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790화
시몬이 스타트라인에 섰다.
연달아 학생 두 명을 상대한 조교가 피곤한 눈으로 앞으로 나왔다.
"그럼......."
"내가 나갈게."
검은 머리의 조교가 그의 어깨를 짚었다.
"선배?"
"피곤해 보이는데 좀 쉬어. 이 시험부터는 내가 담당할테니."
"저야 감사하긴 한데, 괜찮으시겠어요?"
"너 지금 손끝 떨리는 거 봐. 그거 신성 부족 증상이다."
후배 조교의 어깨를 두들겨 준 그가 앞으로 나왔다. 수석조교를 보며 '괜찮죠?' 하고 묻자, 수석조교도 '상관없지' 하면서 고개를 까닥했다.
수석조교가 시몬을 보며 말했다.
"그럼 시몬 폴렌티아 학생, 소환수를 꺼내주십시오."
고개를 끄덕인 시몬이 두 손을 앞으로 세우고 미리 준비해 둔 흑마법을 펼쳤다.
기왕 하는 거, 제대로 해보기로 했다.
"용의 마법."
우우우우우웅!
일반적인 룬어가 아닌,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글자들이 박힌 마법진이 모습을 드러냈다.
저건 무슨 마법이냐며 학생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시몬이 빙긋 웃으며 아공간을 열었다.
아공간에서 빠져나온 각종 뼈들이 마치 자석처럼 마법진의 곳곳에 질서정연하게 들러붙었다. 이내 시몬이 왼손에 준비한 마법진을 마법진의 중앙에 붙였다.
"혼돈."
파지지지지직!
평범한 칠흑으로 구성된 마법진이 자줏빛으로 변하며 스파크가 튀었다.
<시몬 오리지널 - 드래고니안>
이내 뼈들이 용의 마법을 통과하여 맞춰지더니 갑옷의 형태를 이루었다.
쿠쿵!
착용자 없이 스스로 움직이는 드래고니안 수트가 사뿐한 동작으로 걸어 나왔다.
하지만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니었다. 시몬이 용의 마법의 작동에 새로운 변주를 주었다.
딸칵!
딸칵!
뼈들이 각기 자리를 맞춰 내려와 움직였다. 허리가 구부러지고 팔과 다리의 관절이 변화하며 사족보행에 적합하게 맞추었다.
그것은 네 발로 기어 다니는 공룡의 형태를 이루었다.
갑옷 형상이 아닌, 엄연히 본래의 뼈 형태인 드레이크의 모습.
<드래고니안 연계기 - 드레이크 폼>
오오-!
곳곳에서 흥미로운 눈빛이 쏟아진다. 거기에 시몬은 골렘의 핵을 더해 드레이크 안에 집어넣었다.
"이 두 가지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수석조교가 시몬의 사념을 체크했다.
"드레이크류 스켈레톤 6티어, 골렘 3티어. 합계 9티어 확인했습니다."
그러고는 시몬의 상대를 자처한 조교에게 손짓했다. 조교가 고개를 끄덕이며 걸어 나왔다.
중요시험도 아닌 일반 실전훈련치고는, 어쩐지 조교의 표정이 결연해 보였다.
뜨거운 관중들의 열기 속에서 시몬과 조교가 자세를 낮췄고, 두 사람이 준비된 걸 재차 확인한 수석조교가 팔을 들어 올렸다.
"그럼, 지금부터 시몬 폴렌티아 학생의 실전 훈련을 시작하겠습니다!"
그의 팔이 내려왔다.
"시작!"
시작 신호가 떨어지기 무섭게, 시몬의 명령을 받은 드래고니안이 바닥을 박차며 질주했다.
상대하는 조교는 십자가 목걸이를 들고 성호를 긋더니, 눈을 치켜떴다.
<심볼(Symbol)>
우우우웅!
전면에 성인 남성의 상체만 한 십자가가 생겨났다.
지켜보던 수석조교가 '어?' 하는 표정을 지었다.
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
이내 십자가 안에서 기본 신성마법인 홀리볼트가 기관총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다. 시몬은 식겁하며 흑마법을 발동시켰다.
<드래고니안 - 디펜스 모드>
드래고니안의 전매 특허.
허공에 비늘들이 다닥다닥 붙으며 벌집 모양의 배리어를 형성했다. 그 배리어를 향해 홀리볼트가 쏟아진다.
절반 정도의 홀리볼트는 배리어에 다가가는 도중 형태가 흩어지며 사라졌지만, 나머지 절반은 배리어에 직격했다.
퍼버버버벙!
'이런!'
시몬이 식은땀을 흘렸다.
'설마 파훼법을 알고 있는 건가?'
드래고니안의 배리어가 '안티 메이지'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건, 주변의 마나와 칠흑을 빨아들여 흑마법이나 마법진의 형태를 무너뜨리기 때문이다.
심지어 시몬은 이 드래고니안을 '혼돈'으로 재현하는 데 성공했고, 마나와 칠흑뿐만이 아니라 신성에도 이 효과가 부분적으로 적용된다.
'하지만.'
이 정도 속도와 물량으로 마법을 난사해 버리면, 마법을 채 빨아들이기도 전에 배리어에 타격이 들어간다. 배리어가 부서지는 속도가 더 빠를 것이다.
'집중!'
시몬은 순간적인 재치로 배리어를 해제하고는 드래고니안을 옆으로 달리게 했다.
사족보행이 된 드래고니안이 즉각 옆으로 뛰어서 홀리볼트를 피해냈다. 속도와 점프력이 현저히 높아졌기에 가능한 방법이었다.
두두두두두두!
십자가에서 쏘아지는 홀리볼트가 드래고니안을 따라잡으려 날아들었다.
하지만 달리는 타깃으로는 명중률이 현저히 떨어졌다. 흔히 말하는 '고정화포' 계열 마법의 단점이었다.
시몬이 다시금 기회를 잡았다.
'이대로 공격해!'
옆으로 크게 우회한 드래고니안이 조교 쪽으로 달려가려는 순간.
<엑소시즘>
쿠르르르르르릉!
천벌.
마른하늘에서 순백의 벼락이 떨어졌다. 드래고니안이 급브레이크를 밟으며 뒤로 훌쩍 물러나 피했다.
공격은 피했지만 잠깐 멈춘 대가는 컸다. 순식간에 드래고니안의 주위를 포위하듯 두 개의 십자가가 나타나더니 동시에 홀리볼트를 쏴댔다.
두두두두두두두!
드래고니안은 어쩔 수 없이 다시 배리어를 펼쳐야 했다. 십자가가 좌우에 있으니 배리어도 전면이 아닌, 둥글게 펼치는 형태로 구성해야 했다.
이러면 당연히 방어력과 지속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드래고니안의 방어막이 신성마법에 두들겨 맞으며 벗겨지려 하고 있었다.
와아아아아아!
흥미로운 볼거리에 학생들이 환호했다. 캠퍼스 한복판에 폭발음이 연신 울려 퍼지니, 주위 사람들도 무슨 일인가 싶어서 점점 몰려들었다.
반면 이 시험을 진행하던 파라한의 수석조교는 표정이 점점 창백해지고 있었다. 그가 시몬을 상대하고 있는 후배 조교를 바라보았다.
'이봐, 너무 심한 거 아냐?'
드래고니안 6티어.
골렘 3티어.
즉 조교는 9티어급에 맞는 중급 신성마법으로 시몬을 상대해야 했다.
하지만 저 홀리볼트를 쏟아붓는 고정포대 마법은 조교의 오리지널이고, 방금 사용한 고화력의 엑소시즘은 살상력까지 갖추었다. 한번 맞으면 학생의 소환수가 박살 날지도 몰랐다.
'야! 야!'
수석조교가 두 손으로 X자를 그리거나 마임을 하며 온갖 신호를 보내 보았지만, 조교는 이쪽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무섭도록 진지한 눈으로 시험 치러 온 학생을 몰아붙일 뿐이었다.
뭔가 문제가 생긴 게 틀림없다. 수석조교가 고개를 돌려 파라한 쪽을 바라보았다.
'교수님......!'
당장이라도 시험을 말리고 싶었지만 파라한의 허가가 떨어지지 않는다면 그럴 수 없다. 학생들을 지도하던 파라한은 조금 떨어진 곳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뭐 하는 거야? 바보야!"
한편 관중석에도 지켜보던 메이린도 초조한 얼굴로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그사이 조교의 십자가 포대가 하나 더 추가되어 세 개가 되었고, 시몬의 드래고니안은 몸을 웅크린 채 더더욱 방어에만 집중했다.
뭐라도 행동해서 변수를 만들어내야 했지만 그저 방어 일변도. 이대로는 배리어가 깨지고 말 것이다.
그녀가 벌떡 일어나 목소리를 높였다.
"시몬! 어떻게든...... 어?"
그녀의 목소리가 삑- 하고 커졌다.
시몬의 상태가 이상해 보였다.
한 손은 드래고니안을 향한 채, 다른 한 손은 이마를 짚은 채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가끔 고개를 두어 번 가로젓기도 했다. 집중력이 떨어진 모습이다.
그야 수세에 몰리면 누구나 당황하겠지만, 시몬의 집중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아는 메이린에게는 그의 상태가 평소와는 달라 보였다.
그녀는 즉각 관중석의 위쪽으로 뛰어 올라가며 양 손바닥을 펼쳤다.
<커스 디텍트>
<스페쿨라>
단숨에 두 가지 흑마법을 발동한 그녀가 오른손의 엄지와 검지를 오므려 원을 만든 다음, 눈에 가까이 갖다댔다.
사파이어 같던 그녀의 푸른 눈동자가 회색으로 물들었다.
'저주네. 그것도 상대가 저주에 걸린 줄 모르게끔 하는 상당한 고위급 저주.'
이번엔 그녀가 왼손으로도 원을 만들어 오른손 앞에 두었다.
마치 망원경으로 보는 듯한 모습. 두 손가락 렌즈를 통해 주위를 훑어보던 그녀는 관중석 끝에서 미세한 실금이 일렁이는 걸 보았다.
'역시!'
찾았다.
팔을 내린 그녀가 달리기 시작했다.
"지나갈게!"
그녀가 앉아 있는 학생들을 마구 제치며 뛰었다.
인파가 많았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중간에는 그릇에 부딪혀 음식물이 와르르 쏟아졌다. 한 학생이 화를 내자 메이린은 '미안! 다시 와서 변상할게!' 하고 외치며 계속 뛰었다.
하아! 하아!
그녀는 두 발에 칠흑까지 일으켜 전속력으로 달렸다. 부딪힌 학생들이 불만스럽게 짜증을 냈지만, 이제는 돌아볼 틈도 없었다.
'누군진 모르겠지만 죽었어!'
달리면서 저주를 장전한 그녀가 검지를 뻗으며 저주의 발원지로 향했다.
그런데.
'인형?'
사람이 아니었다.
발원지로 추정되는 관중석에 떡 하니 올려져 있는 건 저주인형이다. 그 위에는 시몬의 청색 머리카락이 매여 있었고, 못이 박혀 있었다.
그녀가 어이가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고전적인 수단이네."
퍼억!
메이린이 신발로 저주인형을 거칠게 짓밟는 순간.
'!'
시몬에게 즉각 영향이 끼쳤다.
일방적으로 당하고 있다가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든 것이다.
'나 지금 뭐 하는 거야?'
자책할 틈도 없다. 머리가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하며 일단 사념에 집중부터 했다.
이 상황에서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
시몬은 배리어가 한계치까지 머금고 있는 모든 에너지를 일제히 발산했다.
화아아아아아아악-!
혼돈과 신성이 안에서 밖으로 뿜어져 나오며, 쏟아지는 홀리볼트를 찰나의 순간 무력화시켰다. 그사이 시몬은 드래고니안을 옆으로 빠져나가게 했다.
"흡!"
놀란 조교는 자신의 앞에 십자가를 펼치고 고정포대를 준비했다.
문제 될 건 없다고 생각했다. 이제 당분간 그 까다로운 방어마법은 쓰지 못할 테고, 드래고니안의 속도로는 쏟아지는 홀리볼트를 전부 피할 수는 없다.
그렇게 생각했으나.
<서먼 골렘>
쏴아아아아아아-!
드래고니안의 몸 안에서 흙먼지가 모래폭풍처럼 쏟아져 나왔다. 골렘의 핵이 가열차게 돌아가고, 훈련장의 흙을 빨아들여 순식간에 형태를 부풀린 골렘이 전면에 나타났다.
십자가에서 조교의 홀리볼트가 쏟아졌지만 골렘은 전신으로 받아내며 버텨냈다.
'자, 자연지물로!'
방어 마법이 아닌, 주위의 자연지물을 이용하는 소환수는 신성을 효과적으로 버텨낼 수 있다.
조교와 골렘이 거칠게 공방을 주고받는 사이, 안전하게 후방으로 우회한 드래고니안의 팔뼈들이 조교의 팔에 연결되었다.
'아차!'
조교의 두 팔이 뒤로 붙들려 묶이고, 금세 흙으로 몸을 회복한 골렘이 거대한 모래 팔을 들어 올렸다.
어두운 그림자가 그의 몸 위로 드리워졌다.
'제기랄!'
그의 표정이 굳어지는 것과 동시에 골렘의 팔이 조교에게 떨어졌다.
쿠우우우우웅-!
굉음과 함께 야외 훈련장의 흙먼지가 뿌옇게 튀어 올랐다. 시몬이 주먹 쥔 손을 거두어들였다.
"시험 종료!"
수석조교가 얼른 뛰어와 두 팔을 흔들어 시험이 종료됐음을 알리고는 팔을 뻗었다.
"시몬 폴렌티아 학생의 승리입니다!"
귀청이 떨어질 만큼 거대한 함성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모두가 환호하고 있는 그때, 뒤편 관중석에 홀로 가만히 앉아 있던 한 명.
[ⴠØⳖⳖⴃ.]
붉은 립스틱을 바른 입술이 움직이더니, 이내 한 사람의 몸이 흔적도 없이 녹아 들어가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