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808화
타락계 마법은 확실히, 지금까지 배웠던 흑마법의 이론과는 모든 점에서 달랐다.
-메인 룬어랑 통제 룬어를 동시에 다룬다고? 이럼 무너지지 않아?
-직렬회로를 이렇게 꼬아버리면 저항값이 너무 강하게 튈 텐데.
상식적이지 않다.
사기가 잔뜩 올라서 호기롭게 덤벼든 학생들은, 완전히 새로운 수식과 법칙의 나열에 당황했다.
물론 이런 비상식적인 체계 속에서도, 영리하게 규칙을 포착해서 적용하는 학생도 있었다.
-메인과 통제 룬어를 섞으면 충돌하는데, 이 충돌을 이용해서 회로에 칠흑을 공급하는 거네.
처음엔 시몬도 놀랐지만, 새로운 지식에는 새로운 자세로. 특유의 유연한 사고방식으로 빠르게 규칙을 찾아냈다.
물론 그런 마음가짐의 문제 이상으로, 시몬은 이미 '용의 마법'으로 이질적인 수식을 익히는 것에 훈련이 되어 있었다.
완전히 다른 양식의 마법을 익힌 시몬에게 있어, 타락계 마법 같은 새로운 규칙성 정도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 외에도.
-잘했네요! 로레인 님! 어떻게 한 거예요?
-아, 왠지 이렇게 섞으면 잘될 것 같아서.
로레인도 본능적으로 수식을 짚어가면서 답을 찾아갔고.
-역시 헥토르!
-못하는 게 없다니까.
헥토르도 용의 마법 사용자답게 오래 걸리지 않아 답을 찾아냈다.
재능, 혹은 유연한 사고를 가진 학생들이 새로운 이론에 빠르게 적응하는 모습을 보였다. 오히려 선행학습이나 예습 등으로 머릿속을 기존의 소환학 공부로 가득 채운 모범생들이 애를 먹고 있었다.
'끄응.'
전체 5위, 아세라즈 미켈이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이해가 안 돼.'
네크로맨서가 된 뒤, 평생을 '1 더하기 1은 2'라고 절대적으로 믿고 있었는데, 이쪽 법칙에서는 3이 될 수 있고 4가 될 수 있다고 한다. 표기법도, 연산의 우선순위도, 칠흑의 분배방식도 싹 다 다르다.
왜라고 묻는 건 무의미하다.
타락계는 에이션트 언데드가 사용하던 흑마법을, 인간이 쓸 수 있도록 가공하고 풀어서 재현한 학문이다. 인간의 상식으로는 한없이 비상식적인 접근이 당연했지만, 그녀는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다.
그렇게 수업내용을 다 이해하지도 못하고 아론의 실습이 시작됐다.
-긴장할 필요 없다. 오늘은 타락계 첫날인 만큼 간단한 과제로 준비했다.
아론이 무언가를 가져왔다.
주먹만 한 작은 소라게 몬스터, 레핀토르라는 언데드였다.
이 레핀토르는 언데드가 된 뒤에도 해초를 갉아먹는 습성을 가지고 있다. 물론 언데드가 되고 소화기관이 없어서 먹은 걸 그대로 방출하게 되지만 끊임없이 해초를 씹는 성향이 있다.
바로 이 레핀토르의 성질을.
-타락계로 바꾸도록 해라. 가장 모범적인 사례는 레핀토르가 육식을 하게끔 변질시키는 거다.
아론이 생선 조각이 담긴 접시를 테이블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혹은 더 이상 해초를 갉아먹지 않도록만 해도 'PASS' 판정을 주겠다. 2학년이나 된 너희들에게 당연한 소리는 하기 싫지만, 입을 개조하는 등의 물리적인 변화는 허용하지 않는다.
레핀토르의 입을 봉하려던 맷 코머가 시무룩한 표정으로 공구를 내렸다.
-마법진에 유의미한 변화를 주어야 하고, 반드시 타락 수식을 사용해야 한다. 시작해라.
즉각 타락계 실습이 시작되었다.
레핀토르는 짊어지고 있는 평평한 껍질에 소환 마법진이 그려져 있어서, 마법진 수정이 용이하단 점으로 자주 실험재료로 쓰이는 언데드였다.
학생들은 낑낑대며 방금 배운 타락 수식을 어떻게든 적용하려 애썼다.
아세라즈에게는 힘겨운 시간이었다. 자리에 앉아 눈알을 굴려가며 다른 학생들의 작품을 살폈다. 이론을 이해하는 것보다는, 데이터를 쌓아나가는 데 집중했다.
PASS를 받기 위해 벌써부터 타인의 결과물을 모방해야만 하다니.
이래서 타락형 데스나이트를 제작할 수 있을까 하는 자괴감도 들었다.
"벌써 끝났나, 시몬 폴렌티아."
다른 학생들의 수식을 살피던 아세라즈의 고개가 즉시 돌아갔다.
벌써 다 했다고?
"네, 여기 있습니다."
시몬은 자신의 레핀토르를 수조에 옮겨둔 뒤 물러났다. 레핀토르는 수조를 돌아다니며 해초를 끊임없이 먹고 있었다.
"흠."
아론이 생선살을 넣어보았지만 반응하지 않았다. 그대로 해초만 먹고 있었다.
"뭐가 바뀐 거지?"
시몬이 빙긋 웃었다.
"모든 게요."
잠시 후 아론의 눈이 커졌다.
끊임없이 해초를 먹어야 할 레핀토르가, 어느새 지쳤는지 축 늘어진 상태로 멈췄다. 심지어는 숙면을 취하려는 모습까지 보이고 있었다.
"그렇군, 이건."
"네."
시몬이 고개를 끄덕였다.
"타락의 방향을 살짝 바꿔서, 레펜토르가 자신이 살아 있다고 생각하게끔 했습니다."
언데드가 된 몬스터에는 여러 성질이 존재한다.
그중에는 언데드가 되면서 생존과 생태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레펜토르의 경우에는 섭취다. 자신이 죽었다는 것을 부정하고, 음식물을 섭취해야만 살아 있는 감각을 유지한다고 느끼는 것이다.
하지만 시몬은 타락으로 레펜토르에게 충족감을 형성했다. 더 이상 그것은 자신이 죽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습성을 변화시키라고 했지, 아직 이런 고차원적인 부분까진 가르친 적 없다만."
턱을 긁적이던 아론이 희미하게 웃었다.
"결과적으로는 성공이군. PASS다."
"감사합니다!"
시몬이 학과에서 제일 먼저 PASS를 따냈다.
아론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그를, 아세라즈가 뒤에서 물끄러미 노려보고 있었다.
* * *
결국 수업시간이 모두 끝나고 두 시간이 더 지난 뒤에야 아세라즈는 'PASS'를 받을 수 있었다.
강의실 밖으로 나온 그녀가 터덜터덜 걸어갔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시몬 폴렌티아를 꺾겠다. 당당하게 그런 선언을 하고 소환학과에 들어왔지만, 그녀는 시몬에게 벽을 느끼고 있었다.
그 벽은 바로 '재능의 격차'였다.
물론 필기 성적은 이쪽이 우위다. 하지만 그건, 시몬보다 조금 더 많은 것들을 예습했기에 일어나는 지식 총량의 격차에 불과하다.
결코 시몬보다 자신이 뛰어나기에 받은 성적은 아니었다.
'시몬 폴렌티아.'
게다가 그는 능력만 뛰어난 게 아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환호받고, 주목받고 있다.
한때는 그런 시몬의 복귀가 늦어져서 한마디 했더니, 이런 말이 돌아왔다.
-다들 네 이야기를 하면서 걱정하고 있는데, 아세라즈는 대놓고 시몬이 빠지면 순위 하나씩 올라가니까 좋은 거 아니냐고 말하더라고.
키젠은 실력만능주의고, 무한경쟁체제가 아닌가.
왜 당연한 걸 지적하는 나를 못마땅하게 보는 걸까.
시몬이 돌아오지 않으면 다들 석차가 하나 올라가니 좋은 거잖아. 겉으로만 걱정하는 척하고 속으로는 사실 좋아했잖아.
'하아.'
마음이 새까맣게 타들어 가는 기분이었다.
특히 시몬에 대한 박탈감은, 이번 수업으로 인해 더더욱 커켰다.
'전과나 할까.'
잠깐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아론의 수업이 유익한 건 사실이다. 데스나이트를 손에 넣을 기회를 포기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았다. 경쟁자에 벽을 느끼고 학과를 떠나는 패배자라니. 나 자신을 그렇게 초라하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그녀가 눈을 꾹 감고 걸음을 옮기는 그때.
스르르르륵-
아세라즈의 눈이 커졌다.
그녀가 걸어가는 앞으로 새까만 칠흑이 펼쳐진 것이다.
'누가 실내에서 흑마법으로 이런 장난을.......'
그녀가 무시하며 지나가려는데, 갑자기 파스슥 소리가 나며 칠흑이 잿더미처럼 떨어지고, 그 안에 깨끗하고 하얀 편지봉투가 떨어졌다.
<아세라즈 미켈>
편지봉투에는 그녀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작게 한숨을 쉰 그녀가 탁 하고 편지지를 붙잡았다.
대체 누가 장난치는 거지? 그녀는 짜증스럽게 봉투를 뜯고 편지지를 꺼내 첫 줄을 읽었다.
"......!!"
소름이 쭉 돋은 그녀가 주위를 한번 휘휘 둘러보았다. 당장 아무도 없는 장소가 필요했다. 그녀는 마침 근처에 보이는 여자 화장실로 달려갔다.
쾅!
화장실 문을 닫고, 변기에 앉아 다시금 그 편지를 꺼내보았다.
그러고는 내용을 천천히 읽어내렸다.
하아. 하아.
그녀의 눈빛이 떨리고 숨결이 거칠어졌다.
이내 눈을 질끈 감았다.
* * *
그날 오후, 캠퍼스 공원.
"와, 대박이네! 그 유명한 심문청장 레이트를 만나고 돌아왔단 거야?"
시몬은 칠흑역학 수업 암기노트를 빌리러 온 딕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걷고 있었다.
"로레인과 세르네가 도와줘서 살았어."
"크흐, 진짜 10년 치 자랑감인데."
오랜만에 딕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잡담을 하니 기분이 좋았다. 딕은 근처의 노점카페에서 산 커피를 쭉 들이켜더니, 남은 얼음을 잘근잘근 씹으며 물었다.
"그건 그렇고, 저주인형 사건 이후로 달리 뭔 일 없냐?"
"무슨 일?"
딕이 슬쩍 주위를 한번 둘러본 뒤 손에 쥔 컵을 툭툭 손끝으로 두들겼다.
"아, 뭐. 또 발락 신학생회에서 이상한 시비 건 거 없었냐는 거지."
"없었는데."
사실 사소한 부분이지만 금지된 숲에 들어갈 때 학생회 측의 미행이 붙기는 했다. 물론 미행 자체를 에르제베트가 좌절시키기도 했고, 그 일로 다른 문제도 발생하지 않았다.
딕이 어깨를 으쓱했다.
"내 정보통으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고 있는데, 부회장 소타가 몸이 달은 모양이더라고. 조심해. 내가 미리 막아둔 것만 해도 두 개쯤 돼."
"음."
"특히 이제 곧 열리는 단체시험."
딕이 척 손을 뻗었다.
"100% 뭔가 작업이 들어올 거야."
"키젠 본부에서 주최하는 큰 시험인데 설마."
"그게 뭐가 중요해? 룰을 이용하면 상대를 의도적으로 탈락시킬 수도 있는 게 키젠의 단체시험이야. 시험이 시작되면 모든 걸 전략으로 친다고. 그리고 정말로 섬 생존평가 같은 종류라면-"
딕이 시몬을 바라보았다.
"널 사전 탈락시키려고 다른 2학년들을 움직일 수 있어. 키젠은 Top10이든 학년 수석이든 퇴학조건 안에 들어오면 예외 없이 퇴학시키는 거 알지?"
"너무 과한 우려 아닐까."
"그을쎄에. 이걸 보고도 우려라는 소리가 나올까?"
딕이 품에서 신문 한 장을 꺼냈다.
키젠 신문부에서 발행하는 신문이었다.
<시몬 폴렌티아. 발락과의 결투 결과와 상관없이 3학년 학생회장직 확정.>
<이미 상부와 협상을 했다는 우려까지.>
<시몬의 자리는 견고하다. 시위대에 속해 있는 1학년들과 2학년들은 무얼 위해 싸우고 있나.>
시몬이 신문을 읽고 있는 사이, 딕이 말했다.
"신문부 그 새끼들 아주 악성언론 다됐어. 중요한 포인트는 빼고 자기들에게 유리한 상황과 멘트만 언급하면서 여론을 조작하는 것까지."
그렇게 말한 딕이 한숨을 푹 쉬었다.
"거기에 1학년들이 학교 일에 신경 쓰지 못하게 빡세게 돌리고 있고, 2학년들은 갈등을 유발해서 갈라치기하고 있어. 반 시몬 폴렌티아, 친 시몬 폴렌티아 이런 식으로."
시몬이 이마를 짚었다.
"난 이런 정치적인 상황은 딱 질색인데. 그래서 레오나드 선배님 제안도 거절한 거고."
"잘 알지. 근데 네가 싫어도, 네 의사와는 상관없이 어쩔 수 없이 폭풍의 핵에 들어와 버린 거야. 이번 단체시험 준비는 평소보다 빡세게 해. 분명히 방해공작이 들어올......."
"시몬 학생!"
그때 소환학관 건물 쪽에서 한 조교가 뛰어들어오고 있다.
시몬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조교 선생님."
"시몬 학생."
그가 숨을 한번 몰아쉰 다음 말했다.
"아론 교수님께서 직속제자 여러분을 찾으십니다."
그 말을 들은 딕이 빙글빙글 웃었다.
"여윽시. 뭔가 해주실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