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802화 (802/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802화

"다나 성녀님의 명입니다. 물러나십시오."

그 말을 들은 레이트의 표정이 해괴하게 일그러졌다. 사제복을 입은 여성이 말했다.

"성녀님의 전언입니다. 사소한 일로 중대한 대업을 망치지 말고 돌아와라. 여기서 사고가 나면 그 이상은-"

그녀가 눈을 치켜떴다.

"나로서도 막아줄 수가 없다. 라고 하셨습니다."

"......."

레이트가 하. 하고 나지막한 코웃음을 쳤다.

"그 여자까지 겁쟁이 병이 전염되기라도 한 건가."

쿵!

그가 손에 쥔 크로스 블레이드를 들어서 땅에 찍자, 크기가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래, 큰 파이를 예약해 놨다면 참아야겠지."

그의 눈깔이 돌아가 뒤쪽을 향했다.

"더 큰 전장에서 죽고 죽여보자고, 이단들."

레이트와 신관이 등을 돌려 돌아갔다. 그들이 돌아가는 방향에 게이트를 연상케 하는 신성 마법이 펼쳐져 있었다.

한 네크로맨서가 아론에게 다가와 속삭이듯 물었다.

"저, 정말 이대로 놔주실 겁니까? 레이트가 눈앞에 있는데요."

아론은 피곤한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부상자들과 학생들의 목숨을 담보로 싸울 필요는 없다. 하물며 우리가 놔주는 게 아니라, 저놈이 우리를 놔주는 거다."

아론이 등을 돌려 외쳤다.

"공격 중지! 전투는 끝났다. 부상자의 회복에 전념해라."

그제야 네크로맨서들이 흑마법의 영창을 중지하고는 빠르게 흩어졌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가슴 졸이며 상황을 지켜보던 학생들도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아론은 몸을 완전히 돌려, 린과 룬 쌍둥이 에이션트 언데드 쪽을 보았다.

"두 분 모두 급한 때에 도움을 주러 오셔서 감사합니다."

"뭘~ 제대로 싸우지도 않았는데. 그렇지 린?"

"맞아, 룬!"

본래 린과 룬 두 에이션트 언데드는 다른 전장에 있어야 하지만, 이번에 그녀들이 나타난 건 네프티스의 안배였다.

귀찮은 능력을 가진 두 사람의 존재감이, 레이트가 손을 떼고 돌아가는 데 한몫했으리라는 건 두말할 필요도 없었다.

"아론 교수님!"

"린 교수님! 룬 교수님!"

상황이 일단락되자, 물러나 있던 소환학과 학생들이 몰려들었다.

"괜찮으세요?"

"그래, 다들 무사했나."

아론이 제자들을 보며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린과 룬도 오랜만에 본 학생들과 잡담을 했다.

그사이 학생들을 통솔했던 재료학 수업의 조교들도 허겁지겁 뛰어왔다. 아론이 그들을 보았다.

"사상자는?"

"다행히 학생들은 모두 무사합니다. 다만......."

재료학 수업의 수석조교가 고개를 떨구었다.

"그레리온 교수님과 조교 두 명이 크게 다쳤습니다. 특히 교수님은 레이트에게......."

"그런가."

아론이 눈을 꾸욱 감았다가 떴다.

"내가 가보겠다."

"부상 병동에서 긴급 조치를 받고 있습니다. 이쪽으로."

아론과 수석조교가 빠르게 걸어갔다. 그러다 아론은 문득 생각났다는 듯 걸음을 멈추고 학생들을 돌아보았다.

"사소한 부상이라도 있다면 보고해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소환학과 전원, 로크섬으로 복귀한다."

"네!"

* * *

학생들은 모두 무사히 키젠으로 돌아왔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레이트의 등장이었고, 붙잡히거나 연방에 낙오될 뻔한 상황도 있었지만 순수하게 결과만 놓고 본다면 아론의 이번 임무는 성공적이었다.

학생들은 전원 무사했고, 모두가 타락형 데스나이트의 핵심 재료인 팔라딘의 유골을 손에 넣었으니까.

공식적인 부상자는 그레리온과 조교 두 명. 특히 백전노장인 그레리온은 이쯤이야 젊을 때 많이 겪어봤다며 탈탈 털고 일어났다고 한다.

복귀까지는 2주 정도가 걸린다는 것 같았다. 같이 십자가에 매달렸던 조교 두 명은 몇 달간 유급휴가를 내주기로 했다.

사실 시몬도 싸우다가 레이트에게 약간의 부상을 입었지만, 괜히 병동에 들어가서 학생이 임무 중에 다쳤다는 소문이 퍼지면 아론에게 좋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로크섬에 돌아가 신성 방어학 교수 파라한에게 치료받았다.

그렇게 사건 이후, 방어조이자 직접 레이트를 상대했던 시몬과 로레인, 세르네는 키젠 본부의 조사를 받게 됐다.

그곳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누구와 싸웠는지 본부 직원 앞에서 이야기했다.

"에프넬의 고문 박물관이 완전히 파괴되었다고 하더군요."

본부 직원이 안경을 추켜올리며 사진을 내밀었다.

시커먼 폭발의 흔적과, 박살 난 건물들이 보인다.

"폭발은 신성이 아닌, 칠흑의 흔적이었습니다. 당시 그레리온 교수님은 의식을 잃은 상태라 상황을 기억하지 못하셔서요. 뭐라도 아는 바가 있다면 이 자리에서 말씀해 주시길 바랍니다."

시몬이 찔끔한 표정을 지었다.

그건 프린스의 시체폭발의 화력 조절에 실패해서 벌어진 일이었다.

'어쩐다?'

배신의 군단장이 레이트와 싸웠고, 자신은 그 전투를 목격했다고 해야 하나?

아니,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다. 괜히 배신의 군단장이 여기에 왔다는 사실 자체가 의심을 살 여지가 있다.

시몬이 어떻게 할지 고민하고 있는데.

"제가 했습니다."

로레인이 손을 들었다. 시몬이 놀란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레이트와 교전 중에 화력을 주체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죄송합니다."

"로레인 아가씨...... 아니, 학생."

본부 직원이 선글라스를 치켜올렸다.

"학생의 이능이 파괴했다기엔......."

"나도요."

세르네도 한마디 덧붙였다.

"박물관 근처에서 싸우다가 화염마법이 좀 튀었거든요. 그것 때문에 시설이 좀 무너지고 그런 것 같은데, 문제 될 거 있나요?"

'세르네까지.......'

본부 직원은 안경 너머로 두 사람을 번갈아 응시하더니, 이내 작게 한숨을 흘리며 수첩에 몇 마디 적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렇게 알겠습니다. 다음 질문입니다."

다행히 두 사람의 진술 덕분에 어떻게든 넘어간 것 같았다.

시몬은 크게 속으로 안도하며 그녀들에게 마음속으로나마 감사의 인사를 보냈다.

별 탈 없이 질문이 오갔고, 이내 조사가 모두 끝났다.

"지겨워라."

건물 밖으로 나오는 길에, 세르네가 기지개를 쭉 켰다.

시몬은 다시 한번 감사인사를 했다.

"두 사람 다 고마워."

로레인이 빙그레 웃었다.

"아냐, 현장에서는 오히려 내가 시몬에게 도움을 받았잖아."

세르네도 눈꼬리를 휘었다.

"우리 위태로운 배신의 군단장님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두 사람은 함께 캠퍼스를 걸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특히 시몬은 궁금했던 점들을 물어보았다.

"신성연방 쪽은 어떻대?"

혹시나 이번 박물관 파괴가 전쟁이나 분쟁의 불씨가 되지 않을까 염려스러웠다.

"이상할 만큼 아무 소식도 없어."

로레인이 차분한 어조로 답했다.

"에프넬에서 이번 사태를 철저하게 묻으려는 것 같아. 박물관 폭파 사건도 자신들이 알아서 은폐하고 있어."

"의외네요."

세르네가 입술을 달싹였다.

"보통 이런 건수를 잡으면, 외부의 적에 대립각을 세우고 내부의 결속을 다지는 식으로 써먹는 게 신성연방의 방법인데."

"그러네. 국경 방어선이 허무하게 뚫려 버렸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곤란하다고 판단했거나-"

로레인이 팔짱을 끼며 말을 이었다.

"혹은 그 박물관에 뭔가 중요한 물건이 있었을 수도 있어. 예를 들면 성유물 같은."

"그건 아니라고 봐요."

세르네가 고개를 내저었다.

"그 박물관. 상아탑의 정보망으로 확인해보니 신성연방 주민들 사이의 여론도 상당히 나쁘다고 하네요. 지나치게 끔찍한 전시물이 오히려 신성연방과 에프넬에 대한 이미지를 훼손시킨다고 해서 말이 많대요. 그런 곳에 중요한 성유물 같은 게 있을 리가 없죠."

시몬은 키젠과 상아탑의 정보들을 번갈아 들으면서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때 로레인이 물었다.

"시몬은 팔라딘의 유골을 확보했어?"

"아, 응."

그거 제대로 된 팔라딘 맞겠지?

시몬이 옆머리를 긁적이며 애써 웃었다.

"아마도."

설마 자신이 가져온 그 유골이 신성연방이 정보를 통제했던 이유라는 사실을.

시몬은 아직 모르고 있었다.

* * *

사태는 무사히 수습되어 갔다.

그레리온이 부상당했으니 다들 여러모로 자중하고는 있었지만, 사실 내부적으로 소환학과의 사기는 상당히 올라가 있었다.

무사히 국경을 넘었고, 심지어 악명높은 레이트의 추격까지 따돌렸다. 소문이 퍼져 나가며 다른 학과에서도 이번 일들을 이야기했다.

시몬의 활약은 물론, 소환학과의 행보 또한 확실히 교내의 주목을 받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제기랄."

이 모든 흐름이 마음에 안 드는 한 사람이 있었다.

전체 6위에 사령학과 대표.

현재는 전체 5위에 키젠 부회장이 된 소타 프쉬케였다. 그는 로체스트의 텅 빈 카페에 앉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왜 이렇게 거슬리지? 왜 이렇게 하나하나 신경이 쓰이냐고."

소타는 모든 게 거슬렸다.

시몬 폴렌티아의 행보가.

교묘하게 자신의 계획을 피해 가는 이 모든 상황들이.

특히 최근에는 파라한의 조교를 움직여 시몬의 드래고니안을 부수려고 했는데, 역으로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시몬의 이름과 명성만 드높여주는 격이 되었다.

윌 더글라스를 움직여 시몬의 기를 꺾어놓으려 했지만, 그마저도 소환학과 대표 레오나드가 시몬을 감싸고 도는 바람에 실패.

그 외에도 1학년과 2학년 시위대를 주도하는 클라우디아도 상당한 골칫덩이였다. 자신에게 정보를 내어주는 3학년 교수들이 그녀의 눈치를 보느라 제대로 움직여 주지 못하고 있었다.

'다들 뭐 때문에 그 자식을 돕는 거지? 권력을 잡은 건 우리인데!'

시몬이 어려움에 빠지니 자진해서 돕는 사람들이 하나둘 튀어나온다. 경쟁주의적인 키젠에서는 쉽게 보기 힘든 일들이었다.

"이만 돌아가자, 소타. 언제까지 기다릴래?"

소타와 같이 카페에 온 3학년 동기가 하품을 하며 말했다.

"두 시간 넘게 기다렸는데 안 오는 거 보면 끝이야. 애초에 그 인간이 '니가 만나줄 때까지 몇 시간이고 기다리고 있겠다'는 편지에 흔들릴 사람도 아니고."

"......끙."

소타가 앓는 소리를 내며 눈을 감았다.

지금 이 자리는 '3학년 전체 2위'를 발락 학생회 쪽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자리였다. 하지만 그녀는 모습을 드러내지도 않았다.

레오나드와 시몬이 그녀에게 접촉하기 전에 선수를 쳤지만, 결국 결과는 실패였다.

"너답지 않게 요즘 너무 성급해. 소타."

그의 동기가 손에 든 구슬을 빙빙 돌리며 말했다.

"발락을 못 믿는 거야? 그렇게 빡빡하게 시몬 폴렌티아를 견제할 필요가 있을까?"

"당연히 있지!"

소타가 이를 갈았다.

"너도 알잖아! 학생회장 결투에서, 시몬 폴렌티아가 발락이랑 한동안은 대등하게 싸웠다며?"

"그거야 발락이 에이젤을 잡고 오느라 힘이 빠졌을 테니까. 현장에 있는 그레리엄 가문이랑 레오나드도 견제해야 했을 테고."

"역시 불안해."

소타가 손톱을 깨물었다.

"불안해! 더럽게 불안하다고! 나는 무조건 키젠 3학년 '부회장'으로서 졸업해야 해! 외부에도 이미 그렇게 이야기를 싹 다 맞춰놨어. 내 목표에 일말의 변수도 생기는 건 용납 못 해!"

"사서 고생하긴."

동기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소타는 불안한 얼굴로 손톱을 물어뜯었다.

변수란 건 혐오스럽다. 1학년 신입생 시절부터 꾸준히 작업해 둔 '에이젤'을 이용한 계획.

실력은 확실하지만 내적으로는 심약한 에이젤을 자신에게 의존하게 한 뒤 휘둘렀다. 지금 돌이켜 봐도 그 계획 자체는 완벽했다.

그러나 하나둘 튀어나온 사소한 변수들이 쌓여가며, 그 완벽했던 계획이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했다.

힘들여 장기 임무를 걸어놨더니, 학생회장직이 부담스러운 에이젤이 복귀일을 늦추었다. 이에 판타서스가 변덕을 부려 시몬을 회장직에 올렸고, 결투 상대인 시몬과 접촉한 에이젤의 성격에 변화가 일어났다.

변수. 변수. 변수.

물론 발락과 시몬이 싸우면 매우 높은 확률로 발락이 이기겠지만, 소타가 이러한 변수들을 편집증적으로 차단하려는 이유가 있었다.

특히 발락에게 도전권을 가진 시몬은 절대로 가만히 둘 수 없었다.

"그래서, 다음 계획은 뭔데?"

동기가 불쑥 물었다.

"소환학과 기숙사 관리원을 영입하는 것도 레오나드에게 막혀 버렸고, 3학년 교수들은 클라우디아가 학부모들을 동원하는 걸 막느라 정신없고, 하수인들은 그 딕인가 뭔가 하는 2학년이 꽉 잡고 있다며? 본부 연줄을 움직이려 해도 로레인 아크볼드가 있어서 힘들 거고."

소타는 한숨을 푹 쉬고는 입을 열었다.

"그 정보통이라는 '유급생' 섭외는 어떻게 됐냐? 2위 섭외에 실패하면 그 녀석이라도 먹어둬야 해. 2학년이라도 일단은 우리 동기니까......."

"유급생이면 카쟌 말이야? 걔 시몬이랑 친하잖아."

"뭐?"

"작년에 같은 기숙사 룸메이트였다는데."

쾅!

소타가 테이블을 내리쳤다.

"이게 말이 되냐고!"

세상이 억지로 자신을 깎아내리는 느낌이다.

대체 시몬 그놈이 뭐라고 인맥이 이렇게나 방대하단 말인가.

시몬 폴렌티아를 적으로 생각하는 순간, 그가 만들어놓은 관계들이 무섭게 느껴지기도 했다.

"학교생활 알차게 잘했네, 고놈."

동기가 실실 웃으며 말했다. 소타가 동기를 한번 째려본 뒤, 입을 열었다.

"이제 방법은 하나뿐이야."

"뭔데?"

"곧 2학년에 있을 단체시험."

소타가 이를 갈았다.

"거기서 시몬 폴렌티아를 키젠에서 축출한다."

* * *

그날 주말, 빈 강의실.

A반 멤버 정규 스터디.

시몬 일행은 빈 강의실에 들어와 함께 스터디 모임을 하고 있었다.

"얘들아, 그거 들었어?"

공부 시작한 지 10분 만에 딕이 실실 웃으며 말을 시작했다.

"이제 곧 2학년 단체시험이 시작된다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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