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795화
"보고드립니다, 청장."
딸칵.
청장이라 불린 남자가 새로운 시가를 꺼내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뿌연 연기가 흩날리며, 지하실의 어둠에 가려져 있던 그의 얼굴이 드러났다.
흉악한 입꼬리와 귀기로 번들거리는 눈빛. 양쪽 눈의 초점이 맞지 않는 듯 서로 다른 곳으로 향해 있는 동공. 짧은 머리카락 너머로 보이는 기다란 흉터는 섬뜩함마저 자아냈다.
심문청장 레이트.
악명높은 이단심문관 집단의 수장이자, 세상에서 가장 많은 네크로맨서를 살해한 프리스트였다.
후욱-
연기를 내뱉은 그가 입가를 들썩이며 웃었다. 부하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고문은 아랫것들에게 맡겨놓고, 조금 쉬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이 자리까지 올랐어도 나는 여전히 현역 일이 몸에 맞아."
그가 손에 검은 장갑을 끼며 희끄무레하게 웃었다. 벌어진 입 사이로 잘려 나간 듯 단면이 드러난 아랫니가 보였다.
"고문이든, 처형이든, 이단심문이든, 뭐든지 내 손으로 해야 직성이 풀려. 보고 할 내용은 뭐지?"
"전에 말씀드린 대로, 암흑연합 국경의 낌새가 심상치 않습니다."
남자가 고요하게 내려앉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심판의 성녀님의 첩보대로, 네크로맨서들이 이 시설을 공격해 올 것 같습니다."
레이트는 시가를 꼬나문 채 고개를 돌렸다.
낡은 4층 건물.
민간 시설로 위장하고 있지만 사실은 국경 전선의 비밀 작전부다. 최근에 벌어진 전투로 거물급 네크로맨서들을 여럿 붙잡았고, 이단 심문관들이 그들을 고문하며 정보를 뽑아내고 있는 중이다.
"네크로맨서들은 동료를 쉽게 버리지 않으니, 필시 움직임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날 이런 외진 곳까지 불러서 눌러 앉힌 거냐? 그 계집은."
"......."
이 신성연방에서 공적인 자리든 사적인 자리든, '심판의 성녀'를 저리 부를 수 있는 사람은 레이트뿐일 거라고 남자는 생각했다.
"방비는 충분하지 않나."
레이트가 뒤를 돌아보며 중얼거렸다. 15중의 신성 결계에, 층마다 여러 프리스트가 돌아다니며 물샐틈없는 방어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남자는 송구하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그럼에도 '가장 가까운 딸'께서는 청장께서 가주시면 든든하겠다고......."
"염병."
그가 입술로 피우던 시가를 짓눌렀다. 시가가 짜부라지고, 안에 있는 내용물이 흘러넘쳐 바닥에 떨어졌다.
"혹여나 연합의 이단놈들이 오면, 나는 따로 행동하겠다."
"따로...... 말씀이십니까."
"앉아서 방어만 하는 건 성미에 안 맞아. 공격대가 들어오면 늘 가까운 곳에 지휘부가 있기 마련이지. 그들을 쳐내고 고문한 뒤, 퇴로까지 차단하는 게 완벽한 그림이다."
애초에 레이트는 다른 사람의 말을 들을 위인이 아니다.
심판의 성녀 또한 그 사실을 알고도 이곳에 레이트를 보냈을 터,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상황이 발생하면 청장께서는 적의 뒤를 치러 가셨다고 말해놓겠습니다."
"그 평화의 창녀 이스라필은 어떤가. 방해할 여지는 없겠지?"
불경한 것도 정도가 있지.
뇌의 필터링을 거치지 않은 저급한 단어에 정신이 혼미해질 것 같았지만, 남자는 표정관리를 하며 말했다.
"신해의 성녀께서는 남부 민쟁 사태 수습으로 바쁘실 겁니다. 만에 하나 이쪽을 주시하고 있다고 해도, 우리 쪽 영토로 넘어오는 적을 분쇄하는 목적이라면 방해받을 이유는 없으리라 사료됩니다."
"완벽하군."
레이트가 침을 뱉으며 걸어갔다.
"몸이나 풀어볼까."
* * *
야외 생활은 훈련의 연속이었다.
학생들은 하나같이 힘든 임무 시뮬레이션을 거쳤다. 프리스트의 제압, 건물 진입, 소환수를 이용한 주변 정찰까지.
네크로맨서 요원이 된 기분을 느끼며 설레는 것도 잠시, 하루 종일 뛰어다니다 보니 하늘이 노랗게 보였다.
저녁에는 컨디션을 조절하면서 소환수 컨트롤을 집중적으로 훈련하고, 숙소에 돌아가 곯아떨어지고 말았다.
그리고 작전 당일 이른 새벽.
"전원 기상! 기상하십시오!"
조교들이 방을 돌아다니며 학생들을 깨우고 다녔다.
방어조인 시몬과 로레인, 세르네는 삼십 분 전에 미리 일어나서 준비하고 있었다. 세르네는 하품을 하며 걸어가더니 어딘가에 숨어서 땡땡이를 피웠고, 시몬과 로레인은 학우들을 깨우러 다녔다.
이제 곧 국경을 넘어 신성연방에 들어간다는 긴장감 때문일까, 학생들은 힘들여 깨우지 않아도 빠릿빠릿하게 일어나 옷을 갈아입었다.
이내 학생들이 완전 무장상태로 밖으로 나와 대기하고 있으니, 그레리온과 조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준비해라! 이제 곧 임무가 시작된다!"
그가 주머니에서 시계를 들었다. 시몬이 얼핏 본 바로는, 시침이 보통의 시계와 다른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내 두 시침이 만나는 순간.
쿠우우우우우웅-!
퍼어어어엉!
맹렬한 폭발음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이번 임무를 맡은 네크로맨서 요원들이 국경의 결계를 공격하는 소리였다. 이곳에서 상당히 먼 거리에서 일어난 폭발인지, 소리가 먹먹하게 들렸다.
"우리도 준비한다! 전원 키메라에 탑승해라!"
그레리온이 타고 갈 키메라를 옆에 준비해 두었다. 지네를 연상케 하는 길고 다리가 여러 개 달린 몸통에 두꺼비의 머리가 달려 있는 개체였다.
다만 그레리온의 말처럼 '탑승'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그랬다.
학생들이 자리에 서 있으면, 키메라가 입을 쩍 벌려 그들을 하나둘씩 집어삼켰다. 이내 학생들은 선홍빛으로 가득한 키메라 내부로 내동댕이쳐지는 식이다. 통로가 길어서 자리는 널널했다.
"지상용 황천고래 느낌이네!"
에슈가 키메라의 선홍빛 생체벽을 툭툭 쳐보며 중얼거렸다.
이내 모든 학생들이 타고, 그레리온과 조교들도 안으로 들어왔다.
"출발하겠다!"
그레리온이 사념으로 명령을 내리기 무섭게, 발밑으로 흔들림이 느꼈다.
키메라의 장기 내부에서는 주변 풍경이 보이지 않았지만, 주위가 흔들리는 것으로 엄청난 속도로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체감할 수 있었다.
시몬과 로레인, 세르네는 그레리온과 조교들 근처에 있었다. 다른 학생들은 뒤에서 초조하게 기다리는 것밖에 할 게 없었지만, 시몬은 그레리온이 통신하는 목소리로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상황은 급박하게 돌아갔다.
결계에 화력을 퍼부어서 구멍을 내고, 국경 너머를 지키는 프리스트들은 저주로 무력화시켰다. 이내 요원들이 무사히 안으로 진입하는 데 성공했다.
그레리온과 학생들이 탄 키메라는 일단 국경의 결계 앞에서 대기했다.
만약 조금이라도 상황이 위험하거나, 결계가 회복될 기미를 보이면 데스나이트 재료고 뭐고 임무는 취소였다.
-목적지 진입. 타격을 시작합니다.
-적 경비 11명 무력화.
-결계 안정화 단계. 외부로부터 신성유입을 성공적으로 차단했습니다!
-국경의 경비대가 모두 목적지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상황은 완벽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이에 그레리온도 결단을 내렸다.
"진입한다!"
키메라가 엄청난 속도로 내달렸다. 지네처럼 몸통을 좌우로 흐물거리며 달리는 중인지, 벽면이 끊임없이 움직였다.
벽에 기대어 잠든 학생이 튕겨 나와 바닥에 머리를 박았다. 이내 머리를 감싸며 반대쪽 벽에 등을 기댔지만, 다시금 튕겨 나와 반대편으로 머리를 박았다.
"결계의 균열을 통과한다! 모두 주의해라!"
"네?"
순간 키메라의 벽과 천장과 바닥이 모여들며 공간 자체가 좁아졌다. 몸에 꽉 붙는 상태가 되었다.
다들 키메라의 몸에 꽉 낀 채 헛숨 삼키는 소리를 냈다. 손가락 하나 꼼짝할 수 없었다.
"너무 조여! 괴로워!"
"숨! 숨을 못 쉬겠어요!"
조금만 참아라! 하고 말하는 그레리온의 외침이 들렸다.
그 와중에 세르네가 '야압'하고 시몬을 끌어안았고, 그대로 공간이 좁아지는 바람에 두 사람은 서로 바짝 밀착한 상태로 움직이지 못하게 되었다.
당황한 시몬이 그녀를 노려보았지만, 세르네는 눈웃음을 흘리며 즐거운 듯 웃었다.
잠시 뒤 그레리온이 외쳤다.
"이제 국경을 넘었다!"
조여들었던 공간이 다시 넓어지며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학생들은 하나같이 안도의 한숨을 쉬며 자리에 엎어졌다.
"신성연방에 온 걸 환영하마!"
시몬은 조금 얼떨떨한 기분으로 고개를 돌렸다.
국경을 넘어 신성연방에 왔다지만, 키메라의 내부라 아무것도 확인할 수 없었다. 실감이 나지 않았다.
"교수님, 먼저 출발해 보겠습니다."
"부탁하마!"
키메라의 입이 열리며 빛이 새어 들어왔다.
전투복 차림의 수석조교를 비롯한 조교진들이 망설임 없이 밖으로 뛰어내리는 모습이 보였다. 이들이 먼저 현장으로 가서 혹시 모를 경비들을 제압하는 일을 할 것이다.
이내 그들이 사라지고 키메라의 입이 닫혔다.
남은 건 그레리온과 보좌할 조교 한 사람뿐.
그리고 전원이 학생이었다.
시몬은 더더욱 책임감을 가지고 그레리온 곁에 있었다.
이어지는 건 대기, 대기, 대기.
끝없는 기다림뿐이었다. 키메라 안이 안전하다만 갇혀만 있으려니 조금은 답답했다. 어두운 곳에서 오로지 두 개의 통신 수정구로 번갈아 들리는 현장의 상황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놀랍게도, 가끔 아론의 목소리도 들렸다. 결계를 파괴했다고 보고하는 특유의 나른한 목소리는 틀림없이 아론의 목소리였다.
뒤이어 타깃을 구출하는 데 성공했다고 했을 때는 주위의 모두가 탄성을 터뜨렸다. 어느새 뒤에 있던 학생들도 소리를 들으러 다가와 있었다. 조교가 한번 쫓아 보냈지만, 결국 그냥 봐주는 셈 치는 것 같았다.
-목적지 도착. 경비 세 명을 붙잡았습니다.
-올 클리어.
조교들이 안전하다는 보고를 해왔다. 그레리온이 씩 웃었다.
"우리도 목적지로 이동한다!"
* * *
무사히 도착했다.
키메라의 입이 천천히 벌어지고, 어두운 동굴과도 같은 곳에서 햇빛이 잔뜩 새어 들어왔다.
두려움에, 걱정에, 멀미까지. 이동하느라 고생한 학생들이 신음을 흘리며 눈을 떴다.
"위험하니 천천히 내리세요!"
"발밑을 잘 보고 한 명씩 내려 주십시오!"
조교들이 학생들을 통제해 키메라에서 내리도록 했다.
시몬도 키메라의 입 밖으로 훌쩍 뛰어내린 뒤 고개를 들었다.
분명 키메라에 타기 전만 해도 국경 근처의 건물이었는데, 어느새 눈을 뜨니 신성연방의 한 장소에 도착해 있었다.
시몬은 앞에 보이는 건물을 응시했다.
십자가를 짊어진 커다란 조각상 너머로 하얀 건물이 보인다. 겉보기엔 문제없어 보이지만, 이상하게 불길한 기운이 스멀스멀 밀려든다.
'여기구나.'
에프넬의 한 박물관 건물.
바로 여기에 팔라딘의 유골이 있다.
"주의사항을 안내하겠다!"
주위의 안전을 한 번 더 체크한 그레리온이 학생들에게 말했다.
"저 안에는 우리가 상상하지 못한 끔찍한 것들로 가득하다. 저것들에 너무 많이 신경 쓰고 과몰입하지 마라. 건전한 정신 또한 네크로맨서의 자산이다!"
맷 코머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냥 박물관 아닌가요?"
그레리온이 웃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실제로 먼저 들어가서 경비들을 제압하고 온 조교들의 표정은 싸늘하게 굳어 있었다. 어떤 조교는 토를 하고 있었고, 그의 옆에서 동료 조교가 등을 두들기고 있었다.
"이동한다!"
그레리온이 앞장서고, 학생들이 뒤를 따랐다.
시몬은 저 하얀 박물관의 입구가, 끔찍한 괴물이 입을 벌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