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791화
우와아아아아아아아아!
거대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시몬은 힘겹게 웃으며 쪼그려 앉았다. 힘이 쭉 빠지는 기분이었다.
-역시 발락의 대항마!
-잘하는데!
그저 시험 하나 치렀을 뿐인데.
어쩌다 보니 또다시 관심의 중심에 들어온 느낌이었다.
"됐다아."
관중석에서 시몬의 승리를 확인한 메이린도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러고는 화풀이로 망가진 저주인형을 주먹으로 콩 하고 때렸다.
"누군진 모르겠지만 잡히기만 해봐."
그리고 골렘이 무너져내리며 모래에 파묻혀 있던 조교는 눈을 질끈 감았다.
'이제 다 끝났어.'
며칠 전.
새롭게 학생회에 올라간 한 임원이 자신을 불러냈다.
-최근에 아론 교수가 데스나이트 재료 확보를 위해, 교내에 국경 파견 허가를 요청했다고 들었습니다.
아무리 학생회라고는 해도, 학생이 교수 회의에서나 나올 법한 고급 정보들을 가지고 있었다.
3학년 교수들이 그에게 몰래 정보를 준다는 소문이 사실이었을까.
하지만 문제는 그자의 제안이었다.
-국경 파견을 위해, 신성방어학 시험을 치러서 통과한 학생들만 파견을 허락받는다고 하던데요. 그때 잠시 저를 도와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는 실전훈련 때, 직접 시몬을 상대해서 신성마법으로 그의 소환수를 파괴할 것을 요구했다.
그 소환수는 '드래고니안'.
해당 임원은 시몬이 발락에게 도전하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는 것 같았다. 특히 발락이 한번 당하기도 했다는 그 '안티 메이지' 능력을 가진 시몬의 드래고니안을 부숴달라고 했다.
조교는 당연히 학생들 간의 문제에 관여할 수 없다며 거절했지만, 학생회 임원은 조교와 함께 신성연방에 건너온 동생들을 언급하며 가족을 위해서라도 내가 끔찍한 일은 하지 않게 되기를 바란다고 협박했다.
그자에 대한 더러운 소문을 익히 들어왔던 조교는 도저히 거절할 수 없었다.
'결국.'
해내진 못했지만.
조교가 고개를 떨군 채 일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파라한이 다가왔다.
"역시 무슨 일이 있는 게군."
"교, 교수님."
조교는 파라한의 손에 일렁이는 하얀 마법진을 보았다.
파라한은 이미 전부터 신성마법을 준비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만약 시몬이 극복하지 못하면, 그가 직접 나서서 막을 생각이었으리라.
'애초부터 실패할 계획이었구나.'
파라한은 모든 걸 꿰뚫어 보고 있었던 것이다.
조교는 눈을 질끈 감았다.
"자네, 요즘 가족들이 그립지 않나?"
파라한이 불쑥 말했다. 조교가 고개를 들었다.
"예, 에?"
"잠꼬대할 때도 동생들 이야기를 하던데."
그가 선선히 부채질하며 미소 지었다.
"그들은 신성 사용자도 아니지 않나. 걱정된다면 로크섬의 로체스트에 살게 하게."
그 말을 들은 조교가 벌떡 일어났다가 이내 고개를 푹 숙였다.
"아, 아닙니다! 저희 목숨을 구해주신 교수님께 또 은혜를 받을 수는......."
"괜찮으이."
그는 가볍게 조교의 어깨를 두들겼다.
"대륙의 반대편까지 나를 따라와서 일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닐 터인데. 나야말로 자네들의 은혜를 받고 있는 게지."
그렇게 말한 파라한이 몸을 돌려 걸어갔다. 조교의 어깨가 부들부들 떨렸다.
'감사합니다......!'
그가 허리 굽혀 파라한을 향해 인사했다.
"나 참."
한소리 하려고 기다리고 있던 수석조교도, 그 모습을 보고는 한숨을 푹 쉬었다.
여운에 빠져 있기에는 아직 다른 학생들의 차례가 많이 남아 있었다.
그가 서류판을 들어 올렸다.
"그럼 다음 시험으로 넘어가겠습니다. 조지프 바르가 학생!"
* * *
시험을 무사히 넘기고 'PASS'를 손에 넣은 시몬은 국경 파견을 확정 지었다.
수건으로 땀을 닦고 잠시 휴식을 취하며 메이린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한테 저주가 걸려 있었다고?"
"응. 바로 이거야."
메이린이 두 손으로 저주인형을 들어 올렸다. 기괴하게 생긴 볏짚 인형에 매달려 있는 건 틀림없는 시몬의 머리카락이었다.
시몬이 직접 머리카락을 뽑아 비교해 보니 색상은 물론, 길이도 맞았다.
"......뭔가 섬뜩한데."
흑마법도 아니고, 이런 종류의 저주에 걸린 건 처음이었다.
심지어 싸울 때는 저주에 걸린 줄도 몰랐다. 영락없는 컨디션 저하라고 생각했을 정도로 교묘했다.
"이 인형을 조사하면 누가 나한테 저주를 걸었는지 알 수 있을까?"
"힘들걸."
메이린이 고개를 내저었다.
"애초에 정체를 숨기려고 저주인형을 쓴 거야. 마법진의 흔적도 없고 칠흑도 검출할 수 없었어. 상당히 완성도가 높은 저주인형이라고 생각해."
"음."
시몬이 가만히 생각에 잠겨 있는데, 갑자기 메이린이 벌컥 화를 냈다.
"증거만 없을 뿐이지, 누가 했는지는 뻔한 거 아니겠어?"
"누군데?"
"누구겠냐? 당연히 발락 학생회의 소행이겠지! 그 조교랑 짜고, 네 드래고니안을 신성마법으로 부수는 게 목적이었을 거라고! 틀림없어!"
"......."
시몬도 그녀의 생각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지만, 아직까지 속단할 순 없었다.
우선은 저주인형을 주머니에 넣었다.
"이건 내가 가지고 있을게. 나중에 증거로 쓰일지도 모르니까."
"응. 혹시 모르니까 일단 조사는 해봐. 나중에 카쟌한테 가져가 보는 건 어때? 그 사람이라면 뭔가 알아낼지도 모르잖아."
"그것도 좋네."
도둑길드 소속인 카쟌도 있고, 에슈도 저주인형에는 조예가 깊었으니 물어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두 사람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문득 뒤에서 허허 하고 인자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파라한이 다가오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교수님!"
시몬과 메이린이 얼른 인사했다. 파라한은 고개를 끄덕여 인사를 받고는 시몬을 보았다.
"이번 시험도 대단히 훌륭했네. 골렘의 핵을 마지막까지 가지고 있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자연 방벽처럼 일으켜 세운 것이 좋은 한 수였으이."
"감사합니다."
"자네만 괜찮다면, 오늘 수업이 끝나고 잠시 들러주겠나?"
그렇지 않아도 방학이 끝났으니 파라한의 집에 방문할 생각이었다.
시몬이 빙긋 웃었다.
"물론이죠! 교수님."
* * *
쪼르르르륵-
찻주전자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정갈한 찻잔에 허브티가 담긴다.
수업이 끝나고 시몬과 파라한은 서로 마주 본 채 이야기를 나누었다. 신수 하양이와 까망이는 시몬의 무릎 위에 누워 새근새근 잠들어 있었다.
"이번 실전훈련 일은 미안하네."
"아니에요. 제가 피해 입은 것도 없는데요 뭘."
시몬이 그렇게 대답하며 새끼 고양이들의 턱을 간질였다. 그릉그릉 기분 좋아하는 소리가 났다.
"어머님은 건강히 잘 계시는가?"
"아, 네! 안 그래도 방학 때 엄마가 파라한 교수님 이야기를 하셨는데......."
두 사람은 이런저런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며 웃음꽃을 피웠다.
파라한은 시몬이 마음을 톡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였다.
"그보다 훈련 내내 얼굴에 근심이 가득하던데. 무슨 고민이라도 있는 겐가?"
파라한의 물음에 시몬이 뒷목을 긁적였다.
'그것 때문에 부르셨구나.'
이번 저주인형 사태는 방금 알아낸 이슈였고, 시몬이 진지하게 생각에 잠겨있던 건 다른 문제였다.
"근심까지는 아니고, 저희 아론 교수님이 조금 무리하시는 것 같아서요."
"나도 아론 교수가 학생들을 데리고 신성연방에서 팔라딘의 유골을 가져온다길래 많이 놀랐지. 보통 인물은 아닐세. 결코 범인은 할 수 없는 생각이야."
시몬은 잠시 잠자코 있다가 입을 열었다.
"정말 이론적으로 그런 게 가능은 할까요? 팔라딘이 데스나이트가 되어 칠흑을 쓴다는 게 도통 상식적이지 않아서......."
"나는 가능하다고 생각허이."
파라한이 수염을 쓸어내렸다.
"애초에 칠흑과 신성을 동시에 쓰는 자네도 상식적이지 않은 건 마찬가지 아닌가."
"하하! 무, 물론 그렇지만요."
"그러니 자네가 이 일에 관심을 가지는 것도 당연하지."
그랬다.
시몬은 칠흑과 신성을 모두 쓸 수 있는, 유례가 없는 체질이다.
그런데 타락형 데스나이트는 신성을 쓰던 팔라딘이 사후에 칠흑을 쓰게 된다고 한다. 자신의 비밀과도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니 더더욱 관심이 가는 것도 사실이었다.
"나는 말년에 참으로 복 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네. 프리스트지만, 암흑연합에 온 뒤로 더 많은 걸 깨닫게 됐네. 이 세상은 알수록 신기허이."
파라한은 잠시 뜻 모를 이야기를 하고는 불쑥 물었다.
"자네는 마나가 뭐라고 생각하나?"
시몬은 바로 대답했다.
"만물의 근원이죠."
"그렇다네. 길을 걷다 발치에 차이는 자갈 하나,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마나가 담겨 있지 않은 것이 없으이."
그가 흙으로 빚은 도자기 찻잔을 들어 올렸다.
"이런 가공품 또한 작지만 마나가 깃들어 있네. 만물의 근원이라 칭하기에 모자람이 없지."
"그렇죠."
"이 마나에서 파생되는 것이 칠흑과 신성일세. 이 부분에 대한 이해가 선결되어야 아론의 뜻을 이해할 수 있을 걸세."
그가 찻잔을 접시에 내려놓자, 딸깍하는 듣기 좋은 소리가 들렸다.
"먼저 칠흑부터 짚고 넘어가지. 자연형 언데드의 생성 원리를 알고 있나?"
"네, 지금도 학자들의 의견이 갈리는 문제지만요."
"흔한 무생물에도 마나가 깃드니, 죽은 동식물의 시체에도 당연히 마나가 깃들기 마련이라네. 하지만 부정하고 부패한 시체에 마나가 오랫동안 고여 있으면 마나 또한 썩으면서 그 성질이 점점 탁해진다네. 그게 바로-"
"칠흑이겠네요."
"그렇네."
펄럭!
그가 부채를 펼쳐서 흔들었다. 시몬이 맞장구를 잘 쳐주니 파라한이 또한 목소리에 활기가 넘쳤다.
"또한 마나에는 흐르는 성질이 있다네. 부정하고 변질된 시체 안에서는 마나가 자연 상태처럼 흐를 수 없으니, 결국은 마나가 시체 안에서 흐를 수 있도록 스스로 변화하게 되는 게지."
파라한이 다른 한 손을 들어 올려 마나를 일으켜 보였다.
푸른 에너지가 허공에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끊임없이 회전했다.
"그렇게 칠흑은 시체 안에서 흐르게 되고, 흐름은 규칙을 만들어내고 인과를 만들어내지. 시간이 지나 칠흑의 유동성이 가장 많은 부분에 자연스럽게 칠흑이 모이면서 일종의 '핵'을 형성한다네. 우리 흔히 알고 있는 '코어'의 초기단계지."
"신기하네요."
파라한이 한번 손을 털자, 원을 그리던 마나의 흐름이 허공에 흩어져 사라졌다.
"자연 마나의 역방향으로 흐르게 된 칠흑은 이제 자연 밖으로 나갈 수 없어. 원래대로 돌아올 수도 없지. 시체 안에서만 움직이게 되고, 자연의 마나를 시체 안으로 끊임없이 빨아들여 세를 불리기 시작한다네. 그 과정에서 시체가 움직이기 시작하는 게야. 자연형 언데드의 탄생일세."
시몬은 눈을 빛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허허허! 물론 이것도 하나의 설에 불과하니 지나치게 과신하지는 말게나. 자, 그럼 다음으로 신성은 어떻게 존재하는가."
벌컥.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갑자기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놀란 시몬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누구야? 파라한 교수님의 집에는 신성 결계가 쳐져 있었을 텐데?'
또각거리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햇살에 반사되는 아름다운 백금발 머리카락, 에메랄드 같은 녹색의 눈동자와 기품이 넘치는 몸짓과 교태로운 눈웃음.
"어머나, 내가 방해했나요?"
세르네 아인다르크.
"하던 이야기 계속하세요. 두 분. 나도 흥미가 생기네요."
시몬의 동공이 흔들렸다.
'세르네가 왜 여기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