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798화
"놔! 이거 놔!"
한 남학생이 다리를 버둥거렸다.
그는 세르네가 소환한 깃털병사의 어깨에 짐짝처럼 짊어져진 채 실려가고 있었다.
"이렇겐 못 가! 데스나이트 재료 없이는 절대 못 간다고!"
그러나 깃털병사에게 말이 통할 리가 없었다. 그저 주어진 명령에 충실했다.
박물관 뒤편에는 마지막 수송형 키메라가 대기하고 있었는데, 깃털병사는 키메라의 벌어진 입 안으로 포획한 학생을 던져넣었다.
"크윽!"
집어던져진 그가 고개를 들었다.
키메라 안에는 늦게 도착한 학생들이 굳은 얼굴로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가 미끌거리는 키메라의 체내에서 일어나려 애쓰며 절규했다.
"안 돼! 안 돼! 내가 뒈져도 이렇게 끝날 순 없어!"
학생이 키메라 밖으로 나가려고 했지만 덥석! 하고 그의 허리를 붙드는 손길이 있었다. 고개를 돌려보니 토토가 온몸으로 그를 붙잡은 채 낑낑대고 있었다.
"이거 놔! 뭐 하는 거야?"
"...프리스트들이 쳐들어왔나 봐. 그레리온 교수님이랑 방어조 애들이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어."
토토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나가 버리면, 우릴 지켜주는 다른 모든 사람들의 노력이 물거품이 돼."
"......."
그 말을 들은 학생은 입을 달싹거리며 말을 잇지 못하다가, 이내 털썩 자리에 앉았다.
"하, X바아아알."
그가 길게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고개를 젖혔다. 그제야 토토도 슬금슬금 눈치를 보며 허리를 붙잡은 손에 힘을 풀었다.
"야, 꼬맹이."
"으, 응."
"나 결국 데스나이트 재료 못 구했다."
그가 손등으로 눈을 슥슥 문질렀다.
"이대론 데스나이트 제작은커녕, 앞으로의 모든 실습에서 손 놓고 있어야 해. 수행평가 점수가 몇 개는 날아가는 거라고."
그의 손이 수전증이 일어난 것처럼 바들바들 떨렸다.
"내가, 어?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우리 가족은? 내가 키젠에 들어갔다고 가게도 내다 팔고 재료비 대주신 우리 가족은? 고향에서 다들 나만 보고 있을 텐데!"
"......."
"밖에 나가서 프리스트들이랑 싸우다 죽으나, 이렇게 손 놓고 있다가 3학년 못 돼보고 짤리나! 거기서 거기라면!"
그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차라리 시도라도 해보고 죽는 게 나아!"
"안 돼! 절대 안 돼!"
토토가 다시 그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았다. 남학생의 눈이 짜증으로 번들거렸다.
"X발! 넌 데스나이트 재료 구했다고 쉽게 말하지? 어?"
"나도."
토토가 구슬 같은 눈물을 뚝뚝 떨어뜨렸다.
"나도 못 구했어."
"......."
"하지만 더는 사람들에게 민폐 끼칠 수는 없어. 냉정해야 해. 조교 선생님이 전원이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하셨어. 우리가 여기 남는 게 모두를 위한 길이야."
잠시 침묵을 지키던 남학생이 털썩 자리에 앉았다. 그러고는 저 끝에서 안절부절못하며 위험한 거 아니냐며, 우리끼리라도 출발하자며 조교를 조르고 있는 학생 한 명을 보았다.
그가 '하하'하고 헛웃음을 흘렸다.
"인류애 떨어지네. 그래, 결론은 경쟁이지? 이 학교에 있으면 인성이 실시간으로 파탄 나는 것 같다. 그놈의 경쟁이 뭐길래......."
철컹!
그때 키메라의 안으로 '본 아머' 한 구가 뛰어들어 왔다. 토토의 눈이 커졌다.
"시, 시몬?"
다름 아닌 시몬의 드래고니안 슈트였다. 그것이 손에 가득 들고 있던 뼈들을 우르르 쏟아냈다.
엉망진창으로 섞여 있었지만 팔라딘의 시체였다. 약 4구 정도 되어 보였다.
"설마......!"
드래고니안 슈트가 토토에게 손짓으로 뭐라 설명했다. 그것을 알아들은 토토의 눈이 감격으로 그렁그렁해졌다.
"시몬의 메시지야! 없는 사람은 한 구씩 나눠 가지래!"
"진짜로?"
달리 데스나이트를 찾지 못해 퀭해 있던 다른 학생 두 명도 얼른 뛰어왔다.
뼈들의 상태가 그리 좋지 않았지만 이거라도 어딘가. 재료를 구하지 못했던 학생들 모두 그제야 입가에 조금이나마 미소가 어렸다.
그리고 키메라에서 조금 떨어진 장소에서.
"시몬은 사람이 너무 착해서 문제라니까요."
세르네가 싱글싱글 웃으며 말했다.
그런 그녀의 주위에는 깃털들이 날아다니고 있었고, 신성 크리처들이 박살 난 채 어질러져 있었다.
쩍!
시몬도 마침 발차기로 신성 크리처를 박살 낸 뒤 이마의 땀을 훔쳤다.
"가는 길에 다른 애들이 버리고 간 걸 발견한 건데 뭘. 내가 도울 수 있는 거라면 도와야지."
"어머나, 그게 강자의 여유인가요?"
그녀가 시몬의 팔뚝에 슬쩍 들러붙었다.
"그렇게 미련할 만큼 착한 마음가짐도 가끔은 좋네요."
'칭찬이지?'
"뭐 해?"
그때 시몬과 세르네 쪽으로 로레인이 걸어오고 있었다.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는 걸 보아 한바탕 큰 전투를 벌인 모양이다.
그녀가 째릿 세르네를 노려보자, 세르네는 어쩔 거냐는 듯 더더욱 시몬 쪽으로 몸을 밀착했다.
"로레인, 3층은 어떻게 됐어?"
시몬이 애써 웃으며 화제를 돌렸다.
"응, 마지막 인원 두 명까지 무사히 구출해서 보냈어. 재료도 구한 것 같더라. 이제 우리 방어조 외에 모든 학생들이 키메라에 타게 됐어."
과연.
저 멀리 막 키메라에 학생 두 명이 탑승하는 모습이 보였다.
세르네가 팔짱을 꼈다.
"그럼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할까요?"
"당연히 그레리온 교수님을 도우러......."
그렇게 말한 로레인의 동공이 급격히 흔들리기 시작했다. 시몬도 그녀가 본 방향을 바라보았다.
'아.'
시몬은 순간 넋을 놓고 말았다.
여기서는 먼 거리였지만, 선명히 보인다.
희뿌연 안개 속에서 붉은 십자가 드높게 드리워지는 모습을.
그 안에 박살 난 선글라스를 쓴 한 남자가 두 팔이 못 박힌 채 고정되어 있는 모습이 뚜렷하게 보였다.
로레인이 입을 틀어막았다.
"......그레리온 교수님?"
그 옆으로 작은 십자가가 하나가 또 세워졌다.
같이 싸우던 조교도 한 명 매달려 있었다. 지켜보던 시몬은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키젠 교수가 당했다고?'
대체 누가.
어떤 프리스트가 이곳에 왔단 말인가.
시몬의 표정이 얼어붙어 있는 사이, 세르네가 턱을 괴며 말했다.
"이대로 전부 붙잡아서 처형할 생각인가 봐요. 악취미네요."
"......구하러 가야 해."
"안 돼요, 시몬. 상대는 심문청장 레이트예요."
온몸의 피가 싸늘하게 식는 기분이었다.
예전에 신성연방에서 심문청장 레이트를 한 차례 가까이에서 본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가 얼마나 강한지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가겠어."
시몬이 아공간을 열어젖혔다.
그 안에서 키가 큰 스켈레톤이 무형의 망토를 휘날리며 모습을 드러냈다.
[크흐흐흐! 간만에 기분 좋은 긴장감이군!]
7군단의 관리자인 피어였다.
거기에 시몬은 좀비를 꺼내고 왼손에 낀 반지에 속삭였다.
"프린스. 내 말이 들리면 다른 일은 제쳐두고 이리로 와줘."
이내 반지를 좀비에 댔다.
잠시 후 검은 번개가 콰르르릉 떨어지며 좀비가 귀족 복식을 입은 귀공자로 변했다.
[뭐야, 오랜만에 소환됐는데 갑자기 신성연방이야?]
좀비 부대의 대장, 프린스였다.
시몬은 군단의 힘까지 쓸 생각이었다. 그가 진심이라는 걸 깨달은 세르네는 입맛을 다셨다.
"너희들은 키메라와 함께 물러나. 그레리온 교수님은 내가 어떻게든......."
치익.
그때 잠자코 가만히 있던 로레인이 통신 수정구를 작동시켰다.
"조교 선생님, 학생들을 데리고 출발해 주세요. 저희가 어떻게든 그레리온 교수님을 구해서 돌아가겠습니다."
-로, 로레인 학생! 하지만......!
"지금은 비상상황이니, 아크볼드의 이름으로 명하겠습니다. 출발하세요."
아크볼드의 이름이 나오니 조교는 더 말을 꺼내지 못했다. 결국 학생들을 태운 긴 지네 같은 키메라가 먼저 움직이기 시작했다.
"시몬. 잘 들어."
로레인이 손을 움직여 목에 차고 있는 이능을 봉인하는 목걸이에 가져다 댔다.
그사이 세 번째 붉은 십자가가 올라왔다. 그것에도 조교 한 명이 붙들려 있었다.
서두르지 않으면 모두 레이트에게 처형당할 것이다.
"내가 봉인을 풀고 이능과 칠흑을 일으키면, 레이트는 무조건 이쪽으로 올 거야."
"뭐?"
"너는 그사이 그레리온 교수님과 조교 선생님들을 구해줘. 알았지?"
시몬이 망설이자 로레인이 진중한 붉은 눈동자로 그를 바라보았다.
"너만 할 수 있는 일이야, 부탁해 시몬."
그녀의 결심은 굳건했다. 시몬이 고개를 끄덕이고 세르네를 보았다.
"세르네."
"네에, 같이 갈까요?"
세르네가 뒷짐을 진 채 등을 돌려 걸어가고 있는데, 시몬이 덧붙였다.
"여기 남아서 로레인을 지켜줘."
그녀가 걸음을 멈추었다. 시몬은 목소리에 힘을 담아 말했다.
"부탁이야."
"......."
이내 뒤를 돌아본 세르네의 입가에 여우 같은 미소가 걸렸다.
"오랜만에 쿠폰 도장 찍는 거 다시 재개해야겠네요. 좋아요."
"시간이 없으니 바로 시작할게."
로레인이 봉인구를 벗었다.
화아아아아아아악!
그녀의 검은 머리카락이 거칠게 흔들렸다. 로레인의 이마에서 두 개의 붉은 뿔이 돋아났고, 루비 같은 눈동자가 번들거렸다. 주위의 공간이 쩍 쩍 벌어지기 시작했다.
"시몬! 가!"
"부탁해!"
시몬이 두 팔을 벌렸다. 피어가 곧장 뛰어 들어와 본 아머의 형태로 변하고, 뒤이어 프린스가 옆으로 따라붙었다.
시몬과 프린스가 바닥을 박차고 뛰어갔다.
"흐음-"
세르네가 마구 휘날리는 상앗빛 머리카락을 붙잡은 채 정면을 응시했다.
"과연 그 괴물이 올까요?"
"반드시 올 거야."
로레인이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레이트에 대한 이야기는 귀에 딱지가 박히도록 들었어. 그는 강한 힘과 호승심에 반응해."
그녀의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두 소녀의 전면에서 눈 달린 십자가 허공에 일어났다.
그 십자가의 동공이 로레인의 모습을 담았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저 멀리서 거대한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내 하얀 안개가 이쪽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 모습은 마치 죽음을 형상화한 무언가가 한 발 한 발 다가오는 것만 같았다.
후우우우웅-!
이내 안개 속에서 레이트가 크로스 블레이드를 들고 모습을 드러냈다.
몸 곳곳이 피범벅이었다. 복부와 어깨, 심지어 목에도 키메라의 뼈와 관절 등이 박혀 있었다.
그레리온이 구사한 키메라 필드 안에서 얼마나 치열한 전투가 오갔는지 알 수 있는 광경이었다.
"이게 누구야. '죽음의 마녀'의 힘이 느껴지길래 서둘러 왔더니."
터업.
그가 자리에 멈춰 서서 목에 박힌 척추뼈를 뽑아내 바닥에 떨어뜨렸다.
"마녀의 딸이로군. 로레인 아크볼드였나?"
"......심문청장 레이트."
그녀가 허벅지에서 단검을 뽑아 앞으로 세웠다. 로레인의 이능이 단검을 깨우며 붉은 기운을 일으켰다.
"당신이 일으킨 무수한 죄악들, 전부 알고 있어. 오늘이 바로 당신의 끔찍한 행보가 끝나는 날이야."
"재미있군."
레이트가 태연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네프티스의 딸이라 조금 더 힘이 무르익은 뒤에 맛보고 싶었지만, 이런 기회를 놓치는 건 멍청한 짓이겠지."
그가 괴물처럼 입가를 벌렸다.
"혹시 아나? 딸을 십자가에 매달면 그 어미도 곧 내 앞에 나타날지도."
로레인의 표정이 살벌하게 일그러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레이트는 그 옆의 세르네를 보았다.
"이쪽도 유명한 인물이군, 미래의 상아탑주."
"어머나, 알아봐 주시네요?"
세르네가 옷자락을 붙잡아 자세를 낮추며 살짝 인사했다.
"죽음의 마녀의 딸과 느긋하게 즐기고 싶은데, 이번만큼은 못 본 척해주지."
"흠-"
세르네가 허리에 손을 올리며 고민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레이트가 덧붙였다.
"늘 키젠을 무너뜨리고 싶어 했지 않나. 나를 이용해 이 여자를 없앨 절호의 기회일 텐데."
"백번 맞는 말이긴 한데요."
세르네가 칠흑을 개방했다.
그녀의 몸에서 깃털들이 흘러나와 허공으로 떠올랐다.
수백의 깃털들이 뭉치고 뒤섞여 무수한 마법진으로 모습을 바꾸었다.
"잘 보이고 싶은 남자가 이 인간을 지키라고 부탁까지 했는데, 나중에 원망받을 수는 없잖아요?"
"그럼 둘 다 매다는 수밖에."
스릉.
레이트가 고쳐 쥐고 자세를 낮추었다.
"너희 교수는 나를 세 번은 죽였다. 너희는 어떨까?"
레이트가 쏘아져 나가고 로레인과 세르네가 동시에 흑마법을 일으켰다.
거대한 폭음이 연달아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