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781화
와아아아아아아아-!
칠판에 쓰인 그 단어 하나에, 강의실은 열광의 도가니로 변했다. 자리에서 일어난 학생들이 팔을 번쩍 들고 함성을 지르며 휘파람을 불었다.
시몬도 흥분한 건 마찬가지였다.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아 잠시 창밖으로 시선을 던졌다가, 다시 칠판에 쓰인 글자를 확인했다.
<데스나이트>
정말이었다.
드디어 이번 학기에 데스나이트를 배운다.
"와우우! 드디어 꿈이 이루어졌네? 데스나이트 소년!"
에슈가 토토의 등을 세차게 두들기며 깔깔거렸다. 주위 다른 학생들의 시선도 자연히 토토에게로 향하자, 그가 벌게진 얼굴로 외쳤다.
"어, 언제까지 학기 초 일로 놀릴 거야? 에슈!"
"못 잊지. 그게 네 첫인상인데."
에슈가 손바닥을 입에 붙이고 중얼거렸다.
"교수님! 다음에는 그걸 만들 수 있는 건가요? 모든 소환술사의 꿈! 데스나이트를!"
하하하하!
주위 학생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로레인마저도 참지 못하고 입가를 가린 채 고개를 돌리는 모습이다.
어쨌거나 광란의 도가니였고, 조교들은 돌아다니며 학생들을 진정시키려 진땀을 빼야 했다.
"주목해라."
터엉!
아론이 칠판을 손바닥으로 내리쳤다. 그제야 학생들도 입을 다물고 칠판을 보았다.
"설명을 계속하겠다. 대륙에서 흔히 말하는 '3대 고위 소환수'가 있다."
그의 목소리가 느릿하게 울려 퍼졌다.
"리치, 데스나이트, 본 드래곤."
그 단어의 나열만으로, 소환학과 학생들은 소름이 돋고 몸에 전류가 흐르는 것 같았다.
소환술사의 로망 그 자체다.
"그중에서 이번 학기에는 데스나이트 제작과 운용을 목표로 한다."
첫날부터 학생들의 사기를 폭발시키려는 게 목적이었다면, 아무래도 대성공인 듯했다. 모두가 눈을 빛내고 귀를 쫑긋하며 아론의 한 마디 한 마디 놓치지 않으려는 듯 집중하고 있었다.
그런데 학생들 사이에서 누군가의 손이 올라갔다.
"질문 있나. 아세라즈 미켈."
전체 5위, 아세라즈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세라즈 미켈입니다. 데스나이트 제작은 3학년 2학기 핵심과제에나 등장할 만큼 제작과 운용이 까다롭고 난해한 고위 언데드입니다. 저희는 이제 막 2학년 2학기에 들어왔을 뿐인데, 정말로 제작이 가능한 건가요?"
곳곳에서 퉁명스러운 시선이 모였다. 분위기 좋은데 괜히 초 치고 있다며 속닥거렸다.
반면에 아세라즈의 의견에 동조하며 고개를 끄덕거리는 학생들도 있었다. 가장 중요한 2학년 2학기에, 완성하지도 못할 언데드 때문에 시간을 버리게 되면 그 또한 문제였으니까.
아론이 손에 쥔 칠판을 늘어뜨렸다.
"가능하냐고 묻는다면 가능은 하다."
타닥. 탁.
분필을 쥔 그의 손이 움직였다. 데스나이트라고 적은 글자 아래에 조금 더 작은 글자로 '듀라한'이라고 써넣었다.
"너희들 모두 저번 2학년 중간고사 전까지 듀라한을 완성했다."
타악-
마지막 글자를 써넣은 아론이 분필을 쭉 내리그었다.
"듀라한을 완성한 뒤, 이후의 수업에서는 특정 목적이 있는 게 아닌 최대한 다양한 종류의 소환수와 룬어를 다루게 했다. 사실 이 모든 게 데스나이트의 제작에 필요한 요소들이었다."
그가 칠판에 나열한 소환수의 이름과 룬어에 동그라미를 치고 데스나이트에 연결시켰다.
"너희들은 이미 기본 조건은 갖추었다. 이제 한 단계 어려운 수준의 소환수와 수식들을 익힌 뒤, 데스나이트에 뛰어들 일만 남았다."
곳곳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다만."
그가 분필을 쥔 손을 내렸다.
"기본 조건을 갖추었을 뿐이지, 모두가 데스나이트를 손에 넣을 수 있는 건 아니다."
학생들은 침묵을 지켰지만 동의했다.
그야 이곳의 모두가 만들 수 있을 정도로 데스나이트 제작이 쉽다면, 애초에 3대 고위 언데드라고도 불리지 않았을 것이다.
"모든 재료와 기술, 제반 지식이 갖춰진다면 나는 너희들 전원에게 데스나이트 제작을 시도할 권리를 부여할 것이다. 여기서는 노력은 물론, 재능과 운의 영역도 어느 정도 들어간다."
아론은 칠판지우개를 들고, '데스나이트'라고 적힌 부분과, 아래의 소환수와 룬어들을 이어주는 선을 중간에 지운 다음, 네모를 큼지막하게 하나 그렸다.
그리고 네모의 안으로 물음표를 크게 그려 넣었다.
"이 영역을 통과한다면, 너희들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쉽게 데스나이트를 가질 수 있다. 아마도 통과하는 학생은 이 강의실에서 4~5명에 불과하겠지."
잠시 주위 학생들의 시선이 몇몇에게 모였다.
시몬 폴렌티아.
헥토르 무어.
아세라즈 미켈.
소환학과에서 가장 성적이 뛰어난 대표적인 세 사람이었다.
"실패하더라도 기죽을 필요 없다. 너희들이 데스나이트에 도전할 만큼 충실히 진도를 따라왔다면, 이미 그것만으로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소환학적 역량이 올랐을 거다."
아론이 옆으로 몇 가지 소환수의 이름을 써넣었다.
-데몬나이트.
-스컬커맨더.
-하이카펠.
"그 역량으로 데스나이트를 대체할 수 있는 기사급 소환수들을 만들게 도와주겠다. 이 녀석들만으로 결투평가와 임무평가, 그 외에 각종 실전에서 다른 학과생들에게 뒤처지지는 않겠지. 이후에는 3학년 과정에서, 운과 재능의 영역을 통과하지 않고도 학술적으로 안정된 수단으로 데스나이트를 만들게끔 도와주마."
아론만의 방법이 아닌, 정규 과정을 밟게 해서 데스나이트 제작까지 책임지겠다는 소리였다.
아론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물론, 너희들은 키젠이다. 키젠이라면 전원 2학년 데스나이트 완성을 위해 정진하도록. 이상이다."
오오오-!
학생들이 파이팅을 다지며 손뼉을 쳤다. 에슈가 제 손을 시몬 쪽으로 내밀며 말했다.
"역시 아론 교수님! 데스나이트 나올 때 팔에 닭살 돋은 거 봐!"
"하하. 나도 그래."
시몬이 그렇게 대답하며 땀이 흥건한 손바닥을 교복 바지에 문질렀다.
옆자리의 로레인도 미소 지었다.
"온 힘을 다해 따라갈 가치가 있을 것 같네. 나도 늘 데스나이트를 가지고 싶었거든."
"나, 나도!"
토토가 목소리를 높였다.
"내 꿈이 바로 앞에 있어! 반드시 데스나이트 서머너가 될 거야!"
모두가 웃음 지으며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는 가운데, 시몬은 조금 생각이 복잡했다.
'데스나이트와 본 드래곤, 두 가지 모두를 성공시킬 수 있을까?'
시몬은 이미 1학년 때 리치를 만들어냈다. 아마도 다시는 만들 수 없을 헤르세바라는 역작이 존재한다.
거기에 이번 학기의 과제로 데스나이트 제작, 마지막으로 네프티스와 약속했던 본 드래곤까지.
만약 모두 성공한다면 시몬은 2학년 안에 아론이 말한 '3대 고위 언데드'를 모두를 손에 넣는 것이다. 이는 한 사람의 네크로맨서가 평생을 소환학에 투자해도 얻기 힘든 성과였다.
원래는 이번 2학기는 본 드래곤에 집중할 생각이었지만.
'해내야지.'
학생회장직도 내려놨겠다, 지금은 더 욕심을 부리고 싶었다.
무엇보다 데스나이트를 배우면서 익히게 될 여러 요소들이, 본 드래곤 제작에도 도움이 될 수도 있다고 확신했다. 소환학의 모든 것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으니까.
'해보자.'
* * *
그렇게 데스나이트 제작이라는 대형선언 이후, 아론은 다시 나른한 목소리로 돌아와 몇 가지 학과 공지사항을 알렸다.
첫 번째로는 1학기에 떨어져 나간 학생들 때문에 조 인원의 조율이 진행된다는 이야기였다.
기존의 각 조는 최대한 원형을 유지하되, 머릿수가 부족한 조들끼리 성적에 맞춰 새롭게 통폐합되었다. 물론 시몬의 10조는 전원 살아남았기에 해당사항이 없었다.
그리고 두 번째 공지사항.
"장송학 수업의 린 교수님, 룬 교수님은 피치 못할 사정으로 자리를 비우게 됐다."
장송학을 가르치던 쌍둥이 교수, 린과 룬은 본래 네프티스와 계약한 에이션트 언데드이다. 그러나 현재 몇몇 전선의 상황이 급박해서 그녀들의 특수한 능력이 필요해졌고, 결국 네프티스의 요청으로 잠시 학교를 떠나 전장에 파견되었다.
"따라서 2학기의 장송학 수업은 외부에서 온 초청 교수님이 맡아주실 예정이다. 키젠 본부에서 힘들게 섭외한 분이니 잘 배우도록."
갑자기 초청 교수라고? 학생들이 웅성거렸다.
"너 들은 거 있어?"
"전혀 없는데."
한 학생이 얼른 손을 들었다.
"코이터 피즌입니다! 초청 교수님은 어떤 분인가요?"
"그건 너희들이 수업 때 확인하면 될 일이다."
아론은 그렇게 대꾸하고는 손에 든 서류를 펼쳐 읽었다.
"학과 공지사항은 이걸로 끝이고, 다음으로 교내 공지사항이다. 최근 이런저런 시위들로 학교가 시끄럽다고 하던데."
몇몇 학생들의 시선이 슬그머니 시몬 쪽으로 향했다가 돌아갔다.
아무래도 클라우디아가 주도하는 피켓시위를 말하는 것 같았다. 아론은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서류를 교탁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학생의 본부인 공부에 집중하도록 지도하라는 내용이지만, 내가 왈가왈부할 문제가 아닌 것 같으니 너희들의 판단에 맡기마. 그리고 다음."
음- 하고 침음을 흘린 그가 눈을 게슴츠레 떴다.
"교내 학생 간의 무분별한 비공식 결투가 골칫거리라고 한다. 승부를 가릴 거라면 정식적인 절차를 밟고 교내의 직원이 참관한 앞에서 하라는 내용이다. 발각되면 중징계를 피하기 힘들 테니 주의하도록."
이것 또한 발락의 난입 사태로, 학교와 학부모들이 시끄러워지자 교내에서 내린 공지사항이었다.
아론은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빼곡한 공지들을 쭉 읽어내려갔다.
"그리고 2학기 초에 머지않아, '2학년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큰 시험이 치러질 예정이라고 한다."
단체 시험.
학생들의 눈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한 학년이 통째로 들어가는 이런 대형 시험은, 2학년 이후론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에슈 아르젤입니다! 정확히 어떤 종류의 시험인지 공지된 내용은 없나요?"
"없다."
아론이 짤막하게 답했다.
"경쟁전일지 협력전일지, 어떤 장소에서 어떤 종류의 시험이 진행될지 우리 교수들도 모른다. 키젠 본부에서 극비로 준비하고 있다더군."
아론이 피로에 찌든 눈을 비비적거리며 서류를 들었다.
"대충 1학년 때 했던 섬 생존평가와 비슷한 느낌이라고 생각해라. 2학년 버전이니 그 난이도는 몇 배는 더 벅찰 테지만."
1학년 시절의 악몽 같았던 섬 생존평가를 떠올린 학생들의 표정이 살짝 얼어붙었다.
"이번 학기의 미달자의 수는 생각보다 적었다는 통계다. 시험 때 꽤 강력한 퇴학 옵션이 걸려 있을지도 모르니 유념하도록."
"네!"
"내일부터는 일반과목 수업을 진행한다. 일반과목의 경우, 저번 학기와 같은 방식으로 수강신청이 진행될 테니 준비하도록. 어떤 과목을 들어야 유리할지 잘 생각해 둬라."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키젠의 수강신청은 1학기 때 다들 경험해 봐서 잘 알고 있었다.
"그럼, 오늘은 간단한 1학기 복습을 하고 마치겠다."
* * *
오늘은 첫날이라 그런지 전체적으로 오리엔테이션식으로 진행됐다.
아론의 전공 소환학 수업을 마친 학생들은, 오랜만에 광차를 타고 그레리온의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소환 재료학 교수, 그레리온은 변함없었다. 아니, 전보다 더 벌크업한 모습이다.
전신이 원체 우락부락해서 툭 튀어나온 얼굴이 상대적으로 작아 보였다. 그 위로 선글라스만 낀 모습은, 아무리 봐도 소환학 교수보다는 마투학 쪽 종사자에 가까워 보였다.
"너희들도 들었겠지. 아론 교수는 이번 2학기에 데스나이트 커리큘럼을 밀어붙일 생각이다!"
그레리온이 팔짱을 끼고 두 다리를 벌린 특유의 시그니처 포즈를 취하며 말했다.
"내 개인적으로는 100% 만족하진 않지만, 소환학 담당교수가 그리 결정했으니 따라야겠지! 데스나이트의 재료를 구하는 건 쉽지 않을 테니 각오해라!"
"네!"
"이번 학기에도 재료학은 물론, 키메라까지 확실히 가르칠 테니 잘 따라와라! 공지사항은 이상이다!"
그가 팔을 척 뻗었다.
"오늘은 첫날이니 쉬어가겠다! 적당히 한 시간쯤 때우다가 나가도록! 심심하다면 내 운동기구를 써도 좋다!"
학생들은 동굴 구석에 그레리온이 쓰는 바위가 달린 철봉을 보았다. 다들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그레리온 교수님! 코이터 피즌입니다!"
"오, 뭔가 질문 있나? 질문이 있다면 해라!"
"혹시 새로운 장송학 초청 교수님에 대해 알려주실 수 있는 점 있습니까?"
아까부터 집요하게 묻는 코이터 피즌이었다.
그레리온이 턱을 쓸었다.
"하하하하! 다음 시간에 보게 될 텐데 마음이 급하구나! 누군지는 너희들이 직접 확인해라!"
"남자분인가요?"
"여자분이죠?"
그레리온이 선글라스를 추켜 올리며 입꼬리를 올렸다.
"레이디다."
우와아아아아아아!
남학생들 사이에서 우레와 같은 함성이 터져 나왔다. 그런 그들을 여학생들이 한심하다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또! 또! 알려주실 수 있는 거 없나요?"
"하하하하! 글쎄."
그레리온이 아령을 들며 근육을 움직이다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눠보니 나와 말이 맞는 구석이 많은 것 같더군. 특히 운동에 대해서다!"
"......?"
긴 머리의 우락부락한 근육녀를 떠올린 학생들은 혼란의 도가니에 빠져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