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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796화 (796/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796화

박물관.

학술적으로 가치 있는 자료나 유물, 예술품 등을 전시하여 연구나 사회 교육에 기여할 목적으로 만든 시설을 말한다.

하지만 과연 이건 정말로 박물관일까.

어떤 연구와 교육에 기여하는 걸까.

시몬은 그런 의문을 품지 않을 수가 없었다.

박물관 안으로 발을 들이는 순간, 박제된 사람의 얼굴과 몸통을 가득 붙여 세운 동상이 보인다.

사람이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는 순간을 절묘하게 포착해 내서 박제했다. 비명을 지르고, 울부짖고, 스스로 목을 조르기까지 한다. 마치 소리가 들리지 않는데도 비명 소리가 귓가에 윙윙 거리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동상 앞에 적혀 있는 글귀는 '이 모두가 타락한 네크로맨서의 신체 일부'라고 알려주고 있었다.

기껏해야 전쟁 박물관이겠거니 생각했던 이곳은 학살과 살육, 그리고 고문의 박물관이었다.

붉은 십자가들이 푯말처럼 세워져 있고, 그 위에 실제 사람이 매달려 있다. 어느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바로 최근까지 살아서 못 박힌 채 여기서 전시되고 있는 모양이었다. 결국 숨이 끊어져 있었지만.

벽면에는 각종 끔찍한 고문도구와 학살기구가 자랑스럽게 진열되어 있다.

벗겨진 살가죽과 손톱 발톱이 널려 있고, 고문자들의 이빨을 모아 만든 기둥도 있다.

중간중간에 성전의 인용구가 적혀있기도 했다.

-한번 부정에 물든 존재는 영원히 부정하므로 남김없이 멸해야 한다.

-전도사가 손짓하자 매달린 이단들이 타오르는 불과 함께 화했다. 주민들은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엎드려 여신을 칭송하였다.

그 밖에도 전쟁 중에 붙잡힌 네크로맨서들, 저항 의사 없는 포로들, 그리고 여신을 부정하는 반역자들과 이단이 어떤 결말을 맞이하게 되는지 알려주고 있었다.

어떤 부위에 어떤 고문을 하면 어떤 통증을 느끼고 어떤 감정을 느끼게 되는지도 서술하고 있다.

고문 피해자들이 오물을 지리며 여신상 앞에 엎드려 목숨을 구걸하는 모습과, 그것을 지켜보는 프리스트들의 그림이 버젓이 예술작품처럼 전시되어 있다.

이딴 게 어떻게 사회 교육에 기여하는 걸까.

공포?

체제의 안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공포를 심어줄 목적일까. 그렇다고 해도 이건 정도가 지나치다. 연방과 연합을 넘어서, 인간이라면 누구나 혐오감을 불러일으킬 내용뿐이었다.

"우욱."

"으으."

곳곳에서 헛구역질하는 학생들이 속출했고, 그렇지 않은 학생들도 표정이 어두웠다.

"말했지 않나! 너무 신경 쓰거나 몰입하지 마라!"

마침 그레리온이 성큼성큼 걸어들어왔다.

"정신력은 네크로맨서의 재산이다! 자꾸 생각날 것 같으면 그냥 눈을 감거나 고개를 돌리도록!"

학생들에게 그렇게 일러놓은 그레리온은 고개를 들었다.

고문과 학대로 죽은 네크로맨서들의 얼굴이 모여 이루어진 탑이 보인다.

"내가 아는 사람들도 몇 명 여기에 있겠지."

그는 묵념을 하듯 눈을 감았다가 떴다.

"신성연방에서는 죽은 시체를 일으켜 다시 싸우게 하는 우리의 기술을, 사(死)를 모욕하는 것이라 말한다."

그러곤 옆으로 성큼성큼 걸어가, 십자가에 매달린 사람의 눈을 감겨주었다.

"하지만 이 모습은 어떠한가. 이들은 생(生)을 모욕하고 있다. 살아 있는 사람을 붙잡아 살을 지지고 이빨을 뽑고, 눈을 짓이긴다. 그러곤 회복마법으로 죽을 권리를 빼앗은 뒤에 다시 고문하지."

그의 손에 힘이 꾹 들어갔다.

"살아 있는 사람에게 시체 이하의 취급을 하는 자들에게 그런 비난을 받는 건 납득하기 어렵군. 뭐, 어느 쪽이 더 정의고 도덕적인지는 역사가 정하겠지."

그가 고개를 돌려 학생들을 바라보았다.

"전원 서둘러라! 재료를 찾으러 가자."

"예!"

박물관은 무척이나 넓고 방대했다.

그리고 이렇게 방대한 장소에 온갖 상상하기도 싫은 끔찍한 것들이 가득했다. 인간에 대한 혐오감이 생길 정도의 광경도 있었다.

하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학생들의 목적지는 이 박물관이 아니라 그 위에 있었다.

얼마 안 가 진짜 목적지에 도착했다.

<쉐일리 가문>

시몬은 방어조로서 미리 목적지에 대한 정보를 받았다.

쉐일리 가문은 암흑연합에 살던 주민들을 끌고와 '교화령'을 명목으로 인권을 유린하고 노예로 부린 가문으로 악명 높았다.

전쟁광과 학살자들의 가문.

이 장소도 박물관이기 전에 쉐일리 가문의 저택이다. 박물관에 연결된 통로를 지나 저택 뒤편으로 들어오면, 영주와 가신들, 그들을 따르던 팔라딘들의 뼈들이 당당하게 세워져 있는 모습이 보인다.

검을 쥐게 한 채 손을 들어 올리고 있거나, 암흑연합의 주민 시체에 목에 걸린 사슬을 잡아당기거나 고문기계를 작동하게끔 한 모습도 보인다. 황금 목걸이나 호화로운 옷으로 치장한 상태다.

쉐일리 가문은 신성연방에 있어서도 전쟁영웅이라기에는 거리가 멀었다.

뒤에서 전쟁을 부추긴 뒤, 도시를 약탈하고 노예장사를 하는 등 전쟁으로 가장 많은 이윤을 본 사실상의 전쟁범죄자들.

그런 상황이니 쉐일리 가문은 자신들의 정당성을 인정받기 위해, 그리고 연방의 과격파들에게 충성심을 증명하기 위해 이런 학살과 고문의 박물관을 세운 것이다.

물론 지나치게 끔찍하기에 에프넬 측에서도 폐업명령을 내렸지만, 아직까지 여러 가지 이유로 버티고 있었다.

그리고 바로 이 건물에, 쉐일리 가문에서 활동한 팔라딘들의 유골이 진열되어 있었다.

"저기 있다!"

학생들이 우르르 몰려갔다.

아무래도 이 유골들이 아론이 말한 바로 그 팔라딘 시체가 맞는 것 같았다. 유리관 아래에는 그들이 벌인 참혹한 일들이 영광스럽게 적혀 있었다.

-국경 포로 200명 참살.

-포론 지방 31명 이단심문 사형, 본인 집행.

째애앵!

다들 망설이고 있는 그때 헥토르가 제일 먼저 주먹으로 유리창을 박살 낸 뒤에, 한 팔라딘의 유골을 꺼냈다.

누군가 먼저 시작하니, 다른 학생들도 앞다투어 달려들기 시작했다.

"뼈 상태가 상당히 좋은데."

"이거라면......!"

그레리온이 말한 바로는 팔라딘의 해골은 수가 한정되어 있으니, 한 번에 하나씩만 들고나와야 했다.

나중에 아공간을 점검해서 두 개 이상의 유골을 훔쳐온 학생은 간단한 징계로 끝나지 않을 거라고 엄포를 놓기도 했다.

그렇기에 학생들은 더더욱 신중히 팔라딘의 해골을 골랐다.

"......시몬?"

주위를 살피던 토토가 시몬을 돌아보며 말했다.

시몬은 이마를 짚은 채 벽에 몸을 기대고 있었다.

"혹시 어디 아파?"

"아, 아니. 난 괜찮아."

사실은 괜찮지 않았다.

시몬은 이 건물에 들어온 이후로, 계속해서 두통과 알 수 없는 기시감을 느끼고 있었다.

아까 그 박물관의 작품들을 보고 충격을 받아서 그런 건 아닌 것 같았다.

침이 꼴깍 넘어가고 몸이 파르르 떨린다. 안달 나고 조급한 감정이 머릿속을 뒤덮는다. 이런 건 처음 겪어보는 증상이었다.

시몬은 자신을 걱정하는 토토에게 애써 웃어 보였다.

"난 괜찮으니까 서둘러 토토. 데스나이트의 재료를 찾아야지."

"아, 응!"

토토가 떠나고 시몬은 몇 번 호흡을 골랐다.

그러고는 이곳에서 벗어나 다른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저벅. 저벅. 저벅.

복도를 지나서 뒤쪽으로 무작정 걸었다. 기시감이 점점 옅어졌다가, 짙어졌다가를 반복했다.

이내 층이 끝나는 부분에서 여러 방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쉐일리 가문의 일족이 머물던 곳이었다.

그중에서도 쉐일리 가주의 방이 끝에 보인다. 방문이 열려 있었기에 시몬은 그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레리통 쉐일리 1세>

벽면에는 가문의 뿌리인 레리통 쉐일리의 초상화가 보인다.

시몬은 주위를 쭉 둘러보았다.

이런 곳에 팔라딘의 유골 같은 게 있을 리가 없는데, 이 방에서 머리를 뒤덮는 그 기시감이 강해졌다.

'대체 뭐지? 나더러 뭘 어떻게 하라는 거야?'

시몬은 손바닥으로 주위를 훑어보며 관찰하다가, 벽면에 우편함이 있는 걸 확인했다. 이내 우편함 안으로 손을 넣자.

쿠르르르르!

벽이 통째로 흔들리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시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숨겨진 공간?'

벽이 뒤집히며, 시몬은 순식간에 벽 너머의 숨겨진 방으로 넘어왔다.

하얀 조명에 하얀 벽지. 그리고 처음 보는 여성의 초상화들이 가득했다. 웃고 있는 여성, 검을 들고 있는 여성, 차를 마시고 있는 여성.

그림에 나와 있는 여성의 복식이나 환경을 보면 상당히 오래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 넓은 공간에 중앙에 떡 하니 있는 동상. 바로 그 여성의 기도하고 있는 동상이었다. 시몬은 지끈거리는 두통과 기시감에 이끌려 그곳으로 다가갔다.

'여기 맞지? 여기서 뭘 하라는 건데?'

시몬은 조심스레 동상에 손을 대보았다. 찌릿하고 몸에 살짝 거부반응이 느껴졌다.

이제야 기시감의 정체를 깨달은 시몬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나는 뭐든지 할 수 있다.'

시몬의 몸에서 칠흑의 존재감이 흐릿해지며 풍부한 신성이 몸 안에 가득 차올랐다.

프리스트가 된 순간, 숨쉬기도 답답하며 침만 꼴딱꼴딱 넘어가던 '기시감'이 정체를 알 수 없는 '충족감'으로 바뀌었다. 시몬은 전율에 몸을 떨며 동상에 손을 올렸다.

"!"

세상이 뒤집혔다. 시몬의 눈앞에 두 개의 하얀 왕좌가 떡 하니 나타난 모습이 보였다.

'역시 너희들이었구나.'

시몬의 몸에 들어갔다 나온 성녀의 정수의 잔재들.

그 두 개의 왕좌가 눈앞에 뭔가를 설명하듯 선명히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이내.

"아!"

발을 딛고 있는 바닥의 감각이 사라지며 몸이 떨어진다.

아래로, 아래로.

끊임없이 추락하던 시몬은 어느새 새로운 공간에 들어와 있었다.

꽃잎들이 가득한 꽃밭. 시몬은 꽃들이 몸을 안락하게 잡아주는 걸 느끼며 고개를 들었다.

꿈속인지, 아니면 진짜 실존하는 장소인지도 모르겠다.

주위는 온통 꽃잎뿐이다. 시몬은 홀린 듯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나 꽃들을 가르며 걸어갔다.

투욱-

다리에 뭔가 닿는 게 느껴진다. 시몬은 꽃 안으로 손을 쑥 넣은 뒤에, 조심스럽게 팔을 들어 올렸다.

꽃잎에서 이질적일 만큼 새하얀 해골이 모습을 드러냈다. 흰 성복을 입은 상태에서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있는 자태.

그 손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문양의 깃발이 들려 있었다.

'대체.'

시몬이 고개를 들었다.

'여긴 어디고, 이건 누구의 해골이지?'

그 순간, 더 이상 움직일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해골이.

'......!?'

천천히 몸을 일으켜 시몬을 바라보았다.

* * *

같은 시각.

박물관 밖.

"......."

그레리온의 수석조교가 눈을 감은 채 마법진 위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건물 곳곳에는 허수아비 형태의 키메라들이 입을 벌리며 솟아 있었다. 시야를 왜곡시키고, 칠흑의 기운이 외부로 흘러나가지 않게 막아주는 '결계형 소환수'였다.

"선배!"

그때 한 조교가 헐레벌떡 뛰어왔다. 눈을 감고 집중하고 있던 수석조교가 고개를 들었다.

"무슨 일이야?"

"저, 저기! 하늘에......!"

수석조교가 고개를 들었다.

우우우우우웅-!

하늘에 피처럼 붉은 십자가가 떠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는 끔찍한 눈동자 하나가 마치 내부를 훔쳐보듯 떠 있었다.

그가 벌떡 몸을 일으켰다.

"제기랄!"

그는 다급히 통신수정구를 들어 올렸다.

"그레리온 교수님, 저 수석입니다! 이곳에서 빠져나가야 합니다! 지금 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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