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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803화 (803/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803화

한 시간 전.

A반 멤버들과 약속했던 정규 스터디 모임이 있는 날. 시몬은 조금 일찍 약속장소에 도착했다.

최근에는 여러모로 화제의 인물이 되는 바람에, 교내 도서관이나 카페같이 사람들이 바글거리는 장소에 가는 건 꺼려졌다.

멤버들도 그런 시몬의 사정을 알고 캠퍼스 내의 빈 강의실에 모이기로 약속한 것이다.

"웃차."

시몬은 책상 네 개를 가지런히 붙여놓은 뒤, 의자를 빼고 자리에 앉아 잠깐 숨을 돌렸다.

창밖을 보니 캠퍼스 정원에 꽃이 화사하게 핀 모습이 모인다. 흰색, 분홍색 꽃잎이 나풀거리며 떨어지고 있고, 그 근처에 돗자리를 깔고 앉은 학생들이 꺄르르 웃으며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한가한 주말 캠퍼스의 광경.

'좋다.'

시몬은 기분 좋은 바람을 만끽하며 숨을 골랐다.

토도도도도.

잠시 그렇게 쉬고 있으려니, 강의실 밖으로 앙증맞은 발소리가 들린다. 시몬은 발소리만 듣고도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복도 방향 창가를 보니, 총총 움직이는 정수리와 함께 삐쳐나온 연보라색 머리카락 한 가닥이 좌우로 흔들리고 있었다.

이내 연보라색 머리카락이 창가를 지나가고. 문 앞에서 꽤 길게 뜸을 들이다가 똑똑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다.

"응, 들어와."

드르륵-

마침내 나무문이 옆으로 열리며, 단정한 교복 차림의 카미바레즈가 스커트 자락을 흔들며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시몬!"

그녀가 손에 젤리와 초콜릿 따위가 든 바구니를 들어 올린 채 화사하게 웃어 보였다.

"바구니 데이! 분위기 낼 겸 해서 한번 준비해 봤어요!"

"응?"

그녀가 종종걸음으로 다가와 시몬에게 바구니를 샥 내밀었다.

"괜찮다면 받아주세요!"

"아. 응. 고마워."

시몬이 진땀을 흘리며 바구니에 가득 든 군것질거리를 받았다.

'오늘 무슨 날이었던가?'

산골 출신의 입장에서는 늘 이런 기념일이 어렵다. 유행을 따라가기 힘들었고, 모르고 있으면 '설마 그것도 몰랐어?' 하는 시선이 두렵다.

그래도 모른 척 받는 건 예의가 아니기에, 용기를 내어 물었다.

"카미. 내가 잘 몰라서 그러는데 오늘 무슨 날이야?"

"네! 바구니 데이예요!"

그녀가 밝게 피어나는 목소리로 답했다.

"바구니나 소쿠리에 군것질거리를 가득 담아서 주는 날이에요!"

"그, 그렇구나. 알려줘서 고마워."

"주머니 같은 것에도 넣을 수 있어요. 이렇게요."

카미바레즈가 교복 주머니에 작은 알사탕을 꺼내 보였다.

"칼로스 왕국에서 시작된 행사인데, 사랑과 복을 가득 담는다는 의미래요!"

재잘재잘 참새처럼 이야기하는 카미바레즈의 이야기를 들으며 시몬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암흑연합은 4대 왕국이 합쳐있는 형태이다 보니, 키젠처럼 전 지역에서 모인 사람들이 가득한 학교의 경우 각 왕국의 기념일이나 행사일을 모두 챙겨야 하는 문제가 있었다.

"미안하지만 나는 줄 게 없는데."

"괜찮아요! 바구니 데이는 보통 여자애가 남자애에게 선물하는 날이니까요!"

"그렇구나."

또 조만간 케이크 데이니 액세서리 데이니, 받은 대로 돌려줘야 할 생각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드르륵-!

"헤이!"

이번에는 딕이 문을 옆으로 밀며 등장했다.

그는 어깨에 커다란 종이뭉치를 짊어졌는데, 입가에는 대충 근처 매점에서 산 듯한 샌드위치를 물고 있었다. 최근에 학생회에서 물러난 뒤, 로체스트에서 장사를 시작하느라 바쁘다는 것 같았다.

"시몬! 카미! 둘 다 오랜만이다!"

"딕!"

카미바레즈가 또 하나의 바구니를 들어서 딕에게 보였다.

"바구니 데이! 선물이에요!"

풀썩.

딕이 입에 물고 있던 샌드위치를 놓치고 말았다. 그러고는 감격한 얼굴로 한쪽 무릎을 꿇더니 덜덜 떨리는 손으로 바구니를 붙잡았다.

"지, 진짜 이거 내 거야?"

"그럼요!"

딕이 '크흡'하고 눈가를 닦는 시늉을 했다.

"역시 기념일에 나한테 뭐 챙겨주는 건 카미뿐이라니까. 고맙다!"

"아하하. 대단한 것도 아닌데요 뭘."

딕은 바구니를 보란 듯이 책상 위에 올려놓은 뒤, 웃차차 하고 의자에 앉아 허리를 두들겼다.

"아, 그래도 카미 덕분에 기숙사에 돌아가면 면은 세우겠다. 시몬, 넌 뭐 좀 받았냐?"

"응. 카미한테."

"하하하하! 너도 나랑 똑같네? 어?"

낄낄대며 웃어대던 딕이 갑자기 뭔가 발견했는지 손을 뻗었다.

"근데 교복 주머니에 그거 뭐야."

"?"

시몬은 뒤늦게 자신의 주머니를 보았다. 삐쭉삐쭉한 막대가 가득하기에 손을 넣어보니, 전부 사탕이었다. 한 움큼 가득 잡혔다.

"아."

시몬이 쓰게 웃었다.

"그러고 보니 여기까지 올 때 애들이랑 이상하게 많이 부딪히긴 했는데."

"......크흐읍, 인기남들 싹 다 죽었으면."

딕이 손바닥으로 제 얼굴을 마구 쓸어올렸다.

잠시 후 메이린도 '안녕~'하고 발랄하게 인사하며 강의실에 들어왔다. 그녀는 바구니 대신 고급스러운 디자인의 푸딩 상자를 시몬과 딕에게 하나씩 건넸는데, 알고 보니 상자 겉면에 바구니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이런 식의 형태도 가능한 모양이다.

이내 학생으로서 이상한 기념일도 챙긴 네 사람은, 자리에 둘러앉아 본래 목적인 공부를 시작했다.

"얘들아, 그거 들었어?"

시작한 지 10분 만에 딕이 실실 웃으며 입을 열었다.

"이제 곧 2학년 단체시험이 시작된다던데."

"쫌."

문제집을 펼치고 문제를 풀고 있던 메이린이 눈을 흘겼다.

"이제 2번 문제 풀고 있거든!"

"주말인데 공부는 살살 좀 합시다 우리."

카미바레즈는 호기심이 가는 듯 날개를 파닥거렸다.

"단체시험이 2학년 버전의 '섬 생존평가'라는 소문은 들었어요! 어떤 시험일까요?"

"그렇게 궁금해할 줄 알고 내가 몇 가지 후보지들을 추려왔지!"

딕은 기다렸다는 듯 테이블에 지도부터 펼쳤다. 메이린의 문제집이 지도에 가려지자 그녀의 눈에 화르륵 불이 붙었다.

"세린 섬, 체논 섬, 가라온 군도, 레흘론 군도. 그 외에 다른 곳들까지 합쳐서 총 여덟 군데야. 로크 섬 내 물류가 직접적으로 움직인 지역이지."

호기심이 생긴 시몬이 고개를 쭉 빼 밀고 지도를 보았다.

"지도상으로는 이 중에 어디서 시험을 칠지 전혀 감이 안 잡히는데."

"맞아, 이걸로는 알 수 없지. 하지만 후보지로 뽑힌 여덟 개 섬의 공통점을 말해보자면!"

딕이 씩 웃으며 입가를 훔쳤다.

"인간이 살긴커녕, 몬스터도 살아남기 힘든 극한의 환경이야. 이번 단체시험의 테마도 1학년 때처럼 '생존'일 가능성이 커!"

단체시험에는 경쟁, 협동, 생존 등 여러 바리에이션이 존재한다. 딕은 그중에서 '생존'에 주목하고 있었다.

결국 메이린도 한숨을 쉬며 깃펜을 내려놓았다.

"생존은 1학년 때 한 번 했으니까 협동이겠지, 멍충아."

"내가 생존이라고 확신하는 이유가 있어! 일단 2학년 1학기가 끝난 뒤, 생각보다 퇴학자가 적었거든. 결평 최하위 스쿼드에서 성적 미달자들이 조금 나가는 정도?"

그가 손가락으로 숫자를 만들었다.

"현재 2학년 2학기 전교생 370명이야. 너무 많이 살아남았단 거지. 다들 알다시피 일반적으로 키젠의 1학년 입학자 수는 1,000명, 2학년 수는 300명대고, 3학년 수는 150명 정도거든? 우리 기수가 유독 많이 살아남은 거야."

그러니까. 하고 딕이 말을 이었다.

"교내 인원수를 맞추기 위해서라도, 이번 단체시험에서 학생들이 많이 떨어져 나갈 것 같다는 게 잔뼈 굵은 하수인이나 조교들의 의견이야. 느슨한 2학기 키젠 생활에 긴장감도 줄 겸해서."

"음."

"그러니 지금 공부만 할 때가 아니란 거지. 생존 관련 흑마법을 갈고닦아야 한다고!"

꽤 그럴듯한 추측에 긴장감이 흘렀다.

열심히 떠들던 딕이 동기들의 눈치를 보며 흠 하고 헛기침을 했다.

"행복한 바구니 데이에 떠들 만한 이야기는 아니었나?"

"아니, 미리 알아두고 대비해서 나쁠 건 없다고 생각해."

시몬이 말했다.

메이린은 흠- 하고 옆머리를 쓸어넘겼다.

"그럴듯하게 들려도 일단은 또 바보 평민의 추측일 뿐이잖아? 학교에서 시험 정보나 테마를 공개하기 전에는 뭔가를 준비하기도 애매해."

카미바레즈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 전까지는 열심히 공부하면서 우리 역량을 끌어올리는 수밖에 없어요. 결국 그게 생존에도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역시 카미! 그럼 다시 공부하자!"

결국 메이린의 승리였다. 다들 깃펜을 들고 힘차게 공부를 시작했다.

그러나 조용히 깃펜을 사각거리는 소리는 얼마 가지 않았다. 메이린이 뿌득 하고 깃펜을 부러뜨렸다.

"아, 저것들 진짜아!"

복도 창밖에서 한 무리의 학생들이 시몬을 보고 있었다. 배지가 없는 걸 보니 1학년들이었다.

시몬이 하는 수 없이 웃는 얼굴로 손을 흔들어주자, 복도 밖으로 꺄아악 거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프로즌>

메이린이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 창가에 손바닥을 댔다. 창문에 서리가 끼는 것으로 창밖이 보이지 않게 됐다.

안이 들여다보이지 않자, 결국 학생들이 떠나는 발소리가 들렸다.

"야, 좋냐?"

메이린이 툴툴거리며 말했다. 카미바레즈는 시몬 쪽을 슬쩍 보았다가 눈을 내리깔고 다시 문제를 풀기 시작했다. 딕이 제 무릎을 치며 껄껄 웃었다.

"요즘은 어딜 가도 시몬 이야기가 기본이지!"

"......아니, 이해가 안 되네. 대체 왜 학생회장일 때보다 인기가 더 많아지는 건데?"

"아, 당연한 걸 모르네!"

딕이 시몬 쪽으로 손바닥을 세우며 말했다.

"과거엔 에이젤의 대타인 낙하산 2학년 학생회장! 현재는 학교의 불의 때문에 내려온 전대 학생회장! 무엇보다 대마왕 발락의 대항마라고. 이런 이미지 대변신이 어디 있냐?"

딕이 신이 나서 말을 쏟아낸 뒤, 고개를 쭉 기울이며 목소리를 낮췄다.

"거기에 지금 발락 학생회 교내 여론이 안 좋아. 걔들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알아? 1학년들이 요즘 시위니 뭐니 귀찮게 하니까 교내 일정을 일부러 빡빡하게 만들어서 학교 일에 눈 돌리지 못하게 해. 게다가 동아리 2학기 예산안도 짜고 있는데, 자기들한테 우호적인 동아리에는 예산을 범핑해 주고 적대적인 동아리는 삭감하고 있어! 아주 그냥 지들 멋대로 구는 거지!"

"으으음."

시몬은 잠시 돌연변이 동아리의 부장인 피츠제럴드를 떠올렸다.

괜히 자신 때문에 피해를 받는다고 생각하면 미안해졌다.

"저희 사담 동아리도 예산 문제 때문에 부장이 고민하는 것 같아요."

카미바레즈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딕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 말을 받았다.

"정정서를 성의껏 제출하면 예산을 재논의해 보겠다는데 이게 다 뭔 소리겠냐? 방울 딸랑딸랑 흔들어보라 이거지! 마음에 안 드는 교내 조직은 죄다 잡고 있다고."

"거기에."

메이린도 거들었다.

"교내언론 장악해서 발락을 은근히 우상화하고, 3학년들에게 2학년 군기 빡세게 잡으라 지시 내리고. 권력을 잡자마자 너무 유치하게 나오는 거 아냐?"

"그러니까 우리 시몬 학생회 시절이 재평가받는 거지!"

딕의 눈동자가 시몬에게 향했다.

"우리가 맡았을 땐 아무 문제도 없이 좋았잖아? 다들 네가 발락을 끌어내리기를 기다리고 있어."

"야! 시몬한테 부담 좀 주지 마!"

"아니, 아니, 부담이 아니라 교내 여론이 이렇다고 말하는 거라고."

시몬이 음 하고 눈을 감았다.

"발락 학생회가 그렇게까지 하고 있을 줄은 몰랐네."

"악의 제국을 만들어나가는 거야. 대부분은 부회장 소타 프쉬케 선배의 작품이겠지만."

딕이 시몬을 보았다.

"결론은 몸조심하란 거야, 시몬. 여론이 호의적이니 대놓고 네게 나쁜 짓은 못 하겠지만 소타 그 선배 성격이라면 어떻게든 흠을 잡으려 할 테니까."

시몬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야기해 줘서 고마워."

* * *

그날 오후.

시몬은 스터디를 마치고 이런저런 볼일을 본 뒤에 기숙사에 돌아왔다.

벌써 날이 어두워져 있었다.

'토토는 씻으러 갔...... 음?'

그때 기숙사에 침대에서 뭔가가 슬그머니 기어 나오고 있었다.

벌레인가 싶었는데, 알고 보니 송장거미 한 마리가 와 있었다.

"설마?"

송장거미가 앞다리를 위아래로 휘젓고 엉덩이를 휙휙 흔들며 뭔가를 설명했다. 그제야 시몬의 입가에 함박웃음이 걸렸다.

"다들 돌아왔구나!"

프로스트 필드에 뮤르의 전함을 내려놓은 에이션트 언데드들이 로크섬에 무사히 복귀했다는 것 같았다.

오랜만에 군단의 식구들을 한 자리에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지금 바로 나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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