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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794화 (794/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794화

"제가 가겠습니다."

사방에서 오-하는 탄성이 흘러나왔다.

가장 먼저 자원한 사람은 시몬이었다.

"역시."

"학생회장을 해서 그런가 남다르다니까."

덩달아 최근 이미지 변화로 동기들의 반응도 긍정적이었다. 헥토르 패거리도 이런 분위기 속에서는 시몬에게 시비를 거는 걸 자중할 정도였다.

그레리온도 함박웃음을 머금었다.

"하하하하! 자네가 나서준다면 든든하군! 아주 좋네."

시몬은 자리에서 일어나 방어조 명단에 이름을 기입했다. 아론을 위해 도울 수 있는 거라면 뭐든지 하고 싶었다.

그때 근처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싶더니, 시몬의 옆에서 또 다른 한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번에는 시몬도 깜짝 놀랐다.

"저도 가겠어요."

로레인 아크볼드.

그녀가 손을 들어 올렸다. 학생들이 놀란 표정으로 웅성거렸다.

"음, 자네는 조금 특수한 경우인데."

그레리온이 눈매를 좁히며 머리를 긁적였다.

"전투 허가는 받았나?"

전투 허가라는 표현을 쓰기는 했지만, 사실은 엄마인 네프티스의 허락을 받았냐는 의문이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긴급한 상황에서는 힘을 써도 괜찮다고 들었습니다. 더욱이 학우들을 위한 일이니까요."

조교들이 즉각 그레리온 주위를 둘러싸고 '안 돼요!', '허락하시면 안 됩니다!'하고 숨죽인 목소리로 그를 보챘다. 만에 하나 네프티스의 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면 학교에서 쫓겨나는 일 정도로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레리온은 히죽 웃었다.

"저리 훌륭한 각오와 마음가짐으로 자원하는데 어찌 못 본 척할 수 있겠나! 방어조에 온 걸 환영하마!"

"감사합니다."

로레인이 꾸벅 고개를 숙였다.

수석조교가 시름 가득한 얼굴로 한숨을 쉬는 모습이 보였다.

"그럼 마지막 자원자 한 명만 더 뽑겠다!"

시몬이 가기로 한 이상, 모두가 예상하듯 헥토르가 몸을 일으키려 했다.

"저도 가겠......."

"내가 가도록 할게요."

그런데 헥토르의 말을 끊으며 자리에 일어난 한 사람이 있었다.

헥토르는 물론이고, 이번에는 이 자리에 있는 전원이 경악했다.

무슨 수업을 하든 늘 뒤에서 관망하듯 앉아 있던 그녀. 탐스러운 백금발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도도하게 한 손을 치켜든 그녀는 다름 아닌 차기 상아탑주, 세르네 아인다르크였다.

"방해하지 마라."

헥토르가 이를 갈며 으르렁거렸다. 그러나 세르네는 안색 한번 변하지 않고 여우 같은 눈웃음을 흘렸다.

"예전에 나한테 몇 가지 빚진 거. 기억하죠?"

"......."

"그리고 학과대표까지 방어조로 가면 곤란할 것 같지 않아요? 비상상황에 아이들을 챙길 사람이 한 명은 필요할 것 같은데."

헥토르가 이글거리는 눈을 치켜뜨더니, 이내 긴 한숨을 흘리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저 헥토르를 막아 세우다니. 주위의 학생들이 살짝 감탄한 눈으로 세르네를 보았다.

"저요. 저. 지원하겠습니다~"

가볍게 경쟁자를 떨어뜨리며 혼자 입후보한 세르네가 손을 흔들어 보였다.

그레리온이 서류를 훑어보았다.

"자네는 신성방어학이나 이번 훈련 성적이 그리 좋지는 않다만......."

그렇게 말을 흐리던 그레리온이 픽 하고 웃으며 서류를 접었다.

"문제없겠지."

저건 무늬만 교복 입은 10대 학생일 뿐이지, 실력은 이미 학생의 영역을 아득히 뛰어넘은 인외의 괴물이었다. 어지간한 현역 네크로맨서 요원보다 뛰어날 것이다.

"방어조에 온 걸 환영하네, 세르네 아인다르크."

세르네가 살랑거리는 발걸음으로 뛰어와 시몬의 곁으로 왔다. 이내 그의 팔뚝에 찰싹 들러붙으며 웃었다.

"이제 같은 팀이네요 시몬?"

주위의 시선이 쏠리자 시몬이 당황해했고, 로레인은 눈에 쌍심지를 켜며 그녀를 떼어냈다.

"무슨 꿍꿍이야."

"그런 거 없는데요? 기왕 갈 거면 시몬이 있는 쪽이 재미있어 보이니까."

시몬 폴렌티아.

로레인 아크볼드.

세르네 아인다르크.

이름값부터가 어마어마한 나열이었다. 그 어떤 프리스트가 오든, 세 사람이 속해 있는 방어조라면 전부 막을 수 있어 보였다.

"잘 부탁하마! 방어조인 자네들은 임무에 대한 더 구체적인 정보를 제공하도록 하겠다."

그레리온이 고개를 돌렸다.

"그럼 전원, 떠날 준비를 해라!"

"네?"

"기밀 임무에 대해 조금이라도 들은 이상, 자네들은 격리된 장소에 이동해 작전 전까지 대기해야만 한다!"

우르르르르!

기다렸다는 듯 동굴 곳곳에서 튀어나온 키젠의 하수인들이 몰려와 학생들을 하나둘 데려가기 시작했다.

텔레포트 마법진이 곳곳에 펼쳐졌다. 하수인들은 텔레포트 수식의 위치를 보지 못하도록 안대까지 씌웠다.

"보안 문제니 불편해도 협조할 수 있도록 해라! 작전 실행은 내일모레 새벽!"

그레리온이 주먹을 꽉 쥐었다.

"우리는 국경을 넘을 것이다!"

* * *

작전 발표 후 대기 장소 이동이라니.

그레리온답게 화끈한 행동력이었다.

학생들은 텔레포트 마법진을 타고 장소도 모를 어딘가로 옮겨졌다.

다행히 텔레포트 마법진으로 도착한 직후에 안대를 벗을 수 있었다. 시몬이 안대를 벗고 눈을 뜨니 로레인과 세르네가 양쪽에서 그의 팔이나 옷자락을 붙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얘들아?"

당황한 시몬이 더듬거리며 말했다. 지나가는 남학생 두 명이 부러움 섞인 눈으로 그를 죽일 듯 노려보고 있었다.

아무튼 시야가 확보되니, 전면에 커다란 석조 건물이 보였다. 주위는 아무것도 없이 풀밭만 펼쳐져 있고 크고 작은 언덕들이 가득했다.

바람 부는 소리, 졸졸 시냇물이 흐르는 소리가 들린다.

이 넓은 벌판에 집 한 채와 학생들만 뚝 떨어진 느낌이었다.

"국경 근처인가 보네."

안대를 벗은 로레인이 중얼거렸다. 세르네도 검지 끝으로 안대를 밀어 올리며 흥얼거리는 노랫소리를 흘렸다.

"하하하하! 다들 무사히 도착했군!"

그레리온과 조교들도 마침 도착했다. 그레리온이 콧바람을 뿜었다.

"1층과 2층은 남학생들이, 3층과 4층은 여학생들이 쓰도록 해라! 짐을 풀고 잠시 쉬고 있으면 조교들이 서류를 건네줄 텐데, 거기에 필요한 물건이나 속옷, 여벌의 옷 등을 기입하면 하수인들이 기숙사 방에서 이리로 가져다줄 것이다! 어떤 방식으로든 외부와의 소통은 엄격히 금지되고, 이 결계 밖을 나가서도 안 된다!"

그가 흠하고 선글라스를 치켜세우며 내용을 훑었다.

"안에서 세 시간 휴식하고, 다시 여기 모여서 시뮬레이션과 임무 훈련을 하겠다! 우선 들어가서 쉬어라!"

"네!"

분명히 평소처럼 편한 마음으로 수업을 들으러 왔는데, 갑자기 또 합숙 분위기다.

그래도 이런 일에 적응이 빠른 키젠 학생들은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마침 토토도 피츠제럴드를 데리고 와서 같은 방을 쓰자고 제안했다.

시몬도 흔쾌히 동의하며 그쪽으로 가려는데.

"참!"

그레리온이 손을 척 뻗었다.

"방어조끼리는 별도의 숙소를 써라! 지금부터 임무가 시작한 것이나 다름없으니까. 너희들이 학우들을 보호해야 한다!"

"네?"

시몬은 당혹스러워했고, 세르네는 기뻐하며 시몬의 곁으로 다가왔다.

"어머나, 또 이런 일이. 좋죠 좋죠?"

그녀에게 놀림당할 걸 생각하니 벌써부터 힘든 하루가 예상된다.

아무튼 방어조의 방은 건물 옆에 딸린 작은 숙소였다.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뛰어나갈 수 있는 위치였다.

시몬과 로레인, 세르네는 조교의 안내를 받아 별개의 숙소로 들어왔다.

'방은 좋네.'

텅 빈 벌판에 불쑥 솟아 있는 건물이라 그리 기대는 안 했는데, 생각보다 방이 넓고 깨끗했다. 침대도 한 사람당 하나씩 쓸 수 있었다.

조교는 필요한 물건을 기입할 수 있는 서류를 하나씩 나누어주고 갔다. 시몬이 짐을 푸는 사이, 세르네가 깃펜으로 서류를 끄적거렸다.

"군것질거리랑 화장품이랑 잠옷이랑 베개. 그리고 속옷. 시몬은 어떤 디자인이 좋아요?"

시몬은 못 들은 척하기로 했다. 로레인은 잔뜩 집중한 얼굴로 서류를 써내려가고 있었다.

그렇게 두 시간 후.

"......."

로레인의 침대는 핑크빛으로 변해 있었다. 인형과 쿠션으로 가득했다.

기숙사에 있는 침구류를 다 가져온 것 같았다.

"길어도 하루 이틀 있을 텐데, 너무 과한 거 아닐까?"

시몬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난 내 물건이 아니면 잠이 잘 안 와서."

로레인이 쑥스럽게 머리를 꼬며 대답했다.

"후후후."

세르네는 이상한 옷들을 보란 듯이 침대 근처에 널어두려다가, 로레인이 강제로 압수해서 서랍장에 처넣었다.

아직 훈련까지는 시간이 남았기에 세 사람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방학 중에 엄마를 따라 국경에 종종 갔었어."

로레인이 눈을 감으며 말했다.

"연합과 연방의 국경이야 늘 크고 작은 전투가 일어나는 곳이지만, 확실히 평소와는 다른 분위기였어."

"암흑연합은 너무 평화에 찌들어 있어요."

세르네가 침대에 앉아 다리를 꼬았다.

"신성연방 측은 전쟁 위기감이 고조되면서 사재기까지 빈번하다는데, 이쪽만 평소처럼 태연히 축제나 벌이고 있죠. 사람들도 알건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위기의식이 없는 건 사실인 것 같아."

웬일인지 의견이 일치하는 두 사람이었다. 세르네가 말했다.

"가까운 시일 내에 전쟁이 일어날지도 모른답니다? 상아탑도 정보망을 가동하면서 전쟁을 대비하고 있는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거든요."

시몬이 손에 깍지를 꼈다.

"양국의 분위기가 그리 나쁘지 않았는데, 왜 갑자기......."

"전쟁 이후 시간이 많이 지났으니 터질 게 터지려 한다는 이야기가 많아. 전면전만 없다뿐이지, 원래도 국지전과 임무전은 많이 일어났으니까. 무엇보다."

로레인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전쟁을 원하는 전쟁광들이 세상에 너무 많아."

* * *

빛 한 줄기 들어오지 않는 지하실.

뚜욱.

뚝.

방울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조용히 울려 퍼졌다.

정확히는 핏방울이었다.

삐걱거리는 나무의자에 앉은 남자가 전신에서 피를 뚝뚝 흘리며 고개를 떨군 채였다. 근처에는 온갖 고문기구들이 가득했고, 바닥에는 손톱과 발톱, 이빨 등이 어지럽게 떨어져 있었다.

"명이 질기군."

후우우우우-

한 남자가 입에 시가를 물고 불을 붙였다.

연기가 뿌옇게 흘러나오며 흥건한 벽면의 핏자국을 따라가다 지하실의 좁은 환풍구를 지났다.

"너희 암흑연합에 부러운 점이 하나 있지."

남자가 시가를 손가락에 끼고 어둠 속에서 음침하게 웃었다.

"바로 다채로운 고문 수단을 가지고 있단 점이야. 저주에, 혈류에, 맹독까지. 고문하는 쪽도 재미있고, 고문받는 쪽도 질리지 않지."

그가 어깨를 들썩이며 음흐흐 웃음을 흘렸다.

"하지만 우리 연방의 방식은 원초적이고 단순해. 뽑고, 찢고, 자르고, 뭐 그런 정도지. 그래도 한 가지."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손짓으로 신호를 보냈다.

"너희들에게 자랑할 만한 건 있다."

우르르르르!

방 밖에 대기하고 있던 흰옷을 입은 프리스트들이 몰려와 그의 몸에 손을 얹었다.

<힐링>

우우우웅-!

점점 몸이 회복되어 가고 있었다. 쇼크에 과다출혈에 죽기 직전까지 갔던 남자의 몸이 회복되어 가고 있었다.

"놀랍지 않나? 산 채로 코어를 뜯어내고 체내의 칠흑을 완전히 제거한 뒤에 회복마법을 쓰면, 더디지만 회복되긴 하거든."

고문받았던 남자의 눈에 점점 초점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몸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너희들은 항상 하나같이 내 앞에서 말하지. 차라리 죽이라고. 하지만 붙잡힌 자에게는 죽을 권리가 없어. 죽음은 권리야."

그가 낄낄 웃었다.

"생은 고통이며, 죽음은 평안이다. 이단 따위가 평안을 바라는가."

남자의 몸에 초점이 돌아왔다.

정신이 들었는지 퍼뜩 고개를 들었다. 그러다 여기가 어딘지 깨닫고, 자신이 무슨 짓을 당했는지 깨닫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눈앞의 흰 악마를 바라본다.

"안 돼! 안 돼!"

그가 발작을 일으키며 미친 듯이 몸을 뒤흔들었다.

"그만! 그만해! 회복하지 마! 그냥 두라고!"

육체가 있다는 것은 즉, 저 남자의 눈앞에 고문 거리가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프리스트들은, 이 상처 입은 불쌍한 남자가 회복하기를 여신에게 기도하며, 그의 손과 발에 손톱과 발톱을 맞춰서 회복을 걸어 넣는다.

"그만해! 제바아아알!"

몸이 회복되고 있는데 남자는 그 어떤 고문보다도 고통스럽게 몸을 뒤흔들었다.

흰 악마가 웃는다.

"허락 없이는 죽을 수도 없다. 생의 영역에 온 걸 환영하마."

지하실을 나선 그가 찌뿌둥한 몸을 풀며 계단을 올라왔다.

밖에서 기립한 채 기다리던 한 남자가 고개를 숙였다.

"보고드립니다, 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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