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788화
시몬은 놀라움에 머리를 쓸었다.
과거 제국이 죽은 '소드마스터'를 부활시키려 했던 게 데스나이트 프로젝트라니.
이 프로젝트는 당시 음지에 있던 네크로맨서들을 양지로 끌어내는 데 한몫했을 것이다. 아낌없는 지원으로 연구와 자본이 쌓여가던 네크로맨서들은 결국 너무 커져 버렸고, 제국을 멸망시켰으리라.
하지만 시몬이 놀라움을 느낀 건 다른 부분이었다.
'그럼 내가 가진 마누스도 데스나이트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데스나이트가 본래 소드마스터를 부활시키는 흑마법이라고 한다면, 공교롭게도 시몬은 소드마스터였던 '마누스'의 두개골을 보유하고 있다.
마누스를 부활시킬 수 있지 않을까.
단순한 스켈레톤이나 듀라한을 뛰어넘어, 진정한 소드마스터의 힘을 끌어낼 수 있는 데스나이트의 육체로 말이다.
"지금까지 설명한 것들이 바로 너희들이 흔히 알고 있고, 3학년 정규 과정에 등장하는 데스나이트의 기본이다."
텅!
하지만.
하고 운을 떼며 아론이 칠판을 내리쳤다.
"소드마스터의 시체가 온전히 존재할 때나 데스나이트를 만들 수 있다. 기사의 시대에서 한참이 지난 지금, 소드마스터의 온전한 시체를 손에 넣을 방법은 요원하지."
학생들이 아쉬운 탄성을 흘렸다.
시몬도 마찬가지였다. 아론은 '온전한 시체'라고 했다. 이성을 잃어 폭주하는 두개골만으로는 아무래도 힘들어 보였다.
"맷 코머입니다!"
아론이 지목하기도 전에, 성질 급한 맷 코머가 팔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지금 네크로맨서들이 다루는 데스나이트들은요?"
"소드마스터의 시체로 만든 게 아니다. 최상위 몬스터나, 어느 정도 이름을 날린 기사의 시체를 소환마법으로 일으켜 세운 거지."
아론이 팔짱을 꼈다.
"현대의 소환학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발전했다. 전생에 이름을 떨치지 못한 무명 기사의 시체도, 데스나이트로 부활시키면 강력하게 만들 수 있다. 하지만 그건 결국 진정한 데스나이트가 아니고, 흉내에 그치는 정도다."
"......."
옆자리에서 수업을 듣던 로레인이 중얼거렸다.
"현대의 기술은 발전했지만, 정작 자격에 걸맞은 시체가 없는 셈이네."
에슈가 바로 맞장구쳤다.
"시대가 달라졌으니 어쩔 수 없죠. 데스나이트도 결국 과거의 유물이니까요!"
잠깐 아론의 목소리가 비는 사이, 학생들끼리 웅성거리는 소리가 커졌다.
아론이 다시 학생들을 주목시켰다.
"지금 나오는 기사형 데스나이트들은 모두 근본과는 거리가 멀다. 아무리 네크로맨서들이 강력한 수식과 재료를 때려 박아도 성능의 한계가 명확하지. 하지만, 꼭 그렇게만 데스나이트를 만들 수 있는 건 아니다."
아론이 분필을 쥐었다.
수업 시작하면서 칠판에 써넣었던 <데스나이트 개론>.
그는 여기에 동그라미를 치고 두 개의 선을 그었었다. 이번엔 오른쪽의 선에 분필을 댄 다음, 흰 선을 옆으로 쭉 그으며 칠판의 넉넉히 빈 공간으로 이동했다.
학생들의 시선도 덩달아 그 쪽으로 이동한다.
'지금부터가 본론이구나.'
시몬도 집중력을 끌어올렸다.
이내 아론이 텅 빈 공간에 글자를 썼다.
<타락형 데스나이트>
"따라서 내가 준비한 프로젝트는 이쪽이다."
학생들이 웅성거렸다.
"타락형 데스나이트는 뭐야?"
"처음 들어보는데."
수업에 잔뜩 몰입한 토토가 표정을 굳히며 중얼거렸다.
"기사형은 아니니까, 소드마스터나 기사가 재료는 아닐 것 같아."
"정답이다, 토토 아모리."
아론이 토토 쪽으로 손짓했다.
오- 하는 학생들의 감탄 반, 놀림 반의 음성이 들리자, 토토의 얼굴이 벌게졌다.
에슈가 '역시 데스나이트 소년!'이라며 그의 어깨를 팡팡 때리며 기뻐했다.
"지금부터 설명하마. 타락형 데스나이트의 재료는-"
아론이 눈을 감고 덧붙였다.
"팔라딘이다."
!!!
웅성거리는 소리가 폭발하며 강의실이 순식간에 혼란의 구덩이 속으로 빠졌다.
시몬도 놀란 표정으로 입을 벌렸다.
'말도 안 돼.'
학생들이 패닉에 빠진 얼굴로 말을 주고받았다.
"내, 내가 지금 잘못 들었나?"
"팔라딘이 내가 아는 그 팔라딘 맞지? 신성연방의......!"
"조용."
아론이 한 마디로 주위를 조용히 시킨 뒤 다시 분필을 들었다.
"그부분의 설명을 위해 '에이션트 언데드'이야기를 잠시 하겠다. 그 당시에는 타락의 언데드, '벨제불'이라는 존재가 있었다."
기사와 마법사의 시대의 후반부. 신세력인 네크로맨서와 프리스트들이 세력을 키우고 있을 시기의 이야기였다.
당시는 수많은 전쟁으로 언데드들이 불어나 판을 치던 시대였고, 벨제불은 그중에서도 서부지대 폐허에 자리 잡은 강성한 에이션트 언데드였다.
'마왕'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리기도 한 벨제불은 강력한 언데드 군대를 부리며 인간의 영지를 침공하고, 영주들에게 조공이라는 명목으로 매달 사람을 제물로 바치게 하는 등 악명이 높았다.
벨제불의 영토와 국경을 맞댄 왕국들은 처음엔 벨제불의 힘이 두려워 외면하려 했지만, 벨제불이 일국의 왕자를 꾀어내어 타락시키려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 더는 손 놓고 있을 수 없게 되었다.
왕국들은 앞다투어 언데드를 배격하는 '데바교'를 국교로 삼는 강수를 두었고, 벨제불의 목에 막대한 금화를 걸었다. 이에 언데드 사냥에 가장 뛰어나다는 팔라딘들이 벨제불의 영토로 들어갔다.
"흔히 대륙의 동화책에 자주 나오는 용사와 마왕의 이야기. 이는 모두 벨제불 일화가 모티브가 된 경우가 많다."
아론이 뒷짐을 진 채 강단 위를 돌아다니며 말했다.
"이다음은 어떻게 됐는지 알고 있나?"
한 남학생이 손을 들어 올렸다.
"첸드라 글리비체입니다. 끝내는 벨제불이 토벌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벨제불을 토벌한 자가, 장차 에프넬을 세우게 되는 유스티아노 1세겠죠. 유명한 일화입니다."
"그렇다. 하지만 나는 그전의 과정을 이야기하고 싶군."
유스티아노가 오기 전, 숱한 팔라딘들이 벨제불의 영역에 들어갔다. 벨제불은 인간이 타락할 때 쾌락을 느끼는 존재였고, 신앙으로 무장한 팔라딘의 정신을 흩뜨리고 달콤한 거짓과 기만을 속삭였다.
이 시련을 끝까지 이겨내고 벨제불에게 도달하는 자들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대부분은 정신이 피폐해지며 벨제불에게 굴복했다.
이들은 벨제불에게 불멸의 육체와 힘을 약속받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내 언데드가 되어 되살아났고, 더 이상 신이 아닌 벨제불의 명령에 움직였다.
그들은 모두-
"칠흑을 사용하는 '언데드 팔라딘'이 되어 있었지. 이게 바로 타락형 데스나이트의 기본이다."
강의실에서 학생들의 탄성이 터져나왔다. 아론이 다시 분필을 쥐고 빠르게 글씨를 써내려갔다.
"현대의 네크로맨서들은 벨제불의 타락마법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고, 이는 바로 최근에 성과를 드러냈다. 이제 룬어와 수식만으로 과거 벨제불의 기술을 부분적으로 재현할 수 있을 정도까지 이르렀다. 재료로 필요한 건 100년이 지난 팔라딘의 유골이다."
그가 뒤를 돌아보았다.
"남아 있을지도 모르는 소드마스터의 시체를 찾는 것보다, 팔라딘의 해골을 구하는 편이 더 가능성 있다."
"아세라즈 미켈입니다!"
아론이 지목하기도 전에, 아세라즈가 손을 들며 벌떡 일으켰다.
"신성 사용자의 시체를 언데드로 바꾸는 건 불가능하지 않나요?"
"가능하다. 그래서 100년이 지난 팔라딘의 시체가 필요하다고 말하지 않았나."
아론이 분필을 들어 올렸다.
"최신 이론이니 너희들이 혼란에 빠지는 것도 당연하지. 시간이 없으니 간단히 설명하자면-"
신성 사용자의 시체의 경우, 신성이 뼈와 살에 오랫동안 깃들어 있어서 언데드가 될 수 없다. 그게 상식이다. 유골도 쉽게 썩지 않고 무척이나 오랜기간 보존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시간이 어느정도 지난 시체는 신성이 완전히 육체에서 빠져나가게 되고, 보통의 시체처럼 '언데드화'가 진행될 가능성이 생긴다.
"이런 시체에 흑마법으로 특수 처리를 하면, 신성사용자도 언데드로 일으킬 수 있다. 이후, 생전에 남아 있는 육체의 기억으로 생전의 기술을 사용하게 하면 어떤 현상이 나타나겠나?"
학생들이 조용해지자, 아론이 답했다.
"생전에 남아 있는 신성마법이, 흑마법의 형태로 나타난다."
"......!"
"단지 신성에서 칠흑으로 소모되는 에너지가 바뀌었을 뿐, 어느 정도 호환이 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더 놀라운 건, 이 이 팔라딘으로 타락형 데스나이트를 만들 경우."
아론이 손바닥에서 칠흑을 일으켰다.
"그 육체는 언데드임에도 불구하고 신성에 상당한 저항력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학생들이 큰 소리로 웅성거렸다.
신성에 저항할 수 있는 데스나이트라니!
"이는 실재하는 이론이며 판테모니엄의 확증과 수많은 학자들의 교차 검증까지 받았다. 나는 교수로서 이 이론의 저작권을 정식으로 구매했고, 너희들에게 가르치려 한다."
아론이 학생들을 한 차례 둘러보았다.
"이 시대에, 신성에 저항할 수 있는 소환수를 보유하는 건 아주 중요한 일이다. 만약 완성만 한다면, 앞으로 너희들이 평생 쓸 수 있는 강력한 자산이 될 것을 확신한다."
학생들이 마른침을 삼켰다.
어마어마한 긴장의 소용돌이가 강의실에 몰아치고 있었다.
'......아론 교수님.'
시몬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정말 괜찮은 것 맞나?
아론은 검증된 교과서나 교육과정은 잠시 옆으로 치워두고, 완전히 새로운 이론을 수업에 적용시키고 학생들에게 가르치려 하고 있다.
이는 아론에게 상당한 리스크일 것이다. 이 교육이 실패하면 교내 반발이 더해질 테고, 아론은 2학기도 다 채우지 못하고 쫓겨나야 할지도 모른다.
'물론 교수님의 심정은 이해가 돼.'
그간 네크로맨서의 뼈대가 된 '소환학'이 시대에 뒤처졌다는 인식은, 대 프리스트전에 유용하지 않기 때문.
아론은 늘 신성연방과 프리스트에 대응할 수 있는 소환수를 연구해왔다.
"헥토르 무어입니다."
이번에는 헥토르가 손을 들었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난 것만으로도, 커다란 언덕이 융기하는 것 같았다.
"흥미롭습니다만, 가장 중요한 팔라딘의 시체는 어디서 구합니까. 심지어 100여 년이 지난 팔라딘의 시체를 손에 넣는 건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 또한 문제없다."
아론이 태연히 답했다.
"신성연방의 심기를 최대한 건드리지 않으면서, 위험도도 적은 수단이 있다. 재료의 출처 또한 사람들을 무참히 학살하여 연방 측에도 외면받은 전쟁 범죄자들의 시체이니 너희들이 느낄 자책감도 덜 수 있겠지."
"너무 좋은 이야기들뿐인데, 현실성은 있는 겁니까."
"그렇다."
아론이 나른한 목소리로 답하며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앞으로 1주 후, 우리 소환학과는 데스나이트를 만들기 위해 신성연방으로 넘어간다."
간단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아론은 지금 자신의 교수 커리어를 걸고, 승부를 내려 하고 있었다.
웅성 웅성 웅성 웅성!
아론의 이야기에 강의실은 발칵 뒤집혔다.
지금까지 소환수 재료를 손에 넣기 위해 암흑연합 이곳저곳을 돌아다녀 봤지만, 국경을 넘어 신성연방까지 가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학생들이 앞다투어 손을 들고 질문을 퍼붓기 시작했다.
"기네비어 벤너스입니다! 국경을 넘는 건 보통 일이 아닐 텐데, 혹시 본부의 허가는 떨어진 건지 궁금합니다!"
칠판에 등을 기댄 아론이 태연하게 대꾸했다.
"심사는 아직 진행 중이다."
'아, 아직?'
학생들의 얼굴에 당혹감이 서렸다. 조교들도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아론을 보고 있었다.
정작 일을 벌인 당사자이자, 제일 큰 책임을 져야할 아론이 이 자리의 누구보다 태연했다.
"너희들이 신경 쓸 부분은 아닌 것 같군. 허가는 나올 테니 걱정하지 마라."
그렇게 말하는 아론은 어딘가 믿는 구석이 있어 보였다.
"피에르 버클러입니다."
또 한 명의 손이 올라갔다. 헥토르 옆자리의 남학생이 몸을 일으켰다.
"목숨 걸고 팔라딘의 시체를 가져오는 건 둘째 쳐도, 그 타락형 데스나이트 이론은 확실한 건가요?"
"확실하다."
다른 질문에는 나른한 목소리로 대꾸한 아론이, 조금은 진지해진 얼굴로 말했다.
"모든 과정을 세밀하게 검증했고, 그 결과물도 몇 구나 펜타모니엄에 존재한다. 유일한 우려는 최신이론이라는 점뿐이겠지."
최신이론이라면 결국 검증이 많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재료를 얻으러 국경을 넘는 건 물론, 데스나이트 제작 과정 마저도 도박이다.
물론 아론도 그 점을 알고 있었다.
"리스크가 없다고는 말하지 않겠다. 하지만 어느 정도의 리스크를 감내할 수만 있다면, 너희들이 가져갈 수 있는 최선의 결과물은 '신성에 저항력을 가진 데스나이트'다. 정 무모하다고 생각된다면 얼마든지 조교에게 말하도록. 따로 정규수업을 준비하겠다."
주위가 조용해졌다.
아무리 그래도 데스나이트가 눈앞에 있는데, 리스크 때문에 물러설 키젠 학생은 이제 이 자리에 없었다.
학생들의 분위기를 읽은 아론이 고개를 까닥이며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지났군. 데스나이트 이론은 내일 진행하도록 하고, 필수 훈련으로 넘어가겠다."
"후, 훈련이요?"
"그렇다."
아론이 강의실 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나와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