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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787화 (787/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787화

요주의 인물인 3학년 전체 2위는 나중에 레오나드와 함께 만나보기로 했다.

그날 이후로는 정말로 레오나드가 힘을 써주고 있는 건지, 학교의 일상은 별 탈 없이 흘러갔다.

문제의 북부대공 진의 첫 수업도 진행됐다. 학생들은 앞서 지급받았던 군복처럼 생긴 체육복을 입고 야외 훈련장에 집합했다.

선글라스를 쓰고 강연장에 나타난 진이 지휘봉으로 반대쪽 손바닥을 툭툭 때리며 소리쳤다.

"장송기를 배우기 전에 기초부터 다지고 가겠느니라. 이번 첫 수업에는 소환술사로서 그대들의 역량을 측정하겠다!"

학생들은 여러 가지 기술들을 측정했다.

언데드를 한 번에 몇 기나 컨트롤 할 수 있는지.

얼마나 멀리까지 언데드의 사념 접촉을 유지할 수 있는지.

그리고 언데드에게 얼마만큼 정교한 작업을 시킬 수 있는지.

측정이 끝나면 진은 학생들의 수준에 맞춰서 그 능력을 상승시킬 방법을 알려주었다.

'수업은 잘하시는 것 같지만.......'

시몬은 불안한 마음 때문에 진에게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마치 물가에 내놓은 애를 보는 기분이다.

특히 북부에서 자신에게 했던 것처럼, 금방이라도 저 손에 들고 있는 지휘봉으로 학생들의 뒤통수를 후려갈기지 않을까 걱정스러웠다.

저 학생들, 헐렁한 체육복을 입혀놓고 뛰게 시키니까 그냥 그래 보이지만 사실은 고위귀족의 후계자, 내무대신의 딸 같은 어마어마한 거물들이 대부분이다. 때리면 바로 외교적 분쟁이다.

"시, 시몬 학생 신기록입니다!"

조교가 서류판을 든 채 호들갑을 떨었다.

시몬은 시선을 진에게 고정한 채, 대충 손을 휘저어서 본 아머를 고리나 장애물 사이에 통과시키고 있었다. 다른 학생들이 낑낑대며 2단계를 통과하고 있을 때, 시몬은 진작에 반환점을 통과한 상태였다.

같은 출발점에서 측정을 시작한 학생들은 쓰게 웃었다.

'스켈레톤 복원기 최상위권인 건 알겠는데, 앞은 왜 안 보는 거야.'

'재수 없지만 잘하네.'

남이 어떻게 생각하든, 시몬은 그저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진을 지켜보느라 정신없었다. 그녀가 지휘봉으로 한 학생의 목을 툭툭 때리길래 움찔했지만, 다행히 그냥 자세를 교정해 주는 거였다.

이어지는 과정은 사념의 거리를 측정하는 훈련. 스타트라인에 발을 걸치고 서서, 다른 흑마법은 사용하지 않은 채 구울을 최대한 멀리 보내고 그 기록을 측정했다.

다들 트랙의 중간 즈음에서 구울이 나아가지 않으니 낑낑대고 있는데 시몬은 그보다 두 배 이상은 더 먼 거리까지 구울을 보냈다.

넓은 북부에서 훈련한 성과가 나오고 있었다. 그야말로 장족의 발전이었으나.

'안 돼요 대공!'

시몬의 온 신경은 여전히 진에게 쏠려 있었다.

"끝까지 내려가라!"

결국 본색을 숨기지 못한 그녀가 불만족스러운 성과를 보인 학생들에게 얼차려를 주기 시작했다. 학생들이 낑낑대며 얼차려를 받는 와중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빛은 빛나고 있었다.

"교수님이 이런 걸 시키시는 이유가 있겠지?"

"당연하지."

학생들은 얼차려를 다 받고 걸어 나와 다시 거리 측정을 시작했다.

그러곤 놀란 반응을 보였다.

"진짜 기록이 늘었어! 이게 도움이 되나 봐!"

"역시 북부대공! 다 이유가 있다니까!"

그 소문이 학생들 사이에서 퍼져 나가게 되었고, 측정 전에 스스로 팔굽혀펴기하면서 힘을 빼는 게 깜짝 유행이 되었다.

이렇게 얼차려 문제를 해결해 버리니, 시몬은 조금 얼이 빠질 지경이었다.

'......역시 사람은 유명하고 봐야 하는구나.'

북부대공이라는 후광이 어마어마한 탓에, 학생들은 의문을 가졌다가도 알아서 납득해 버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애초에 얼차려를 주는 것만 제외한다면, 수업 자체는 흠잡을 곳 없이 완벽하기도 했고.

당분간은 무사히 넘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떠냐."

학생들을 지도하다가 다가온 진이 시몬의 어깨를 쿡 찌르며 실실 웃었다.

시몬도 웃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역시 대단하시네요."

"이 정도는 기본이니라."

그리고 조금 멀리서.

두 사람이 친하게 농담을 주고받는 모습을 헥토르가 제 목을 매만지며 지켜보고 있었다.

* * *

개학한 지 3주라는 시간이 더 지났다.

언데드 갑옷이란 개념을 익히기 위해 습득한 데드아머에 이어서, 종속 룬어를 공부하기 위한 호수마귀, 마력변질 개념을 익히기 위해 블랙 가고일까지 배웠다.

확실히 1학기에 비해서 수업 난이도가 비약적으로 상승한 게 체감되었다.

예습과 복습은 선택이 아닌 필수. 특히 복습으로 심화 과정까지 마스터해 놓지 않으면 다음 수업을 듣는 데 문제가 생길 정도였다. 다들 기숙사에서 밤을 새우며 공부했다.

그리고 오늘.

"드디어 오늘이다!"

아론은 데스나이트 첫 수업을 예고했다. 학생들은 설렘보다는 비장한 얼굴로 강의실에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으으, 어제 결국 한숨도 못 잤어."

시몬의 옆자리에 자리 잡은 토토가 눈을 비비며 중얼거렸다. 시몬이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내 골렘보드를 타고 올 때는 잘 자더니."

"미, 미안해 시몬! 하필 그때 졸음이 몰려와서......."

반갑게 인사하며 다가온 에슈도 짐을 풀며 말했다.

"복습은 다들 철저히 했지? 이제부터는 한 번이라도 삐끗하면 데스나이트는 바로 물 건너가는 거야!"

에슈가 고개를 휙 돌려 로레인에게 손짓했다.

"로레인 님! 데드아머 수식의 핵심 세 가지!"

로레인이 검은 머리칼을 쓸어넘기며 답했다.

"귀속력, 매개변환, 그리고 부하분산."

"대단해요!"

에슈가 짐짓 감격한 표정으로 눈물을 훔치는 시늉을 했다.

"그렇게 공부를 싫어하시던 로레인 님이 여기까지! 학과 동기로서 감개무량합니다!"

"다들 공부하는데 나만 놀 수는 없잖아."

말은 그렇게 하지만, 확실히 2학기 들어서 로레인은 수업에 임하는 자세가 달라졌다.

1학기만 해도 네프티스에게 이능을 봉인 당해 다소 우울하거나 힘 빠진 모습을 보였는데, 이번 방학 내내 성과를 체감하고는 수업태도가 크게 개선되었다.

루비 같은 빨간 동공이 시몬에게 향했다.

"그리고 시몬에게 계속 뒤처질 수는 없으니까."

시몬이 웃는 얼굴로 뒷머리를 긁적였다.

"네가 뒤처졌다는 표현을 쓸 수 있는 사람이 이 학교에 있을까 싶은데."

"어머, 지금 내 이야기 하는 거예요?"

살랑거리는 목소리가 들린다 싶더니 세르네가 우아하게 손을 흔들며 걸어오고 있었다.

토토는 반사적으로 바짝 긴장했고, 에슈는 반갑게 인사를 건넸지만 눈동자에는 긴장감이 공존하고 있었다.

"......."

로레인은 그저 퉁명스러운 표정이었다. 다만 평소처럼 쏘아붙이지는 않았다.

"후후."

세르네는 자신의 지정석인 것처럼 시몬의 뒷자리에 앉은 뒤 두 손을 꽃받침처럼 제 턱밑에 모았다.

최근 들어 로레인과 세르네의 구도는, 시몬이 학생회장직에서 물러난 뒤 로레인은 자중하고 있고, 세르네 쪽이 조금 더 약 올리며 우위를 점하는 구도였다.

다만 할 말은 해야겠다는 듯, 로레인이 그녀를 보았다.

"너 어제도 장송학 수업 안 나왔지?"

"아팠어요. 찬 바람을 쐐서 그런지 열이 펄펄 났거든요."

세르네가 이마에 손을 올리며 병약한 시늉을 했다. 그녀는 툭 하면 머리가 아프니 현기증이니 하면서 병동에서 쉬거나 수업에서 빠지기 일쑤였다.

무늬만 학생일 뿐이지, 사실상 현직 상아탑주나 다름없는 그녀가 아프다는 데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거기에 세르네는 성적이나 석차 욕심도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이 문제로 한 이틀 전인가, 진 교수님에게 인사드리러 갔거든요."

세르네가 새근새근 웃었다.

"북부와 마탑의 교류와 인적공유 같은 이야기도 나눴어요. 북신의 영향력에서 벗어난 칼로스 북부는 잠재력이 무한한 땅이니까요."

"......학교에서 외교이야기 하지 마."

"이러려고 키젠에 남아 있는 건데요? 그쪽이야말로 교내 외교에 더 신경 쓰는 게 어때요? 시몬의 학생회장 사태처럼 바보 같은 일이 또 일어나지 않으려면."

"너......!"

두 소녀의 눈빛이 살벌하게 맞부딪혔다.

늘 중간에 낀 시몬만 눈치를 보느라 죽어나는 중이었고, 에슈와 토토는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 이야기를 듣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교수님께서 입장하십니다."

강의실에 들어온 조교의 말에, 흩어져서 웅성거리며 떠들던 학생들이 우르르 제자리로 돌아갔다.

시몬도 머릿속에 골치 아픈 외교분쟁이 말끔하게 날아가는 것을 느끼며 집중력을 되찾았다.

그래.

오늘부터 데스나이트 수업이 시작된다.

"기대 많이 되나 보네요? 시몬."

세르네가 살랑거리는 목소리를 흘리며 시몬의 어깨를 짚었다. 이내 스르륵 손을 쓸어넘기듯 움직여 그의 목을 만지작거렸다.

시몬이 눈동자를 굴려 그녀를 노려보았다.

"세르네."

"나는 조금 걱정이거든요. 이번 데스나이트 수업."

"...무슨 소리야?"

"아무리 아론 교수님이 뛰어나다고 해도, 지금까지 나간 진도만으로 학생들에게 데스나이트 제작을 지도하는 건 현실적으로 힘들어요."

시몬의 목에서 손을 뗀 그녀가 턱을 괴며 웃었다.

"대체 어떻게 우리에게 데스나이트를 가르쳐 주겠다는 걸까. 지켜보는 재미가 있겠네요."

이 의견은 비단 세르네만의 의견이 아니었다.

소환학과 2학년이 데스나이트를 준비한다는 소문은 전교에 퍼져 나가 있었다. 다른 학과 학생들은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라며 코웃음 쳤다.

심지어 같은 기숙사를 쓰는 소환학과 3학년들도 어렵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추측했다.

-우리도 이제 막 데스나이트 제작에 들어간 애들도 있는데, 2학년들이?

-2학년이면 최고위 공식도 안 배웠을 테고, 루트 따는 것도 힘들 텐데.

워낙 우려의 말들이 많으니, 이제는 동기들 사이에서도 불안한 분위기가 조성됐다.

아론이 2학기 첫날 수업에 데스나이트라는 파격적인 발언으로 강의실을 뒤집어놓고, 학생들의 사기와 의지를 끌어올린 건 좋지만 뱉은 말에 대해 책임지지 못한다면 역효과만 날 수 있었다.

'그래도.'

시몬은 아론을 믿었다. 이제 마침 조교들과 함께 아론이 강의실로 들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원래부터 말끔한 인상은 아니었지만, 어쩐지 2학기 첫날보다 더 퀭한 얼굴이었다. 다크서클도 짙고 몸도 더 말랐다. 철야를 한 달 넘게 한 사람처럼 상당히 고생한 모습이다.

"출석은 생략하도록 하겠다."

아론이 수석조교가 건넨 출석부를 내려놓고는 분필을 쥐고 칠판으로 향했다.

타닥-

탁-

쥐 죽은 듯한 정적이 휩싸인 강의실 안에서, 아론은 분필 끝에 힘을 주어 천천히 글자를 써내려갔다. 첫 수업 때 했던 데스나이트 선언과 같은 모습이라 시몬은 심장이 뛰는 것을 느꼈다.

척!

<데스나이트 개론>

아론이 분필 쥔 손을 늘어뜨리며 학생들을 돌아보았다.

"교내의 불안 여론에 대해서는 알고 있다. 그저 입으로만 나불댈 말이라면 내뱉지도 않았다."

한쪽 눈을 가린 더벅머리를 쓸어서 이마를 드러낸 그가 말을 이었다.

"나는 이번 수업에 내 모든 커리어를 걸 생각이다. 너희들도 그만한 각오가 있어야 할 거다. 따라오겠나?"

네!!

학생들이 일제히 대답했다. 아론은 고개를 끄덕이며 분필을 움직였다.

"소환술사의 꽃. 아니, 네크로맨서의 꽃이라고 불리는 데스나이트다. 늘 그래 왔듯, 우선은 데스나이트의 근원부터 짚고 넘어가겠다."

그가 데스나이트에 둥글게 동그라미를 치고는 두 개의 선을 그었다.

"그 근원을 알고 싶다면 '기사와 마법사의 시대'로 거슬러가야 한다. 당시 음지에 숨어들어 금지된 연구를 하던 네크로맨서들을 체계적으로 양성하고 지원한 건, 아이러니하게도 '제국'이었다. 그들이 네크로맨서에게 무엇을 원했는지 알겠나?"

거의 모든 학생이 손을 들어 올렸다.

다들 데스나이트에 대한 예습을 해온 모습이다. 아론은 주위를 쭉 훑어보다가, 다소 의외라는 듯 웃음을 지으며 한 여학생을 지목했다.

"로레인 아크볼드입니다."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죽은 기사의 부활. <데스나이트 프로젝트>입니다."

"정답이다. 앉아라."

곳곳에서 크고 작은 박수소리가 울려 퍼졌다. 시몬은 그중에서도 가장 열심히 박수를 쳤다.

"그 시대에 기사는 '모든 것'이었다. 국력은 기사의 질과 수에 비롯했으며, 기사를 얼마나 데리고 있느냐가 권력의 척도였다. 물론 전력으로 치면 마법사들도 존재했지만, 기사에게는 더 강한 상징성이 있었지."

아론은 칠판 위 데스나이트에 연결된 선 하나를 붙잡고 아래로 쭉 끌어내린 다음, '기사'라고 썼다.

"당시 기사 하나를 양성하는 데 어마어마한 비용과 시간이 소요됐다. 지원을 아끼지 않고 견습시절부터 10년 넘게 육성한 기사들이 전쟁마다 픽픽 죽어 나가는 모습을 보며 귀족들과 부자들은 침음을 삼켰지. 그러다 네크로맨서들이 좀비나 해골병사를 만드는 모습을 보고는, 기사도 부활시킬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 거다."

학생들이 일제히 고개를 끄덕이며 필기를 시작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이야기한 건 사실상 '듀라한'의 유래와 흡사한 내용이다. 앞서 로레인이 말한 데스나이트 프로젝트는 그 궤가 조금 다르다."

그가 칠판에 '데스나이트 프로젝트'라고 썼다.

"이 프로젝트는 '제국의 황제'가 직접 후원한 비밀 황실 프로젝트다. 그리고 언데드로 기사를 부활시키는 게 아닌-"

그가 학생들을 돌아보며 진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황제가 사랑했던 죽은 소드마스터를 부활시키려는 금기의 시도. 그게 데스나이트 프로젝트의 본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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