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813화
로체스트 항구에 도착한 시몬은, 바로 바닐라 그룹의 소유의 한 창고에 들어갔다.
뒤이어 내부의 광경을 마주하고는 깜짝 놀랐다.
"언데드 시장 같네요."
이번 단체시험에 쓸 언데드가 있으면 좋겠다고 말은 했는데, 창고 안에 준비된 재료들의 가짓수가 상당히 많고 다채로웠다.
벤야도 어깨를 으쓱했다.
"나도 카를로 경이 가져온 물건들을 보고 깜짝 놀란 참이야."
언데드 장인 카를로가 허허 웃었다.
"기왕 준비해 드릴 거라면 풀패키지로 준비해 드려야죠. 마음껏 보십시오!"
다행히도 이제 자금은 충분했다. 최근에 마정석 광산 계약금으로 받을 금액을, 진으로부터 일정 비율 먼저 선수금으로 받았다.
무려 3,000골드. 원하는 게 있다면 마음껏 살 수 있었다.
하지만 그전에.
"우선 가장 중요한 것부터 볼게요."
"예약하신 물건 말씀이시지요!"
카를로가 시몬에게 반지 하나를 건넸다.
오버로드가 들어 있는 아공간 반지였다. 겉면이 살짝 변한 느낌이다.
"말씀하신 대로 저희 쪽 아공간 장인이 오버로드의 아공간을 조금 더 개조해 보았습니다. 발을 바닥에서 뗀 뒤에도 아공간이 유지될 수 있도록 했고, 술사가 멀어지면 알아서 아공간이 닫히도록 설계했죠."
"좋은데요!"
시몬은 바로 사용해 보았다. 반지를 낀 뒤에, 왼발이 지면에 말끔하게 닿은 걸 확인한 뒤, 마음속으로 트리거를 외쳤다.
'개문!'
촤르르르르르르르륵!
예전보다 훨씬 더 격렬하고 맹렬한 소음이 울려 퍼졌다.
아공간에서 튀어나온 새로운 형태의 오버로드를 본 시몬의 얼굴에 놀라움이 어렸다가, 이내 더없는 만족감으로 차올랐다.
"와......!"
"하하하하! 마음에 드시는 것 같아 다행입니다!"
오버로드를 처음 손에 넣었을 때의 그 감격이었다.
시몬이 새롭게 재탄생한 자신의 소환수를 가지고 노느라 정신이 팔려 있는 사이, 벤야가 옆으로 다가왔다.
"괜찮지? 이 정도면 키젠 2~3학년 수준의 전장도 무리 없이 정복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너무 좋네요."
시몬은 입가가 찢어지려는 걸 필사적으로 참아야 했다.
이어서 카를로와 함께 조율 작업을 몇 번 마친 후, 리메이크 오버로드는 집어넣었다.
벌써 실전에서 쓸 날이 기대된다.
"참! 말 나온 김에 제군이가 우리 쪽에 맡겨둔 카오스 듀라한 있지?"
"네."
카오스 듀라한은 저번 발락의 전투에서 크게 손상된 이후, 벤야 측에 의뢰하여 수리를 맡겨둔 상태였다.
"미안하지만 코어까지 독이 파고들어서, 수리에 시간이 조금 더 걸릴 것 같아."
"아쉽네요."
확실히, 상태를 봤을 때 수리가 어려울 것 같다는 예감이 들긴 했다.
그나마 안티 메이지 기능은 드래고니안이 어떻게든 대체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이것도 단순 수리가 아니라, 개조 방식으로 보강해 달라고 해볼까?"
"네, 부탁드릴게요."
아무래도 이쪽은 단순 수리로 끝나는 게 아니라 행운이 필요한 영역이리라.
"유감입니다. 언데드는 영원하지 않지요. 전투에서 손상되어 언데드와 헤어지는 것 또한 소환술사의 숙명."
카를로가 표정을 굳히며 말했다.
"저 또한 현장에서 자식 같은 언데드들을 많이 잃었기에 그 심정을 누구보다 이해합니다. 하지만 헤어짐이 있으면 만남도 있는 법!"
그가 손을 펼쳐서, 바닐라 브랜드의 새로운 언데드들 쪽을 가리켰다.
"얼마든지 골라보십시오!"
"......카를로 경, 너무 장사치 같아요."
벤야가 면박을 주었다.
시몬은 괜찮다며 웃어 보이고는 주위를 쭉 훑어보았다.
대형 오우거의 뼈, 개조형 듀라한, 가고일 같은 특수 비행형 언데드까지 있었다. 친위대와 합치면 시너지를 낼 만한 재료들이 꽤 보였다.
시몬은 긴 준비단계가 필요 없으면서도, 즉시 전력으로 쓸 만한 것 위주로 구매하기로 했다.
카를로는 시몬의 오른쪽에 붙어서 이 제품이 얼마나 대단한지 떠벌떠벌 떠들었고, 벤야는 왼쪽에 붙어서 현실적인 부분이나 제약을 설명하며 시몬의 스타일에 맞는 언데드인지를 확인해 주었다.
"벤야 선배님이 졸업하시면 전 이제 어쩌죠?"
재료를 고르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난 시몬이 씁쓸하게 물었다.
벤야가 입가를 가리며 호호호 웃었다.
"난 졸업하고도 늘 랭거스틴에 있을 테니까 걱정 마. 앞으로도 얼마든지 만날 수 있을 거야."
"다행이네요."
이내 어느 정도 언데드 쇼핑이 끝나고, 가장 중요한 게 남았다.
"제군이가 감정을 맡긴 이 물건 있지?"
벤야가 테이블 위로 길고 고급스러운 검은 상자를 내려놓았다. 몇 겹의 봉인을 능숙하게 풀어낸 그녀가 마침내 상자를 열었다.
고오오오오!
시몬은 자신도 모르게 얼굴을 찡그렸다. 찐득한 칠흑이 스멀스멀 케이스 안에서 흘러나왔다.
시몬이 조심스럽게 케이스 안의 '물건'을 들어 올렸다.
국경 넘어 신성연방의 박물관에서 찾아낸 이 정체불명의 프리스트의 뼈. 그리고 이 물건은 바로 그 뼈의 손에 쥐어져 있던 '깃발'이었다.
"흔히 볼 수 있는 물건은 아냐. 그나마 가장 가까운 물건에 비유하자면-"
벤야가 심각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마검이라고나 할까."
고오오오오오오오오!
시몬이 봉대를 붙잡자, 그 끝부분에서 검붉은 무형의 깃발이 일렁거리며 나타났다.
* * *
2주 전.
시몬은 박물관에서 가져온 시체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여러 사람들을 찾아갔었다.
우선 신성방어학 교수 파라한에게 찾아가 유골을 보였지만, 프리스트인 그는 유골만으로는 이 자의 정체가 누군지 짐작할 수 없었다.
이어서 찾아간 사람은 담당교수인 아론이었다. 아론은 네크로맨서라서 프리스트 인물에 대한 지식이 없었으나, 의외의 수확이 있었다.
그는 이 유골이 갖고 있던 깃발에 주목했다.
-깃발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이건 일종의 '성검'이다.
그것도 귀속형 성검. 사용자가 한번 소지하면 영원히 그 소지자의 소유물로 남는다는 물건이었다. 그 소지자가 죽음을 맞이해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이 귀한 걸 무덤에 같이 넣었겠지.
시몬은 생각만 했던 가정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
-혹시 이 팔라딘을 타락형 데스나이트로 만들면, 귀속자의 타락에 따라 성검의 효과도 바뀔까요?
-.......
길게 고민하던 아론이 입을 뗐다.
-해볼 만한 가치는 있겠군.
작업은 의외로 수월했다고 한다. 이미 성검의 빛은 잃은 상태였고, 그저 시몬이 가져온 프리스트의 시체에 연동되도록 하는 것만으로도 효력이 되살아났다.
다만 뿜어내는 힘이 너무 강했기에, 도구로 쓰려면 통제를 해둘 필요성이 있었다. 그래서 시몬이 바닐라에 요청해서 조정을 맡긴 것이다.
"아론 교수님이 가장 어려운 작업을 해주셨고, 우리는 안정성 보강만 했어. 개방을 해야 힘이 드러나도록 보완은 했는데, 여전히 누군가 이걸 직접 쓰긴 힘들 거야."
벤야가 검지를 들어 올렸다.
"자세한 효과는, 이 무기의 주인인 타락형 데스나이트가 완성된 뒤에야 알 수 있겠네."
시몬은 깃발을 이리저리 훑어보았다.
"마투학과 대표인 쥴이 쓰는 마검과는 다른 건가요?"
"그렇지. 완전히 그 갈래가 달라."
성검과 마검도 그 뿌리가 완전히 다르다.
하물며 본래 성검이었던 무기가 긴 세월과 타락계 마법으로 변형된 형태는 더 다를 것이다. 적합한 용어가 없기에 마검이라고 부를 뿐, 진짜 마검과는 달랐다.
"아무튼 보관에 유의하도록 해."
벤야가 눈에 힘을 주며 말했다.
"써볼 생각은 하지도 말고!"
"아하하, 알겠어요."
시몬은 조심스럽게 그것을 집어넣었다.
걱정 많은 그녀 앞에서는 그렇게 말했지만, 사실은 어떻게든 써볼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물론 사용법과 쓰임새를 깨우치는 데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누굴 찾아가면 되려나.'
* * *
그로부터 일주일 후.
드디어 2학년 '단체시험' 당일이 찾아왔다.
2학년 전교생은 아침 일찍 기상해서 대강당으로 집합했고, 그곳에 준비된 텔레포트 마법진을 타고 새로운 장소로 이동했다.
도착지는 이름 없는 작은 섬.
텔레포트 마법진 한 번에 시험장소로 이동하기엔 거리가 너무 멀어서, 중간 지점으로 이 섬을 선정한 것이다.
하수인들은 일종의 시험 베이스캠프라는 뜻에서 간단히 '캠프섬'이라고 불렀고, 조교들과 교수들도 어느샌가 그렇게 따라 부르고 있었다.
학생들은 이곳 캠프섬에서 시험 룰에 대한 설명을 듣고, 필요한 물품과 장비를 지급받은 뒤 단체시험을 치를 예정이었다.
웅성 웅성 웅성!
학생들은 저마다 모이고 뒤섞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아직 이른 새벽이었지만, 학생들의 얼굴에는 피곤한 기색도 없이 긴장감으로 가득했다.
"학과대표는 각 학과 인원 파악하고 보고 바랍니다!"
"너무 멀리 가지 마세요! 곧 시험 룰 설명을 시작할 겁니다!"
조교들은 학생들을 통제하느라 정신이 없어 보였다.
시몬은 메이린, 딕, 카미바레즈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다들 준비 잘했지?"
메이린이 허리에 손을 얹으며 말을 이었다.
"이번 단체시험은 학교에서 엄청 공들여 준비했나 봐. 쉽지 않겠지만, 이번에도 악착같이 살아남아 보자."
"그럼!"
"물론이에요!"
딕과 카미바레즈가 활기 넘치게 대답했다. 메이린이 고개를 돌려 시몬을 보았다.
"시몬?"
시몬은 대답이 없었다. 그녀가 입술을 삐쭉 내밀며 시몬의 얼굴 앞에 손가락을 탁탁 튕겼다.
"바보야! 정신 안 차려?"
"아, 음."
시몬이 그제야 웃으며 고개를 휙휙 흔들었다.
"미안해. 요즘 뭔가 정신이 없네."
"흐흐."
딕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시몬을 가리켰다.
"요즘 뭔가 엄청 준비하는 것 같던데, 기대하고 있...... 우왁! 깜짝이야."
거대한 체구가 어느샌가 그들 사이로 끼어들었다.
헥토르 무어였다.
"안녕 헥토르."
시몬이 인사했다. 헥토르는 입을 일자로 다문 채 차갑게 굳은 얼굴로 그를 바라볼 뿐이었다. 메이린과 카미바레즈가 경계심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뭔 말 하려는지 내가 맞춰볼까?"
딕이 깐죽거리며 끼어들었다.
"각오해라 시몬 폴렌티아! 이 시험에서 널 쓰러트리는 건 나다!"
"......."
헥토르는 그런 딕에게는 신경도 주지 않은 채, 바지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으며 등을 돌렸다.
"조심해라."
"?"
헥토르는 그 말만 남기고 등을 돌려 걸어갔다. 딕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그의 등을 보았다.
"그게 끝? 쟤 뭐 잘못 먹었나?"
"밥팅아. 쫌!"
메이린이 잔소리를 퍼부으려는 그때.
[학생들! 집합해 주십시오!]
조교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제 곧 시험 오리엔테이션을 시작하겠습니다!]
학생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마련된 자리에 자유롭게 앉았다.
그들 앞에는 높은 연단이 준비되어 있었는데, 시몬은 그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보고 미소 지었다.
각 학과의 2학년 담당교수 전원이 모여 있었다.
"제인 교수님이야!"
"바힐 교수님!"
학생들이 담당교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담당교수들도 학생들의 인사를 받아주긴 했지만, 어쩐지 표정이 굳어 있었다. 이번 수업에서 학과생들이 어떤 성적을 거두느냐가 중요했기에 잔뜩 곤두서 있는 것 같았다.
"하하. 네, 그래요. 반갑습니다."
그런데 학생들에게 태연히 손을 흔들어주는 한 명이 있었다.
저주학 교수 바힐.
그가 손을 흔들자마자 여학생들의 행복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아론 선배."
바힐이 손을 내리며 옆에 앉은 아론을 눈짓으로 보았다.
"요즘 고생하시는 거 들었습니다. 데스나이트 제작은 물론, 신성연방에 가서 팔라딘의 시체까지 확보했고, 심지어 심문청장 레이트도 따돌렸다면서요."
아론의 피로에 가득한 눈동자가 돌아갔다.
"조용히 말해라, 골 울린다."
"하하."
바힐이 입꼬리를 올렸다.
"훌륭합니다. 앞으로도 소환학과의 분투를 기대하죠."
"......너."
아론이 손바닥으로 제 눈두덩이를 문지르며 말을 이었다.
"짜증 나게, 왜 기분이 좋아 보이지?"
바힐은 조용히 미소 지으며 한쪽을 바라보았다.
그가 바라보는 방향에는 시몬이 카미바레즈와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보였다.
"조용."
그때 부총장 제인이 단상으로 올라왔다.
학생들이 일제히 입을 다물었다. 그녀는 조교로부터 받은 확성 수정구를 켠 다음, 차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좋은 아침입니다. 지금부터 단체시험의 룰에 대해 설명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