니, 짠 것처럼 애써 환한 미소를 지으며 목소리를 높였다.
"아, 안녕 시몬! 아하하!"
"방학 잘 보냈지? 학생회...... 억!"
별생각 없이 평소 부르던 대로 시몬을 부르려던 남학생이, 옆 여학생의 팔꿈치에 옆구리를 얻어맞고 몸을 꺾었다.
'눈치 챙겨!'
뭔가 묘한 동정 분위기가 형성되는 것 같은데, 시몬은 이번 문제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다. 오히려 주위 사람들이 더 시몬의 눈치를 보는 느낌이다.
시몬은 평소처럼 적당히 자리를 잡고, 어깨에 둘러멘 가방을 내려놓은 뒤 교과서를 꺼냈다.
"와앗! 안녕! 안녕! 오랜만이야아!"
아침부터 에너지 넘치는 인사와 함께, 시몬의 앞에서 누군가 불쑥 튀어나왔다.
휘날리는 감귤색 단발 머리와 포인트가 되는 머리핀, 동그란 눈동자와 가식 없이 활짝 웃는 얼굴이 인상적인 그녀는 시몬과 같은 소환학과 10조인 에슈 아르젤이었다.
"오랜만이야, 에슈."
시몬도 반가움에 미소 지었다. 인사를 받아주니 그녀도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방학 잘 지냈어? 잘 보냈지? 늘 피곤해 보였는데 피부에 혈색이 더 좋아진 느낌이네! 회장 혹시 방학 동안 근사한 요양이라도 받은...... 핫!"
그녀가 죄지은 사람처럼 입을 얼른 틀어막았다.
심지어 마구 자책하면서 제 머리에 꿀밤을 먹이는 모습에 절로 웃음이 나왔다.
"난 아무렇지도 않아, 에슈."
"......으윽 미안해. 신경 쓰려고 했는데 또 덜렁댔네. 아, 그래! 말 나온 김에 호칭을 정리하자. 앞으로는 뭐라고 하면 좋을까?"
"그냥 시몬이라고 불러도 괜찮은데."
"아, 음."
어쩐지 그녀의 표정이 묘하다. 이내 천천히 입술을 뗐다.
"알았어, 시...... 몬...... 으악!"
얼굴을 붉힌 에슈가 펄쩍 뛰며, 오글거림에 잔뜩 구부러진 손가락을 파르르 떨었다.
"계속 호칭으로 불렀다가 갑자기 친한 척 이름으로 부르려니 어색해! 부끄러워!"
"새삼스럽게."
1학년 시절부터 시몬을 알던 동기들은 모두 시몬이라고 불렀지만, 2학년부터 알던 동기들은 대부분 '학생회장'이나, '회장'이라고 불렀다.
A반의 제이미를 '반장'이라고 불렀던 것과 같은 느낌이다. 워낙 직위의 임팩트가 센 탓에 호칭과 이미지가 그렇게 굳어진 모양.
"이제 다들 시몬이라고 부를 텐데 나도 시몬이라고 부르면 개성 없기도 하고! 난 앞으로 조장이라고 부를게? 조장님!"
"하하, 마음대로 해."
에슈는 시몬의 앞에 자리를 잡고 와글와글 수다를 터뜨렸다.
이야기를 듣다 보면 도대체 저 폭발할 듯한 에너지의 근원이 어디일지 궁금했다. 심지어 그녀는 근로장학생이라서, 남들보다 일찍 일어나 청소나 이것저것 잡일을 하고 온 뒤일 텐데 말이다.
시몬이 슬슬 그녀의 수다에 정신이 혼미해질 즈음.
"아, 안녕!"
시몬과 같이 등교했지만 만성 장트러블로 화장실에 갔던 토토도 돌아왔다. 에슈가 손을 들었다.
"요옵! 토토!"
"아, 안녕 에슈."
토토가 얼굴을 붉히며 인사했다. 방학 동안 같이 아르바이트를 해서 그런지, 두 사람은 조금 더 친해진 모습이었다.
"이제 로레인 님만 오시면 10조 완전체 완성! 우리는 전부 살아남았네!"
"그러게."
1학년만큼은 아니지만, 2학년도 성적이 낮은 학생들은 과감하게 잘려나간다.
그 시점은 보통 학기가 끝나는 때인데, 확실히 전보다는 강의실의 학생들이 약간 줄어든 것 같았다.
'이번 학기도 이렇게 시작되는구나.'
시몬은 자리에 앉아 주위를 둘러보았다.
굵직굵직한 인물들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전체 5위이자 필기 성적 1위의 아세라즈 미켈.
정체불명의 편입생, 화이트.
돌연변이 동아리 부장, 피츠제럴드.
그리고.
'헥토르.'
마침 2학년 학과대표 어깨를 완장에 찬 헥토르가 강의실에 들어오고 있었다. 여전히 그의 파벌들로 주위는 시끌벅적했다.
그러다 헥토르와 시몬의 눈이 마주쳤다.
"......."
시몬은 인사하는 의미에서 고개를 까닥했지만, 헥토르는 외면하듯 고개를 돌리고는 늘 앉던 뒷자리 쪽으로 걸어갔다.
그때.
"오, 와 있었네? 반갑다! 학생회장!"
시몬의 고개가 돌아갔다.
헥토르의 파벌, 이름도 모르고 얼굴 정도만 아는 남학생이 손을 흔들어 보였다.
"아, 미안! 이제는 전 학생회장이라고 불러드려야 하나?"
"......."
"학생회장이 학교생활의 다가 아니잖아. 죽상 그만 지으시고, 파이팅하시고."
키젠에서는 늘 있는 경우다. 잘나가는 사람을 질투하고, 떨어진 사람을 기만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사람.
'학생회장일 때야 대우받았지만, 이제 일반 학생으로 돌아온 지금은 과대인 헥토르가 더 끗발 있지!'
힘의 구조가 바뀌었다.
늘 헥토르와 비견되던 시몬을 웃음거리로 만들 생각이었다. 그런 말을 한 뒤, 활짝 웃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런데.
"......."
"......."
강의실 전체에 불편한 정적이 휩싸였다.
'눈치가 없어도 정도가 있지.'
헥토르의 오랜 파벌이자 오른팔 격인 피에르 버클러가 이마를 짚었다.
저 녀석은 최근에 헥토르의 파벌에 들어왔고, 방학 때 그의 집에 초대를 받았다.
무어 가문과 연줄이 생겼으니, 엄청나게 들떠서 어떻게든 충성심을 증명하려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역효과다.
"말이 좀 그렇지 않니?"
"쟤 뭔데 나대냐? 첫날부터 분위기 망쳐놓네."
싸늘해졌다.
지금 교내의 분위기는 시몬에게 어마어마하게 우호적이고, 동정여론도 강하다. 시몬이 학생회장일 때는 판타서스의 가호를 받은 2학년 낙하산 학생회장이라며 질투하고 시기하는 분위기도 있었겠지만, 불의로 쫓겨났다고 여겨지는 지금은 다르다.
'거기에.'
피에르의 고개가 돌아갔다.
헥토르의 표정이 흉악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정작 그 헥토르도 이번 사태는 좋게 보고 있지 않다고, 멍청아!'
로레인과 세르네가 아직 안 온 걸 보고 타이밍이라고 생각해서 질러본 것 같은데, 최악의 한 수였다.
분위기가 싸해지니 그 말을 내뱉은 학생이 도와달라는 듯 헥토르를 보았지만, 헥토르는 불쾌하게 일그러진 표정으로 걸어가 자리에 가방을 내팽개쳤다.
다른 파벌들도 입 다물고 적당히 근처에 앉았다.
아까 말을 내뱉은 남학생도 쭈뼛거리며 곁에 앉으려 했지만, 피에르가 조용히 말했다.
"네 자리는 거기가 아닌 것 같은데."
바보는 필요 없었다.
이내 강의실 분위기만 싸늘하게 만든 남학생은 고개를 푹 숙인 채 시몬에게 사과하고 오는 수밖에 없었다. 에슈와 토토가 화난 눈으로 그를 노려보았지만, 시몬은 오히려 신경 쓰지 말라며 친절히 대해주었다.
"그릇의 차이가 다르네."
"눈치 없으면 빨랑 꺼져야지."
시몬은 적극적으로 자신의 편을 들어주는 동기들을 보며 다소 어리둥절한 반응이었다.
잠시 뒤, 로레인이 들어오고 세르네까지 들어왔다.
에슈가 열분을 토하며 일러바치듯 로레인에게 아까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로레인의 조용한 분노가 그에게 향하자, 그 남학생은 필사적으로 시선을 피했다.
뒷자리에 앉은 세르네가 시몬의 귓가에 대고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화나죠? 환멸 나죠? 키젠 본부 사람들이요. 그렇게 열심히 학교를 위해 노력했는데 결과가 이 모양이라니."
"......."
그 말을 들은 로레인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그녀도 세르네의 말에 반박하지 못했다.
"난 괜찮다니까."
시몬이 웃었다.
"도전자가 된 이 상황이 더 마음 편해. 동기 부여도 되고."
"가끔은 화를 내주면 좋을 텐데요."
세르네가 상앗빛 머리카락을 흔들며 가볍게 윙크했다.
이내 강당 앞으로 조교들이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냈다.
"교수님께서 들어오십니다."
흩어져 있던 학생들이 우르르 몰려가 강의실에 자리에 앉았다. 이내 슬리퍼를 질질 끄는 발소리와 함께, 부스스한 더벅머리의 아론이 등장했다.
여전히 세상 편해 보이는 반팔 반바지 차림에, 면도한 지 꽤 되어 보이는 까끌거리는 수염이 보인다.
척.
교탁에 멈춰서 주위를 한번 쭉 훑어본 그가 입을 열었다.
"다들 방학 잘 보냈나?"
네에-!
활기찬 대답이 들려왔다. 아론은 수석조교로부터 서류를 받아 입을 열었다.
"2학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중요한 공지사항 몇 가지를 발표하겠다. 학과에 관련된 공지사항도 있고, 교내에 관련된 공지사항도 있다."
주위가 쥐죽은 듯한 침묵으로 뒤덮였다.
첫 수업에 의욕이 넘치는 학생들은 수첩을 꺼내고 메모할 준비를 마쳤다.
"우선 가장 중요한 학과 공지사항부터 발표하겠다. 소환학 전공수업에 관한 내용인데."
그가 분필을 들고 칠판에 써내려갔다.
"이번 학기, 우리 2학년 소환학과의 목적은 이 녀석이다."
따닥.
딱.
따닥.
녹색 칠판 위로, 흰 분필이 춤을 추며 글자를 한 자 한 자 써내려갔다.
한 글자에서 차분하던 학생들의 눈이, 두 글자가 됐을 때부터 부릅떠졌다.
세 글자가 됐을 때는 벌떡벌떡 자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했고, 네 글자가 됐을 때는 탄성이 흘러나왔으며.
마지막 다섯 글자에서는 거의 모두가 자리에 일어나 있었다.
타악-
"해낼 수 있겠나?"
칠판에 쓰인 건 다름 아닌, 모두가 꿈에 그리던 소환수였다.
<데스나이트(Death Knigh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