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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816화 (816/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816화

제인과 아론이 예상한 대로, 시험 초반부에 학생들은 극도로 조심하는 모습을 보였다.

계속해서 중앙섬의 화산을 주시하면서, 누군가 공격하지 않을까, 몬스터는 너무 강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숨을 곳을 찾거나 인기척이 없는 장소를 찾아다녔다.

그런 과정에서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건 몬스터들을 잡아보고, 지역 포인트를 손에 넣어본 학생들은 생각이 바뀌었다.

-포인트가 이렇게 쉽게 모인다고?

-너무 좋은데.

학생들이 하나둘씩 본격적인 행동에 나서기 시작한 것이다.

심지어 이 군도의 환경이 그렇게 위협적이지 않고, 다른 키젠 학생들과의 교전도 큰 의미가 없다는 점을 파악한 그들은 적극적인 포인트 벌이에 나섰다.

-하하하하! 이 정도면 됐겠지.

포인트로 비상 거주지를 우후죽순으로 세우고 방범장치를 잔뜩 달아놓은 학생.

-우리보다 빨리 배를 타고 나간 사람은 없을걸?

-이대로 무인도를 찾아서 48시간 동안 눌러앉으면 끝이야!

배를 타고 군도 끝자락으로 떠나는 학생들.

-으음, 좋다.

의자에 누워서 디저트를 즐기며 아름다운 오션뷰와 화산뷰를 만끽하고 있는 학생까지.

물론 이렇게 여유를 부리는 학생들은 최상위권 외에는 없었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이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었다.

그리고 역시나 단체시험 때마다 눈에 띄는 한 사람.

"자! 얘들아, 핵심 공략법이야! 포인트를 얻으면 뭐 하라고?"

딕이 제 출력장치를 손끝으로 툭툭 두들기며 말을 이었다.

"벽돌을 사라!"

수완이 좋고 언변이 탁월한 딕은 혼란에 빠진 주변의 학생들을 포섭하고, 그룹을 만들었다.

생존하려면 뭉쳐야 한다. 단체 활동이 살길이다.

그런 명분하에 그룹을 완성한 뒤, 딕은 '포인트 획득'이 생각 이상으로 쉽다는 점을 파악하고는 그룹원들에게 각자의 포인트로 벽돌을 구매하게 시켰다.

그의 목표는 섬의 최고 고지대에 자리 잡은 다음, 포인트로 구매한 벽돌들을 차곡차곡 쌓아 올려서 '요새'를 만드는 것이었다.

"벽돌 하나의 가치는 고작 5P에 불과해! 요새 쌓고 거기서 48시간을 버티면 끝이야! 그냥 거저먹기로 통과라고!"

기술과 설계도는 딕의 머릿속에 있었다.

학생들은 처음엔 긴가민가했지만, 우리들만의 '요새'를 가질 수 있다는 말에 조금씩 포인트를 투자하기 시작했고, 꽤 그럴듯하게 세워지는 요새의 모습에 더더욱 딕을 신뢰해 갔다.

-용암이 요새 밑으로 빠져나가도록 배수로까지 만들었어!

-이 새끼 진짜 천잰데.

고지대에 지어지는 딕의 요새를 본 학생들은 하나둘 자신도 합류하겠다며 선언하고, 이 그룹의 덩치는 무시 못 할 만큼 커지고 있었다.

"음흐흐, 우린 이미 시험을 통과한 거나 다름없...... 음?"

쿠르르르르르르르!

요새를 짓던 딕 그룹의 학생들이 고개를 들었다.

지면 한 덩이가 공중으로 치솟고 있었다.

"저 기술은......."

그 광경을 지켜보던 딕이 슬쩍 웃었다.

"전체 2위의 샤텔 마에르네."

<영역반전>

수묵화처럼 검게 물든 땅덩어리가 하늘로 날아올랐다. 이내 흙들이 스스로 움직여 해골의 입을 연상케 하는 커다란 저택을 만들었다.

그리고 샤텔로 추정되는 덩치 큰 자가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보인다.

이 상태에서 고정.

학생들은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저렇게 날로 먹는 방법이 있었구나."

"근데 48시간 동안 '영역반전'을 유지할 수 있나?"

"샤텔이라면 가능하지."

"부럽네 진짜."

학생들이 모두 공중에 뜬 사텔의 해골섬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딕이 제일 먼저 정신을 차리고 외쳤다.

"자, 자! 저건 샤텔이나 가능한 거야. 못 오를 나무는 꿈도 꾸지 마시고! 우리는 우리대로 움직이자고!"

"그럼!"

* * *

해설자들이 앉아 있는 마나스크린에는 이 모든 광경들이 비춰지고 있었다.

요새를 만드는 딕의 그룹에서부터, 세상 태연하게 사치를 부리며 쉬고 있는 세르네의 모습까지.

해설자가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역시 키젠 학생들답게 적응이 빠릅니다! 아직 초반부지만 슬슬 흥미로운 장면들이 많이 나오는군요! 앞으로의 양상은 어떻게 될까요? 아론 교수님!"

"샤텔 마에르의 해골성은 하늘에 떠 있습니다."

아론은 다크서클로 퀭한 눈두덩이를 손바닥으로 비비며 그렇게 서두를 뗐다.

"시작지점에서는 어느 각도에서도 보이겠죠."

"오오. 확실히 그렇겠네요!"

"키젠 2위가 온전히 '생존'에 집중하는 모습은 다른 학생들의 머릿속에 깊게 자리 잡을 겁니다. 모든 학생들이 자신의 안전한 영역을 확보하기 움직일 테고, 포인트 갈등이 격화되겠죠."

차갑고 과묵하기만 한 줄 알았더니, 묻는 말에 귀찮아하면서도 차근차근 대답해 주는 아론이었다.

해설자 콘라드는 조금은 그에 대해 더 알아간다고 생각하며 이번에는 제인 쪽을 보았다.

"물론 저렇게 하늘에 머무르면 마그마는 확실히 피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만! 저러면 다른 학생들의 타깃이 되지 않을까요? 제인 교수님."

"그럴 일은 없을 것 같네요."

제인이 고개를 내저었다.

"샤텔이니까요."

샤텔 마에르는 1학년 시절부터 로레인, 세르네와 함께 묶이는 강자였고, 누구도 그와 싸우고 싶지 않아 했다.

심지어 그는 딱히 포인트를 노리지도 않으니, 그냥 위에 혼자 살라고 내버려 두는 편이 샤텔에게 도전할 만한 Top10급 강자들에게도 이득이다.

사실상 이 모든 게 샤텔이니 가능한 전략이었다.

"지금까지 단 한 명의 학생도 탈락하지 않았습니다. 화산폭발 외에는 큰 변수도 없어 보이는 게 사실입니다."

제인이 눈을 감았다.

"이제 모든 학생들이 시험에 대한 적응이 끝나고, 할 만하다는 생각이 들면 위험한 상황이 벌어지겠죠."

"그렇군요!"

해설자가 입꼬리를 올렸다.

"계속 지켜보도록 하겠습니다! 마침 의미심장한 움직임들이 보이는군요!"

* * *

딕의 그룹 요새.

언데드들이 부지런히 움직이며 벽돌을 요새로 옮기고 있었다. 언데드들을 조종해 벽돌을 차곡차곡 쌓아가던 한 학생이 한숨을 푹 쉬었다.

"후우, 요새가 높아질수록 벽돌 쌓는 게 점점 힘들어지네."

시간이 지나니 건설 진도가 지지부진해졌다. 거기에 시험 극초반과는 달리 경쟁이 많아져서 포인트를 얻기도 힘들어졌다.

하지만 이미 시작한 일이고, 언제 화산이 폭발할지 모르니 한가하게 쉴 틈은 없었다.

'한 세트만 더 구매하고.'

포인트로 보급품을 구매하는 방법 자체는 쉬웠다. 출력장치로 원하는 물건을 선택하기만 하면, 잠시 후 바로 앞에 마법진이 펼쳐지고 보급품이 튀어나왔다.

구매한 벽돌들을 모두 늘어놓은 그가 다시 몬스터 사냥을 나가려는데.

"허억! 헉! 지금 손 비는 사람 없어? 누가 나 좀 도와줘!"

입술에 피어싱을 한 학생이 헐레벌떡 뛰어오며 외쳤다. 그 모습을 본 남학생이 요새에서 폴짝 뛰어내렸다.

"카빈즈냐? 무슨 일인데. 다들 포인트 구하러 사냥 나갔어."

카빈즈라 불린 피어싱을 한 학생이 숨을 몰아쉬며 앞을 가리켰다.

"내가...... 허억! 보스급 몬스터를 발견한 것 같아! 나 혼자는 좀 버거워서!"

보스급 몬스터라는 말에 학생의 눈이 반짝였다.

"포인트 많이 주겠지?"

"아마도!"

"앞장서."

두 사람은 빠르게 숲을 가로질러 달리기 시작했다. 그를 안내하고 있던 카빈즈가 슬쩍 말했다.

"헤이, 모든 포인트를 다 요새 짓는 데 쓰진 않을 거지?"

"당연한 소릴."

"얻는 포인트는 반반하자. 이 중에서 딱 반만 벽돌로 돌리자고."

카빈즈의 제안에 학생이 손바닥을 펼쳤다.

"말이 좀 통하는데?"

두 사람은 가볍게 하이파이브하며 현장에 도착했다.

-께에에엑! 끼이이이!

과연, 커다란 바위 뒤에 몬스터가 발버둥 치는 소리가 들렸다. 카빈즈가 바위 뒤를 가리켰다.

"저기 있어. 내가 저주로 약화시켜 두긴 했는데 결정타가 없어서."

"나한테 맡겨."

학생이 두 손에 칠흑화염계를 일으킨 채 다가갔다.

"자, 각오하...... 응?"

그의 눈이 커졌다.

몬스터는 온데간데없고, 마법진에서 몬스터의 울음소리만 울려 퍼지고 있었다.

<바인드>

<크라바트>

<트리거 체인>

갑자기 사방에서 저주가 발동되더니 남학생의 몸을 옴짝달싹 못 하게 했다.

"뭐, 뭔! 크읍!"

그가 풀썩 자리에 쓰러졌다. 뒤를 돌아보니 카빈즈가 실실 웃는 얼굴로 걸어오고 있었다.

"카, 카빈즈! 이게 뭔 개짓거리야 이 새끼야!"

"이런 기회를 그냥 서바이벌만으로 퉁 치기엔 아깝지."

그가 허리춤에서 저주가 걸린 단검을 뽑아 들었다.

"나보다 상위권에 있는 경쟁자를 이렇게 쉽게 제거할 기회가 또 있을까?"

"뭐 이 새끼야? 너 마빡에 화살이라도 처맞았......!"

카빈즈가 자리에 쪼그려 앉아 단검을 들어 올렸다. 학생이 버둥거리며 악을 지르며 욕을 쏟아냈다.

푸욱!

칼날이 살갗을 파고드는 감각에 학생이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전신의 힘이 쭈우욱 빠졌다.

진짜 느껴지는 통증에 머릿속이 하얗게 새어버리고, 라이프 게이지가 엄청난 속도로 줄어드는 게 보인다.

"자, 잠깐, 잠깐만!"

욕을 내뱉던 그가 어느새 입술을 벌벌 떨며 애원조로 말했다.

"미안! 어? 내가 사과할 테니까 좀 멈춰봐! 나 여기서 죽으면 퇴학이야! 알잖아!"

"알지. 그리고 사과할 필요도 없어. 너한테 원한이 있어서 이러는 게 아니거든."

"그럼 왜!"

카빈즈가 웃으며 마지막으로 단검을 내리꽂았다.

"여기는 키젠이잖아."

[자마 메안더가 탈락했습니다.]

* * *

2학년 단체시험에서 첫 탈락자가 발생했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의 원흉인 카빈즈는 태연한 얼굴로 요새에 복귀했다.

"......."

"......."

요새에 도착하니, 몬스터 사냥을 중지하고 모여든 그룹 학생들이 잔뜩 긴장한 얼굴로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 중간에는 딕이 팔짱을 낀 채 기다리고 있었다.

"다들 메시지 봤어?"

카빈즈는 바로 다급한 연기를 시작했다.

"자마가 죽었......."

"카빈즈."

딕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네가 죽였지?"

"뭐, 뭐?"

"네가 자마랑 같이 숲으로 들어가는 걸 본 녀석이 있어."

카빈즈가 재빨리 말했다.

"그, 그게. 사실은 괜히 의심받기 싫어서 모른 척해본 건데 자마가 몬스터랑 싸우다가......!"

"카빈즈."

딕이 짜증스럽게 머리를 긁으며 차갑게 대꾸했다.

"구질구질하단 생각 안 들어?"

"......."

결국 카빈즈가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그래서 뭐. 쫓아내려고? 한 명이라도 더 힘을 합쳐야 한다며?"

"그렇다 한들 동료 뒤통수 치는 새끼랑은 같이 못 지내겠다."

한 번 했는데, 두 번을 못 하겠는가. 모두가 딕의 말에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이 시험에서 떨어지면 퇴학인 걸 알면서, 왜 같은 학과 동기를 탈락시켰냐?"

"위선 떨기는, X발."

본색을 드러낸 카빈즈가 음침하게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너희는 이번 학기까지 오는 동안 경쟁자 한 명 안 탈락시켰어? 여긴 키젠이야! 늘 하던 대로 했는데 왜 이제 와서 지랄이야."

카빈즈의 몸이 흐릿해지며 점점 사라지기 시작했다.

"요새 놀이 따윈 곧 끝날 거다. 이 무대에서 단합 따윈 없어."

* * *

자마의 탈락 사태로 학생들의 분위기가 심각하게 변했다.

첫 학생의 탈락. 즉, 첫 퇴학자의 등장이다.

지금까지 섬의 몬스터 수준을 확인한 학생들은, 당연히 섬 내부 몬스터의 공격을 받아 탈락한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누가 뒤통수쳤네.

-몇 시간 지나지도 않았는데 이 난리냐.

그리고 첫 플레이어 킬이 떠오른 시점 이후로, 학생들이 하나둘씩 탈락하기 시작했다.

[브위네 로드네크가 탈락했습니다.]

[이반 바르샤니가 탈락했습니다.]

[아우로르 세룸이 탈락했습니다.]

누가 탈락했는지만 출력장치에 나올 뿐, 누가 어떻게 죽였는지는 알려지지 않는다.

그 사실이 확인되자마자 학생들이 사이의 교전이 격화되기 시작했다.

-공부 덜 하고, 힘 덜 쓰고 경쟁자를 잡을 수 있는데!

-이건 당연히 이용해야지!

이내 중위권 학생들끼리 모여서, 감히 우러러볼 수도 없었던 전체 100위권 학생들을 사냥하려는 시도까지 일어났다.

그리고 이런 난리 속에서.

처음부터 이런 사태를 예견했던 학생 두 명은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었다.

위이잉-

위잉-

섬의 환경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벌'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극독을 품고 있는 메르디아나의 말벌들.

아세라즈는 그중 한 마리를 따라 걷고 있었다.

"아세라즈, 여기야!"

메르디아나가 손을 휙휙 흔들어 보였다. 그녀의 옆에는 바다가 펼쳐져 있었고, 두 사람이 타고 갈 배가 준비되어 있었다.

"적절한 때에 합류했네."

아세라즈가 피곤한 얼굴로 기지개를 쭉 켜며 말했다. 메르디아나가 웃었다.

"피곤해 보이네?"

"다른 애들이 덤벼들길래."

"오, Top10인 너한테도 덤벼들었단 말이지? 분위기는 완벽히 무르익었네."

메르디아나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아주 좋아. 시몬 폴렌티아를 떨어뜨리기 딱 좋은 타이밍이야."

"시몬의 위치는 파악했어?"

"그럼. 시몬은 중앙섬으로 바로 떠난 것 같아."

그때 벌 한 마리가 메르디아나의 얼굴 앞으로 다가왔다. 사람 손등만 한 커다란 말벌이 윙윙거리는 소리를 내자, 아세라즈는 자신도 모르게 움찔하며 한 걸음 물러섰다.

"오우."

"왜 그래?"

메르디아나가 입꼬리를 올렸다.

"위치상, 쥴이 제일 먼저 시몬이랑 붙을 것 같네. 그 녀석이 시몬을 발견했어."

아세라즈의 표정에 긴장감이 서렸다.

"......마검 사용자 쥴? 설마 혼자서 싸울 생각은 아니겠지?"

"나도 몰라. 마검에 정신까지 팔았는지, 워낙 제멋대로니까."

메르디아나는 옷 소매에서 연달아 벌들을 꺼냈다.

"서두르자. 시몬에게 협력자가 붙기 전에 빠르게 쳐내야...... 아, 잠깐만."

또 다른 벌이 그녀의 앞으로 날아와서 윙윙거렸다. 보고를 받은 그녀의 인상이 굳어졌다.

"왜 그래?"

메르디아나가 머리를 쓸어넘겼다.

"헥토르가 이리로 오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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