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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823화 (823/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823화

혈묘족은 예지로 짧은 미래를 볼 수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엘리시아는.

-당신에게 내 승리를 배팅하겠어요.

왜 공격을 피하지 않고 내게 이 물건들을 맡겼을까.

"시몬!"

자신을 부르는 외침에, 시몬은 퍼뜩 정신을 차렸다. 먹먹하던 주변의 소리에 생동감이 덧입혀지고, 후끈한 열기가 폐부를 찌른다.

"뭐 하는 거야? 정신 차려!"

신디가 사령마법을 연사하며 외치고 있었다.

눈을 뜨니 시야가 뒤집힌 채였고, 그녀의 얼굴이 보인다. 그 옆에는 딕이 뭔가를 마구 던지고 있었으며, 말콤은 도플갱어를 계속 일으키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상대하는 건 득실거리는 용암 몬스터들.

엘리시아가 '화산성'에서의 공격으로 탈락한 직후, 시몬 일행이 돌다리를 건너자마자 수백 마리가 넘는 용암 몬스터들이 공격해 왔다.

마치 이쪽이 마그마를 건너길 기다렸다는 것처럼, 일제히 포위하고 퇴로를 차단했다.

그리고 시몬은 앞장서서 포위망을 뚫다가, 뭔가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흙먼지가 시야를 가리는 것까지 기억나는데, 아무래도 찰나의 순간에 정신을 잃은 것 같았다.

"헤이, 시몬! 괜찮아?"

딕이 손을 내밀었다. 시몬이 그의 손을 붙잡고 단번에 몸을 일으켰다.

"어떻게 된 거야?"

"하늘에서 용암 유성이 네 바로 옆에 떨어졌어. 운이 더럽게 없었네."

딕이 가리킨 곳을 보니 바닥에 커다란 구덩이가 파여 있는 게 보인다.

이걸 못 피하다니, 눈앞에서 엘리시아가 당한 이후 집중을 못 한 것 같았다.

"일어났으면 빨리 도와!"

신디가 힘겨운 비명을 질러댔다. 그사이 '으아악!' 하고 용암 몬스터들의 팔에 붙들린 학생이 끌려가는 모습이 보인다. 이어지는 끔찍한 비명과 함께, 뭔가가 타는 듯한 냄새가 났다.

[길트라 안든이 탈락했습니다.]

길트라를 포위한 용암 몬스터들 사이에서 빛이 번쩍였다. 캠프섬으로 소환될 때의 빛이었다.

다 잡은 사냥감을 눈앞에서 잃어버린 몬스터들의 분노한 시선이 이쪽으로 향한다.

"수가 너무 많아."

말콤이 뒷걸음치며 말했다.

"누군가 용암 몬스터들을 조종하는 것 같군. 전술적으로 움직이면서 서서히 포위망을 굳히고 있다."

"조종하긴 누가? 착각이겠지!"

신디는 그렇게 쏘아붙였지만, 시몬은 말콤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돌다리를 건넌 직후 기다렸다는 듯 이루어진 적의 급습.

심지어 몇 마리는 빠르게 우회해서 돌다리를 무너뜨려 퇴로를 차단하기까지 했다.

인간만 보면 그저 달려들기 바쁜 용암 몬스터들이, 이런 전술적 움직임을 보이는 게 가능할까?

"......."

시몬은 주위를 쭉 훑었다.

용암 몬스터들은 심지어 진형을 구축하고 있었다. 전방에는 3개 무리가 시몬 일행을 막처럼 넓게 감싸고 있고, 그 뒤로 각각 2개의 예비무리가 바짝 붙어 뒤따르고 있다.

이 포위망, 이 전술.

어디선가 많이 본 적이 있는 것 같다.

아니, 본 적 있는 정도가 아니다.

'틀림없이 내가 배운 적 있는......!'

"어! 저기!"

신디가 앞을 가리키며 외쳤다. 주위의 몬스터들이 빼곡하게 몰려들고 있는 가운데, 진형의 중간에 작은 틈이 보였다.

"빈틈이야! 포위에 빈틈이 생겼어! 저기로 도망치자!"

"안 돼, 함정이야."

시몬이 확신에 찬 목소리로 대답하며 신디를 막았다.

"우리를 끌어내 유인하려는 속셈이야. 말콤!"

"어어."

"저기 텅 비어 있는 포위망의 균열 쪽으로 모든 도플갱어들을 보내줘!"

시몬이 그렇게 말하며 말콤에게 뭔가를 던졌다. 그것을 붙잡아 확인한 말콤의 눈이 커졌다.

"이건......!"

엘리시아의 푸른 피가 들어 있는 주사기 캡슐이었다.

"엘리시아의 증폭 혈청이군! 여분이 있었나!"

말콤은 그것을 망설임 없이 제 어깨에 틀어박았다. 이내 그의 몸에서 칠흑이 풀풀 흘러넘치더니, 최대 힘으로 흑마법을 사용했다.

<도플갱어>

서른 기가 넘는 도플갱어들이 용암 몬스터들이 만들어낸 빈틈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몬은 동기들을 이끌고 정확히 반대 방향으로 달렸다.

"우리는 이쪽!"

"? 뭐 하는 거야! 기껏 말콤이 병력을 꺼냈는데 전력이 분산되잖아!"

"날 믿어!"

시몬은 그렇게 외치며 제일 먼저 적진을 향해 들어갔다.

'개문!'

촤아아아아아아아악!

두 갈래의 오버로드 칼날이 튀어나와 뭉쳐 있는 용암 몬스터들을 단번에 갈라냈다. 시몬은 아공간을 열고 뼈들을 연달아 꺼내 자신의 앞에 성을 쌓았다.

<본 아머 - 헤비아머 타입>

쿠쿠쿠쿠쿠쿵!

오우거의 시체로 만든 뼈의 요새가 눈앞에 펼쳐졌다. 다른 학생들도 즉시 그 위에 올라탔고, 시몬이 전진 명령을 내렸다.

용암 몬스터들은 헤비 아머의 발길질에 밀려 나가며 균형이 무너졌다.

"어? 생각보다 쉽게 뚫리는데?"

"밖이다!"

한 겹의 몬스터만 무너뜨렸을 뿐인데 순식간에 밖으로 빠져나왔다.

이에 시몬은 헤비아머를 해제한 뒤, 대형 뼈들을 컨트롤했다.

쿠웅!

쿵!

공중에서 날아온 뼈들이 기둥처럼 틀어박히며 뼈의 울타리를 만들어냈다.

용암 몬스터들이 울타리를 넘으려고 난리를 부리는 사이, 시몬 일행은 무사히 거리를 벌릴 수 있었다.

"나이스!"

"살았다!"

모두가 환호하는 가운데, 신디는 뒤를 돌아보았다.

아까의 빈틈으로 달려가던 도플갱어들은 기다렸다는 듯 확 좁혀온 용암 몬스터들의 공세에 모조리 당하고 있었다.

"저렇게 될 걸 알고 있었지?"

그녀가 수상하다는 눈빛으로 시몬을 보았다.

"너도 뭐 엘리시아처럼 예지라도 가진 거야 뭐야?"

"예지가 아냐."

이건 칼로스 북부에서 자주 사용되던 진법 중 하나일 뿐이다.

거기에 엘리시아를 죽인 그 화살까지.

시몬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띤 채 화산성 쪽을 바라보았다.

'거기 계셨네요.'

* * *

[.......]

화산성주는 앤돌라스 보드빌의 시스템을 이용해 용암 몬스터들을 컨트롤하고 있었다.

이는 화산성주가 가진 권한 중 하나였다.

그녀의 앞에는 커다란 지도가 펼쳐져 있었고, 몬스터들과 화산 몬스터들의 움직임이 모두 출력되고 있었다.

본래는 이런 권한이 있어도 컨트롤에 애를 먹어야 했겠지만, 수많은 언데드 군단을 거느렸던 그녀에게 이 정도는 간단했다.

그런데.

'내 포위진을 돌파하다니.'

지난 십수 년간 칼로스 북부를 빈틈없이 지켜낸 그녀는 전술과 진형의 달인이었다. 그런데 자신의 진형에 걸려서 포위당해 전멸할 줄 알았던 학생 무리가 몬스터들을 농락하며 빠져나왔다.

미끼를 보내서 몬스터들을 유인하고 반대쪽의 취약 지점을 향해 달린 것이다. 전술진의 약점을 정확히 꿰뚫고 있지 않다면 불가능한 판단이다. 하물며 프로들도 아니고, 일개 학생들이다.

'......거기 있었느냐.'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화산성주가 미소를 지었다.

'건방진 것.'

* * *

"화산성주가 진 아르스칼트 교수님이라고?"

"북부대공님이?"

시몬의 설명을 들은 일행들은 다들 충격에 빠진 모습이었다.

시몬은 확신에 찬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확실해."

방금 몬스터들이 진법을 운용한 것도 그렇고, 무엇보다 화산성에서 화살로 엘리시아를 저격한 것도 그랬다.

광풍의 활을 쏘는 그녀의 실력이라면 그 거리에서 엘리시아를 맞춘 것도 불가능한 건 아니다.

"그리고 이번 일로 한 가지 더 알 수 있는 점이 있어."

"뭔데?"

"엘리시아는 '예지'를 마친 직후, 내가 있는 쪽으로 건너와서 이렇게 말했어."

-당신에게 내 승리를 배팅하겠어요.

시몬이 부스럭거리며 푸른색 피가 담긴 주사캡슐을 손바닥 위에서 꺼내보였다.

"생각해 봐. 정말로 이번 시험의 '탈락'이 무조건적인 '퇴학'이라면, 엘리시아가 탈락을 각오하고 나한테 이걸 건네주려 했을까?"

"잠깐만! 그 말은!"

신디가 펄쩍 뛰었다.

"엘리시아는 자신이 살 수 있는 미래를 엿본 거야!"

"탈락이 끝이 아닌 거네."

딕이 불쑥 끼어들었다.

"생존 혹은 승리. 화산성주를 잡으면 탈락자들 모두 퇴학은 면할 수 있어."

"맞아."

모두가 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곳곳에서 웃음 짓는 모습이 보였다.

학생들 모두 키젠의 시험을 한 두번 치른 게 아니었기에, '학생들의 승리'가 퇴학을 막는 유일한 방법이자 키젠에서 내어준 통로라는 건 경험상 짐작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 건으로 '짐작'이 아닌 '확신'이 선다. 그 마음가짐의 차이는 상당히 컸다.

"그건 그렇고, 시몬의 말이 사실이라면 너무하네. 네프티스 님."

신디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현역 군단장을 우리가 무슨 수로 잡아? 못 이길 게 뻔하잖아."

"제약."

딕이 불쑥 말했다.

"틀림없이 제약이 있을 거야. 그걸 파고드는 게 우리 역할이고."

시몬도 그렇게 생각했다.

엘리시아를 맞춘 공격은 '광풍의 활'이 아니었다. 또한 그녀가 조종하는 용암 몬스터들도 2군단이 아니다.

그녀는 화산성주라는 롤과 권한 내에서만 움직일 것이다.

"물론 대공의 성격상, 절대 봐주시진 않을 거야."

시몬이 그렇게 말하며 동료들을 쭉 둘러보았다.

엘리시아가 탈락된 뒤로, 이제는 자연히 그가 리더처럼 되어 있었다.

"우리도 악착같이 덤벼야 해. 출발하자."

한바탕 큰 싸움을 치르고, 일행 모두가 신중히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때 정찰을 맡은 신디의 귀가 쫑긋하며 움직였다.

"애들아. 잘 찾아온 것 같아."

"왜?"

"이 근처에 학생들이 진짜 많이 모여 있어. 서른 명? 아니, 마흔 명도 넘는 것 같은데."

그 말을 들은 시몬 일행은 반색하며 달려갔다.

정말이었다.

주위에 학생들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하더니, 이내 산 아래에 한 무더기의 학생들이 모여 있는 모습이 나타났다. 무려 40명이 넘는 대인원이었다.

"공략대다!"

딕이 환희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이 정도 규모면 틀림없어! 화산성주를 잡으러 모인 애들일 거야!"

말콤은 학생들의 면면을 살피다가 말했다.

"근데 누가 이들을 모은 거지? 틀림없이 중심을 잡아줄 인물이 있을 텐데."

"일단 가보자."

시몬 일행은 자연스레 공략대 무리에 합류했다.

시험 초반 같은 '적대감' 같은 건 전혀 없었다. 그들은 새로운 학생들의 등장에 경계하지 않고 오히려 전력이 올라갔다며 좋아하는 분위기였다. 그중에서는 수석인 시몬을 보고 입을 찢으며 기뻐하는 학생도 있었다.

"얘들아! 알아왔어!"

근처의 지인을 붙잡고 몇 가지 물어보던 딕이 시몬 일행에게 돌아와 설명했다.

"화산성 공략대가 맞아! 여기서 모였다가 다 같이 올라갈 생각인가 봐. 루트도 깔끔한 것 같고."

그 말대로. 화산이 끊임없이 폭발하고 있지만 이쪽에서 올라가는 루트만큼은 마그마가 닿지 않거나 적었다.

공략대는 이 아래에서 최대한 인원을 모아 한꺼번에 화산성을 치려는 것 같았다.

"아, 그리고 공략대를 이끄는 리더는......."

딕이 그렇게 말하기 무섭게, 주위의 학생들이 좌우로 갈라지며 커다란 덩치의 남자가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시몬 폴렌티아."

공략대의 리더는, 전체 3위의 헥토르 무어였다. 그가 화산성주를 잡고 시험을 끝낼 공략대를 모으고 있었던 것이다.

시몬이 반갑게 인사했다.

"안녕, 헥토르."

"......네놈도 화산성주를 잡으러 왔나."

"보는 대로."

헥토르가 팔짱을 꼈다.

"좋다. 당장이라도 승부를 내고 싶지만 이번만큼은 넘어가지. 전력으로서 내 지휘에 따라줘야겠다."

"못 믿겠는데."

같은 A반이었던 신디가 불쑥 말했다.

"정말로 순수한 의도에서 공략대를 이끄는 건 맞고? 또 막 틈을 봐서 경쟁자를 떨어뜨리거나 하는 거 아냐?"

헥토르의 목소리가 착 내려앉았다.

"피에르가 당했다."

"......."

"녀석을 구하기 위해선 이 방법뿐이다."

피에르 버클러는 A반 출신이자 같은 소환학과에 들어간 인물로, 헥토르와 가장 친한 친구였다. 이제 그는 헥토르에게 파벌 이상의 존재였다.

딕이 의외라는 듯 휘유-하고 휘파람을 불었다.

"하여간 지 식구는 더럽게 아껴요."

다른 학생들 사이에서는 공포의 대상이라지만, 헥토르가 자기 사람들에게는 잘해준다는 소문은 꽤 유명했다.

헥토르가 미간을 구기며 뒤를 가리켰다.

"버러지, 네놈은 저기서 같잖은 잔머리나 굴려라."

뒤쪽의 모범생 몇 명이 뭉쳐서 머리를 맞대고 전략을 짜고 있었다. 딕은 예이 예이 하고 대강 대답하며 전략팀에 합류했다.

"그리고 시몬 폴렌티아. 네놈은 힘을 아꼈다가 나와 함께 화산성주 결전에 나서줘야겠다."

"......."

"물론 잡는 건 나겠다만."

시몬은 주위를 한번 쓱 둘러보다가 조용히 말했다.

"아직 전력이 부족해."

"?"

헥토르의 옆에 붙어 있던 그의 파벌 학생이 걸어 나왔다.

"40명 넘게 모였으면 됐지, 뭐가 더 부족해? 끼기 싫으면 변명하지 말고 똑바로 말......."

"화산성주의 정체는 진 교수님이야."

그 말을 들은 학생들 사이에서 술렁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정말이야?"

"대체 무슨 근거로......."

"아마."

헥토르가 팔을 뻗어 그들을 막고는 툭 내뱉었다.

"맞을 거다."

헥토르가 그렇게 단정 짓자 주위의 흥분한 파벌 학생들이 입을 다물었다.

이어서 시몬은 방금 있었던 엘리시아에 얽힌 사건도 이야기해 주었다.

그녀가 예지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유명했다. 조금 더 '학생들의 승리'를 따내야 하는 이유를 실어주는 정보였기에, 공략대 모두가 환호하는 분위기였다.

마지막으로 시몬은 출력장치의 시간을 확인했다.

"아직 시간은 충분해. 급하게 움직였다가 이 인원에 손실이 일어나면 희망이 없어."

시몬이 고개를 들었다.

"최대한 더 인원을 모아서 한 번에 들어가자. 특히 Top10들의 힘이 더 필요해."

"Top10을 모으겠다고? 놈들에게 한번 당해놓고도 잘도 그런 소리가 나오는군."

헥토르가 인상을 썼다.

"녀석들은 하나같이 제멋대로에 막무가내다. 어떻게 끌어들일 생각이지? 특히 놈들은 모두 네놈과 적대하고 있을 텐데."

시몬이 가만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여기서 꽤 먼 거리에 배 한 척이 둥둥 떠다니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시몬이 슬쩍 미소 지었다.

"말로 안 들으면 힘으로라도 설득해야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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