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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817화 (817/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817화

이번 2학년 단체시험에는 '봉인석'이라는 요소가 존재한다.

카드의 네크로맨서 앤돌라드 보드빌이 직접 만든 지물로, 시험자가 해당 봉인석을 점령하면 앞으로 20시간 뒤에 등장할 '화산성주'의 힘을 약화시킬 수 있다.

물론 화산성주가 등장하지 않은 당장은 아무런 효과를 기대할 수 없고, 개인적인 메리트도 없지만, 시몬은 그 봉인석이 있는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포인트 획득도 할 겸해서, 겸사겸사.'

새로운 지형을 제일 먼저 발견하면 포인트를 얻을 수 있다.

봉인석도 예외는 아닐 터, 시몬은 중앙섬에 도착하자마자 근방에 삐쭉하게 솟아 있는 비석을 발견하고는 그쪽으로 걸어가는 중이었다.

타닥. 탁.

흙이 까맣다. 걸을 때마다 지면이 갈리는 소리와 함께 흙먼지도 꽤 심하게 날린다. 충격에 쉽게 무너질 우려가 있는 지형이니, 주의해야 할 것 같다는 정보를 머릿속에 넣어둔다.

이어서 고개를 들어 분화구 쪽을 확인한다.

금방이라도 끓어 넘칠 것 같지만, 처음 봤을 때와 큰 변동은 없다.

'화산성주가 나타난 뒤에나 폭발하려나.'

이런저런 주변 환경을 분석하며 걷다 보니, 얼마 안 가 봉인석 앞에 도착했다.

언어 그대로 우뚝 솟아 있는 비석의 형태였다. 몸체에는 룬어가 박혀 있었고 은은한 빛을 뿜어냈다.

'어떻게 작동시키는 거였더라?'

가이드북의 내용을 머릿속에 떠올린 시몬은 천천히 봉인석에 손을 올렸다.

우우웅-!

칠흑을 아직 투여하지도 않았는데, 봉인석이 밝게 공명하는 소리가 들린다. 시몬은 살짝 인상을 찡그리며 손을 뗐다.

이건 이미 작동되어 있는 상태다.

그렇다는 건.

'누가 이미 먼저 와 있.......'

싸아아아아아아아-!

갑자기 온몸의 솜털이 쭈뼛 솟으며 뒷목이 뻣뻣하게 당겨진다. 아무도 없는 줄 알았던 봉인석의 뒤에 누군가의 존재감이 느껴진다.

부스스-

그 자가 봉인석에서 등을 떼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소 왜소한 체구에 목까지 덮을 수 있는 코트형 망토를 겉에 둘렀고, 키만 한 장검을 허리에 차고 있었다.

전체 10위이자, 마투학과 대표.

'마검 사용자', 쥴 빈체레.

학교생활을 하면서 몇 차례 마주친 적이 있었는데, 그의 외형에서 한 가지 눈에 띄는 변화가 있었다.

'눈을 봉했어?'

예전엔 한쪽 눈을 안대로 덮는 정도였으나, 지금은 완전히 붕대로 시각을 봉한 상태였다.

척.

쥴이 마검의 손잡이에 손을 올리자, 시몬은 바짝 긴장하며 입을 열었다.

"오, 오랜만이야! 쥴."

쥴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건 적의였다. 지켜보던 피어의 분신이 클클 웃으며 사념으로 말했다.

[이 소년은 벌써 상당히 마검에 잠식됐군!]

'위험한가요?'

[그래, 위험하다.]

시몬이 봐도 보통의 정신상태는 아닌 것 같았다. 땀이 삐질삐질 흘러나왔지만 일단은 대화를 이어가 보았다.

"혹시 네가 봉인석을 점령한 거야?"

쥴은 고개를 한번 끄덕였다.

다행히 소통의 여지는 있는 것 같았다.

"그렇구나! 화산성주를 잡기 전에 미리미리 다른 봉인석들을 점령해 두는 게 좋겠어. 그럼 나는 이쪽으로 갈게."

꽈악.

칼자루 위에 가볍게 손을 얹은 자세였던 쥴이, 갑자기 칼자루를 강하게 움켜쥐었다.

손등에 힘줄이 솟는 모습.

시몬은 그 즉시 반응했다.

촤아아아아아아악!

불길하기 그지없는 새까만 검격이 붓질하듯 허공에 그어졌다. 다급히 허리를 젖혀 피한 시몬이 눈동자를 굴려 뒤를 보았다.

주변의 나무들이 흰 나이테를 보인 채 갈라지고 있었다.

"어딜 갈 생각이오."

칼자루를 쥐었을 뿐, 검을 뽑아 휘두르는 일련의 동작이 보이지 않는다.

마검을 이용한 캔슬 스타일의 발검술은 쥴의 전매특허였다.

"잠깐만, 진정해."

시몬이 손바닥을 펼치며 말했다.

"굳이 키젠 학생끼리 싸울 필요가 없잖아."

"그대야 싸울 필요가 없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다르오."

그가 검을 붙잡은 자세를 고쳐잡았다.

"작년에 말했지 않소? 다음에는 더 완벽한 상태에서 도전하겠다고."

미안하지만 진짜로 기억이 안 난다.

그래도 필사적으로 생각해 보니, 작년 BMAT시험 때 싸우다가 그런 이야기가 오갔던 것 같기도 하고.

"지금은 상황이 안 좋잖아! 이번 시험이 끝나면 결투신청이든 뭐든 받아줄......!"

촤아아아아아악!

마검의 검격이 이번에는 곡선으로 꺾여 들어갔다. 고개를 젖혀 피했지만 머리카락 몇 가닥이 잘려나갔다. 창자가 서늘해지는 기분이었다.

"심판이 있는 교내 결투에는 제약이 지나치게 많소. 특히 내 마검의 특성상 더더욱 그렇지."

쥴이 허리춤에 낀 마검을 배까지 들어 올려 역수로 고쳐 잡았다.

"지금 이 순간, 지금 이 시점이. 그대에게 내 모든 것을 부딪혀 도전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요!"

쥴은 진심인 것 같았다.

네크로맨서들이 미쳐 있다는 사실이야 하루 이틀 일도 아니다만, 쥴은 한층 더 밑바닥의 수렁 같은 뭔가가 느껴졌다.

'미치겠네!'

촤악!

촤아아악!

쥴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시몬은 황급히 반대편으로 내달렸고, 바닥은 온통 검이 지나간 자국들이 그어졌다.

"놓치지 않겠소!"

'전보다 더 빨라졌어!'

겉보기에 쥴은 마검의 손잡이를 붙잡은 채 가만히 있는 것 같지만, 엄연히 검을 휘두르고 있다.

검을 뽑아서 참격을 날리고, 다시 집어넣는 일련의 동작이 마검의 권능으로 생략되어 이미 일어난 일로 바뀐다.

그 짧은 동작에 한해서 인과의 역전. 혹은 현실조작과도 같은 힘이 적용되는 것이다. 상대는 무슨 수를 써도 마검을 휘두르는 동작을 볼 수 없다.

'빠르게 적응해야 해!'

시각 정보와 청각 정보는 마검이 휘둘러지는 방향을 알려주지 않는다. 오로지 육감에 의존해서 피해야 했다.

시몬이 온 감각을 끌어올리고 있는데.

<쥴 오리지널 - 업마>

쥴이 적응할 시간도 주지 않겠다는 듯, 바로 비장의 기술을 사용했다.

촤아아아아악!

촤아아아악!

마검을 이용한 연격.

좌측에서 길게 그어지는 검격이 시몬의 돌진을 차단하고. 위에서 아래로 비스듬히 그어지는 검격으로 시몬을 제자리에서 점프하게 한다.

그리고 시몬이 피할 수 없는 공중으로 떠오른 순간.

"!"

육감에 집중하고 있던 시몬은, 마치 긴 터널이 자신과 쥴을 뒤덮고 있는 듯한 감각에 사로잡혔다.

쥴과 자신의 거리는 일직선.

그리고 검집에서 흘러나온 끔찍한 괴물이 눈동자를 부릅뜨는 이미지가 떠올랐다.

검집에서 일직선으로 쏘아지는 검은 선이, 자신의 몸을 관통하며 지나가는 미래가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이대로는 당해!'

회피가 불가능하다면 막아야 했다.

찰나의 순간.

본능적으로 일단 아공간부터 열어둔 상태에서, 시몬의 머릿속에 수많은 시뮬레이션이 돌아갔다.

방어마법은? 방어마법째로 베여서 당할 것이다.

아공간에 있는 좀비, 구울, 스켈레톤까지 무엇을 꺼내든 두 동강 난다.

드래고니안 슈트도 배리어 없이 바로 꺼내면 당할 것이다. 배리어를 펼치기엔 늦다.

단단한 것.

마검을 막을 만큼 아주 단단한 것이 필요했다.

필요한 것을 정확히 인지한 순간.

'......!'

시몬의 손이 망설임 없이 아공간 속으로 들어갔다.

까아아아아아아아앙!

시몬이 한 물건을 꺼내 앞으로 세웠고. 그 즉시 참격이 날아와 부딪혔다. 검격으로 이루어진 검은 칠흑이 X자 형태로 까득거리며 회전했다.

상황을 살피던 쥴이 인상을 썼다.

'업마를 막았어?'

카가가가가가가각!

시몬의 몸이 한참을 밀려 나가다, 가까스로 바닥에 멈춰 섰다.

쥴 또한 공격을 중단하고 숨을 고르며 정면을 응시했다.

'마검의 손상을 감수하고 날린 일격인데, 무엇으로 막은 거지?'

펄럭!

시몬이 업마를 막아 세운 물건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무런 특징도 없이 이질적으로 새까만 봉대.

그리고 그 위에 칠흑으로 이루어진 깃발이 펄럭이고 있었다.

"그대, 그 무기는......."

들썩!

쥴은 말을 채 잇지 못했다.

갑자기 그의 상태가 이상했다. 허리에 차고 있던 마검이 검집에서 들썩거리기 시작했다.

들썩들썩들썩들썩!

마검이 뽑혔다 들어갔다를 미친 듯이 반복하고 있었다. 쥴이 얼른 마검을 붙잡았다.

"왜, 왜 그러시오! 무슨 일이오!"

크읍!

쥴이 마검을 끌어안은 채 한쪽 무릎을 꿇고 버티려 했지만, 들썩거림은 점점 더 빨라졌다.

[죽여!죽여!죽여!죽여!죽여!죽여!죽여!죽여!]

마검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더는 참을 수 없다! 네 몸이라도 가져와라!]

우뚝.

쥴의 동작이 멈췄다.

갑자기 고개를 푸욱 숙이고, 두 팔이 연체동물처럼 흐느적거리며 늘어졌다.

불길한 예감이 든 시몬은 즉각 손에 쥔 깃발을 앞으로 보냈다. 과연, 눈 깜짝할 사이에 마검을 든 쥴이 공중에서 회전하며 내려오고 있었다.

까아아아아아앙!

지면이 뒤집히고 흙먼지가 들불처럼 일어난다. 연기 너머로 마검에게 육체를 빼앗긴 쥴이 흐느적거리며 검을 치켜들었다.

'마검을 뽑았어?'

먼지구름을 반으로 가르며 나타난 쥴의 마검이 소름 끼치는 검광을 뿜어냈다.

검집의 봉인에서 마검이 해방된 것이다.

"끅! 하하하하하!"

쥴이 광소하며 마검을 우악스럽게 휘둘러댔다. 일격일격이 드래고니안 수트라도 밀가루 반죽처럼 갈라 버릴 수 있을 만큼 예리했다.

채애앵!

까아아아앙!

시몬은 깃발을 앞세우며 필사적으로 버틸 수밖에 없었다.

'이 깃발 엄청 단단한데.'

하지만 감탄할 때가 아니었다. 시몬이 다급히 외쳤다.

"쥴! 정신 차려!"

[크흐흐! 저 소년이 결국 마검에게 주도권을 빼앗긴 거다!]

'피어, 갑자기 마검이 왜 폭주한 거죠?'

시몬은 그렇게 물으면서도 사실은 답을 은연중에 알고 있었다.

그의 시선이 손에 쥔 깃발에 향했다.

-깃발의 형태긴 하지만, 이건 성검이다.

성검.

아론은 분명 그렇게 말했었다. 물론 지금은 절대 성검이라 부를 수 없는 상태긴 했지만, 쥴의 마검이 폭주한 걸 보니 이 물건 자체가 문제로 보인다.

당장 이 깃발을 집어넣어야 했다.

"친위대!"

시몬의 아공간에서 스켈레톤들이 튀어나오고, 동시에 에메랄드빛 섬광이 벼락처럼 내려와 그것들을 친위대로 만들었다.

청록빛 궤적을 그리며 총탄처럼 나아간 친위대들이 사방에서 쥴을 덮쳤다.

[방해하지 마라!]

쥴을 조종하고 있는 마검 또한 쥴에게 방어동작을 취하게 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사이.

"웃차!"

시몬은 얼른 손에 쥔 깃발을 아공간 안으로 던져넣고 닫아버렸다.

이 깃발의 힘으로 싸울 수는 있겠지만, 일단 마검의 폭주를 멈추는 게 우선이었다.

다행히 효과는 바로 나타났다.

친위대와 싸우던 쥴이 고개를 퍼뜩 들며 정신을 차린 것이다. 그는 얼른 뒤로 물러나 검집 안에 마검을 집어넣었다.

마검이 들어가지 않으려고 끝까지 버텼지만, 결국 쥴은 힘겹게 마검을 검집 안에 봉인하는 데 성공했다.

그가 숨을 거칠게 헐떡이며 시몬을 보았다.

"......못난 꼴을 보였군, 그건 대체 무엇이었소?"

시몬도 마찬가지로 떨리는 손을 진정시키며 대답했다.

"설명하자면 좀 길어."

시몬도 죽을 맛이었다. 깃발을 손에 쥔 것만으로도 속이 베베 꼬이고 뒤집힐 것만 같았다.

귀속무구를 사용자가 아닌, 다른 자가 손에 쥐는 것으로 생기는 문제였다. 이 무기는 역시 원래 주인인 타락형 데스나이트가 써야만 했다.

"......보아하니, 그대는 기어이 '마검'까지 손에 넣은 것 같군."

쥴이 다시금 천천히 전투자세를 잡았다.

"이제 나는 그대에게 단 하나의 우위도 없구려."

시몬이 식겁하며 말했다.

"아니, 잠깐만! 계속 싸우려고?"

"물론이오."

그의 몸에서 다시 한번 전의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모든 것을 버린 내가, 모든 것을 가진 그대의 어디까지 도달할 수 있을지 궁금하오."

"오해야! 아까 그건 마검도 아니고, 내가 제대로 쓸 수 있는 물건도 아냐."

"자세를 잡으시오, 시몬 폴렌티아."

단호하게 말했다.

"퇴학당하기 싫다면."

"......."

그 말을 들은 시몬이 손을 내렸다. 그러고는 나지막하게 한숨을 쉬었다.

"후회하지 마."

"물론이오."

처적!

척!

척!

시몬의 주위로 망토를 휘날리는 스켈레톤들이 하나둘 걸어왔다.

다만 그건 평범한 스켈레톤이 아니었고, 그들의 무기는 검이 아니라 기사들이 쓰던 거대한 장창이었다.

이번에 바닐로부터 새롭게 보충한 언데드, 콜로탄 스켈레톤으로 만든 친위대였다.

<시몬 오리지널 - 친위대>

"간다."

시몬이 클라우드로 이루어진 관을 머리에 썼다.

쥴은 검 손잡이를 거칠게 붙잡았고, 시몬은 친위대를 돌진시킬 준비를 마쳤다.

일촉즉발의 상황인 그때.

"시몬."

두 사람 사이를 비집고, 한 소녀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졌다.

"......!"

쾅!

쥴에게 의문의 공격이 들어왔다.

쥴은 영문 모를 공격을 마검으로 막아내며 쭉 밀려났다.

시몬도 갑작스럽게 들어온 공격에 당황하며 공격의 기원을 찾아 고개를 돌렸다.

"멈춰."

어마어마한 존재감을 뿜어내는 누군가가, 이쪽으로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시몬에게 볼일이 있는 건 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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