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807화
로크섬.
북부대공 진의 연구실.
후읍- 후우-
진은 평소의 갑갑한 제복은 벗어 던지고 훈련복 차림으로 실내운동을 하고 있었다.
한 손을 방바닥에 대고, 다른 한 손은 등에 붙인 채 물구나무서기 자세로 전신을 지탱했다.
손목과 발목에는 무게를 늘리기 위한 기구들이 붙어 있었다.
스퍼트가 붙어가며 그녀가 목표했던 수치를 향해 순조롭게 나아가고 있는데.
똑똑.
연구실 밖에서 노크소리가 들렸다.
"진 교수님. 수석조교입니다."
그녀는 팔굽혀펴기를 속행하면서 대답했다.
"주말에 무슨 일이느냐?"
"한 학생이 갑작스럽게 방문 요청을 했는데, 어떻게 할까요?"
지금 당장 얼굴을 봐야겠다라.
최근에 신 학생회인가 뭔가 하는 것들이 기웃거리면서 귀찮게 하기에 짜증이 나던 참이었다.
"당장 쫓......."
"시몬 폴렌티아 학생입니다."
그녀의 동작이 움찔하며 멈췄다. 이내 팔의 힘만으로 펄쩍 몸을 띄워서 자리에 똑바로 선 뒤, 책상에 놓아둔 수건을 붙잡았다.
"10분만 기다리거라!"
그렇게 잠시 후.
노크 소리와 함께 시몬이 조심스레 안으로 들어왔다.
"연락도 없이 갑작스럽게 찾아와서 죄송합니다. 진 교수님."
그녀는 휘휘 손을 저었다. 이내 시몬을 안내해 준 수석조교가 문을 닫고 나간 뒤 진이 입꼬리를 올렸다.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구나. 차라도 한잔하겠느냐?"
"아하하. 감사합니다!"
그렇게 대답한 시몬은 갑자기 집무실 문에 바짝 붙었다. 그러고는 진지한 표정으로 수석조교의 발소리가 멀어진 걸 확인한 뒤, 우다다 달려가 창문의 커튼을 모조리 치기 시작했다.
차를 끓이고 있던 진이 그 모습을 보고는 눈을 깜빡였다.
"오늘따라 유난이구나. 무슨 일 있느냐?"
시몬은 말없이 고개만 끄덕이고는 아공간을 열었다.
이번에는 7군단의 에이션트 언데드인 에르제베트가 튀어나왔다. 그녀도 시몬을 따라 분주하게 움직이며 집무실 곳곳에 거미줄을 치며 결계를 펼치기 시작했다.
"......?"
7군단 이것들이 단체로 잘못 먹었나.
진은 그런 표정으로 시몬과 에르제베트를 바라보았다.
이내 빈틈없이 결계를 친 뒤에야 안심한 시몬이 아공간으로 에르제베트를 돌려보냈다.
"......이 나를 앞에 두고 대체 무얼 하는 것이냐."
진이 퉁명스러운 투로 말했다. 몇 번이나 결계의 상태를 확인한 시몬이 그제야 진 앞에 똑바로 앉았다.
"대공. 저요."
"그래."
내륙의 10대 아이들은 별거 아닌 걸로 참 유난이다. 그녀는 그런 생각을 하며 태연히 차를 마셨다.
"새로운 에이션트 언데드를 주운 것 같아요."
푸후후훕!
물줄기가 공중으로 비산했다.
커헉! 쿨럭! 컵!
그녀가 찻잔을 내리고 한 손은 목을 붙잡은 채 다른 한 손으로 가슴을 탕탕 쳤다. 그러고는 눈을 부라렸다.
"뭐라고? 지금 나랑 장난이라도 하자는 것이냐, 이 건방진 것!"
"보여드릴게요."
당연히 믿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었다.
시몬은 아공간을 열고 라미아를 소환했다.
-삐유융!
시몬이 두 손으로 붙잡고 진의 앞에 들어 보인 건 유아기의 데드나가였다.
그러나 언데드에게 겉모습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그 안에서 느껴지는 방대한 칠흑과 사념의 존재감. 그리고 무엇보다 이 에이션트 언데드에게서 시몬의 칠흑이 느껴지고 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진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분명 이 녀석은, 제5군단의......."
"뱀공주 라미아인 것 같다고 피어도 말하더라구요."
시몬이 손을 떼자, 라미아가 허공에 둥실거리며 떠올랐다. 공중에서 헤엄치듯 꼬물거리며 날아다니던 라미아가 시몬의 어깨에 앉은 뒤, 혀로 그의 뺨을 할짝할짝 핥았다.
"대체 어떻게!!"
그렇게 소리치며 벌떡 일어난 진은 뒤늦게 소리가 너무 컸다는 걸 깨닫고는 입을 다물었다.
시몬은 미리 쳐둔 에르제베트의 결계를 손으로 가리키며 안심하라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처음부터 설명해 드릴게요."
그레이슨의 새 떼가 데드나가가 활동하는 모습을 발견했다.
데드나가는 5군단만이 다루는 특수 언데드였고, 심지어 발견된 장소가 이번 2학년 키젠의 단체시험 후보지 중 하나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당장 가용한 모든 에이션트 언데드들을 이끌고 현장으로 갔다.
현장에서 피어가 에이션트 언데드의 기척을 느꼈기에 그대로 진입. 군단의 계약도 되지 않은 상태의 어려진 라미아를 발견했다.
교전 후 라미아를 포획하여 군단화해서 데려왔다. 이 모든 과정에서 매그너스는 어떤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이상이 일의 경과였다.
"......하하."
의자에 등을 기대어 어처구니없는 웃음을 흘린 진이 라미아를 바라보았다. 어려진 라미아는 입에서 방울을 뿜으며 놀고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걸까요?"
시몬이 굳은 얼굴로 물었다. 진도 덩달아 표정을 굳힌 채 말했다.
"저 녀석이 그 뱀공주 라미아라는 건 확실하느냐?"
"피어도 100% 확신까지는 못하는 것 같아요. 하지만......."
시몬은 에르제베트가 조사해 온 자료들을 꺼내 진의 앞에 펼쳐 보였다.
뱀공주가 찍힌 마력 촬영기 사진들, 혹은 그녀를 직접 보고 그린 수배서 등이었다.
진은 그중에서도 매그너스의 옆에 서 있는 뱀공주의 사진을 집중해서 살펴본 뒤 말했다.
"똑같구나."
귀 뒤에 난 갈퀴의 형태.
목에 나 있는 특유의 무늬.
눈동자의 색깔과 심지어 오른쪽에 빠져 있는 비늘까지.
"불가사의한 현상이긴 하다만, 굳이 현실적인 상황으로 맞춰서 생각해 보자면......."
다리를 바꿔 꼰 그녀가 잠시 눈을 감고 있다가 말했다.
"제5군단장, 매그너스가 죽었을지도 모르겠구나."
매그너스는 키젠 본부의 공격을 받고, 본거지를 잃은 채 종적을 감추었다.
혹시나 그 공격에 치명적인 부상을 입어서, 스스로 군단을 해체하고 사망했다면?
라미아 또한 군단의 계약이 해제되어 저런 모습이 되었을 수도 있다는 게 진의 의견이었다.
"물론 군단형 에이션트 언데드가 군단장을 잃으면 약해지는 경우는 더러 있지만, 이렇게 어려지는 경우는 처음 보는구나."
진이 팔을 뻗어서 방울을 뿜으며 놀고 있는 라미아를 만졌다.
그러자 라미아가 바짝 놀라며 적대심을 뿜어내더니, 이내 이마 앞으로 검푸른 뭔가를 번쩍이기 시작했다.
"음?"
"대공! 피해요!"
쿠르르르릉!
물로 이루어진 벼락이 쏘아져 나가고, 진은 고개를 젖혔다. 그녀의 고개를 지난 물벼락이 연구실 천장에 부딪히며 쿠르르 소리를 냈다.
"이것이 감히......!"
"죄, 죄송해요!"
시몬이 얼른 폭주하려는 라미아를 붙잡아 진정시키며 말했다.
"피아구별이 잘 안 되고, 아직 힘도 통제하지 못해서요."
진이 한숨을 한번 쉬고는 고개를 돌렸다.
에르제베트가 펼쳐둔 결계에 쩌저적 금이 가 있었지만, 다행히 건물이 부서지는 일은 없었다.
시몬은 자신의 머리카락을 붙잡고 장난치는 라미아를 얼른 아공간 속으로 돌려보냈다.
"이제 어쩌면 좋을까요?"
"......."
진은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겨 있다가 말했다.
"우리는 군단장이니라.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야만 하겠지."
"최악의 상황이라면......."
"매그너스가 살아 있고, 이 모든 게 매그너스의 계략일 가능성."
그녀가 두 손을 깍지끼며 말을 이었다.
"당장은 뱀공주 라미아를 7군단의 온전한 전력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느니라. 안전하고 믿을 수 있는 장소에 라미아를 가둬놓고 감시하면서, 시간을 들여 상태를 확인하는 게 좋겠구나."
여전히 라미아에 대한 경계를 놓치지 말라는 뜻이었다.
시몬도 고개를 끄덕였다.
"네프티스 님께는 내가 보고하겠느니라. 지금은 다른 문제로 바쁘시겠지만, 이 문제에 대해서 의견 정도는 구할 수 있겠지."
"네."
"조심해라, 그리고 방심하지 말거라."
그녀가 눈을 치켜떴다.
"안전에 대해서는 아무리 조심해도 모자람이 없느니라."
시몬이 고개를 끄덕였다.
"명심하겠습니다."
* * *
피어의 유적은 보기보다 상당히 깊다.
유적 입구에서 좁은 원형 계단을 타고 한참을 내려오면 나타나는 커다란 공터. 층수로 치자면 이곳이 최상층이다.
그 아래층에는 에르제베트의 송장거미들의 알이 보관된 곳도 있고, 더 아래에는 아케뮤스의 스컬윙 둥지가 존재한다.
이렇게 피어의 유적에서도 군단형 언데드를 소량 충원할 수는 있다. 다만 그들의 본거지인 '벌레무덤'이나, '비명의 정글'에 비해서는 생산성이 떨어지기에, 야외 본거지를 만들어둔 것이다.
그리고 시몬이 이번에 향한 곳은 피어의 유적에서도 가장 깊은 곳.
"여기가 네가 지낼 곳이야."
시몬은 적당한 넓이의 지하 방에 라미아를 풀어놓았다.
-삐유웅?
라미아는 새로운 환경을 탐험하듯 이곳저곳을 빠르게 돌아다녔다.
시몬도 잠시 에르제베트와 잡담을 나누며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데.
풀썩.
갑자기 방바닥에 힘없이 축 늘어졌다.
"왜 그래? 라미아."
시몬이 라미아를 들어서 상대를 살펴보았지만 이상한 점은 없었다. 사념에 접촉해 보니 '갈증'이 느껴지기에 시몬은 물통을 꺼내 주었다.
-삐융!
그러나 라미아는 물통을 들어 제 몸에 물 한 바가지 끼얹고는 툭 하고 다시 힘없이 바닥에 쓰러졌다.
[엄살이와요.]
에르제베트가 훗 하고 말했다.
[방이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네요.]
"그, 그런 거야?"
[전에 지냈던 해저동굴에 비하면 아무것도 없으니까요.]
시몬이 팔짱을 꼈다.
"최소한의 생태환경을 조성해 줘야 하는 건가."
[호호! 무슨 애완동물 키우는 것 같은 말씀을.]
에르제베트가 입을 가리며 우아하게 웃었다.
[언데드는 음식도 물도 필요없사와요. 그냥 칠흑만 있으면 존재할 수 있답니다.]
"하지만 라미아는 물이 필요하다는 것 같은데?"
[그러니까 엄살이죠.]
시몬이 다시 고개를 움직여 바닥에 축 늘어진 라미아를 바라보았다.
잠시 시몬과 눈이 마주쳤지만 '삐융'하고 다시 고개를 돌려버리는 모습. 어쩐지 웃음이 나왔다.
'그래도 저렇게 두기엔 좀 가엾긴 한데.'
결국 시몬이 명령을 내렸다.
아무도 밖에 돌아다니지 않는 주말이 끝나는 밤, 7군단의 언데드들이 유적에서 빠져나와 부지런히 움직였다.
철썩!
스컬윙들이 금지된 숲을 낮게 비행하며 양동이로 바닷물을 퍼 날랐고, 송장거미들도 물 양동이를 머리 위에 이고 이동했다.
퍼온 바닷물들이 유적에 도착했고, 그사이 시몬은 구덩이를 파두었다. 바닷물이 흘러 들어가지 않도록 헤르세바가 지면을 반듯하게 만든 뒤 금속처럼 굳혔다.
[시몬! 이건 어때?]
심심해서 돕겠다고 나선 프린스가 괴이한 해초 같은 것들을 가져왔다.
[그때 해저동굴에서 본 거랑 비슷하게 꾸미면 되는 거 아냐?]
"좋은 생각이야."
그렇게 수족관처럼 웅덩이를 만들어준 뒤, 라미아를 풀어놓았다.
-삐유웅!
라미아는 금세 신이 난 듯 웅덩이 안에서 물장구를 치며 놀았다. 사방으로 물방울을 뿌리며 좋아하다가, 이내 시몬의 얼굴에 달라붙어 혓바닥으로 뺨을 핥았다.
"마음에 들어 해서 다행이야."
훈훈한 분위기가 연출되었고, 프린스도 놀고 싶어졌는지 안에 들어가 같이 라미아와 물장구를 쳤다.
시몬이 에르제베트를 보았다.
"당분간 너희들이 잘 지켜봐 줘."
[그럼요! 맡겨주시와요.]
프린스와 라미아가 물장구를 치는 모습을 지켜보던 시몬은 생각이 복잡했다.
'매그너스의 행방이 밝혀질 때까지는 절대 방심은 할 수 없지만.'
그래도 같은 편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시몬은 생각했다.
* * *
다음 날 아침.
주말이 끝나고 다시 일상이 시작되는 날이다.
시몬은 토토와 함께 아침 일찍 기숙사를 떠나 소환학관 건물에 도착했다.
"안녕, 시몬!"
"안녕."
시몬은 동기들이 반갑게 인사를 나누며 걸어갔다. 여학생 무리에서 흥분한 얼굴로 떠들던 에슈가 활짝 웃으며 '조장-!' 하고 손을 흔들어주었다. 시몬도 손을 흔들었다.
그렇게 앉을 자리를 고민하면 시몬은 자신도 모르게 걸음을 멈추었다. 그러고는 기둥 뒤에 슬쩍 몸을 숨긴 채 고개만 움직였다.
저만치 떨어져 있는 흰 머리의 소년이 홀로 걸어가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화이트.'
3대 네크로맨서 학교에서 온 수수께끼의 편입생.
지금까지 대화를 제대로 나눠본 적이 없는 인물이다.
시몬은 라미아를 생각하면, 화이트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야 화이트와 매그너스는-
'소름 끼치게 닮았으니까.'
아론도 처음 화이트를 본 순간은 정신을 제대로 차리지 못할 정도였다. 하지만 키젠 본부에서는 매그너스와 화이트가 어떤 관계도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라미아는 뱀공주가 어려진 모습이야. 그렇다면.......'
괜히 소름이 쭈우욱 돋는 것 같았다.
시몬이 화이트를 보았지만, 그는 여전히 창밖의 새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잠시 후, 조교진들과 함께 아론이 강의실에 들어왔다.
아론은 온몸이 붕대로 칭칭 감겨 있는 모습이다. 한 손은 부목 같은 것으로 받치고 있었는데, 아직 몸 상태가 좋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그는 태연한 얼굴로 앞으로 나와, 다치지 않은 손으로 분필을 들었다.
"전원 무사해서 다행이다. 그리고."
그가 고개를 들어 학생들을 쭉 훑어보았다.
"모두가 데스나이트의 핵심 재료를 가지고 수업을 시작하게 됐군, 잘했다."
예에에에에-!
휘이이익!
곳곳에서 환호성과 휘파람 소리가 들렸다. 아론은 분필을 들고 칠판에 빠르게 글자를 써내려갔다.
"그럼 시작하겠다."
<타락>
"지금까지 본 적 없는 새로운 종류의 수업일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